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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오늘은 금년 들어 세 번째 동족어린이들을 방문하는 날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먼저 아버지 집으로 간다. 5시, M선생님이 요4으로 말씀을 전한다. 50절이 눈에 다가온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 그 땅에 아이들이 살아있다는 말씀으로 듣는다. 오늘 가는 길의 인도하심을 주께 구한다. “믿고 가더니” 신하의 믿음으로 일어선다.
두만강을 넘다
Y형제도 함께 일어선다. 그는 우리처럼 그땅 어린이들을 사랑한다. 국적 관계로 그땅을 동행할 수 없다. 하지만 노새를 두만강까지 배웅한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동행한다. 내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ㄱㄷ로 함께 가는 그의 정성을 기억하소서!
국경세관까지는 차량으로 두 시간 길이다. 고 J 가족 담당이다. 코로나 이전, J 형제는 조선 동포 운전 담당이었다. 펜데믹 이전까지 우리와 함께 사랑의 짐을 동족어린이들에게 실어나르는 일꾼이었다. 5년 전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이사하셨다. 힘들게 살아가는 남은 유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다. 해마다 아이들 장학금으로 격려한다. 두만강 국경세관까지 이동을 부탁드린다. 좀 넉넉한 마음을 나눈다. 이번엔 차량을 고쳤다 하여 수리비 반액을 담당했다.
두 시간 남짓 차로 달려 국경세관에 도착했다. 8시 반 좀 지났다. 다시 만날 기약 인사를 나누고 홀로 국경세관 안으로 들어선다. 원래 윤혁기 장로님과 동행할 예정이었지만, 건강이 악화하여 한국으로 귀국했다. 윤장로님은 오늘 병원에서 수술한다. 긍휼을베푸소서! 가지고 온 핸드폰을 세관 입구 매대에 맡긴다. 그땅에 가지고 갈 수는 있지만, 그냥 두고 간다. 번거로운 수속 절차를 피하고 싶어서다. 그 속에 든 SNS 내용, 많은 사진, 북 세관원 검사가 장난이 아니다. 검사만 통과하면, 성경이나 핸드폰을 소지하고 들어갈 수는 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 대신 $1 버스가 흙탕물로 굽이치는 두만강을 넘어가는 다리를 건네준다.
국경세관 통과
도착하니 9시반이다. 두 나라 간에는 한 시간 시차가 있다. “오셨습니까?” 나를 기억하는 세관 관원이 다정하게 인사한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세관에서 무명의 빨간 옷 입은 할아버지를 알아보는 관원이 있다. 따뜻한 환영 인사 한마디가 가슴을 훈훈하게 적신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인지력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가져간 짐을 일일이 수동식으로 검사하는 직원 앞에 선다. 그는 내가 가져온 악품의 양이 많다고, 일부를 분리한다. 돌아갈 때 다시 가지고 가라며 봉투에 담는다. 약품이 필요한 곳이 얼마나 많은데 . . 아쉽지만, 그 나라 법이니 따르는 수밖에……. 가져간 모자를 검사하다가 상표가 잘린 것을 찾아낸다. 한국상품이기에 자른 것 아니냐며 불쾌해 한다.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한국상품이지만 이 국경세관에서만은 불편하다. 검사를 마친 카메라를 받아 들고나오니 반갑게 맞는 분이 있다. 해외동포처 A 처장님이시다. 바쁘실 텐데 만사를 뒤로하고 국경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탁아유치원 건립과 진료소 수리 등 우리 방문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들이 그분들에게도 중요하다.
저슬령을 넘어가는 부부
두만강을 넘어가면 W세관이 우리를 맞는다. 그곳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아오지탄광을 오른쪽에 끼고 저슬령을 넘는다. 동족어린이들의 요람 탁아소와 유치원이 있는 두만강 하류 D마을까지 곧장 가면 한 시간 반이면 가능하다. 나진 숙소를 돌아 올라가면 두 시간이 넘어 걸린다.
저슬령이란 험산 준령을 한 부부(?)가 넘어가고 있다. 40대로 보이는 여성이 자전거로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 자전거엔 그 땅에서 자주 보는 것처럼 상당한 분량의 짐이 실려 있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정네는 뒷짐을 지고 앞서 걷고 있다. 남성 우위인 그 사회라 그런가 싶은 광경이었다. 정작 놀라운 것은 다음이었다. 기나긴 경사 길인지라 급하기 그지없고, 8월 초순의 날씨는 한없이 무더운데, 힘들게 고개를 넘어가는 그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꽃과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에어컨이 있는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도 확보하지 못한 행복지수를 그 부부 사이에서 확인하게 되다니... . 몇년 전, 사향산 고개를 넘어가던 어머니와 아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생각난다. 따가운 여름 햇빛을 가려주기 위해 자기 옷을 벗어 어머니 머리를 가려주고 가던 아들의 아름다운 모습! '우리는 행복해요!'란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을 그땅에서 가끔 만날 때, 우리는 가슴이 멍멍해진다.
비 내리는 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곧바로 시골 지름길로 달려야 했던 이번 방문은 운전사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두만강 하류는 저지대다. 한반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커다란 호수들이 셋이나 펼쳐져 있다. 그사이에 형성된 마을이다 보니, 비 내리는 날 도로 사정은 매우 열악하다. 질퍽거리는 길로 인해 장화를 신어야 할 진흙탕 길이다. 차를 타고 현장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차량이 목적지를 돌파할 수 있었던 건 운전사의 대단한 수고와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몇 번이나 길에 잠길 뻔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몇 년 전에는 자동차를 뒤에서 밀기도 했고, 차를 중간에 세워둔 채 짐을 직접 나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새롭게 자라나는 돼지 꿈
펜데믹이 찾아오기 전, D유치원에 지어 준 돼지우리 두 채! 돼지 키우며 자력갱생을 꿈꾸던 D유치원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그리고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돼지가 모두 사라진 것을 알았을 때, 어린이들을 살리기 위해 장렬히(?) 몸을 바친 돼지들 생각하며 얼마나 가슴이 저렸던가!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사 준 돼지가 왜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으냐 묻지 않았다. 대신, 다시 돼지를 키워 볼 생각이 있는가를 물었다. 그들은 놀랐다. 그리고 환호했다. 다시 한번 일어설 소망이 생긴 탓일까? 돼지를 키울 수 있다는 꿈만으로 그들은 행복한 모양이었다. 이번 3차 방문 때, 맨 먼저 D유치원을 찾은 이유다. 아이들은 방학으로 집에 돌아가 있었지만, 9마리의 새끼 돼지가 유치원 돼지우리에 들어와 있었다. 돼지들은 D 유치원의 새 희망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이 꿈을 잘 키울 수 있도록 돼지 사료라도 준비해주고 싶다.
D 진료소 내부 수리가 진행되는 현장을 가다
최근 눈에 띈 현상은 열악한 의료 부문 개선을 위해 온 나라가 발을 벗고 나섰다는 점이다. 2026년, 우리가 요청받은 그들의 절실한 필요는 W보건소를 지어줄 수 있느냐였다.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힘에 맞는 D 진료소 내부 수리를 맡았다. 이를 위해 지난 달 20% 정도의 선수금을 공사 담당 사업체에 지불했었다. 그 동안 공사가 얼마나 진척되었는가를 확인하러 D 진료소 공사 현장에 들렀다. 내부 공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재료 공급이 부족한 부분에서 내부 수리는 멈추고 있었다. 선수금이 부족했나 보다. 총공사비 40% 정도 중도금을 추가로 지불했다. 곧 공사를 재개하겠단다. 건축재료만 제때에 보장하면 공사는 언제든지 진행된다. 우리는 탁아 유치원 건물을 지난 20년간 5번 세웠다. 미화 1-11만불 사이의 탁아소 유치원 건물을 세워오는 동안 몸으로 겪은 사실이 있다. 외부 사람들이 염려하는 이상으로 건축이 정직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그러나 외부에서의 눈빛은 싸늘할 때가 많다. 미사일 쏘는 비용, 핵무기 만드는 비용으로 들어간다는 우려심 때문에 신뢰하기를 힘들어한다. 그 사회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 사람들의 생각보다 그 사회는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의 많지 않은 후원으로 유치원 탁아소가 눈앞에서 반듯이 지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 '기우입니다' 말하고 싶어진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완성된 탁아소 유치원을 보면서 어떤 때는 우리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 많지 않은 금액으로 이런 탁아소 건물이 가능하다고?' 대부분의 공사 인력이 백성들의 충성심 속에서 세워져 간다면 이해가 가능하려나?
M 탁아유치원이 건설되는 마을에서
M마을은 M호수 근처에 있는 산기슭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주민이 많지 않다 보니 탁아소와 유치원이 한 건물에 공존한다. 코로나가 그땅을 휩쓸 때, 그곳 탁아유치원 또한 큰 타격을 받고 쓰러졌다. 그 기간 해동으로부터 SOS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곳에 직접 들어갈 길이 막혀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국경이 열리고 M마을에 들어가는 날이 왔다. 무너진 탁아소 건물을 세울 길도 열렸다.
M탁아 유치원 건립 현장을 3차로 찾아가는 날,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하였다. 두만강 하류요, 한반도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호수가 근처에 셋이나 있는 저지대이다 보니, 비가 오면 길은 늪지와 진배없다. 이런 길을 용케도 주파해내는 그곳 운전사들의 운전 실력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씩 시동이 꺼지는 차량으로 그 험한 진흙탕 길을 요리조리 잘도 뚫고 나아간다. M 농장을 거쳐 마을 공사 현장에 도착했다.
1차 2차에 걸쳐 8할 이상의 공사비를 지원했기에 얼마나 진척되었을까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탁아유치원을 지을 곳에 있던 반 이상 허물어진 구 보건소 건물을 모두 뜯어냈다. 흔적없이 사라진 자리에 탁아유치원을 새로 세우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비를 맞으면서도 행복하게 건축에 동참하는 마을 사람들 / 마을 사람들의 꿈에 함께 하다
일하는 사람들의 사정을 알리 없는 비는 소리없이 내리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남녀 불문하고 비 내리는 공사 현장에 뛰어들어서 비를 맞으며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다. 비옷도 입지 않은 채 수고하는 그들을 보기가 미안스러웠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여 건축현장을 둘러볼 때, 그들의 얼굴엔 감사와 행복이 있다. 이 광경이 낯설지 않은가? 이 힘든 작업을 하면서도 그 마을 농장원들이 수당을 받는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아무런 보상도 없더라도 그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하는 까닭은? 그들의 얼굴에 넘치는 행복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농장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아이들 맡길 교육 장소를 기다리며 살아왔다. 세워지는 탁아유치원은 M 마을 주민의 꿈이었다. 학수고대하던 탁아유치원이 드디어 마을에 새로 세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들의 꿈을 이루는 현장에 그들과 함께 한 것이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은 그 또한 행복하다.
돼지 한 마리 잡아 드시게 하는 게 어떨까요? 제안한다. 그 마을 농장 위원장이 곁에서 듣고, 건물을 완성한 후면 어떤가 한다. 4차 방문때는 그 건물이 완성이 되고, 온 마을 주민들의 잔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도 그 잔치에 참여하고 싶다.

첫댓글 돼지잡아 잔치하는 날을 글마무리에서 상상해 봅니다..제 고향 땅에서도 마을 행사때마다 돼지잡고 떠들썩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 나라에 갈때가 다가오니 부끄럼없는 만남이 되도록 다시한번 자신을 돌아봅니다. 동그라미라도 적극 지원할수 있는 기회가 올수 있기를 기대하며 응원하고 손모아 봅니다. 안전한 여행길이 되도록 ㄱ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