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한 여자들의 페미니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기혼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의 결혼 제도와 그로 인해 빚어지는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서 당사자들의 입장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실상 <페미니스트도 결혼을 하나요>라는 제목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급진적인 여성들의 입장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으로 이해된다. 페미니즘이란 남녀의 성별에 의한 차별을 없애고,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와 역할을 정당하게 자리매김하자는 운동이다.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고 사회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누구든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 혐오’에 맞선 여성운동 진영의 미러링 현상으로, 일부 급진적인 여성들은 페미니즘은 ‘비혼과 비출산’으로 상징되는 미혼의 싱글 여성들만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사회 활동을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했던 사람도 결혼을 하고, 임신과 육아라는 현실에 부딪히면서 끝내 휴직 혹은 퇴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 책의 머리말에서도 대부분의 여성들이 ‘결혼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고, 임신과 출산이라는 신체의 지각변동과 더불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은 사회적 현실은 물론이고, 기혼 여성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그 기간 동안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없기에 ‘경력단절’은 불가피하며, 이후에도 직장인과 엄마로서의 두 가지 역할을 힘들게 해야만 하는 현실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유지한 채 페미니스트가 되겠다는 것은 힘든 투쟁일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부너미’는 엄마 페미니즘 탐구 모임으로 시작된 독서모임으로, ‘평범한 기혼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담아내고 싶어’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책의 날개에는 독서 모임의 이름과 함께 ‘언제까지 세상이 바뀌기만을 기다릴 순 없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된 엄마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있다는 내용을 덧붙여, 모임의 성격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는 모두 11명의 필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들은 각자 기혼자로서 겪었던 남성중심적인 견고한 현실에 좌절하고 때로는 그것을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실상 필자들이 고백하고 있는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과 그러한 현실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엄연히 그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의 주체성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모성애를 의심받을지언정 나를 지키고 싶었다’는 주장이, 적어도 나에게는 예사롭게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들의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우리들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공명을 일으킬 때, 각기 다른 경험치가 시야를 확장시킬 때, 깨달은 바가 삶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그 의미가 더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기혼 여성들의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위해서는 남편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들을 페미니즘에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 책의 필자들 가운데 일부는 남편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낸 사례를 서술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미혼자와 기혼자들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기혼자들은 결혼을 하면서 ‘시가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출산을 하면서 또한 엄마로서의 역할이 주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부모와 자식들의 처지를 먼저 고려하면서, 자신의 입장은 후순위로 두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급진적인 생각을 지닌 여성들은 ‘비혼과 비출산’만이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혼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그러한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는 방안 역시 페미니즘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 여성 각자가 처한 구체적인 삶의 조건을 토대로, 그 속에 내재한 불합리를 고쳐나가는 것이야말로 페미니즘이 추구해야할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모두 11사람의 필자가 참여하여, 기혼 여성의 입장에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로서의 현실과 고민들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어쩌면 여기에서 다루어진 문제들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충분히 인지되고 있을 수 있지만, 여전히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도 절실하고 심각한 현실일 수밖에 없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오랜 동안 지속되어온 강고한 남성중심의 사회 제도와 습속들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면서 이러한 현실에 균열을 내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페미니즘은 결코 미혼 여성들만의 운동이 아닌, 그에 공감을 하는 남성이나 기혼자들과 함께 하는 운동이 될 때 그 효과가 배가될 수 있는 것이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