저녁 을지로는 어둠이 가득합니다. 길에 행인도 여름과 달리 이따금씩 보일 뿐, 거리는 한산합니다. 8시 30분 거사님들의 줄은 굴다리 끝까지 길었습니다. 거사님들은 대략 90여 명입니다. 오늘은 봉사자가 적어 제영법사와 거사봉사대 해룡님과 종문님, 그리고 저 네 명이 진행을 했습니다.
오늘 보시한 음식은 밀감 360개, 백설기 250쪽, 그리고 커피와 둥굴레차 각각 100여 잔입니다. 밀감은 운경행님님이 3개씩 포장을 했습니다. 오늘은 밀감이 많아 거사님들이 두 번을 다 돌아도 조금 남았습니다. 거사님들은 날이 추워도 견딜 만한 날씨라 표정이 그리 굳지 않았습니다. 인사소리도 쾌활했습니다. 저녁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아 거사님들의 어깨는 아직 움추러들지 않았습니다. 한겨울 날이 추워 거사님들이 어깨를 올리고 종종 걸음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무주상보시는 아직 사람이 하는 작은 일입니다. 옛 사람은 '마음 달은 홀로 둥굴어, 그 빛은 만물을 삼킨다(心月孤圓 光呑萬象)'고 했습니다. 세상이 마음의 광명으로 환하게 빛나는 날이 오면, 우리의 무주상보시는 장작불처럼 작고 하찮아 보일 것입니다. 하루 빨리 그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도, 그 날이 실현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단순히 바라기만 한다면, 자신의 내면의 빛을 외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주 [법과 등불] 시간에 읽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문득 떠올라 여기 다시 새깁니다.
일어나서 앉아라. 잠을 자서 너희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가. 화살에 맞아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자에게 잠이 도대체 웬 말인가.
일어나서 앉아라. 평안을 얻기 위해 철저히 배우라. 그대들이 방일하여 그 힘에 굴복한 것을 죽음의 왕이 알고, 현혹하지 못하게 하라.
- <용맹정진의 경> 숫타니파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