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동안 특별히 국립묘지에 갈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 비로소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족이나 친척 가운데 그곳에 묻힌 사람이 없기에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간혹 광복절 등의 기념일에 하는 행사들이 그곳에서 벌어지면, TV를 시청했다는 정도의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충(顯忠)’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그곳에는 나라를 위해 역할을 한 이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에 묻힌 이들에게 우리는 고마움을 느끼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실상이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실제로 그곳에 ‘항일과 친일’을 했던 이들이 나란히 묻혀있음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현충원’은 그 이름에 걸맞게 국가를 위해 살다간 이들이 사후에 안장되는 장소여야만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곳의 성격에 맞지 않는 친일파들이, 자신의 과오를 지우고 해방 이후의 행적으로 인해서 극립묘지에 묻히게 되었던 아이러니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항일 투쟁에 나섰던 인물들이 그곳에 묻힌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문제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투사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던 친일파들의 무덤이 국립묘지의 '명당'에 위치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친일파 김백일부터 광복군까지'라는 책의 부제는 '항일과 친일'이 공존하는 우리 '굽립묘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 그리고 '국립4.19민주묘지와 효창공원'에 묻힌 이들의 면모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항일과 친일’이라는 주제를 설정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들의 행적과 함께 그들이 묻힌 묘지(묘역)의 위치와 의미 등을 설명하고 있다. 외세에 의해 강압적으로 식민지에 접어들면서, 그 상황에서 항일 투쟁을 선택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적극적인 친일의 행적을 남긴 이들도 존재하였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친일 행위를 통해 호의호식하던 자들은 해방 이후에도 그들을 비호하는 독재 권력에 의해 사회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해체되면서, 친일파들이 행했던 죄과에 대해 역사적 평가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것이다.
전체 3부로 이뤄진 목차에서, 1부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힌 이들의 면면을 다루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의 사망자를 모시기 위해 조성하기 위해 국립묘지로 시작되어, 1996년부터 국립현충원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감춘 친일파들이 유공자라는 명분으로 사후에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국가 공인 친일파'인 김백일을 비롯한 7명이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이들과 함께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파로 확인된 인사들만 하더라도 모두 35명에 달하고, 이들은 현충원의 명당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항일 투쟁을 했던 '임시정부요인 묘역'과 후손이 없는 '무후선열제단' 그리고 '애국자시 묘역'이 이들 친일파들과 함께 나란히 안장되어 있다. 아마도 저자는 이러한 아이러니한 양상이 작금의 한국 사회가 지니고 있는 모순을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최근 친일파들의 묘를 이장해야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지만, 현재의 법으로는 그들을 이장시킬 조항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2부에서 다루고 있는 '국립대전현충원'도 마찬가지라 하겠는데, 이곳에도 모두 34명의 친일파들이 묻혀있다. 최근 일제에 의해 조직된 ‘간도 특설대’의 일원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는 활동을 했던 백선엽이 사망하고 그가 대전현충원에 묻힌다고 결정되자, 그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하게 일어났다. 대전현충원에도 독립유공자들과 이들 친일파들이 함께 묻혀있다는 사실이 비감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로 이미 '국가 공인 친일파'로 판명되었음에도 여전히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친일파들의 묘가 이장되는 것이 쉽지 않다. 국립 현충원에서 친일파들의 묘를 이장하는 것이 불가하다면, 법을 바꾸어서라도 그들이 저지른 역사의 과오를 안내판에 새겨서 그대로 알릴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3부에서는 수유리에 있는 ‘국립4.19민주묘지’와 근처에 산재해 있는 독립투사들의 ‘수유리묘적’,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이 안장되어 있는 ‘효창공원’을 조명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4.19민주묘지’에 세워진 ‘4월학생혁명기념탐’은 대표적인 친일 조각가 김경승의 작품이며, 독재자 이승만을 이순신장군에 비겨 찬양했던 이은상의 글이 그 탑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대학 시절 가끔 찾았던 그곳에 친일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심히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저자의 희망대로 효창공원이 독립투사들의 묘역으로 조성되어 관리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책을 통해서 ‘국립묘지’에 ‘항일과 친일’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라도 ‘친일과 항일’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가 이뤄지고, 각자의 삶의 행적에 걸맞은 보상과 단죄가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