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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급진적’이라고 번역되는 ‘래디컬(radical)’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뿌리(radix)’라는 말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단어의 원래 의미는 ‘뿌리로부터의’ 혹은 ‘근본적인’이라는 뜻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논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가장 급진적인 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단어가 이제는 일반적으로 ‘급진적’이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래디컬 마켓>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현재의 모순 상황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근본적 개혁’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들은 현재의 상황이 공정하지 못하기에 가장 근본적인 방법을 통해 개혁을 해야 한다는 당위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경제학 이론에 대해서 이해가 깊지 못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구체적인 경제학 용어들에 대해서 어려움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저자들이 제시한 방안들이 매우 이상적이고 현재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파악되지만, 과연 현실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느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단지 이론적 차원에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참신하게 다가왔지만, 인간의 욕망이 지배하는 현실의 자본 논리에서는 과연 통용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우선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에 맡겨두자는 시장 만능주의를 ‘시장 근본주의’라 지칭하면서, 현재의 불평등을 극복하고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시장 급진주의’와 구별하여 논하고 있다. 우선 이 책에서는 현재의 상황을 ‘자유주의 질서의 위기’(서론)로 진단하면서, 나름의 관점에서 모두 5개의 항목에 걸쳐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1장에서는 ‘부분적 공동 소유 만들기를 통한 경쟁 시장 만들기’라는 부제로 ‘소유는 독점이다’는 내용이 펼쳐진다. 구체적인 내용은 한국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는 ‘토지 공유제’와 유사한 것으로 이해했으며, 단지 토지 사용권을 경매를 통해 판매하고 그 수익을 공공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 핵심이라고 이해된다. 이것을 저자들은 ‘공공 임대 방식’으로 설명하면서, ‘무소유 정신과 공평한 공공재산 이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장은 ‘타협을 거래하는 시장’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데, 제목은 ‘급진적 민주주의’이다. 여기서는 매우 생소한 개념인 ‘제곱투표’라는 방식을 제시하면서, 그러한 방식이 비록 급진적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차원의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저자들의 제안이 지닌 의미를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모든 제도는 이론적으로 완벽한 것보다, 그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 사회를 돌아보더라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한 제도에 대해서 장단점과 찬반이 명확히 갈라지는 현상을 목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들의 방법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과연 실현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3장은 ‘만국의 노동자 단결시키기’라는 제목으로, 그 부제는 ‘노동에 대한 국제 질서의 재편성’이다. 여기에서는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개인에게 비자를 경매에 붙여 낙찰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방안이 ‘사람을 통한 국제주의의 실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낙찰자들이 도덕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에 따라 그 허점을 파고드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며, 그것을 금지시킬 현실적 수단이 없다면 이 역시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여겨진다.
4장에서는 기관 투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기업 경영권의 래디컬 마켓’이라는 부제의 ‘문어발 자르기’라는 제목으로 서술되고 있다. 마지막 5장은 ‘디지털 경제에 공헌하는 개인의 가치 인정하기’라는 관점에서 ‘노동으로서의 데이터 공급’을 중심으로 논하고 있다. 특히 5장의 내용은 암호화폐와 연관시켜 생각해 볼 거리를 적지 않게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하겠는데, 다소 추상적인 내용이 펼쳐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저자들은 결론에서 ‘근본 원인으로 돌아가기’라는 제목으로, 자신들의 제안이 전면적으로 실현되기가 쉽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소규모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그 영향력을 넓혀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덧붙이고 있다. 여전히 저자들이 제시한 내용들을 충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낙관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불평등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이 이론의 지닌 의미는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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