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인 아버지와 대지인 어머니 사이에 인간은 자식으로 태어난다. 하늘과 대지와 인간(天地人)이 평화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행복이라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신은 인간에게 자율의지라고 하는 선택권을 하나 더 얹어줌으로 인해 선택을 잘 못했을 경우 불행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한다.
이 영화는 이혼을 선택하여 행복이 깨져버린 한 가정에 교통사고로 어머니마저 잃어버린 극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불행의 숫자 13살의 Amy라는 딸아이를 새로운 희망의 싹으로 밀어 올린다.
그런데 Amy보다 더 불행한, 아직 태어나지도 않는 생명들만 남겨놓고 인간들의 손에 의해 짓밟혀버린,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인간들에게 서식지를 빼앗기고 죽어간 기러기의 알들. Amy와 엄마 잃은 알들은 동병상린의 모습으로 그렇게 만난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듯이 Amy는 열여섯 기러기의 엄마가 되어 지극한 모성애로 키워나간다. 창고에서 함께 잠들어 있는 모습에서 나의 눈물샘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간다. 음악도 곁들어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대지인 어머니가 현실이고 감성이며 어루만져줌이라면, 하늘 아버지는 꿈이고 이성이며 이끌어줌이어야 한다. 혹시 아버지의 윗옷 왼팔에 먼 바다를 헤쳐 나가는 배을 리드하는 키가 새겨져 있는 이니셜을 보셨나요?
드디어 아빠 기러기는 하늘이 되어 갈 길을 안내하고, 엄마 기러기 Amy는 모성애로서 열여섯 자식을 데리고 먼 비행길에 오른다. 온타리오에서 플로리다까지 ‘아름다운 비행’은 말라가던 대지를 적시듯 얼어버린 인간들의 가슴을 녹여주며, 아픔도 없이 거침도 없이 따뜻한 눈물샘을 퍼내고 있다. 특히 아픈 (이고르?)를 뒤에 태우고 가는 모습에선 옆사람 눈치도 볼 것 없이 눈물로 박수를 보냈다.
하늘 아버지와 대지의 새어머니 Amy와 자식인 기러기가 하나가 되어 다시 평화와 행복을 찾아가듯, 이기적인 개발업자의 손안에서 인간들의 착한 심성들이 자연을 지켜내고 회복해 가는 모습은, 우리 인류에게서 사라져 가고 잊혀가는 양심을 회복하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신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어 불행을 가져오게도 하지만, 그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양심이라는 균형추를 주셨다. 그래서 인간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운 비행’은 잃어가는 양심의 회복이다.
첫댓글 나의 죽어가던 세포들을 다시 소생할 수 있도록
좋은 영화를 제공해 주신 이선생님께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영화를 제대로 보신 취산 님, 축하드리고 감사합니다. 죽어가던 세포들의 부활에 축하드리고, 고마운 마음을 가져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부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아빠와 떨어져 엄마와 함께 살아야 했던 Amy, 그런데 이젠 엄마마져 잃은 Amy의 처지는 취산 님께서 보신대로 인간들의 이기적인 선택(개발)으로 생존의 공간을 제약 당하고, 급기야 엄마마져 잃어버린 16개의 알(기러기 새끼들)들과 겹친다. 다시 역으로 Amy가 엄마의 자리를 회복하면서 새끼기러기의 엄마가 되고, 새 엄마의 엄마자리 회복으로 부부의 관계 회복, 마지막으로 아빠의 자리 회복으로 가정의 회복, 기러기 생존 공간의 회복까지 이어진다. 양심적 인간회복!!
온 감정을 다하여 '아름다운 비행'에 몰입하신 취산님의 깊은 감동의 여운이 또 한번 '아름다운 비행'으로의 잔잔한 여정에 마음을 담금니다.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살리고 자연 생태를 보호하여 자연을 살림등이 '하하'의 '살림'의 취지와 상응됨이, 바로 우리 '하하의 아름다운 비행',종착역 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