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골목을 추억하다, ‘약사 릴레이展’
“우리에게 골목은 향수이며 고향이다. 인적 없이 적막하고 스러져 가는 빈집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골목. 사라져가는 골목이 아쉽고, 나이 들어가는 골목이 슬프다.” (약사 릴레이展 팸플릿 발췌)
옛날 작은 마을의 모습을 간직한 춘천시 약사리 고갯길 봄빛카페에서 지난 2일부터 오는 10월 31일까지 약사 릴레이展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될 약사동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강원민족미술협회 작가 5명이 기획했다.
릴레이전 첫 전시를 맡은 강선주, 강대선 작가는 각각 회화와 조각을 선보인다. 오는 7~8월에는 박은경 작가, 9월에는 서숙희 작가, 10월에는 신대엽 작가가 회화작품을 전시하며 약사리 고개 사람들의 모습과 삶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을 예정이다.
미래길~망대길~망대골목~아리랑길~약사리고갯길로 이어지는 약사동은 1960~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구불거리는 골목길, 시멘트 담장, 기와를 얹은 작은 집들, 거리 곳곳에 핀 들꽃까지 그 시절 감성에 흠뻑 취하게 하는 풍경이다.
이런 약사동이 아파트 단지 신축 공사와 구도심 도시재정비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를 안타까워한 참여 작가들은 약사동의 소박한 옛 모습을 통해 그 시절 추억을 전달하려 했다. 특히 첫 전시를 맡은 강선주 작가는 약사리 고개 초입에 자리한 골목길의 풍경과 집들의 대문을 그렸다.
“어린 시절에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놀며 봤던 풍경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그려봤어요. 요즘 밤에는 골목에서 사람을 만나면 혹시 이상한 사람일까봐 경계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길은 큰 차도 없고, 위험한 일도 없는 즐거운 추억이 가득한 곳이거든요.”
강 작가의 작품에는 유독 오래된 기와를 얹은 허름한 집의 철제 대문이 많이 등장한다. 담쟁이덩굴이 둘려 있고, 대문 앞 시멘트 바닥 틈 사이에 들꽃이 핀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옛날에나 볼 수 있었던 철제 대문을 보면 늘 열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대문을 보면 거기에 둘린 덩굴이나 꽃을 가꾸는 주인 할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더라고요.”
또 다른 참여 작가인 강대선씨는 약사동에 있는 망대의 모습을 사람의 얼굴로 형상화한 조각을 선보였다.
“망대에 걸린 사람의 얼굴은 감시자일 수도 있고 약사동 사람들일 수도 있겠죠. 약사동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도 추억이 담긴 자신의 동네를 계속해서 둘러보고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전시회를 방문한 관람객 최모(운교동) 씨는 “옛 흔적이 젊은 사람들에게는 낡고 거슬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추억이 주는 안락함은 각박한 도시생활의 위로가 된다”며 관람 소감을 밝혔다.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린다. 다음달 7일, 오는 9월 1일과 29일 오후 2시에는 오프닝 이벤트로 커피콩 캔들 만들기와 드립커피 체험도 준비돼 있다. 전시 관람료는 무료지만 체험 프로그램은 참가비 1만 원을 내야 한다. 이번 전시는 춘천시문화재단 후원을 받아 봄빛공예협동조합 주최로 기획됐다.
글·사진=박은주 시민기자
아직 완성 전인 강대선 작가의 작품. 약사동에 위치한 망대를 사람의 얼굴로 형상화한 강 작가의 작품에는 옛 마을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전시가 열리는 봄빛카페.
강선주 작가의 푸른밤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