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설 주장하는 목사로 매도한 영상 내려 주십시오.(재림마을)
김종수2025.12.05 08:34조회수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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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죄된 본성을 취하셨다"는 표현과
"인간의 죄됨을 취하지 않고 그 본성을 취하셨다"는 표현은 모두 화잇 여사의 기록입니다.
재림교회 기본교리 28에도 예수님께서 죄된 본성을 취하셨다는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증언에는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무죄한 본성을 취하셨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된 본성을 취하셨으나 본성을 다스리는 죄됨(죄)을 취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죄된 본성을 가지지 않으셨다는 뜻이며 나는 그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분은 죄된 본성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무죄한 본성으로 오셨습니다.
물론 죄에 속한 타락한 인간의 정욕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화잇 여사의 기록된 글을 표현한 나의 글을 궤변이며 철학이라고 매도하였습니다.
재림교회 안수목사인 내가 이설을 주장하는 것으로 매도하여 만든 동영상을 명광교회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내려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정중하게 요청하는 것은 이 글이 마지막입니다.
변명으로 일관하여 내리지 않고 계속 매도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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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님,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종수2025.12.02 15:29조회수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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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님과 토론을 원치 않습니다.
이유는 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나의 글에 대한 댓글도 지워주시길 바랍니다.
댓글을 지우면 이 글도 지울 것입니다.
2. 증언의 표현이 궤변이며, 언어유희인가?
주님은 그의 무죄한 본성(sinless nature) 위에 우리의 죄 된 본성(sinful nature)을 취하셨는데, 이는 시험받는 자들을 어떻게 구조할지를 알기 위함이었다. (의료봉사, 181)
“주님은 인간의 죄됨(sinfulness)이 아닌 그 본성을 취하심으로(by taking the nature) 인류의 머리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셔야 했다.” (ST, 1901. 5. 29)
예수님께서 죄된 본성을 취하셨다는 화잇 여사의 표현입니다. 그 표현이 궤변이며 언어유희입니까?
왜 화잇 여사가 기록하면 “선지자의 글”이고, 내가 그대로 표현하면 궤변이며 언어유희가 됩니까?
님이 증언의 기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 쪽의 글만 보고 선입견에 빠져서 나의 글을 오독한 것은 아닌가요?
님은 마치 내가 증언의 내용을 부인하는 것처럼 증언을 인용하였지만 그 모든 내용은 내가 모두 받아들이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마치 내가 그것을 부인하고 이설을 주장하는 것처럼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공격하는 꼴입니다.
나는 강** 장로의 주장에 대해서 반대 편에 있는 사람입니다.
3. 연합회 이단 이설 위원회의 평가
내가 쓴 글은 강** 장로의 주장에 대해 연합회 이단이설위원회가 작성한 평가서에 있는 내용입니다.
님은 강** 장로가 이설을 주장한다고 하면서도 동일한 평가서에 있는 내용을 궤변이며 언어유희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 모순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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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님 잘못 판단한 것 사과하고, 나의 이름을 거론하지 마십시오.
김종수2025.12.02 21:59조회수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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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예수님은 죄된 본성을 취하셨으나 죄된 본성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님의 시비
박진하* 2025.12.02 00:00
김종수님, 내가 볼 때는 님의 위 주장이 바로 궤변입니다.
예수님이 죄된 본성을 취하였으나 죄됨은 취하지 않았다는 이 말 자체가 궤변입니다.
말장난이며 언어의 유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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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에서 어느 부분이 궤변입니까?
나의 글은 화잇 여사의 글 그대로 표현한 것인데, 무엇이 궤변입니까?
"의료봉사" 책은 2003년에 시조사에서 번역하여 출판하였으며, 영문은 채널21에도 있습니다.
죄된 본성을 취하셨다는 것은 의료봉사, 181쪽의 내용이며,
죄됨은 취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영문시조, 1901년 5월 29일자에 기록된 화잇 여사의 글입니다.
“주님은 그의 무죄한 본성(sinless nature) 위에 우리의 죄 된 본성(sinful nature)을 취하셨는데, 이는 시험받는 자들을 어떻게 구조할지를 알기 위함이었다.” (의료봉사, 181)
“주님은 인간의 죄됨(sinfulness)이 아닌 그 본성을 취하심으로(by taking the nature) 인류의 머리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셔야 했다.” (ST, 1901. 5. 29)
“He was to take His position at the head of humanity by taking the nature but not the sinfulness of man.” (ST, 1901. 5. 29)
출처인 ST는 “The Signs of the Times”의 약자이며, 영문 “시조”로 표현합니다.
제가 “죄됨”(죄성)으로 번역한 sinfulness와 nature는 둘 모두 명사입니다.
주님께서 인류의 머리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인간의 “죄됨”이 아니라 “본성”을 취하셨다는 뜻입니다.
의료봉사와 영문 시조의 내용을 그대로 제시했으면 님이 잘못 판단한 것을 사과해야 정상 아닙니까?
"김종수님과 생애의 빛, 조종학님, 김중신님, 강명수님이 애용하는 선지자의 글 출처?"라고 제목을 달아서
마치 내가 "생애의 빛, 조**님, 김**님, 강**님"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것처럼 암시하는 것이 정당합니까?
님의 설교에서 나의 주장을 거론하여 다루겠다고요?
나의 글은 화잇 여사의 표현 그대로 쓴 것인데, 무슨 주장이 있습니까?
만일 나의 이름을 거론하여 나의 주장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묶어서 거론한다면 일어나는 결과에 대해서는 님이 책임지셔야 할 것입니다.
님의 설교에 나의 실명을 거론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나는 님의 실명을 거론한적이 없습니다.
나의 글에 대해 더 이상 시비를 거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기서 더 이상 나의 이름을 거론하지 마십시오.
관리자에게 카스다 회원약관 위반 자료를 제출하여 나의 이름을 거명한 님의 글을 삭제 요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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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문제, 누가 화잇의 글을 이설로 주장하는가?
김종수2022.12.05 14:41조회수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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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에는 한결같이 죄된 본성,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다"고 했지, "가지셨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또한 우리의 "죄를 취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죄를 취하신 것이 죄를 가지신 것이 아니듯이, 죄된 본성을 취하신 것도 죄된 본성을 가지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부정적인 의미로 "육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단순한 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본성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증언에서 설명한 것입니다.
육체(몸)는 그것 자체로는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거나 순종하는 행위를 할 수 없고 그를 주관하는 세력의 종일 뿐임을 설명한 것입니다.
몸(육체)은 의가 다스리면 의의 병기가 되며 죄가 다스리면 죄의 병기가 될 뿐입니다.
타락한 사람들의 육신 안의 죄를 정죄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의 모양으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성경이 타락한 사람의 본성인 육신 안의 죄를 언급하고 있는데, 죄된 본성을 가져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경을 벗어난 것입니다.
존스는 "죄있는 육신"을 "죄가 가득한 육신"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도 존스를 추종한다는 사람들이 존스를 거역하고 죄된 본성을 가진 "죄있는 육신"을 "죄 없는 육신"으로 억지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된 본성을 취하셨으나 죄된 본성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죄의 지배를 받음으로 연약해진 그 본성(=죄된 본성)을 취하셨으나 죄됨을 배제하심으로, 죄된 본성을 취하셨으나 죄된 본성을 가지지 않으신 것입니다.
죄된 본성이란 죄의 다스림을 받는 상태의 본성입니다.
예수님은 죄의 다스림을 받던 그 본성을 취하셨으나 죄를 배제하셨고 의의 다스림을 받는 본성을 가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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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백한선 2022.12.05 17:53
화잇선지자의 글은 잘못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잘못된 주장(생애의 빛 주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선지자의 글을 이용하는것이 잘못된 것 입니다
김정대 2022.12.05 18:04
취하다 (take)와 가지다(have)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주장은 바로 hair splitting argument 라고 할수 있습니다.,
splitting hair - "머리카락을 쪼갠다는 의미로 아주 미미한 차이점 혹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When someone is splitting hairs, their arguments are pointless and frivolous." (누군가가 머리카락를 쪼개는 식의 주장을 하고있을 때, 그들의 주장은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이다.)
have 와 take 는 엣날부터 같은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주로 영국에서는 have를 쓰고 미국에서는 take를 써왔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살던 화잇 부인이나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은 take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참조: https://grammar.collinsdictionary.com/us/english-usage/what-is-the-difference-between-have-and-take
영국: I am going to have a bath.
미국: I am going to take a bath.
그리고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이셨기에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인성을 취하셨기에 take를 쓰는 것이 적합하죠. 그리고 take를 한 후에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have)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것을 필요이상으로 나누어 해석하는 것은 hair splitting argument 입니다.
Hebrews 2:16 - For verily he took not on him the nature of angels; but he took on him the seed of Abraham. (진실로 그분께서는 자기 위에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 위에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도다.)
취하다(take)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신성위에 인성을 취했기에 그의 신성에 힘입어 그의 인성이 죄에 물들지 않은 인성이란걸 암시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취한 인성이 우리 인간의 인성과 다르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히브리서 2:16절에서 보듯이 예수님이 (죄없는) 천사의 본성을 취한게 아니고 (죄있는) 아브라함의 씨를 취했다고 대조해 같은 took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언급했으니 take와 have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건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김정대 2022.12.05 18:19
그리고 김종수님이 번역한 "죄가 가득한 육신"의 영어 "sinful"이라는 단어는 Merriam-Webster 사전에서 "tainted with sin (죄로 물든), marked by sin (죄에 의해 얼룩진)" 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입니다. 물론 "죄로 가득찬" 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영어에서 지금은 물론 특히 옛날에는 - 특히 기독교 신학을 논할 때는 - 주로 tainted with 혹은 marked by 의 뜻으로 자주 쓰이는 편입니다. 존스는 김종수님이 생각하는 그러한 뜻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육신이 죄로 물들었다고 그 육신을 자의가 아니게 유전받은 사람을 죄인으로 정죄하는 원죄론을 존스를 비롯한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은 거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