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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집 놀이>라는 제목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건축가인 저자가 쓰는 집에 관한 이야기일 것은 분명하고, 다른 건축가들과는 어떻게 다를 것인가를 기대하며 읽게 되었다. 일단 단순한 건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집에 관한 정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표지를 다시 훑어보니, ‘김진애의 공간 감수성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즉 단순한 집의 구조나 인테리어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가족의 상호 관계에 대한 다양한 조언들이 제시되어 있었다. 읽으면서 느낀 것은 저자의 집에 관한 의미와 철학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10여년 남은 은퇴를 앞두고, 지인들과 더불어 살기를 기대하며 인근 지역에 집터를 마련해 놓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내가 앞으로 집을 지을 때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지침서라고 생각되었다. 저자가 조언하는 ‘집 놀이’는 집이라는 공간을 그 안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어떻게 이용하고, 가꾸고, 또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활동을 가리킨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저자는 ‘집 놀이’를 ‘여자와 남자 그리고 온 가족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라고 규정한다. 모두 4개의 항목으로 구분된 내용을 통해서, 집 놀이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서 저자의 생각을 펼쳐내고 있다.
아무래도 가족 구성원의 핵심은 부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첫 번째는 ‘싸우며 정드는 집’이라는 제목으로, ‘그 여자 그 남자는 어떤 집에서 살까’라는 문제에 대한 조언을 던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집이란 공간을 배경으로 삼기도 하고, 혹은 그것을 대상으로 여기면서, 그 장소에서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나는 이 항목을 읽으면서 문득 ‘부부 클리닉’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여성인 저자로서 특히 가정 내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진솔하게 담겨있었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생각하는 ‘집 놀이’의 의미가 나에게 더욱 도드라지게 다가왔던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가 태어나고, 그러면서 집의 역할과 공간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한다. 두 번째 항목은 ‘아이가 쑥쑥 자라는 집’이라는 제목으로, 아이에게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라는 생각을 키워줘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아이는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에서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스스로 자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이 아니라 모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저자의 조언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점점 자라면서 스스로 자가가 살고 있는 집을 그려보도록 하고, 충분한 수면을 확보하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아이에게 자기방의 독립성을 지켜주면서, 다른 가족들과 ‘따로 또 같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크기라도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서 각자가 느끼는 공간감을 다를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세 번째 항목으로 ‘작은 집도 크게 사는 집’이라는 제목으로, ‘집이란 얼마나 작아도 괜찮을까!’를 고민해보도록 권유한다. 어차피 우리가 살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면, 그 공간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은 그 안에 있는 무언가를 비우면 될 것이다. 그래서 비울 때도 물건에 담긴 ‘정서 가치’와 ‘쓸모 가치’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라는 구획된 공간에서 살고 있기에, 공간 활용의 문제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건축가 정기용의 ‘나의 집은 백만 평’이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혜화동의 다세대 주택에서 전세를 살면서도, 성균관과 그 주변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태도는 우리가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독자들에게 ‘‘집같이’ 사는 집’에 대해서 고민하도록 한다. ‘왜 그 집이 자꾸 생각날까?’라는 부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은 ‘살아본 집’과 ‘살고 있는 집’ 그리고 ‘살고 싶은 집’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저자는 대체로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생각은 살아본 집에 대한 추억과 살고 있는 집의 불편을 통해 그려본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집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추억에 대한 단상을 펼쳐놓고 있다. 나 역시 집과 연구실에는 손이 닿은 곳에는 항상 책이 놓여있다. 우리집에는 거실에 TV와 소파가 없이, 책상과 책꽂이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책은 최고의 인테리어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취향과 앞으로 지을 집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집과 삶을 놀이로 생각하는 저자의 관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우리는 때때로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고 실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상이란 일상이 아닌 것을 이기는 것’이란 저자의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저자의 조언대로 우리의 일상을 빛나게 할 ‘집 놀이’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통해서, ‘더 재미있고 더 신선하게 집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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