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부터 여주에 개업하고 있는 동기에게 한번 가보자는 요청에 병원 이전 문제로 확답을
주고 있지 못하다가 2주 전에야 겨우 시간 내보겠다는 답을 했습니다.
토요일 헬스에 가서 샤워나 하고 가려다 여주 가는 김에 마침 5일장이라 장구경하고
신륵사에도 가보려 하니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2002/02/15)
헬스는 포기하고 평소대로 4시 50분에 집을 나와 동서울 터미널로 갑니다.
부발과 능서를 거쳐 1시간 반 걸린다 했는데 검표 과정에서 중간에 내릴 사람 없는 걸 확인했는지
무정차로 1시간만에 여주에 도착했습니다.
여주 외곽이 너무 많이 변해 겨우 5분 거리를 시내버스 타고 간다 하니 기사가 기가 막히는지
몇 마디 물어보는 말에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것은 위 장터국밥집 솥인데 아침에 없던 선지와 건더기가 낮에 가보니
먹음직스럽고 푸짐하게 끓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장터에서 간단히 요기하려고 검색했더니 해장국에 토종순대'씩'이나 넣어 주는 집이 있답니다.
그뢰에~? 솥에 사골 국물이 김을 내며 설설 끓고 있습니다. 기대가 커집니다.
장사 준비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손님 맞기 전에 '해장'을 하는 아주머니 두 분 계십니다.
나만 해장술하는 게 아니로구나.
설설 끓는 해장국이 등장했습니다.
고기 푸짐합니다. 한잔 생각나지만 친구들과 점심을 위해 참습니다.
잡내가 약간 나지만 그 정도 가지고 시장 순대국을 타박할 수는 없지요.
다 먹을 즈음에야 고추 기름통을 발견하고 뒤늦게 짜 넣습니다.
그런데 넣어준다는 토종순대, 사진에서 봤던 두툼한 막창순대는 오디로?
겨우 두 덩어리 나오고 나머지는 공장표 찰순대입니다.
그런 순대가 있길 바란 나도 나지만 그렇다고 갈색 막창으로 곱게 단장한 순대 사진으로
나를 유혹하다니, 제대로 낚였습니다. 그나마 푸짐했던 고기로 나의 어리석음을 달래고 자리를 뜹니다.
요즘 5일장은 전문 장돌뱅이(님)가 대부분이고 손주 용돈벌이 할마씨나 아줌씨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 분들께서 간혹 싸리 버섯도 가지고 나오는데 오늘 그런 행운은 없습니다.
할마씨에게 나물밥이나 국을 해 먹으려고 흔치 않는 뽕잎을 삽니다.
오늘 삶아 가지고 나왔다며 말도 안 했는데 크게 한 줌 더 올려 줍니다.
전엔 팔당호를 끼고 있는 양평에만 안개가 짙게 끼더니 이젠 여주도 양평 못지 않게 대단합니다.
강을 끼고 있는 절이 흔치 않습니다. 아름다운 강을 끼고 있으니 누각이 없을 리 없습니다.
아무리 휘둘러 보아도 짙은 안개로 강이 보이지 않습니다.
순대 욕심으로 마음이 더렵혀졌으니 아름다움이 눈에 보일 리 없지요.
망부석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작은 탑 혹은 비.
강당으로 쓰이는 극락보전 앞 구룡루와 재미있는 박공 무늬
대웅전처럼 쓰이는 극락보전과 다층석탑
원각사지 석탑처럼 흔히 볼 수 없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상층 기단부 용조각이 섬세합니다.
화강암이 아닌 대리석이기 때문에 가능한 조각일 겁니다.
적묵당. 기와로 만든 굴뚝. 연기 배출구가 CCTV 처럼 나를 쳐다봅니다.
극락보전 박공 무늬, 몇 번 와보니 그전에 보이지 않던 게 보이는 것일까요?
마음의 안개가 걷혀서 일까요?
이미 해가 뜨고 9시가 넘었는데도 안개가 자욱합니다.
석종, 석등, 석비로 올라가는 계단과 송림
석종은 나옹선사 사리탑이고 석비는 목은 이색이 문장을 썼는데 이색은 신륵사에서
나옹의 도움을 받아 가문의 숙원인 장경을 발간하였다 합니다.
석등 비천상과 이무기 그리고 무지개창
뒷산을 보니 그냥 내려가면 후회되겠습니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자욱한 안개가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산은 낮고 숲길은 짧은데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지
부드럽고 두꺼운 솔잎 카펫을 밟는 느낍입니다. 강춥니다. 하나 건졌습니다. 기분 좋습니다.
여주박물관에선 유주현의 유품이 전시 되고 있었는데 친지 작품 중 김동리 친필도 있었습니다.
유사하지만 유주현은 '창조와 사랑은 신의 뜻이며 인간의 의미이다'라 했습니다.
어렴풋이 그의 작품이 떠오릅니다.
장판의 돼지갈비집에서 간단히 하자는데 꼭 대접을 해야 마음이 편하겠답니다.
친구 집 근처 장어집으로 끌고 갑니다.
오늘 12시에 여주역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나만 혼자 새벽에 나오는데
집에서 한 마디 듣지 않았는지 궁금한 모양입니다.
이제 이만큼 나이 먹었으면 서로 느슨한 끈으로 엮여 있는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지요?
아직도 수컷 역할을 하겠다면 착각이고 배우자가 없어서 혼자가 아니라
있어도 없는 듯 혼자 사는 법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장군이 전역하면 버스나 지하철 탈 줄도 라면 하나 끓여 먹을 줄도 모른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필요한 거 챙겨주는 사람이 깔려있으니 스스로 할 일이 없었겠지요.
지금까지 집밥 잘 먹었는데 무슨 소리냐고요? 내가 귀찮고 힘들면 배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식이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과도한 요구와 간섭은 금물입니다요.
안주가 좋아서였던가? 오랜만에 만나서였던가?
남자들만 모였는데도 동병상련에 수다가 끝이 없으니 여자들이 모이면 이런 재미일까요?
한 친구는 '낮술이 이렇게 좋은 거였어?'하며 평소 주량을 넘깁니다.
경강선, 분당선, 3호선 그리고 각각 경의선과 4호선, 오늘도 추억이 한 켜 쌓였습니다.
코로나19로 어수선 합니다.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며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도록 하지요.
닥다리 블로그
http://blog.daum.net/fotomani
첫댓글 달력 첫 장을 뜯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장인 것처럼
발랄한 얼굴로 만났던 친구들,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영감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만은 아직도 50년 전 그 때 그대로입니다.
졸업 50주년이 내년 이군요
솔잎 카펫이 인상적 입니다
분당에서 여주까지 전철로 1시간도 안 걸리는데,
코로나바이러스 잠잠해 지면 가 봐야 겠습니다
새벽에 가보십시오.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순대 타박으로 마음을 더렵혔어도
신륵사의 아름다운 풍광을 잘 보셨네요ㅎ
부엉이 눈 달린 굴뚝, 오래 전에도
사진 올리셨던 것 같은데, 맞나요?
맞습니다. 기와로 치장한 아름다운 굴뚝 중 하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