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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김종수님의 원글을 그대로 보겠습니다.
김종수2025.12.05 08:34조회수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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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죄된 본성을 취하셨다"는 표현과
"인간의 죄됨을 취하지 않고 그 본성을 취하셨다"는 표현은 모두 화잇 여사의 기록입니다.
재림교회 기본교리 28에도 예수님께서 죄된 본성을 취하셨다는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증언에는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무죄한 본성을 취하셨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된 본성을 취하셨으나 본성을 다스리는 죄됨(죄)을 취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죄된 본성을 가지지 않으셨다는 뜻이며 나는 그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분은 죄된 본성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무죄한 본성으로 오셨습니다.
물론 죄에 속한 타락한 인간의 정욕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화잇 여사의 기록된 글을 표현한 나의 글을 궤변이며 철학이라고 매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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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님,
예수님은 나사렛 이단으로 단죄 되었고,
사도 바울은 그 나사렛 이단의 괴수로 정죄되었습다만,
예수님은 물론 사도 바울도 지금 님과 같은 혈기를 부리는 듯이
신학적 견해를 밝힌 상대를 향해 겁박하는
그런 태도를 단 한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재림교회 안수 목사를 강조하면서 신학적인 견해를 밝힌 나를 향해
겁박하는 모습은 정말 안수 목사답지 않은 더티 플레이입니다.
미주 재림마을 카스다는 최근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인성론'에 대한
신학적인 격론과 논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나와 똑같은 신학적 입장에 서서 고군분투하신 정영근 목사님은
내가 알기로 90세도 넘은 은퇴 목사님이시지만, 이설과 이단적 사상으로
더럽혀지는 미주 재림마을 카스다 게시판의 정화를 위해 너무 애쓰셨으나
속수무책이었고 카스다 게시판은 이설자들의 놀이터처럼 변해 버렸습니다.
강남하늘빛교회 강명수(앤드류강) 장로의 이단설로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재림교회에 거기에 더하여 개혁교회에서조차 출교 당한
김중신이라는 분이 수많은 글들을 쓰면서 강명수 장로의 입장을 두둔하고
거기에 할 술 더 떠서 "예수님도 아담의 후손들처럼 죽은 씨로 태어 나셨다"
"예수님 안에도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 등
이러한 사단의 속성들이 들어 있었다"는 천인공노할 이단적 글을 올렸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재림교회 영남합회 곽용언 목사가 토론에 합류하면서,
자신은 이편도 저편도 아니고 중간에서 두 사이를 화합 시킬 사명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한 진영(곧 박진하 등 재림교회 대다수 목사들이 믿는 부류를 지칭)은
칭의를 강조하는데 "칭의를 강조하므로, 성화는 중요하지않다며,
율법폐기론으로 나아갑니다. 이들은 반대편으로부터
'신신학'이라는 비난을 받습니다."라는 소설같은 거짓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재림교회가 1888년 존스와 와그너의 기별을 잘 못 알고 있어서 그렇다면서
비록 개혁교회로 인해 존스와 와그너 기별이 퇴색 되었지만,
우리가 다시 존스와 와그너 기별을 재대로 알아야 한다면서
원하는 성도님들에게는 자신이 30년 동안 연구한 자료들을 보내 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사실 곽용언님은 자신이 중간 입장이라고 했지만, 내가 신학적 견지로 볼 때
그는 박진하와 김대성 목사님 등 우리 재림교회 다수의 목사와 신학자들이
믿고 가르치는 신학적 견해와는 전혀 다른 반대쪽임을 스스로 자인한셈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김종수님이 등장한 것입니다.
나와 과거 카스다에서 144000인 문제로 격론을 벌였던 장본인이며
김종수님은 그 때 144000인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은
아담 이후 모든 의인들이라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끝까지 고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하여 쓴 첫 글이 바로 "예수님이 죄의 지배를 받는
죄된 본성을 가지고 오셨으나, 죄됨은 취하지 않으심으로
예수님의 본성은 무죄한 본성이다"라는 희한한 철학같은 글을 썼습니다.
김종수님은 결국 예수님은 무죄한 본성이다라고 했으니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예수님이 죄의 지배를 받는 죄된 본성을 취했다"는 것은
기독교적 이단설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제 한국 재림마을로 이 이슈를 끌고 와서
나를 다시 겁박하는 글을 올리면서 아래와 같이 썼습니다.
"증언에는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무죄한 본성을 취하셨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김종수님의 글 인용)
화잇 선지자의 글인 증언에 정말 그러한 내용이 없는지 아래 몇 개만 올려 드립니다.
"그분은 인간의 본성은 취하시되 인간의 죄됨은 취하지 않으심으로써
인류의 머리로서 그분의 위치를 취해야 하셨다" (SDABC.7권 925)
예수님은 타락하고 쇠약해지고 연약해진 인성
곧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으나
죄됨은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님의 주장대로 '죄된 본성'을 취하셨다면
예수님은 흠없는 제물로 구속을 위한 대속물이 되실 수 없으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소유한 것과 같이 죄되고 부패하고
타락한 불성실함을 소유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분이 완전한 제물이 되실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가려뽑은기별 3권 131)
님은 교묘하게 죄됨은 취하지 않으셨으니 죄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말 장난에 불과합니다.
죄의 본성은 아담안에 죽은 우리 모두가
남녀의 동침을 따라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남자의 정자와 상관없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전혀 죄의 본성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김종수님의 주장은 앤드류강이나 생애의 빛의 주장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죄된 본성 즉 이기심, 탐심, 정욕이 꿈틀 거렸으나
그것들을 정죄하여 이기셨다는 강명수 장로의 주장과 다를 바 없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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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인성에 관하여 명상할 때 조심하라.
정말로 조심하라.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죄로 기우는 성향을 가진 인간으로 제시하지 말라.
그분은 두 번 째 아담이시다.
첫 아담은 죄와 오염이 없는 순결하고 무죄한 존재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그분은 인성을 취하시고 모든 일에 인성이 받는 시험을 받으셨다.
그분도 죄를 지을 수 있었고 타락할 수도 있었지만
한 순간도 그분 속에는 악한 성향이 있지 않았다.
그분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유혹으로 공격을 받았던 것처럼
광야에서 유혹으로 공격을 받았다." (The SDA Bible Commentary 5. 1128)
"그러나 우리가 속되거나 육신적인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며,
우리의 패역한 생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유혹에
굴복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그분의 인성을 격하시키거나
그분께서도 인간과 동일하게
죄 되고 부패한 성향을 소유하고 계셨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원고 57, 1890)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본성은 취하셨으나
그 본성의 죄에는 추호도 동참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무죄성에 관하여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The SDA Bible Commentary, 5, 1113)
"신성과 인성의 결합됨으로써 그분은 사탄의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을 지니셨다.
그리스도의 시험이 아담과 하와의 시험보다 더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했으나 부패되지 않은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기 때문이다." (원고 57, 1890)
"그분은 죄의 오염이 없이 태어나셨지만 인간 가족과 유사한 방식으로 세상에 오셨다." (편지 97. 1898)
"그분은 부패로 오염되지 않았고 죄와는 상관없는 분이셨지만
아버지께 도움과 지원을 받아야 할 고통을 견디셨으며
자주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면서 기도하셨다…
그분은 위대한 탄원자가 되셨으나 우리의 타락한 성정을 갖진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범사에 우리처럼 시험을 받으셨다." (Review and Herald, May 19, 1885, 305)
"그러나 우리가 속되거나 육신적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며
우리의 패역한 생각으로 그리스도께서도 사단의 유혹에
굴복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그분의 인성을 격하시키거나
그분께서도 인간과 동일하게 죄되고 부패한 성향을 소유하고 계셨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신성과 인성과 결합됨으로써 그분은 사단의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을 지니셨다.
그리스도의 시험이 아담과 해와의 시험 보다 훨씬 더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fallen)했으나 부패(corrupted) 되지 않은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기 때문이다." (Manuscript 57, 1890)
"조심하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하여 매우 조심하라.
그분을 사람들 앞에 죄의 성향을 가진 한 사람으로 제시하지 말라."
(편지 8, 1895).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을 때
그 본성의 죄에는 추호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분은 죄를 모르셨다.
그분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 어린양이셨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무죄성에 대하여
염려할 것이 전혀 없다."(The Signs of the Times, June 9, 1898)
"죄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선천적으로 불순종의 성향을 타고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독생자이셨다.
그는 인성을 친히 입으셨고, 모든 점에 있어서
인간이 시험을 당하는 것과 같은 시험을 한결같이 받으셨다.
그분도 죄를 범하실 수 있었고, 타락할 수도 있었지만
그분 속에는 단 한 순간도 악한 성향이 없었다." (편지 8, 1895)
"어떤 방법으로든 사람들의 마음에다
그리스도께서 타락의 오점이나 성향이 있었다든지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그분이 죄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손톱만큼도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편지 8, 1895).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지금까지도 신비요, 앞으로도 신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타난 것은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을 위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혀 우리와 꼭같은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지 못하도록 모든 사람에게 경고하라." (편지 8, 1895)
그래도.. .여전히 예수님이 무죄한 본성으로 오셨다는 말이 증언에 전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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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하 2025.12.05 23:22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본성은 취하셨으나
그 본성의 죄에는 추호도 동참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무죄성에 관하여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The SDA Bible Commentary, 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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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무죄성에 관하여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한 선지자의 증언의 말씀은 영어도 아닌 한글입니다.
김종수님,
이런 글을 보면서도 또 다시
"증언에는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무죄한 본성을 취하셨다"는 표현이 없습니다."라고
우기실 작정이신가요?
박진하 2025.12.05 23:23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을 때
그 본성의 죄에는 추호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분은 죄를 모르셨다.
그분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 어린양이셨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무죄성에 대하여
염려할 것이 전혀 없다."(The Signs of the Times, June 9, 1898)
보드레 2025.12.05 23:36
정확하게 구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용하신 말씀들이 너무나 분명하여 더 이상 오해 할래야 할 수 없는 말씀들이네요
박진하 2025.12.06 06: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눅 10:26)
보드레님, 정확하게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놀랍게도 똑같은 글을 똑같은 사람의 눈으로 읽는데도
이와 같이 놀라운 오해와 곡해, 편견이 생겨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도 그렇고 선지자의 글도 잘 읽어야 진리와 오류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박진하 2025.12.06 06:20
사람들이 오해하고 곡해 시키는 선지자 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글입니다.
"주님은 그의 무죄한 본성(sinless nature) 위에
우리의 죄 된 본성(sinful nature)을 취하셨는데,
이는 시험받는 자들을 어떻게 구조할지를 알기 위함이었다." (의료봉사,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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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윗글은 예수님은 "무죄한 본성"을 가지셨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다만, 그 무죄한 본성 위에 "우리의 죄 된 본성을 취하셨다"는 것인데
이것은 아래 다음의 글들을 통해 그 진정한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본성은 취하셨으나
그 본성의 죄에는 추호도 동참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무죄성에 관하여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The SDA Bible Commentary, 5, 1113)
무죄한 본성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는 것입니다.
타락하고 죄된 것은 우리이지 결코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 다음 아랫글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죄된 육체와 같은 모양으로 ―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죄된 육체의 모양으로 오셨다.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그는 슬픔, 피곤, 허기, 갈증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유혹을 당하였으나 죄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떠한 죄의 흔적도 없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상 생애에서) 지”(요 15:10)켰다.
그가 무한한 능력을 가졌던 것은 오로지 그가 완전히 아버지의 뜻을 순종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아담은 모든 인류의 소유자가 되기 위하여 시험과 유혹을 견디었다." (원고 9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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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잉태되어 거룩한 자로 오신 사람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죗된 본성으로 오셨다는 것이 아니라,
"죄된 육체와 같은 모양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무죄한 본성으로 오신 예수님은
무죄한 본성,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되었던 첫 아담처럼,
그 인류의 첫 자리(생명의 새로운 근원)에 서셔서
우리 인간과 똑같은 슬픔, 허기, 피곤, 갈증 등을 우리처럼 느끼고 경험하는
우리처럼 죄된 육체 똑같은 육체로, 똑같은 사람의 인성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해하시렵니까?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진리를 다)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 11:32)
은산 2025.12.06 06:34
다 목사라니까 하는 말인데
둘 중 하나는 공부 제대로 안 한 목사가 맞네.
그게 누군지는 굳이 안 밝혀도 될 듯 하고
근데 다른 개신교도 이렇습니까.
둘째 아담, 이 말로 다 끝나는 거 아닌가.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박진하 2025.12.06 06:44
간단명료하게 '핵심'을 지적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주님께서 "죄 된 본성을 취하셨다" 는 내용은
인간이 타락하여 범죄한 죄를 가진 죄성을 취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6천년 동안 죄로 인해 나약하고 연약해진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죄를 알지도 못한 분입니다.
첫째 아담은 죄를 경험하지 못한 더 좋은 유리한 영적 도덕적 입장에서 죄의 유혹에 빠졌지만,
둘째 아담 그리스도는 6년 간 누적된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의 모든 약점을 지니고
육신을 쓰고 오셨지만 오직 기도와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단의 온갖 유혹과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본이 되시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인간이 범한 죄 된 본성을 가지셨다면 구속주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대속주는 흠과 점이 없는 어린양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의 증언의 뜻을 잘못 간파하여 곡해하고 있지요.
육신을 쓰셨다는 뜻은,
범죄한 죄인의 성정을 그대로 가지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로 기울 수 있는 인간의 모든 약점과 본질을 가지셨다는 뜻입니다.
스다지킴이 2025.12.06 15:37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 13:14)
이 말씀이 딱 맞네요. 오해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말씀을 다르게 읽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이런 명확한 말씀은 애써 무시하거나 모른체하고, 어디서 전혀 해당도 없는 구절 한두개 끌어다가 우기는 걸 보면 영적 맹인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앤드류강의 이단에 사람들이 꼬이는 걸 보면,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는 예수님 말씀이 이 시대에도 이루어 지는 걸 봅니다.
박진하 2025.12.06 17:41
빠르면 다음 주 중 예배 시간에 김종수 안수 목사가 쓴 글들을
유튜브 생방송으로 하나하나씩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하여
오직 성경과 예언의 신으로 하나하나씩 반증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동안 재림교회 안에 박진하와 강명수 정도의 전혀 다른 두 예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번 기회에 하나님께서 '재림교회 안팎의 이단 백서' 집필을 위해 그 중간 단계
그러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러면서 실은 이설적, 이단적 사상을 가진 현직 목사들을
스스로 글을 쓰게 하셔서 그 영역을 넓혀 주신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어정쩡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게 된 것을 알게 된 것은 책 출간을 앞두고
나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년 초쯤 출간 예정인 [이단 백서]에는 우리가 재림 신앙을 하면서
목회 현실, 전도 현실에서 직접 맞딱뜨리는 여러 이설과 이단의 실상을
낱낱이 밝히고 우리가 성경과 예언의 신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상세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고 신계훈 목사님의 저서인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리라'는 책보다
아마 훨씬 분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진하 2025.12.06 21:56
We should have no misgivings in regard to the perfect sinlessness of the human nature of Christ.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의 완전한 죄 없음에 대해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Ellen White, Selected Messages, vol. 1, p. 256. Also, Signs of the Times, June 9, 1898, par. 15.)
He was to take His position at the head of humanity by taking the nature but not the sinfulness of man.2 (Note: As Adam before the fall) 그분은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지만 죄성은 취하지 않으심으로써 인류의 머리가 되셨습니다.2 (참고: 타락 이전의 아담처럼) (White, Signs of the Times, May 29, 1901, par. 11.)
Not possessing the passions of our human, fallen nature, but compassed with like infirmities, tempted in all points even as we are.3 우리의 타락한 인간 본성의 정욕을 지니지 않으셨지만, 그와 같은 연약함으로 둘러싸여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White, Testimonies, vol. 2, p. 509.)
He felt the disgrace of sin as much more keenly than it is possible for man to feel it, as his divine and sinless nature was exalted above the nature of man. 그분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죄의 수치를 느끼셨습니다. 그분의 신성하고 죄 없는 본성은 인간의 본성보다 존귀하셨기 때문입니다.( White, Signs of the Times, Jan. 6, 1881.)
He was to take His position at the head of humanity by taking the nature but not the sinfulness of man. 그분은 인간의 죄성이 아닌 본성을 취하심으로써 인류의 머리가 되실 것이었습니다. (White, Signs of the Times, May 29, 1901.)
When Christ bowed His head and died, He bore the pillars of Satan's kingdom with Him to the earth. He vanquished Satan in the same nature over which in Eden Satan obtained the victory.6 (Note: Adam had an unfallen nature in Eden when Satan defeated him) 그리스도께서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셨을 때, 그분은 사탄 왕국의 기둥들을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분은 에덴에서 사탄이 승리를 거머쥐었던 바로 그 본성으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White, Youth's Instructor, April 25, 1901.) 참고: 사탄이 아담을 물리쳤을 때, 아담은 에덴에서 타락하지 않은 본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When Adam was assailed by the tempter in Eden he was without the taint of sin.... Christ, in the wilderness of temptation, stood in Adam's place to bear the test he failed to endure. 아담이 에덴에서 유혹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는 죄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혹의 광야에서 아담을 대신하여 그가 견뎌내지 못한 시험을 견디셨습니다. (White, Review and Herald, July 28, 1874.)
Do not set him before the people as a man with the propensities of sin. He is the second Adam. The first Adam was created a pure, sinless being, without a taint of sin upon him; he was in the image of God. 그를 죄의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사람들 앞에 내세우지 마십시오. 그분은 둘째 아담이십니다. 첫째 아담은 죄의 흔적이 없는 순수하고 죄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셨습니다. (White, Letter 8, 1895, p. 14. Found in Manuscript Releases, vol. 13, p. 18)
...his [Christ's] nature was more exalted, and pure, and holy than that of the sinful race for whom he suffered. ...그[그리스도]의 본성은 그가 고난받으신 죄 많은 인류의 본성보다 더 고귀하고 순수하며 거룩했습니다. (White, Review and Herald, Sep. 11, 1888.)
He was a mighty petitioner, not possessing the passions of our human, fallen natures, but compassed with like infirmities, tempted in all points even as we are. 그분은 강력한 간구자이셨으며, 우리 인간적인 타락한 본성의 정욕을 지니지 않으셨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연약함에 둘러싸여 모든 면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White, Testimonies vol. 2, p. 509. Same quote is also found in Review and Herald, August 17, 1886.)
He was born without a taint of sin, but came into the world in like manner as the human family. 그분은 죄의 흔적 없이 태어나셨지만, 인류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White, Letter 97, 1898, (published in 7BC 926).
He is a brother in our infirmities, but not in possessing like passions.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에 있어서는 형제이시지만, 우리와 같은 정욕을 지니신 것은 아닙니다. (White, Testimonies vol. 2, p. 201.)
Man could not atone for man. His sinful, fallen condition would constitute him an imperfect offering, an atoning sacrifice of less value than Adam before his fall...인간은 인간을 대신하여 속죄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죄 많고 타락한 상태는 그를 불완전한 제물, 타락 이전의 아담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속죄 제물이 되게 할 것입니다. (White, Review and Herald, December 17, 1872.)
박성진 2025.12.07 08:40
예수님은 더하거나 빼거나 분리할 수 없는 신인합일체인 신성 - 예언의 신에서는 sinless nature 무죄한 본성 -에 인성 - the nature (of man이 중복되므로 생략되어 있음), 즉 sinful nature 죗된 본성 -이 분리할 수 없이 결합된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신인합일체인 예수님은 sinful nature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알지도 못하고 죄와 유혹에 굴복하지 않아서 흠 없는 어린 양으로서 속죄물이 되실 수 있으셨습니다. sinless nature는 신성을 말하고, sinful nature는 인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줄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유혹을 이기실 때 말씀과 기도로 이기셨고, 그분의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줄로 압니다.
신성(무죄한 본성)은 취하신 것이 아니고 원래 가지고 계셨던 것이고 인성(죗된 본성)은 아기 예수로 오실 때 취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맞을 줄로 압니다.
He took upon His sinless nature our sinful nature, that He might know how to succor those that are tempted.—Medical Ministry, 181. 7ABC 450.5
박진하 2025.12.07 09:13
참으로 사람 사상 안 변하는군요. ㅠㅠ
위에 내가 여러개의 영감의 글 곧 오해 할래야 오해할 수 없는 글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참담합니다.
박성진님, 영어도 아닌 아래 한글 다시 읽어 보세요.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을 때
그 본성의 죄에는 추호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분은 죄를 모르셨다.
그분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 어린양이셨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무죄성에 대하여
염려할 것이 전혀 없다."(The Signs of the Times, June 9, 1898)
He was to take His position at the head of humanity by taking the nature
but not the sinfulness of man.2 (Note: As Adam before the fall)
그분은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지만 죄성은 취하지 않으심으로써 인류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참고: 타락 이전의 아담처럼) (White, Signs of the Times, May 29, 1901, par. 11.)
'우리의 죄된 본성을 취하셨다'고 할 때 죄된 것은 우리이며
죗되고 타락한 우리와 같은 모양, 우리와 같은 똑같은 사람(인성)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흠없는 어린양 예수님에게는 "단 하나의 죄의 흔적도 없으신' 무죄의 본성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이 둘째 아담의 위치입니다.
박성진님의 논리대로라면, 예수님은 절대로 우리의 모본이 되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죗된 본성을 가지시고도 불구하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고 죄와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와 전혀 다른 분의 예수가 됩니다.
왜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태어나셔서 저절로 그런 특권을 갖게 되는지요?
그래놓고 우리에게 모본이라니 당치 않은 억지 주장입니다.
박성진 2025.12.07 09:34
인간의 죄성(sinfulness of man)의 원래 뜻은 인간이 죄를 지은 상태를 말하는 "인간의 죄많음"이라는 어휘이지, 앞으로 기회가 되면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유혹에 굴복할 수도 있는 죗된 본성(sinful nature)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둘을 구분해야 할 줄로 압니다. Sinfulness of man은 죄짓는 행위의 결과를 말하고, sinful nature는 죄지을 잠재력을 말합니다.
박진하 2025.12.07 10:12
박성진님,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거룩한 자로 태어나신 예수님 안에
"인간의 죄많음"이 들어 있었다는 것인가요?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담 이후 모든 인간들은 모두 다 남녀의 동침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누구를 막론하고 죄성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둘째 아담' '마지막 아담' 곧 새생명의 근원으로 오시기 위해
아담의 씨가 아닌, 성령으로 잉태 되시어 거룩한 자로 오신 독생자이십니다.
'독생자'라는 말의 근원적인 의미는 단순히 '외아들'이 아닙니다.
이 지구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탄생하셨으나, 유일하게 아담의 죄성의 유전자를
받지 앉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무죄한 본성' 곧 첫 아담이 죄 짓기 전의 무죄한 본성으로
오신 '유일한 분'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첫 아담보다 훨씬 더 불리하셨던 것은,
죄 짓기 전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완전한 육체를 가졌지만,
사람 예수님은 4천년 동안 퇴화되고 타락하고 연약해진 육체를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죄성이나 죄의 본성이 없으셔서 죄를 알지도 못하셨기 때문에
죄에 익숙한 우리 죄인들이 죄의 유혹을 받을 때보다도
훨씬 더 예민하게 죄의 유혹에 몸서리치실 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와 성령을 의지하여 죄의 유혹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위로부터 오신 예수님은
위로부터 즉 거듭나서 영이 된 우리 모두의 진정한 모본이 되셔서
거듭난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령을 의지하여 죄를 온전히 이길 수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박진하 2025.12.07 10:14
저 위에 내가 인용하여 올린 선지자의 영감된 수많은 글들을 보면서도
여전히 믿지 않고 엉뚱한 논리와 억지 궤변으로
흠없는 어린양 예수님을 죄의 본성을 가진 분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로 결심한 것 이상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진 2025.12.07 10:28
The Word of God
RH August 22, 1907EGW
Clad in the vestments of humanity, the Son of God came down to the level of those he wished to save. In him was no guile or sinfulness; he was ever pure and undefiled; yet he took upon him our sinful nature(우리의 죗된 본성=우리의 죄성). Clothing his divinity with humanity, that he might associate with fallen humanity, he sought to redeem for man that which by disobedience Adam had lost, for himself and for the world. In his own character Jesus manifested to the world the character of God; he pleased not himself, but went about doing good. His whole history, for more than thirty years, was of pure, disinterested benevolence. RH August 22, 1907 - RH August 22, 1907, pa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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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RH 1907년 8월 22일 EGW
하나님의 아들은 인성의 옷을 입으시고 구원하고자 하시는 자들의 수준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 안에는 간사함이나 죄악(sinfulness)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항상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으셨지만, 그분은 당신에게 우리의 죄성(our sinful nature=우리의 죗된 본성)을 짊어지셨습니다(=취하셨습니다). 타락한 인류와 교제하기 위해 신성에 인성을 입히시어, 아담이 불순종으로 잃어버린 것을 자신과 세상을 위해 인간을 위해 구속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품성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셨습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시고 선을 행하며 다니셨습니다. 30년이 넘는 그분의 역사 전체는 순수하고 사심 없는 자비로 가득했습니다.
RH 1907년 8월 22일 문단 1
박진하 2025.12.07 10:37
다시 말씀 드립니다.
예수님 안에 우리와 똑같은 죄의 본성이나 죄의 성향이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그 몸에 담당(벧전 2:24)하셨다는 것이며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3)라는 뜻입니다.
박성진님의 논리대로라면,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실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나를 위로부터 왔으며 너희는 아래서 났으며라는 말씀도 거짓이 됩니다.
박성진 2025.12.07 11:02
살아남는 이들 43-44 페이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천사들은 예수님 앞에 부복하였다. 그리고 저희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리라는 것과 한 천사의 생명으로는 그 빚을 갚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오직 예수의 생명만 사람을 위한 속죄 제물로 아버지께 가납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 그들이 그분과 함께 하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과 이따금 그분께 힘을 주게 될 것이며, 또한 당신이 타락한 인성을 취하실 것과 따라서 당신의 힘이 천사들의 힘만도 못하게 될 것과 그들은 그의 치욕과 큰 고통의 증인이 될 것이며, 그의 고통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증오를 볼 때에 격한 감정으로 흥분할 것이며 그분에 대한 그들의 사랑 때문에 그를 죽이려는 자들의 손에서 그분을 구원하려 하고자 할 것이지만, 예수께서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막기 위하여 간섭하지 말아야 하며, 그분의 부활에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며, 구원의 계획이 수립된 것과 아버지께서 그 계획을 수락하셨음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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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Redemptation 43 par. 2
The One Possible Way of Salvation
The angels prostrated themselves before Him. They offered their lives. Jesus said to them that He would by His death save many, that the life of an angel could not pay the debt. His life alone could be accepted of His Father as a ransom for man. Jesus also told them that they would have a part to act, to be with Him and at different times strengthen Him; that He would take man’s fallen nature, and His strength would not be even equal with theirs; that they would be witnesses of His humiliation and great sufferings; and that as they would witness His sufferings and the hatred of men toward Him, they would be stirred with the deepest emotion, and through their love for Him would wish to rescue and deliver Him from His murderers; but that they must not interfere to prevent anything they should behold; and that they should act a part at His resurrection; that the plan of salvation was devised, and His Father had accepted the plan. SR 43.2
박진하 2025.12.07 11:20
박성진님, 그 정도가 아니라 내가 아래에 다 올려 주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타락한 것'은 우리 죗된 인간이지 예수님이 아닙니다.
님의 논리대로라면, '타락한 인성' '죄된 본성'을 예수님이 우리처럼 그 본성에 가졌는데도
왜 무엇때문에, 무슨 이유로
첫째,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 되어 위로부터 거룩한 자로 오셔야 했는가?
둘째, 왜 예수님은 어릴적부터 우리와 달리 저절로 죄를 이길 수 있으셨는가?
셋째, 왜 우리는 어릴때부터 예수님처럼 저절로 죄를 이길수 없었는가?
넷째, 왜 예수님은 우리와 매우 불공평하게 태어날 때부터 우리와 똑같은 타락한 본성, 죄된 본성을 가지시고도
거룩한 자이셨고 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다고 하셨는가?
다섯째, 바리새인으로, 유대 선생으로 매우 경건하게 살아 온 니고데모에게 왜 예수님은
만나자마자 '거듭나라'(다시 태어나라)고 하셨는가?
답해 보세요.
박진하 2025.12.07 11:21
Notwithstanding that the sins of a guilty world were laid upon Christ, notwithstanding the humiliation of taking upon Himself our fallen nature, the voice from heaven declared Him to be the Son of the Eternal.14 죄책감에 사로잡힌 세상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지워졌고,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스스로 취하시는 굴욕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은 그분을 영원하신 분의 아들로 선포했습니다. (White, Desire of Ages, p. 112._
By thus taking humanity, he honored humanity. Having taken our fallen nature, he showed what it might become, by accepting the ample provision he has made for it, and by becoming partaker of the divine nature.15 그분은 이처럼 인간성을 취하심으로써 인간성을 존중하셨습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취하심으로써, 그분은 타락한 본성을 위해 마련하신 풍부한 준비를 받아들이시고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심으로써 타락한 본성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White, Special Instruction Relating to the Review and Herald Office, p. 13.)
It was in the order of God that Christ should take upon himself the form and nature of fallen man.16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간의 형상과 본성을 스스로 취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White, Spirit of Prophecy, vol. 2, p. 39.)
Clad in the vestments of humanity, the Son of God came down to the level of those He wished to save. In Him was no guile or sinfulness. He was ever pure and undefiled; yet He took upon Him our sinful nature. Clothing His divinity with humanity, that He might associate with fallen humanity.17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의 옷을 입으시고 구원하고자 하시는 자들의 수준으로 낮아지셨습니다. 그분 안에는 간사함이나 죄악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항상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으셨지만, 우리의 죄 많은 본성을 취하셨습니다. 신성에 인성을 입히심으로써 타락한 인류와 교제하셨습니다. (White, Review and Herald, December 15, 1896.)
The great work of redemption could be carried out only by the Redeemer taking the place of fallen Adam. With the sins of the world laid upon him, he would go over the ground where Adam stumbled. ... The King of glory proposed to humble himself to fallen humanity! He would take man's fallen nature and engage to cope with the strong foe who (had) triumphed over Adam.18 위대한 구속 사역은 타락한 아담을 대신하신 구속주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죄를 짊어지신 그분은 아담이 넘어진 땅을 밟으실 것이었습니다. ... 영광의 왕께서는 타락한 인류에게 자신을 낮추실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취하시고 아담을 이긴 강한 원수에 맞서 싸우실 것이었습니다. (White, Review and Herald, Feb. 24, 1874.)
He took upon Himself fallen, suffering human nature, degraded and defiled by sin.19 그분은 죄로 인해 타락하고 고통받는 인간 본성, 곧 타락하고 더럽혀진 본성을 스스로 취하셨습니다. (White, Youth's Instructor, December 20, 1900.)
In taking upon Himself man's nature in its fallen condition, Christ did not in the least participate in its sin.20 타락한 상태의 인간 본성을 스스로 취하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그 죄에 조금도 참여하지 않으셨습니다. (White, Signs of the Times, June 9, 1898 (also in 1SM 256). See also Manuscript 93, 1893: Christ took "the nature of man in his fallen condition."
Jesus also told them that...he should take man's fallen nature...21 예수께서는 또한 그들에게 ... 자신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취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White, Spiritual Gifts vol. 1, (1858), p. 25.)
The Son of God humbled himself and took man's nature after the race had wandered four thousand years from Eden, and from their original state of purity and uprightness. ... When Adam was assailed by the tempter in Eden he was without the taint of sin. ... Christ, in the wilderness of temptation, stood in Adam's place to bear the test he failed to endure. ... Christ bore the sins and infirmities of the race as they existed when he came to the earth to help man. In behalf of the race, with the weaknesses of fallen man upon him, he was to stand the temptations of Satan upon all points wherewith man would be assailed.22
하나님의 아들은 인류가 에덴에서 4천 년 동안 방황하고 본래의 순수하고 올바른 상태에서 벗어난 후에 자신을 낮추시고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습니다. ... 아담이 에덴에서 유혹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는 죄의 오점이 없었습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유혹의 광야에서 아담을 대신하여 그가 견뎌내지 못한 시험을 견디셨습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돕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을 때 인류의 죄와 연약함을 그대로 지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연약함을 지닌 인류를 위해, 그분은 인간이 공격받을 모든 면에서 사탄의 유혹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White, Review and Herald, July 28, 1874, par. 3)
It was in the order of God that Christ should take upon himself the form and nature of fallen man...23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간의 형상과 본성을 취하신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White, Spiritual Gifts vol. 4a, (1864), p. 115. This quote was reprinted in Spirit of Prophecy vol. 2 (1877), p. 39. Also in Review and Herald, Dec. 31, 1872.)
Though he had all the strength of the passion of humanity, never did he yield to temptation to do that which was not pure and elevating and ennobling.24
비록 그분은 인간의 모든 정욕의 힘을 가지고 계셨지만, 결코 순수하고 고상하며 고상하지 않은 일을 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White, Signs of the Times, Nov. 21, 1892, par. 8.)
The divine nature, combined with the human, made Him capable of yielding to Satan’s temptations. Here the test to Christ was far greater than that of Adam and Eve, for Christ took our nature, fallen...25 하나님의 본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에 굴복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 대한 시험은 아담과 하와가 받았던 시험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우리 본성을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White, Manuscript 57, 1890. Released in 1990 (16MR 182).
It would have been an almost infinite humiliation for the Son of God to take man's nature, even when Adam stood in his innocence in Eden. But Jesus accepted humanity when the race had been weakened by four thousand years of sin. Like every child of Adam He accepted the results of the working of the great law of heredity.26 아담이 에덴에서 무죄한 상태에 있었을 때조차도,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면 거의 무한한 굴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가 4천 년 동안의 죄로 약해졌을 때 인간성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아담의 모든 자녀처럼, 그분은 위대한 유전 법칙이 작용한 결과를 받아들이셨습니다. (White, Desire of Ages, p. 49.)
He took upon His sinless nature our sinful nature, that He might know how to succor those that are tempted.27 그분은 유혹받는 자들을 어떻게 도울지 아시기 위해 죄 없는 당신의 본성 위에 우리의 죄 많은 본성을 취하셨습니다. (White, Letter 67, 1902. Released in 1932 in Medical Ministry, 181.)
박진하 2025.12.07 11:21
예수님 인성에 대한 두 가지 견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성경도 그렇지만, 예언의 신에도 우리가 세심히 살피지 않으면 오해하고 곡해할 수 있는 문장들이 다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 못 읽으면, 상반되는 두 가지 견해로 판단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분명히 “천지가 없어지기까지 율법은 일점일획도 폐할 수 없다”(마5:17,18)는 말씀이 있는가 하면, “십자가로 제하여 폐하고 도말해 버린 율법”(엡2:14~16)이 있습니다. 일반 개신교인들은 에베소서 2장이나 골로새서 2장 14절을 근거로 안식일이 폐했다고 하는 것이고, 재림교인들은 에베소서나 골로새서의 율법과 안식일은 절기에 속한 안식일일 뿐, 십계명의 안식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양진영의 영적 전쟁은 끝날 줄 모르는 양상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과 안식일을 다룰 때에도 성경 전체를 통해 상고할 때 비로소 ‘폐한 율법과 안식일은 모세의 율법’임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친히 써 주신 십계명의 율법과 안식일은 결코 변질 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의 본성과 인성 문제를 다룰 때에도 ‘나무’만 보질 않고 ‘숲’을 보는 넓은 견지에서 보면 정확하게 읽혀지고 이해가 됩니다.
성경과 예언의 신의 이러한 상반되는 진술들 때문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도의 본성 문제에 대해 서로 논쟁해 왔습니다. 성경과 예언의 신이 말씀하고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 예수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먼저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그러므로 그가 모든 일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니라.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롭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브리서 2:17)는 말씀에서처럼,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이 겪는 온갖 유혹과 고난을 우리와 다르지 않게 모두 겪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육체적 피로(요한복음 4:6), 굶주림과 목마름(마태복음 4:2; 요한복음 19:28), 감정적 슬픔(요한복음 11:35), 거절과 외로움(사 53:3; 마가복음 14:50), 마귀의 유혹(마태복음 4:1-11) 등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인간인 척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은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인간 몸(요한복음 1:14)이셨고, 이성적인 인간의 영혼과 의지(마태복음 26:39)를 가지셨고, 정상적인 인간적 성장(누가복음 2:52)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러 둘째 아담이 되시기 위해 그분은 완전한 인간이 되셔야 했지만,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인간 본성을 취하셨지만, 타락하거나 죄 있는 본성은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아담의 원죄 없이 태어나셨고, 성령으로 잉태 되어 위로부터 ‘거룩한 자’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본성에는 죄성이나 타락이 없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성령을 의지하여 모든 유혹을 이기셨고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명백한 것은, 그리스도와 아담의 다른 모든 후손들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그분의 죄 없음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벧전 2:22, 히 4:15). 예수님은 결코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마 4:1-11). 그리고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셨습니다(고후 5:21).
예수님은 형언할 수 없는 수많은 공격과 원수들의 진정한 압박과 고통 속에서도 도덕적으로 흠이 없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셨지만, 예수님의 내적 본성은 죄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악으로 향하는 선천적 또는 후천적 죄의 성향이 없으셨습니다(히 4:15). "불의 가운데 형성"된 인간과 달리, 예수님은 처녀에게서 썩지 아니할 씨로 나셨습니다(시 51:5, 베드로전서 1:23, 마 1:23). 누가복음 1장 35절에서 예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불립니다. 거룩한 본성은 죄악된 본성과 절대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유전된 죄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고 거룩하게 태어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개신교는 예수님이 아담의 타락 이후처럼 타락하거나 죄로 타락한 본성을 물려받았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그러한 본성은 죄에 대한 성향을 함축하기 때문이며, 이는 신학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죄 없는 흠없는 어린양 구세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과 결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롬 8:3)으로 오셨다고 설명합니다. 그분은 "실제" 죄 있는 육신이 아니라 그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인간의 육신을 가지셨지만, 우리와 같은 형태였을 뿐 도덕적으로 우리처럼 타락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이 아닌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기 때문에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죄의 본성이나 죄의 오염을 물려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7장 26절은 그리스도가 "거룩하고 흠 없고 흠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셨다"고 말하고 있으며, 예수님은 “이 세상 임금” 사단이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 14:30)라고 하신 것입니다.
박성진 2025.12.07 11:31
우리의 타락한 인성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연결됨
그분의 품성에 죄의 얼룩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으나 그분은 우리의 타락한 인성을 그분의 신성과 연결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셨다. 이렇게 인성을 취하심으로 그분은 인성을 영화롭게 하셨다. 우리의 타락한 속성을 취하심으로 그분은, 그것을 위하여 그분이 이루어 놓으신 넉넉한 준비를 받아들일 때, 그리고 신성을 나누어 받는 자가 될 때 그것이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셨다. 서신 81, 1896. 가려뽑은 기별 3권 134 페이지
박진하 2025.12.07 11:56
다시 말합니다.
타락한 것은 우리이지 예수님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타락한 죄를 취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타락하고 죄로 얼룩진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박성진 2025.12.07 11:34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성의 수준으로 내려오심
그리스도께서는 무한한 희생을 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그분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 그분은 그분의 거룩한 영혼에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결과를 취하셨다. 왕관을 벗어 놓고 내려오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시고 한 걸음 한 걸음 타락한 인성의 수준까지 내려오셨다.
가려뽑은 기별 128 페이지
박진하 2025.12.07 12:00
ㅎㅎㅎ박성진님, 그래서 예수님이 타락이라도 하셨어요? ^^
본래 이름은 여호와, 본래 직위는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 평강의 왕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라는 이름으로, 사람으로, 아들로, 종으로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사람이 되다니요????
그것을 타락한 인성의 수준까지 내려 오신 것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국어 공부 좀 하셔야 할 듯 싶습니다.
박성진 2025.12.07 11:44
타락하기 전에 아담은 저주의 결과와 무관하였다. 유혹자에 의하여 공격을 받을 당시 그에게는 죄의 영향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는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완전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그는 죄에 굴복했으며 높고 거룩한 지위로부터 떨어졌다.죄된 육체와 같은 모양으로 ―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죄된 육체의 모양으로 오셨다.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그는 슬픔, 피곤, 허기, 갈증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유혹을 당하였으나 죄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떠한 죄의 흔적도 없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상 생애에서) 지”(요 15:10)켰다. 그가 무한한 능력을 가졌던 것은 오로지 그가 완전히 아버지의 뜻을 순종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아담은 모든 인류의 소유자가 되기 위하여 시험과 유혹을 견디었다.원고 99. 1903.
가려뽑은 기별 3권 141-142 페이지
박진하 2025.12.07 11:58
바로 그것입니다.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죄된 육체의 모양" 바로 이것입니다!!!!!!!!!!!!!!!!!!!!!!!!!!!!
박성진님이나 박진하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육체'로 오신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
예수님 안에 님과 나처럼 비열하고 더러운 죗됨이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성령으로 잉태되어 거룩한 자로 오신 그 분 안에 어떻게 죄된 본성과 타락한 본성이 있을 수 있나요?
박성진님, "둘째 아담"이라는 선지자의 표현에 주의하기 바랍니다.
첫 아담의 인류의 생명의 근원이었으나 죄로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새생명의 근원으로 '둘째 아담'으로 오신 것입니다.
선지자의 글에도 이 문제를 여러번 언급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으로 칭해진다.
순결성과 거 룩성, 하나님의 연결성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 음에 있어서 주님은
첫 아담이 시작한 곳에서 시작 하셨다.” (YOUth's Instructor, 1895, 6, 2)
"죄된 육체와 같은 모양으로 ―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죄된 육체의 모양으로 오셨다.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그는 슬픔, 피곤, 허기, 갈증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유혹을 당하였으나 죄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떠한 죄의 흔적도 없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상 생애에서) 지”(요 15:10)켰다.
그가 무한한 능력을 가졌던 것은 오로지 그가 완전히 아버지의 뜻을 순종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아담은 모든 인류의 소유자가 되기 위하여 시험과 유혹을 견디었다." (원고 99. 1903)
박성진 2025.12.07 20:59
산상수훈 311/5
그리스도는 야곱이 보았던, 밑바닥은 지상에, 꼭대기는 하늘 문, 곧 영광의 문어구에 닿은 그 사다리이시다. 만일 그 사다리가 단 한 발판 때문에 지상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잃어버린 바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있는 곳에 찾아오신다. 예수께서 우리의 본성을 취하시고 승리하신 것은 우리로 당신의 본성을 취함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12예수께서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으나 죄 없는 생애를 사셨다(롬 8:3). 이제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성으로는 하늘의 보좌를 붙드시는 한편 당신의 인성으로는 우리를 붙드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품성의 영광에 이르라고 우리에게 명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야 한다.
박성진 2025.12.07 21:09
그리스도와 교리 233/8
성소에 관련된 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재에 관하여 계속적으로 교육을 받아야만 하였다. 성소 봉사의 근본 목적은 하늘 왕국의 율법인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든 인간의 심령 가운데 넣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희생 제물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실물 교훈이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받으셨고 죽어가는 희생 제물이 되셨으며 인간이 지은 죄를 친히 담당하셨고 무죄 하신 분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죄가 되셨다.
박성진 2025.12.07 21:15
신론(神論) 49/2
5. 예수님은 얼만큼 인간 본성과 일치되셨는가?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둘째 아담이심을 계시한다. 그분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 혹은 "죄많은 인간의 모습"(롬 8:3, 공동 번역)으로 사셨다. 어느 정도까지 그분은 타락한 인간과 일치하셨거나 일치되셨는가? 죄된 인간, 혹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란 표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부정확한 견해 때문에 기독교 역사 전체에 걸쳐 파당과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신론(神論) 49/4
성육신 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난외주: 형체]"이셨는데, 이것은 태초부터 그분은 신적 본성을 소유하셨다는 것을 말한다(요 1:1; 빌 2:6, 7). "종의 형체"를 가지심으로 그분은 신적 고유 권한(prerogatives)을 유보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의 종이 되셔서(사 42:1)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셨다(요 6:38; 마 26:39, 42). 그분은 인성으로 신성을 옷 입으셨으며, "죄 있는 육신의 모양" 혹은 "죄 있는 인간 본성" 혹은 "타락한 인간 본성"을 취하셨다(롬 8:3 참조).*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저술가들은 인류와 자신을 동일시 하신 예수님을 기술하는 데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분이 어떤 면으로든지 죄가 있었다는 의미를 결코 내포하지 않는다. 온 역사를 통해서 본교회의 공식 입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무죄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있다거나, 죄된 행위와 생각에 참여하셨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비록 죄있는 육신의 형체 혹은 모양이 되셨지만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며 그분의 무죄하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론(神論) 51/5
예수님은 온갖 불리한 조건을 지닌 우리의 본성을 자진해서 취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유전적 오염이나 타락과 실제적 죄와는 무관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적대자들을 향해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 잡겠느냐"(요 8:46)고 도전하셨다. 가장 혹독한 시련을 직면해서 그분은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 14:30)라고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악한 성향이나 기질, 혹은 죄된 정욕을 전혀 갖지 않으셨다. 그 어떤 시험의 사태(沙汰)도 그분께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을 끊을 수 없었다.
박성진 2025.12.07 21:33
박진하 목사님께서 저를 오해하시는 바가 있어서 한 말씀만 올립니다. 존경하는 두 분 목사님들이 최소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신데 신조에 관하여 감정적인 대응의 논조가 보여서, 성경과 예언의 신 등 교회 안에서 인정하는 자료를 찾아 게시하여 서로 바르게 이해하자는 취지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읽으시는 분들도 더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된다면 더 감사한 일일 것 같아서 댓글을 많이 달게 되었습니다.
박진하 2025.12.07 22:06
박성진님이 어떤 영적 사상을 가지고 왜 이런 저런 글들을 올리고 있는지는
오늘 올려진 글들만 봐도 알지만,
이미 이전에 토론을 통해 명확한 입장이 개진 되어 잘 알고 있습니다.
감정적 대응의 논조가 아니라, 성경의 역사와 기독교 역사에서 늘 있어 왔던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반응일 뿐입니다.
갈멜산에서 아합과 아세라 거짓 선지자들과 맞서 싸우는 엘리야가 어떻게
그들을 대응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성경을 보시면 제가 왜 이렇게 대응하는지 알 것입니다.
침례 요한이 유대 지도자들에게 어떻게, 어떤 말로 대응했는지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사도 바울이 거짓 기별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했는지
성경을 통해 확인하면 내가 왜 이렇게 저들에게 대하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영적 사상의 차이를 떠나 나는 박성진 장로님을 인간적으로 매우 좋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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