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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들이 대학에 입학할 때 선물하려고, 아내가 구입했던 것이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들이 주말에야 집으로 돌아왔기에, 당시 내용도 궁금하고 제목도 흥미로워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남자이면서 페미니스트로 살고 있는 현실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는 고등학교 교사이며 남성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면서, 저자가 가족과 직장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맞부딪히는 현실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남성인 저자가 쓴 페미니즘 관련 책자를 읽어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페미니즘에 관하여 남성들이 쓴 책들이 간간히 출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머리말의 제목처럼 ‘남자가 무슨 페미니스트야?’라고 하는 반응이 되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겠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그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에는 남성중심적인 제도와 습속들이 깊이 자리를 잡고 있다. 때문에 ‘남자’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남자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경우도 아직까지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남자아이들의 놀이보다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를 하는 것이 더 좋았지만, 주위에서 놀리는 것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기억을 털어놓고 있다. 남자와 여자의 성 역할을 고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여전한 현실에서, 저자는 ‘페미니즘은 남성의 삶과도 맞닿아 있으며 여성만큼 남성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남성들에게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고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여성을 억압할 시간에 자신을 돌아보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기를 권유하기도 한다. 같은 남성으로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일부 남성들에 의한 ‘여성 혐오’ 현상은 그동안 남성중심 사회에서 누려왔던 특권을 잃지 않으려는 ‘기득권 지키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모두 5개의 항목으로 이뤄져 있는데, ‘1장, 어머니와 아들’에서는 자신의 가족 특히 어머니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저자가 페미니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와 갖은 고생을 하며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억척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저자는 그럼에도 때로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부부 사이의 이혼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예전에는 이혼을 하면 여성에게 결함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저자 역시 어머니의 이러한 현실을 목도하고, 그것을 통해 불합리한 여성의 현실을 목도하였던 것이다.
‘2장,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자’에서는 저자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페미니스트로 살게 되었던 과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만연했던 성폭력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에게는 관대하고 피해자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현실을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한 친지들이 모이는 명절에 여성이 부엌에서 일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남성들은 그저 편하게 차린 음식을 먹는 것에 익숙한 풍경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학 시절 밤거리를 걸으면서 남자가 뒤에 따라오는 것이 겁이 났었다는 여자 후배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저자 역시 남성이었던 대학 후배를 통해 페미니즘에 입문하게 되면서, 이러한 현실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진 모순과 수백 년을 내려온 악습’의 결과물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페미니즘은 단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 속에서 실천해야만 의미가 있는 운동이다. 2016년에 발생한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서, 일부 남성들의 여성 혐오의 문제가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다. ‘3장, 선생님, 혹시 주말에 강남역 다녀오셨어요?’에서는 이를 비롯해 여성에게 불리한 한국 사회의 각종 제도와 현실의 문제를 짚어보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남성인 자신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며, 실제로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결국 ‘건강한 사회는 남의 아픔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많은 사회’이기에, 그동안 남성과 여성의 처지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이 사회적 약자였음을 인정해야 된다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오랜 고민과 행동의 결과, 저자는 국어 교사로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통해 그 당위성을 펴나가기로 한다. 즉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 작품이나 글쓰기 수업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학생들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 ‘제4장, 800명의 남학생과 함께’에서 제시되고 있다. 나 역시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수업 방식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5장, 혐오와 싸우는 법’에서는 페미니즘이 남성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과 이를 위한 저자의 실천 방식을 상세히 논하고 있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운동이’이기에, ‘여성이 주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또한 ‘남성 페미니스트는 자신을 협력자로 정체화하고 여성이 하기 힘든 역할을 보조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기득권이’며, 그렇기에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쥐고 있는 것들을 좀 내려놓자’고 권유한다. 그래서 저자는 나에게 ‘유리한 쪽보다 유익한 쪽에 서기’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은 여성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문제이지만, 저자가 남성이기에 조금 특별한 것처럼 인식되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천국으로 인식될 수 있는 환경이 조금만 시선을 달리해서 본다면, 다른 이들에게는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에필로그의 제목으로 삼은 ‘함께 지옥에서 살아가기 위하여’라는 의미를 곰곰이 따져봐야 할 이유일 것이다. 책을 출간할 당시에 뱃속에 있었던 저자의 딸은, 아마도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자신의 딸이 ‘여자라서 꿈을 꺾지 않고, 여자라서 참지 않으며, 여자라서 자기를 단속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존엄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또한 책의 말미에 첨부된 ‘남 페미를 위한 커리큘럼’에 소개된 책들은 아직도 페미니즘에 대해서 거리감을 지니고 있는 남성들에게 읽기를 권유하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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