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EnWjQi0po6I?si=PIp8lQIJWJ7-JWKw
사랑에 용감한 사람들 행 14장 21-22절
여러분들께서 잘 아시는데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사도바울 선생님의 1차 전도여행 과정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총 3차례의 선교여행을 합니다. 초기 예수공동체가 베드로와 사도들 중심으로 유대인을 대상으로 예수운동을 했다면 바울과 바나바 실라 이런 사람들 중심으로 이방인을 대상으로 예수운동을 전개합니다. 1차 전도여행은 주로 소아시아 연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2차 전도여행은 지금의 유럽으로 진출해서 빌립보, 아테네, 고린도 교회 등에서 선교를 하고 바울 서신의 집필의 계기가 되는 곳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3차 전도여행은 에베소에서 오래 머물면서 교인들을 챙기면서 뜨거운 이별의 이야기를 체험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와서 체포되어 로마로 향하게 됩니다.
오늘은 그 전체의 이야기에서 앞부분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바울의 초심과도 연결이 되어 있는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초기교회 공동체 안에 스며들 무렵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처형을 당하고 베드로는 옥에 갇히고 그러면서 예수 공동체는 예루살렘 중심의 운동에서 이방의 세계로 흩어지는 운동의 문을 열게 됩니다. 이때 그 사역의 중심에 서게 된 이가 바울이었습니다. 그가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파송을 받고는 배를 타고 바보라는 섬, 버가, 그리고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로 여정을 다니면서 예수 운동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바보라는 섬에서는 사이비 종교인 행세를 하면서 사람들의 삶을 착취하는 사람을 만나 시련을 겪기도 하고 비시디아의 안디옥에서는 예수운동을 시기 질투하는 무리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래서 지역에서 내 쫒김을 당하기도 하고 이고니온, 루스드라 같은 곳에서는 돌에 맞아 줄을 뻔하기도 합니다. 그랬던 그가 더베에서 그냥 센터가 있는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오면 직선코스로 매우 빠르게 도착해서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텐데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를 사지로 내몰았던 지역을 하나씩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 세운 교회들을 살피고 교인들 한사람한사람을 세우고 본문의 말씀처럼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믿음에 머물러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그 길을 되돌아옵니다.
제가 한동안 유부 초밥을 먹지를 못했습니다. 미국에 살 때 유부초밥을 잘못먹어서 4일 내내 꼼짝 않고 아래위로 쏟아내며 고생했던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몸이 힘들었던지 유부초밥만 보면 손이 안가요. 일단 입에서 거부를 해요. 몸이 아는 겁니다. 트라우마라고 하는 건 이성의 영역이 아닙니다. 몸이 먼저 알아요. 내가 먹어야지 해서 먹어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유부초밥을 다시 먹는데는 십수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바울도 그랬겠지요. 환대하고 환영하고 웃어주고 그런데 가는 건 어렵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사지로 내몰고 죽이려고 달려들고 실제로 돌을 던지고 멱살을 잡고 모멸감을 주고, 그런 곳을 향해 다시 가는 일은 누구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고 멱살을 잡고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불구덩이로 다시 되돌아갑니다.
어제 경청이야기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사람에게 의사표시 수단들이 많이 있는데 가장 겉으로 많이 표현되는 것이 말(언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전체 의사소통수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라고 합니다. 그리고 38%가 태도라고 합니다. 말 이전에 표정(엄마 괜찮아 그런데 말이 없어), 시선, 어투에서 이미 다 표현에서 다 표현되고 느낀다는 거죠. 그리고 가장 많은 프로테이지를 차지하는 수단이 에너지라고 합니다. 내 안의 에너지가 괜찮아 다 받아들일수 있어. 어떤 이야기도 용광로처럼 다 녹여줄수 있어하는 에너지와 넌 그래서 안돼하는 에너지로 그 사람앞에 서 있으면 이미 상대는 그걸로 연결 자체가 끊긴다는 겁니다. 어떤 말로도 소용이 없다는 거죠. 이 바울이 소아시아 교인들을 향한 에너지가 느껴지십니까?
두 번째 이야기 : 노예에서 노예제 폐지활동가
<주인 노예, 남편 아내>라는 실화를 기반으로 쓰여진 소설책이 있습니다. 미국 보스턴 건축가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영문학을 전공한 한국인 2세가 쓴 퓨리처 수상작입니다. 1800년대 남부 조지아 주에서 피부색이 하얀 노예 아내가 백인 남자로 변장하고 남편은 그를 돕는 흑인 노예가 되어 필라델피아와 보스톤을 거쳐 영국으로 탈출을 감행한 노예 부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에 변장을 하고는 증기선과 마차, 기차를 갈아타고 노예 사냥꾼, 경비경, 군인들의 눈을 피해 북부 보스톤까지 대탈출을 강행합니다. 백인 노예 여자가 노예를 부리는 백인 남자인 척을 하는 방법이 쉽지가 않지요. 그래서 말을 섞으면 탄로가 나니까 안들리는 척하고 병이 걸려 아픈 사람척하면서 사람들과 말을 섞지않고 남편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탈출을 합니다. 그들이 처음 노예지역을 벗어나서 필라델리아의 자유의 공간이 왔을 때 적응이 안되는 거예요. 당시 노예해방운동을 하던 퀘이커 교도 집에서 묵게 되는데 그 퀘이커 교도가 백인인 거예요. 그런데 그 지역에 묵을 데가 없으니까 자고 가라고 하는데 자요? 못자요? 못자요. 백인이잖아요. 아무리 퀘이커교도라도 평생 지시받고 명령받고 학대받은 존재잖아요. 돌봐주고 챙겨주고 그런 존재가 아니잖아요. 몸이 받아들이질 않습니다.
그런 그 부부가 백인들의 친절한 존중과 환대를 받으면서 안착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들의 탈출이야기가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그러면서 강연에 불려 다니고 그들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근데 놀라운 사실은 엘렌과 윌리엄 크래프트이 부부가 필라델피아, 보스톤을 거쳐 완전히 미국 땅을 벗어나 이미 노예제도가 폐지된 영국 땅에 도착해서 정착해서 일을 하고 여기저기 강연을 하면서 유명세를 떨쳐갈 때 쯤 그들 부부는 노예 탈출보다 더 큰 모험을 강행합니다.
“그들은 남부 노예제도에서 살아남았고 북부에서 납치범들을 따돌렸으며 한때 고향이라 부르던 나라의 법을 피해 도망쳤다. 그들은 질병을 극복했고 자연의 시련도 이겨냈다. 이제야 새로운 땅에서 자유를 찾았다. 그들은 너무도 긴 거리를 달려왔다. 남부에서 북부로 1600킬로미터, 뉴잉글랜드 전역을 다니며 다시 1600킬로미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친 파도를 건너 4800킬로미터, 그들은 서로를 위해 서로와 함께 달렸고 이제는 바로 이곳, 이 시간에 서로를 소유하고 있었다.”
드디어 마침내 온전한 자유인이 되었을 때 그들이 무엇을 했을까요?
“윌리엄은 혼자서 아프리카 서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의 조상들이 납치당해 노예가 된 곳이었다. 거기에서 그는 교사이자 활동가, 사업가가 되었다. 그는 다호메이(현재의 베냉)왕을 설득해 그곳에서 벌어지는 노예 무역을 종식하고 다호메이가 목화 재배 등 다른 산업으로 전환하도록 노력했다.
1863년 새해 첫날 해방 선언문이 발표되어 적들의 진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방되었다. 크래프트 부부는 서배너 근처 조지아주의 우드빌 플랜테이션에서 다시 도전했다. 이곳에서 엘렌은 지금까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뿌리 내렸다. 윌리엄은 자주 여행을 다니며 강연하고 기금을 모았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의 도움을 바다 크래프트 부부는 노예제도의 버려진 현장이었던 곳을 변모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제 이곳은 적극적인 노동자와 학생들의 공동체로 이루어진 농장이자 학교조합, 목화와 쌀과 콩을 키우는 밭, 그리고 교회를 포함해 새로 짓고 수리한 건물로 가득차게 되었다. 크래프트 부부는 우드빌에서 가족, 자유, 교육, 활동, 신앙이라는 평생의 꿈을 한데 모았다.“
야~~~ 남편은 아프리카로 향합니다. 노예무역의 뿌리 그 근원지를 찾아 뿌리부터 뽑아냅니다. 그리고 그들이 노예로 살았던 바로 그 땅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최초의 플렌테이션을 세우고 농장을 일구고 그 안에 학교를 세우고 노예 자녀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돌보면서 비로소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생각하고 사고하고 의지와 가능성을 가지고 똑같은 존재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혹독하게 감시당하고 의지도 감정도 없이 살아야하는 시절의 고통과 고난의 시간이 담겨있는 조지아 땅! 저 같으면 그쪽을 향해 오줌도 안 쌌을 것 같은 데 이 부부는 되돌아옵니다. 자신들 인생의 트라우마의 근원이 되었던 곳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해 가면서 진정한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시도합니다. 자신의 또다른 모습이었던 노예들을 향한 에너지!
세 번째 이야기
제가 구체적인 교인을 지명해서 죄송한데 좋은 이야기이니까 이해해 주세요. 요즘 정민정 집사님이 평일에 교회를 잘 안오십니다. 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오셨는데 요즘은 잘 안오셔요. 왜 그런지 아세요. 아이들하고 사랑에 빠졌어요. 전에는 아이들은 귀찮고 힘겨운 존재였데요. 그래서 늘 아이들 돌보는 일은 힘들고 부담으로만 여겨져서 누군가에게 자꾸 미루는 일이었어요. 아이들에게는 다른 누구보다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데 엄마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놀아주고 함께 음식을 만들고 이런 것이 너무 힘든거예요. 그러던 어느날! 늘 그러던 어느날이 중요합니다. 어느날 어떤 일들이 계기가 되어 이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깨달게 됩니다. 이분이 또 실천력이 짱이시잖아요.
세상에 애들하고 노는데 진심이예요. 실제로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놀아요. 자전거도 함께 타고 핸드폰을 내려놓게 애들하고 노니까 애들도 핸드폰을 내려놓고 엄마랑 놀아요. 애들이 신나니까 엄마도 신나고 애들이 엄마를 자랑스러워 하고 좋아하니까 뿌듯하고... 선순환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만남을 가장 즐겁고 신나게 즐기기 위해 애들이 학교가면 에너지를 비축합니다. 그래서 평일에 교회에 잘 안오셔요. 그 비축하고 아낀 에너지를 정말 진심으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써요. 정말 기적같은 이야깁니다.
결국 사도 바울이 자신에게 돌을 던졌던 불길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간 것도, 크래프트 부부가 끔찍한 트라우마의 땅이자 노예제도의 심장부였던 조지아로 되돌아온 것도, 그리고 자신의 트라우마 깊은 곳을 들여다 며 아이들과의 관계변화에 온몸을 싣은 것도 <생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사랑에 용감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깁니다. 인간의 몸과 이성은 본능적으로 상처 입은 과거와 자신의 삶을 움츠려들게 하는 트라우마 두려움을 거부하고 도망치려 하지만, ”사랑에 용감한 사람“만이 우리를 직면하게 만들고 용기 내어 그 트라우마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합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이 ‘용감한 사람들’이 있는 한, 고통과 고난의 자리는 언제나 생명을 길러내는 치유와 선순환의 땅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한주간 동안의 삶에도 이러한 용기가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