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Pr9FD1S73Q
겨자씨와 누룩 비유
마태복음 13장 31-33절
예수님 비유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생활속에서 쉽게 접하는 것들에 대한 비유가 많습니다. 농경사회 다 보니 씨, 농부, 곡식, 가라지. 겨자씨, 누룩, 진주, 그물에 걸린 고기들 이런 것들이 소재입니다.
이런 비유를 듣고 있노라면 예수님은 평범한 일상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신비로운 것들을 길러 올리고 아하! 하는 깨달음을 많이 얻고 사셨던 분이십니다. 삶의 진리를 어떤 특별한 데서만 깨닫고 특별한 사람들만 소유하는 것 같은 당시 유대 사회에 대한 저항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거룩하고 속된 것들을 공간으로 가르고(교회안은 거룩하고 교회 밖은 속되고, 성전 안은 거룩하고 성전 밖은 속되고) 사람으로 가르고(유대인은 거룩하고 유대인이 아니면 속되고) 시간으로 가르고(기도하는 시간, 예배하는 시간은 거룩하고 일상생활은 속되고)그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 노동하고, 밭일하고, 밥 먹고, 빨래하고, 설거지 하고, 대화하고, 여행가고 이런 것 안에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있고 이런 것을 어떻게 하느냐에 거룩함과 속됨이 있는 것이지 진리라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공간과 사람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유적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예화도 있습니다. 어느 날 유대인 랍비가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늘 기도하는 것이지요”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 난 랍비가 말했습니다. “거룩함이란 어떻게 먹을 것인가와 너희들이 어떻게 야다를 행하느냐에 있다.” <야다>란 부부간의 사랑의 행위를 가리키는 유대적인 표현입니다.
랍비의 말을 들은 학생들이 와글와글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의 어떤 학생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들이 거룩한 것입니까?”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신을 위해 죽는 것도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집에서 어떻게 먹고 사는지, 너희가 성행위를 어떻게 하고 사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않느냐!” 랍비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에 인간은 동물과 천사 사이의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이 때 자기 인격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거룩한 사람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깁니다. 성스러움,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은 때와 장소와 시간과 사람에 의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우리 일상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조차 인격을 높이는 일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책 읽는 일에도 성스럽고 속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데 그냥 나의 관점만 이야기 하면 되는데 마치 내가 옳은 것처럼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지배하려고 하면 그 또한 어리석은 책읽기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배우 소지섭님이 “김부장”이라는 드라마를 마치고 동료들과 스텝들에게 1그램짜리 골드바를 선물해 준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자그마치 300명에게요. 주연배우니 출연료를 제일 많이 받았겠지요. 단위 자체가 어느 배우와 달랐을 것입니다. 드라마라는 게 자기 혼자 잘해서 되는 게 아닌데 현장에서 몸으로 발로 뛰는 사람 덕에 배우가 유명해지고 그러는 건데 실제 현실에서는 주연이 모든 돈을 독식하는 구조입니다. 그는 나름 이런 독식 구조를 깨고 싶었던 겁니다. 그는 스텝들에게 정말 감사했던 거고 지극한 자기 일상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인격을 높였습니다. 이 상황을 예수님 비유식으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 나라는 골드바와 같은 겁니다. 혼자서 독차지하지 않고 수고한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지는 그런 골드바와 같은 겁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일상에서 가장 많이 보는 겨자씨와 누룩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십니다. 겨자씨와 누룩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작다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깨보다도 작습니다. 누룩은 밀가루 반죽할 때 매우 적은 소량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그냥 씨가 아닙니다. 그 안에서 생명력이 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누룩은 적은 양이 들어가지만 밀가루안에서 발효작용을 합니다. 유기물들을 분해하여 생명력을 왕성하게 부풀게 합니다. 겨자씨와 누룩은 눈에 보기에 매우 작은 것들이지만 왕성한 생명력을 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크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는 천명 이 천명되는 데 자기들만의 담을 쌓고 여기가 구원의 방주네 하면서 울타리를 치고 성벽 쌓기를 하면 그곳이 감옥 이고 그곳이 지옥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일찌라도 진실한 생명력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고 이정표고 나침판입니다.
지난주에 산황산 관련한 법적 자문을 받기 위해 변호사님 한 분을 뵈었습니다. 작년에 기후정의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지금바로여기>에 세 종류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서울역 쪽방촌 이야기와 언니네 텃밭 이야기와 화력발전소를 수출하는 것을 문제삼아 청년기후행동활동가들이 2021년에 광화문에서 친환경 수성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긴급행동을 했는데 기업의 이미지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1840만원의 소송이 진행됩니다. 1심에서 500만원의 벌금형이 나왔는데 2심에서 우여곡절 끝에 무죄취지로 파기환송되면서 승소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되는데 그 소송을 담당했던 변호사입니다.
돈을 많이 드리는 것도 아닌데 수원에서 올라오셨어요. 돈을 줘도 녹색당에 후원하신다고 하면서 저희를 만나셨어요.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더니 본인이 생각하는 산황산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법적인 논리로 직권취소의 위법적 사항에 절차상 문제와 내용적 문제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십니다. 확실하게 제대로 된 변호사를 만났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일 얘기를 다 끝내더니 그때부터 자신이 왜 이런 생태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은 녹색당원인데 소수정당이 국회로 들어가야 하고 생태환경, 지속가능한 삶의 운동에 관심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영역에 들어가 세상을 바꾸어야한다고 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쏟아내시는 겁니다. 나이가 60이 넘으셨는데도 어떤 삶에 대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깊은 열정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눈빛이 살아있었습니다. 살아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칠흙 같은 어둠속에서 길을 잃어도 눈빛이 살아있는 ,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자기 현장에 서 있는 단 한사람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세상을 멈춰 세웁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 청량리에 밥퍼 목사님이 계십니다. 최일도 목사님이십니다. 지금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밥퍼 사역을 하고 계시지만 그분이 그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된 건 매우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대학원을 마치고 유학 문제로 깊은 고민을 하던 어느 날 바람도 쐴 겸 춘천을 가기위해 청량리역에 갑니다. 그러다 길에 누워있는 어떤 어르신을 뵙니다. 누군가 도와주겠지 싶은 생각에 그냥 지나치죠. 그렇게 춘천행 열차를 타고 바람을 쐬고 다시 청량리역에 도착해서 집을 가려고 하는데 낮에 쓰러져계셨던 그 어르신이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계시더라는 겁니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충격을 받습니다. 누군가는 도와주겠지 싶었는데 그 사이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사람 중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겁니다. 더구나 유학을 고민할 정도로 제대로 된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고민하고 있는 자신인데 순간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싶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그 어르신을 일으켜 세우고 허기진 배를 채워드립니다. 자신과 같이 매일매일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길거리에서 쓰러져가는 사람들이 몇몇이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라면을 시작으로 밥퍼일을 시작하십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밥퍼 사역의 시작이었습니다. 길에 쓰러진 배고픈 한사람을 대한 생명의 진실성, 그게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이 사역의 전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거창한 조직이나 거대한 규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을 향한 진실한 마음, 그리고 내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온유한 생명력으로 인격을 꽃피우는 작은 태도들, 사랑들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겠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한 주간 동안도 이러한 생명력으로 가득한 은총의 시간들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