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XKk2LAgy0
오병이어의 신비
마태복음 14장 13-21절
오늘 읽은 오병이어에 대한 이야기는 떡과 물고기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비유적 이야기가 상징을 담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오병 떡 다섯 개, 생명의 양식 다섯 개 즉 오경을 뜻하는 것으로 토라 율법의 핵심 천명을 말하는 것이고 이어 물고기 두 마리 생명의 말씀 즉 오경을 예수님 식으로 요약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의 두 계명을 상징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예수 운동의 핵심이 토라의 정신 즉 하나님 중심성 그리고 생명에 대한 진실성이 결국 영적으로 굶주린 모든 백성들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찌했든 이러한 은유적 해석에 측면에서 보든 아니면 정말 먹거리의 기적의 관점에서 보든 오늘의 본문에서 중요하게 볼 세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빈들이고 날은 저물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어려운 처지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개인이든 공동체든 가정이든 모두가 겪는 공통의 어려움에 내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선택한 태도는 각자 도생의 길입니다. “여기는 빈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그러니 무리를 흩어 보내서 제각기 먹을 것을 사먹게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각자 도생은 위기 상황에서 인간이 본능적으로 취하기 쉬운 방어적 선택입니다. 그러나 각자 도생은 능력이 있거나 자원이 있는 사람에게는 유리하지만 능력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사람들은 벼랑 끝으로 몰립니다. 있는 사람들은 빼앗길까봐 두렵고 없는 사람은 생존의 불안으로 공동체가 파괴되고 불안과 두려움은 고립과 단절과 불신을 낳아갑니다. 코로나 19초기에 사람들이 엄청난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마스크를 사야하는데 각자 도생으로 놔두었더니 어떻게 됩니까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돈 벌려는 사람들만 생기고 가격은 폭등하고 사재기를 하고 그러면서 사회적 불안이 더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각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보고 함께 주체적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해 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림이가 5살 때인가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 아빠 한국말 너무 어려워 영어만 쓰면 안돼” 하는 겁니다. 순간 ‘아 이러다가 애가 한국말 잃어버리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뭘 했는지 아세요. 각자도생 그때부터 애 한글 교육하겠다고 그림책을 사서 모았으면 제가 얼마나 모았을까요 기껏해야 몇 백권 모았겠지요. 아마 돈도 어마무시하게 들었을 겁니다. 한글책 12000원하는 것 달러로 사면 배송비까지 18불 이상씩 했습니다. 거의 두 배에 해당되는 돈입니다. 그런데 그 때 생각한 게 뭐냐 한글 그림책 도서관이었습니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옆집에 사는 아이, 뒷집에 사는 아이, 건너편에 사는 아이들 집, 저기 버클리 대학교 한국 유학생들 집 모두의 문제였습니다. 그때부터 기림이가 가지고 있던 그림책 딱 200권 기증을 하고는 일주일에 하루 집을 오픈해서 한글 그림책 도서관을 시작했습니다. 한글 그림책도 빌려주고 문화배움터도 열고 새로 나온 그림책도 사고 그러니까 부모님들이 없는 책을 기증하기도 하고, 유학 끝나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기증하기도 하고, 책을 구입한다고 하니까 한국에 계신 행복한 아침독서 사장님께서 책을 60%에 보내주신다고 하시고 제가 일하던 한글학교 교장선생님께서 무역업을 하시는데 콘테이너 박스 빌려드릴테니 그거 사용하시라고 해서 60%에 받은 책을 배송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그대로 미국으로 들여와서 도서관을 운영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5년 동안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그림책이 2-3천권이 모였고요. 그것을 활용한 한국인이 적지 않았어요. 지금도 한국인교회 어딘가에서 사용되고 있어요.
사실 이게 각자 도생했으면 누가 이런 도움을 주겠어요. 근데 닥친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보고 대응해 나가니까 우리 모두의 문제로 여기는 사람들이 연결되기 시작했고 정말 모두의 도움과 협력으로 정말이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었어요. 첫 번째 포인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맞이하는 육아, 돌봄, 은퇴 이후의 삶 등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는데 각자 도생의 방식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동체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연대해가면 훨씬 더 예기치 않은 풍요로운 연결들이 이루어지면서 삶의 신비를 맛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포인트는 연대의 힘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습니다라고 나오지만 요한복음에는 한 아이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다고 되어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사실은 다 도시락을 싸들고 왔는데 내 먹을 것도 없을 듯해서 다 감추고 있었는데 어린 아이가 먼저 통 크게 내 놓는 걸을 보고 감동해서 나머지 사람들도 다 공동으로 나누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자라는 게 아니라 먹고도 남았다라는 의미죠. 한 달에 한번 있는 주일 공동 식탁이나 가끔식 텃밭에서나 야외예배에서의 찬나눔이 딱 이렇습니다. 각자 하나씩 조금씩 준비했을 뿐인데 부페보다도 더 풍성히 나누고 게다가 또 싸가는 나눔의 신비를 우리는 공동체안에서 너무 많이 경험합니다. 하나의 힘은 약하거나 초라하지만 그 약한 다양한 사람이 모였을 때의 힘은 신비로운 기적입니다.
제가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제가 일하는 한국기독교연구소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소장님이 80이 다 되셨는데도 요즘은 세상을 파괴하는 전쟁, 시오니즘, 여전한 반동성애에 대한 혐오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으셔서 이런 종류의 책들을 계속내고 계십니다. 그분이 80의 연세에도 여전히 남 눈치 보지 않고 책을 내실 수 있는 힘은 누구때문이셔요? 개미군단 때문입니다. 많게는 5만에서 10만원의 후원자도 계시지만 적지 않은 대부분의 후원자는 1만원 후원자이십니다. 많지않지만 그래도 400여명이 딱 연구소의 재정을 떠받치고 있으니 한해에 6권 이상의 책을 내실 수 있습니다. 그 책들이 촛불, 광화문 진보 기독교신학의 사상적 기반을 떠받치고 있고요. 한국에서 일고 있는 크고 작은 교회들, 단체들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독교진보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이 작은 연구소가 뚝심있게 한국의 건강한 기독교운동의 담론을 떠받치고 있는 겁니다. 산황산 싸움도 열한개의 교회가 뭉치니 매달 기도회를 해도 한교회에서 일년에 한번씩만 하면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도 이 싸움을 견인해 나갈 수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포인트는 이 작은 소년의 삶이 주는 신비입니다. 이 소년은 단지 자기의 도시락을 열었을 뿐입니다. 그 하나의 소박한 진실이 놀라운 신비의 세상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움켜쥐어야 살 수 있다고 늘 생각하고 사는데 손을 펼치면 더 큰 세상이 잡히는 겁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더 많이 모으고 쌓고 그래야 불안감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지갑을 열고 맘 쓰고 애를 쏟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지고 있던 삶의 무게도 사라지는 신비 경험을 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동녘평화센터봄을 통해 다양한 인문학적 실험을 하고 있고 함께 하는 인문학자들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주시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햇수가 더하면서 참여자들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인문학 프로그램을 통해서 돈한푼 받지 않았지만 가장 많은 수혜를 받은 사람 중의 하나가 저더라고요. 젬배도 그렇고 웰다잉도 그렇고 웰리빙도 그렇고 다른 누구보다도 저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고 특히 아버님 돌아가시는 과정에서 차분하게 많은 것들의 도움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속에서도 위로와 힘이 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역을 위해 열었을 뿐인데 결국 그것의 가장 큰 수혜자는 결국 저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올해에 웰리빙에 있는 프로그램중 하나는 지난해 웰다잉인문학을 통해서 배운 것들을 실제 어머니 임종과정에 적용하여 정말 누구나 한번 떠날 수 밖에 없는데 그 떠나는 과정을 정말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 주셨고 그경험이 너무 귀해서 귀한 사례로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배움이 단지 배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주고 결국 인문학적 배움이 삶에서 선순환되어가는 좋은 사례를 우리에게 주는 듯 해서 기대가 크게 느껴집니다. 결국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하려고 했던 다양한 노력과 애씀은 결국 나를 구원하는 과정이었고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와 보람과 선순환의 영향을 상호주고 받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각자 도생은 불안을 심화시키지만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동체적 연대와 나눔의 상상력을 발휘할 때 오병이어의 기적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타인을 향한 따뜻한 발걸음은 결국 자신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 되며, 우리가 나누는 작은 정성과 선한 노력들은 선순환의 삶을 키워가는 또다른 삶의 신비입니다. 결국 빈들 같은 세상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는 그 자체가 이미 기적입니다. 이런 귀한 역사가 한주간도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