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는 night table 위, 불 꺼진 stand 밑에 깜찍스러운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며 앙증스럽게 옹크리고 앉아 있는 다람쥐 모형의 탁상시계가 아무것도 모르는 체, 상큼한 봄도 겨워 가는 청명할 것 같은 싱그러운 오월의 첫번째 일요일 아침, 이 녀석의 양 팔목은 무슨 깃발로 어떤 신호를 보내듯, 두 팔을 직각으로 만들어서 벌써 아홉시 반이라는 시간으로,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창문에는 Curtain이 두껍게 내려쳐져 있어 어두우리 만큼 침침한 방안에, 나는 이렇게 처져있는 Curtain을 재칠 생각 조차 안하고, 아니 머리까지 뒤집어 쓴 sheet를 걷을 생각도 없이 몸을 잔뜩 옹크린 체 침대 속으로 파고 들고 만 있었다.
하기야 기다리는 사람도 가야 할 곳도 없으니, 그리고 할 일도 없으니 일찍 일어난들, 아니 늦잠을 잔들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깨울 사람도 없다. 다만 유리 항아리 속의, 그것도 몇일 전에 홀로된 짝 잃은 금붕어 한 마리만이 말없이 툭 튀어 나온 눈 망울을 굴리며 아가미를 뻐끔뻐끔 거리는 것이나 바라보면서 아침이든 저녁이든, 하여튼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 나면 되는 것이 요즘의 내 일상으로 되어있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sheet를 살짝 내려서 얼굴을 살며시 내밀고 곁눈으로 바라보는 창문에는 양쪽에서 가운데로 닫혀지다가 만 틈새로, 빼끔히 비쳐 들이는 한 줄기의 햇빛 만이, 그리고 그리로 스며드는 햇빛을 따라 저 멀리 높이 보이는 푸른 하늘이 분명하게 보이는 것도, 날씨가 청명하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인데도, 마음 속으로는, 비나 소나기 퍼붓듯 주룩주룩 퍼부었으면 했는데, 하며 짜증스러운 마음이 되어 다시 침대 속으로 머리를 파 묻었다.
그런데 웬 놈의 잠은 그리도 많은지, 그러니까, 어제 저녁, TV에서 무슨 큰일이나 일어난 것처럼 Announcer 남녀 한 쌍이 정다운 부부같이 나란히 앉아서, 목청을 높여 기지고 호들갑스럽게 떠들어 대는 아홉시 News를 들으면서 잠이 들어서는, 애국가까지 끝이 나고 화면에선 밤하늘에 무수히 뜬 반짝이는 별 빛이 퍼져 내리듯이, 그리고 합선된 전선에서 나는 위험스러운 소리 같은,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나올 때,
그러니까 어제 저녁에 혼자 앉아서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을 탓하고 원망을 하며 그리고는 내 인생이 이제부터는 어디로 흘러 갈 것인가? 하는 사색 같은 멍청한 고민을 하면서 Long size로 마신 두 can의 맥주가 그 세척의 임무를 마치고 모여있는 통통 부풀은 주머니를 비우려고 몽유병자 같은 모양으로 엉금엉금 기는 걸음걸이를 해 가지고는 수세식으로 된, 주루루룩 쏴~ 소리를 내는 곳을 한 번 갔다가 온 일이 전부로, 이 시간까지 까무러치다 싶히, 혼수 사태로 지낸 지가 무려 열 두시간하고도 반 시간이 지나고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놈의 잠은 먹고는 이것만 늘여 놨는지, 또 슬며시 잠이 드는가 싶었는데,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느닷없이, 그러니까 귓가를 스치는 생생한 목 소리가, 벌써 오년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나가신 앰매(엄마, 어머니라는 뜻)가, 생전에 시집을 못 간 것인지, 안간 것인지 한, 처녀로 애처롭게 쪼그라들어 가는 이 딸 ㄴㄴ에게,
하기야 그마저, Live Music이 아닌 다시 듣지 못할 희생적인 애정으로 쌓여 있는 그립고 그리운 그 Live Voice도 오년 전으로 지나간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늦도록 홀몸으로 사는 이 못난 막내 딸 ㄴㄴ에게 귀에 못이 백일 정도로 입버릇처럼 밤 낫 없이 끄려 퍼 부시던, 아니 당신이 대리고 살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도 성화를 부리시던 말씀이
“하이고 마 야, 남들이사 블 ~ 써 팔려가가 새끼들을 두 세씩이나 나가 효락카는거 다 해 가믐시롱 알뜰살뜰 알콩달콩 재미라카는기를 다 봐가메 잘들 살고 있다카는데, 아이고 메 부러부라, 그 좋은 자리 다 마닥하고 으이, 니 느모 가스나는 뭔 느모 배짱으로 뭘 믿고 그카고 있는긴고, 있는기는, 의이,….,
무슨 푸닥거리 하시듯이, 숨도 쉬지 않고 퍼 부시든 말씀이, 웬일인가? 이 아침에 그렇게 귀에 못이 백인 목소리가 한참 동안은 잊었나 했는데, 지금 또 귀청을 느닷없이 따갑게 찔러 오고 있으니 말이다.
아닌게아니라, 운명을 하시면서까지, 정말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도 “니 신랑감 데꼬 왔나, 어데 있노?” 하시며 헛소리 아닌 헛소리까지 해가면서 가냘픈 마지막숨을 가쁘게 몰아 쉬시든 그 말씀이 말이다.
나는 생각도 없이 sheet자락을 활 까닥 걷어차고 호들갑스럽게 일어나서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젖었다. 그런데 그리로 비쳐 들어오는 싱그러운 오월의 따사로운 햇살은,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로 부시게 비쳐 드는데, 유리창에 비처지는, 풀어 헤쳐진 머리카락으로 덮어진 내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누렇게 뜨다 못해 퉁퉁 분 것 같은 것이, 마치 시집 못 가서 안달을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처녀의 얼굴 같이 보이는 것은 웬일이라는 말인가? 아직도 쌩쌩할 줄로 만 알고 있었는데,
그러니 어쩌랴, 애절하게 붙잡아도 기다려 주지 않고 흘러 가는 세월 앞에 ‘꽃잎이 떨어진다고 바람을 탓하랴,’ 하는 심정으로 억지로라도 담담히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유리창에 미치광이 같이 비치는 얼굴을 지워 라도 버리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호들갑스럽게 흔들다가 옆으로 꼬아 내리고는 내 유일한 안식처인 이 office-tel의 침실 겸 응접실 겸 주방으로 되어있는 한족 구석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려 가지고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쓸어지다 싶히 비실비실 기어가는 모양을 해 가지고 가서는, 냉장고를 열어 제치고 우유 통을 꺼내서 통째로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는, 이렇게 우유라도 열심히 마셔 두면, 혹시 이렇듯 누루끼리하게 뜨고 부어 오른 것 같은 얼굴의 부기가 조금이라도 가라 않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 보면서,
그리고는 거울을 들려다 봤다. 그런데 거기에 비처지는 그 얼굴은 역시 똑 같은 그 얼굴이다. 조금 전에 창문 유리로 보이던 그 얼굴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꼭 장화 홍련이 죽어서 원귀가 되어 푸른 달빛이 어슴프레 하게 비치는 오밤중에 원수를 갚아 달라고 신임사또 앞에 나타나는 그 모습과 같이 말이다. 나는 몸서리가 처졌다. ‘하이고 메야, 우짜면 좋을꼬? 내사 마, 이 꼴아질,’ 나는 중얼거리듯이 내 뱉고는.
거울을 팽겨치 듯이 던져 놓고 그리고는 무심결에 gas range위에 유리 pot를 던지듯 얹어 놓고는 불을 당겼다. 평상시의 버릇처럼 coffee를 끄려 마셔 볼 냥으로, 아니 어떠면 우유면 뭘 하고 coffee면 어떻겠는가, 이왕에 누렇게 뜬 얼굴이라면, 먹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것이나 먹고 마시기나 하자. 하는, 옥이가 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는 다리를 꼬고 식탁에 앉아서 coffee잔을 든 팔꿈치를 탁자 위에 고추 세우고 그리고 꼬부려서 들어 올린 잔을 입에 대고 병아리가 물을 마시듯이 한 모금씩 맛을 보듯, 혀 끝으로 할 듯이 입술을 오므리고 마시면서 창 밖을 다시 내다봤다.
거기에는 여전히 따가우리 만큼의 초여름으로 들어서는 햇살은 마치 수줍은 처녀가 총각의 눈을 쏘듯이 내리 비치고 있었다. 나는 또 아무 생각도 없이 호들갑스럽게 벌떡 일어나서 nits를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shower꼭지를 틀었다. shower꼭지에서 쏟아져 내리는 어름 같이 차가운 물이, 풀어져 내린 머리 끝에서부터 온 몸을 어루만지듯이 흘러 내리는데, 나는 차가운 것도 잊은 체, 온 몸을 적시면서 전라가 되어 서있는 늘씬한 육체가 벽에 붙어 있는 거울로 비쳐지는, 아무것도 거처간 것이 없는 인어 같이, 아니 어떠면 싱싱하고 청순한 천상의 여인과 같은 내 알 몸은, 아직은 그레도 탈력을 잃지는 않은 것도 같아 보였다.
그레서 나는 그 거울에 비치는 내 알 몸을 위로 삼아, 비누를 묻힌 손으로 아래 위로 그리고 구석구석을 쓰다듬어 봤다. 그런데 비누의 미끄러움으로 만져지는 느낌은 역시 익을 대로 익은 풍만한 육체의 탄력은 아직은 죽지는 않은 것도 같았다. 나는 내 육체를 만지면서도 어쩐지 그 무슨 야릇한 느낌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씽긋 한 웃음까지 지으며, ‘그레도 역시’ 하는, 안도의 한숨까지 나왔다.
그리고 또 얼굴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면서 유심히 살펴 봤다. 또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물에 젖어 내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내리면서까지 감상을 해 봤다. 아까 유리 창으로나 거울로 본 모양 보다는 훨씬 달라 보였다. 그레도 아직은 이만하면, 하는 자부심 같은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서 갈 때도 만날 사람도 없으면서도 짙은 화장을 하기 시작을 했다. 하루 내내 일주일 내내 숨을 쉬기 조차 힘이 들 정도의 이 좁디 좁은 답답한 내 안식처인 이 office-tel이라는 방 구석에 틀어 박혀 있어 봐도, 찾는 ㄴㄴ이나 ㄴㄴ은 고사하고 전화 한 통화도 없으니, 어디 찾아 갈 곳이라고 있을 리가 없을 테고, 그러니 갈 때도 만날 ㄴ,ㄴ도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목적 없는 화장을 짖게 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Lily의 향이 짖게 나는 향수도 뿌려봤다. 머리도 상큼하게 빗어 넘기고 앞 머리에 띠를 씌워 젖혔다.
옷도 골라 봤다. 언제적에 입든 옷인지는 몰라도 눈에 띠는 옷 한 벌이 눈에 들어 왔다. 칼라가 없이 앞으로 단추가 나란히 내리 달린 엷은 녹색의 팔 없는, 속살이, 아니 가슴에 붙은 두개의 몽실몽실한 Cup이 보일 듯 말듯한 원피스다.
나는 걸쳐 입고는 갈 때도 방향도 없이 우선 이 답답한 office-tel의 방문을 나섰다.
(하편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첫댓글 베스트셀러극장 , 드라마작가분이 글을 올리셨습니다 / 단 19세이상만이 시청이 가능합니다 / 다만.... 여주인공의 직업이 ?!?!?!?!? / 하편에서 기대하겠습니다 ......... 한참을 쉬었다 갑니다.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고운 글...잘 보았습니다...^^*...다음 편을 기대하며...오늘도 곱고 아름다운 날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