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치는 1878년생으로 추정된다 집성촌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전 해줬기 때문이다
쉰둥이는 가파치의 생일이 그렇게까지 추운 12월 엄동설한은 아니라 하셨다
그렇다면 1878년 10월 16일이란 말인가
1944년칠월에 만들어진 호적에 의하면 1888년12월생으로 기입되어있다
가파치라면 해방을 미리 짐작하셨을까? 더 일을 하고 싶어서 1888년생이라 기입 하신것 같다
가파치는 점조가 서너살무렵인가 가파치가 나타났다고 한다 동지들과
동지들의 주선으로 애두리를 어렵게 만나 차후에 부부인연을 맺었다한다 하지만
무슨영문인지 잘 모르겠으나 애두리는 전국곳곳 안 살아본데가 없다고 하셨다 한다
가파치는 가는 곳곳마다 서당을 열었는지 개인지도를 했는지 잘 모르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훈장이라고 했다
그 훈장이란게 한번 나가면 많은 나날과 세월을 보내고서야 집에 들르신 직업이라 한다
그리고 더 이상한건 자제분들을 아주 늦게 얻게된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애두리는 가파치가 보성에서도 많이 많이배운사람들을 상대로 가르치셨다 한다
호적엔 1910년? 3월에 만난것 같다
1944년에 미리오셔서 별량 구룡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며 가족을 기다린것같다
병섭이와 원섭이는 백동집을 몰랐을거라 하셨다
가파치는 홀로단신이셨다고 한다
가파치는 훤칠한키에 잘 생기셨으며 눈꺼플이 쌍커플이 아닌 외커플이셨지만 눈이 유난히 빛났다고한다
평상시엔 짚세기를 신으셨는데 고푸레에 물감을 들인 꽃신을 신으셨고 외출시엔 구두를 신으셨다고 한다
동그란 철테에 약간 붉은빛이난 안경을 끼셨다고 한다 향시 한복을 입으셨다고 한다
머리는 하이카라 였다 하셨다
가파치 아버지 승택님의 사망일자는 1896년도1월이라 기입되어있다
1896년이면 병신년이다 왜 윗대에서부터 가족사가 몰살이되었는지 잘 모르나
가파치를 보좌해주셨던 재선? 재훈?이란분께서 들려주신봐에 의하면 가파치의 가족사는
의병활동으로 유명하셨으며 그로 인하여 결국 다 죽게 되었고 가파치만 홀로남게 되었다라고 전해주었다한다
의병할동이 얼마나 나쁜지 역사를 잘 몰라서 모른다
가파치선친들의 묘소가
보성 예당 재 넘어에 있었는데 쉰둥이는 한번도 간적이 없었다 한다< ,현재 겸백면 운림리 수중산>
언젠지 잘 모르나 가파치는 선친들의 유골을 아주 높은산에서 이장을 하셨다고
재선? 제순?님으로부터 전해받았다 한다 아주 높은산이 어딘지 잘 모르나 .......
왜 멀고도 높았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별교앞 바닷가 장좌리에도 여자분들의 묘지가 있는데
해방이후엔 그 곳이 공동묘지로 둔갑되어 어느 묘지인지 잘 찾을수없다한다
해방후
대한민국 휼륭한 군홧발이 뭉게버린 가족사라면 분명 나쁜 가족사가 아닐까?
대한민국 휼륭하신 군핫발이 처절하게 쓸어버린가족사
대한민국 휼륭하신 군핫발이 뭉게버린............
그 무엇보다
그 무엇보다
젊은 이승만과 젊은 가파치는 동지이기도 했다고 한다
애두리가 기억할정도면 젊은 승만이는 호남땅을 젊은날에 밟았나?
젊은 승만이가 느낀 가파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왜
늙은 승만이정권에서 가파치 아들들을 한꺼번에 앗아가야만 했을까?
승만이는 절대적으로 그럴순없었을텐데........
전쟁이 끝나기 전? 음력 2월에 가파치가 먼져 가셨으니.......
호남하고도 남녘땅이 고향인 그집과는 언제부터 무슨연유로 인연이었을까?
가파치는 절대로 당신의 흔적을 남기시지 아니했다
분명 양지개 큰동네 박콩집을 쉰둥이는 기억하는데 호적을 다른곳에다 실어놓았다
그 호적주소는 무당이 살았
던 같다 현재는 잘 모르지만 얼마전꺄지 <암자표시>
정재앞 옹달샘있는 백동집도 마찬가지다 흔적을 아예 남기시지 아니했다
토지에 한석일이란이름이 있다
가파치는 큰 학문을 가지신 분인데 글체도 좋았고 문학에도 뛰어난 소질을 가지신분이라 전해진다
그분밑에서 공부하신분들 다 어디에 계신지 잘 모르나 그 누구도 모른다
큰집이란사람 <틀리게 족보를 만들어주신분>그리고 해양경비대경찰이셨던 분이 사돈이다
학문이 어느정도된 <학교공부와 서당공부를 겸용>
사돈이되어 가파치께 학문을 익히게됨은 더 없는 기회요 큰 영광이라며 따르셨던분도
6.25때에 국방의무로 전투경찰이된지 딱 일주일만에 돌아가셨기에 잘 모르나
학문은 짧으나 학문에 목마르신분께서<그 당시 한글페지로인하여 부친에의해 강제자퇴>
가파치께 배우고자한 열정이 대단하셨던분에 의하면 현대문학은 물론이요 한시가 더 유명하셨다 한다
결혼축문쓰는법 토정비결 풍수지리 등의 공부정도는
곧바로 설명해주시거나 책자를 주시며 스스로 익히게 하셨다 한다
그렇게 배울기회를 놓치신 많은분들께도 교육을 시키셨는데 주로 한문을 가르치셨다라고 전해지는데
차후 그분들은 야학을열어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시셨다고한다
가파치가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의상은 무엇이었을까
가파치가 설립을 추진했고 신축까지 추진하신 학교 학생들의 상은 무엇이었을까?
가파치는 풍수지리는 찿아가는게 아니라 만들어가는거라 하셨으며
차후에 변형될 지방계획을 미리 언급도 해 주시기도 하셨다 한다
쉰둥이 동네는 본디 인가가 아니기때문에 터가 샜던 모양이다,원당골> 걱정마라는 차원에서 ........
학교가 들어서면 동네 모습이 변형이 올것이며 ....
가령 학교를 허허벌판에 세운건 차후 지방과 지방사이에 도료계획이 어떻게 될것이며 ..........
가파치는 풍수지리는 찾아가는게 아니라 만들어가는거라 하셨다 한다
가파치는 시간나는대로 글을 쓰셨는데 그 글들이 어디로 다 갔는지 모른다고 했다
방 한칸 전체가 책과 문원이 꽉 찼으닌까
가파치네 책자와 문원을 가져가신분들께서는 이제는 돌려주셨으면 한다 제발
일제감정기때에도 잘 버터주었던 아들들이
해방후 다 죽어주어야했고 ..........
군홧발은 아들들을 죽인그날엔 <은력 8월 24일 병섭이 생일달> 엔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셨으므로 집에 안계셨기에 그날에 죽음을 면했다 한다
차후 어딘지 잘 모르나 끌려가서 받은 모진고문은 그 연세로선 감당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오른팔을 바르르떨어야했다 한다 그래도 집필을 멈추지 않으셨다 한다
그리고 차후엔
어디에서 무슨변을 당하고 오셨는지 잘 모르지만
옷이며 머리에 새똥이 잔뜩묻어서 털고 들어오심이 역렬한테
가파치께선
걸어가는데 새때들이 똥을쏴서 재수없다며 태연하게 투덜거리며
집에 들어오신후 몸저누우셔서 못 일어나셨다 한다
쉰둥이는 결혼했으므로 함께살지못해서 더 자세함을 잘 모른다 하셨다
아들들이 죽고난뒤에도 집을 많이도 비우셨던것 같다
가파치는
6.25가 끝나기전 몹시도 사나운 달 그달이지만
당신성격많큼 좋은날에 몹시도 가픈숨을 쉬다가 가셨다 한다
몹시도 사나운달이지만 좋은날에
당신 인품많큼 좋은날에
가파치가 숨을 거두자
애두리는
이제서야 편히 쉬시겠구려
이제야 편히 쉬시겠군요
이제야 편히 쉬시겠구나
이젠 편히 쉬셔야지요
그들이 남긴 핏덩리와
핏덩어리보다는 가파치를 쬐금이나마 닮았다는 쉰둥이 아들은
가파치가 들어가셔야 할 .......
가파치 마지막 보금자리
널 널에
서로 들어가서 눕겠다고 싸우고 장난치며
가파치가 눌 자리를
그 눌 자리를
들어가서 눕기도 했다고 한다
두 어린애는 그져 신이났던 모양이다
가파치 가족사가 남긴 크나큰 멍에를 짊어지고 가야할
그 두리서
그 두리는
가파치가족사가 남긴 흔적
대한민국 국군이 용서할수없는 가족사
부려진팔이 불구가된 애두리가
숨을 거둔 가파치께 전하는말
이제 편히 쉬세요
이젠 편히 쉬셔야지요
가파치를 보좌해주셨던 그분을 쉰둥이도 기억했다 재선? 재0?그렇게 기억했다
가파치가 그렇게 되도록 뭐 했느냐며 그분의 멱살을쥐고 흔들다 쓰려졌다 한다
그분이 뉘신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