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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9
7. 황 혼
박 완 서
강변 아파트 7동 18층 3호에는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 그리고 젊은 여자의 남편과 두 아이가 살고 있었다.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는 고부간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젊은 여자는 좋은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을 받은 똑똑한 여자로서 늘 완전한 걸 좋아했다. 비뚤어지거나 모자라거나 흠나거나 더럽거나 넘치는 걸 참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만은 대단히 모나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도 한 가지 근심은 있게 마련이라는 게 그것이었다. 늙은 여자가 바로 젊은 여자의 그 한 가지 근심이었다.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를 한 가지 근심 덩어리로밖에 인정하지 않았다.
늙은 여자는 실상 늙은 여자가 아니었다. 아직 나이 예순이 넘지도 않았고, 소녀처럼 혈색 좋은 얼굴과 검고 결 좋은 머리와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여자를 며느리로 맞을 때는 더 젊었었다.
시집온 지 며칠이 지나도록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를 결코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꼭 불러야 할 기회는 젊은 여자 쪽에서 솜씨 좋게 피했기 때문에 늙은 여자는 그걸 별로 부자연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여자는 친구를 초대했다. 친구들은 오이소박이 맛을 특히 칭찬하면서 누가 어떻게 담갔는가를 알고 싶어 했다. 그것은 늙은 여자의 솜씨였다.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가 “우리 어머님이 담그셨다.”고 이야기해 주길 가슴 두근대며 기다렸다. 그러나 젊은 여자는 간단하게 말했다.
“우리 집 노인네 솜씨야.”
늙은 여자는 그 말이 섭섭해 며칠 동안 입맛을 잃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시작에 불과했다. 감기 기운만 있어도 “노인네가 옷을 얇게 입으시니까 그렇죠.”, 화장실만 자주 들락거려도 “노인네가 음식을 많이 잡수시니까 그렇죠.”, 화장실만 자주 들락거려도 “노인네가 음식을 많이 잡수시니까 그렇죠.”, 질긴 거나 단단한 걸 먹으려 해도 “노인네가 그걸 어떻게 잡수시려고 그래요.” 하는 식으로, 그 여자는 모든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나하나 간섭받으면서 늙은 여자로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젊은 여자는 아이를 낳았다. 늙은 여자에게 손자가 생긴 것이다. 그때부터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를 할머니라고 불렀다. 늙은 여자의 아들까지 덩달아서 할머니라고 불렀다. 마땅히 어머니라고 불러야 할 사람들이 할머니라고 부르기 위해 대화의 방법까지 간접적인 것으로 고쳐 나갔다.
“할머니 진지 잡수시라고 해라.”, “할머니 그만 주무시라고 해라.”, “할머니 전화 받으시라고 해라.” 이런 식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늙은 여자는 깨어서 누워 있었다. 늙은 여자의 방은 이 아파트의 방 가운데 바깥으로 창이 나지 않은 단 하나의 방이었기 때문에 밖이 어느 정도 밝았나를 알 수 없었다. 문은 부엌으로 나 있었다. 그 방은 방이 아니라 골방이었다.
늙은 여자는 눈 감고 창밖의 어둠이 군청색으로, 남빛으로 엷어지면서 문틈을 통해 맑고 차가운 샘물 같은 새벽바람이 스며들던 옛집의 새벽을 떠올렸다. 그 여자의 옛 기억은 다주 또렷했다. 아파트촌의 새벽이 그 여자의 옛 생각을 따라 밝아 왔다.
부엌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할머니 일어나시라고 해라.” 하는 젊은 여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륵은 여자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늙은 여자는 못 들은 척하고 반듯이 누워서 명치 부근을 쓱쓱 쓸어도 보고 꼭꼭 주물러도 보았다. 그것은 요즈음 늙은 여자의 버릇이었다. 늙은 여자는 요새 건강이 좋지 않았다. 입맛이 없고, 신트림이 나고 가슴이 답답했다. 입맛이 없어 끼니를 거르고 누워서 명치를 짚어 보면 속에 응어리 같은 게 어떤 때는 확실하게, 어떤 때는 희미하게 만져졌다.
늙은 여자는 환갑 전에 가슴앓이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늙은 여자의 시어머니도 환갑 전에 가슴앓이로 죽었다. 6ㆍ25 전쟁 중 피난지에서였다. 돈도 없었고 약도 없고 병원도 없었다. 그 대신 사람들의 뱃속은 아무리 거친 음식도 눈 녹이듯이 삭였고, 헐벗고 한뎃잠을 자도 감기 한 번 안 걸렸다.
그러나 그 여자의 시어머니는 죽을 먹고도 냉수를 마시고도 신트림을 하였고 명치를 쥐어뜯었다. 하루하루 야위고 말라 갔지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누워서 자기 명치를 쓸면서 “안에 꼭 바나나만 한 게 가로걸렸으니 먹은 게 내려갈 재간이 있나.”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럴 때마다 그 여자는 시어머니의 명치에 가로걸린 바나나만 한 걸 어떡하든 달래서 풀어지게 해 볼 양으로 정성껏 명치를 쓸어 드렸다. 해 드릴 수 있는 건 오로지 손으로 만져 주는 것밖에 없었다. 두메 사람들이 일러 준 옛날 치료법을 따라 화로의 불돌이 뜨끈뜨끈할 때 누더기에 싸서 명치에 얹어 드리기도 했다.
손으로 쓸어 드릴 때도 불돌을 얹어 드릴 때도 시어머니는 곱고 환하게 웃으며 “아이고 시원해, 아이고 시원해, 그놈의 게 스르르 풀어지고 이제 다 나은 것 같다.”고 하셨다. 아무리 고통이 심할 때도 며느리의 손만 가면 밝게 웃으셨다. 그러다가 바나나만 한 것은 약손의 힘으로 풀어지기는커녕 애호박만 하게 자랐고, 병자는 눈 뜨고 바로 보기 민망하도록 앙상하게 말라 가더니 어느 날 숨을 거두었다.
지금 늙은 여자는 그때 병자의 명치에서 바나나만 한 게 정말로 만져졌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며느리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억지로 웃던 웃음만은 지금도 고스란히 떠올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그 웃음이 그토록 환하고 고왔던 까닭을 알 수 있을 듯했다.
늙은 여자는 지금 그때의 시어머니처럼 아파서 괴로워하고 있는 곳을 며느리가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 여자는 “노인네가 많이 먹어서 그렇죠.” 하면서 소화제를 한 봉지 주고 끝냈다.
하긴 요새 세상에 누가 약손 따위를 믿을까마는 그래도 늙은 여자는 그게 아쉬웠다. 소화가 잘되고 안 되고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의 손에 만져지는 게 확실한가 아닌가, 남의 손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늙은 여자는 아들과 며느리한테 조르고 애처롭게 부탁했다.
“얘들아, 명치 속에 이게 뭔가 한 번만 만져 봐 다오.”
어느 날인가, 늙은 여자는 느닷없이 치마끈을 풀면서 곁에 있던 젊은 여자의 손을 끌어다가 명치를 만져 보게 하려고 했다. 젊은 여자는 깜짝 놀라며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늙은 여자가 충격을 받을만큼 몹시 불쾌한 얼굴을 했다. 늙은 여자는 얼른 그 자리를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젊은 여자가 명치 끝에 닿았던 손을 마음껏 흐르는 수돗물에 씻어 낼 수 있도록…….
그 일은 늙은 여자뿐 아니라 젊은 여자에게도 충격이 됐던 같다. 다시 그런 일을 당할까 봐 꽤나 겁이 났던지 당장 늙은 여자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늙은 여자는 병원 갈 만큼 큰 병은 아니라고 사양했건만 소용이 없었다. 늙은 여자는 진찰받으면서 내내 명치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고만 이야기했다. 젊고 냉철해 뵈는 의사는 듣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옷을 벗으라든가, 돌아앉으라든가 누우라든가 하는 말도 간호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말했다.
“선생님, 제 병은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병은 아녜요. 아마 유전일거예요. 유전은 고치기 힘들죠? 시어머님이 저처럼 이렇게 가슴앓이로 고생을 하다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때 시절론 좋다는 건 다 해 봤지만 소용이 없더군요.”
“고부간에 무슨 유전입니까?”
의사는 무시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것이 늙은 여자가 지껄인 여러 말에 대한 의사의 단 한 마디의 대답이었고, 그녀의 증상에 대한 관심의 전부였다.
그날 저녁을 굶고, 다음 날 아침 먹기 전에 와서 엑스레이를 찍으란 소리도 간호사가 했다. 저녁을 굶고 나서 그런지 명치가 푹 꺼지고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이래가지고서야 세상없는 엑스레이로도 명치 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늙은 여자는 병원에서 큰 병에 걸렸다고 할까 봐도 겁이 났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할까 봐 더 겁이 났다. 큰돈 들이고, 수선은 수선대로 떨고 나서 아무 병도 없다는 게 탄로가 나면 무슨 낯으로 식구를 대할까 싶었다.
부엌에서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훌훌 코끝으로 끼쳐 오자 늙은 여자는 느닷없이 강렬한 식욕을 느꼈다. 한 끼 굶은 것으로 명치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던 것은 온데간데없고 다만 배고픈 느낌만이 선명했다. 늙은 여자는 부끄럽고 당황했다. 어제 병원에서 주사를 한 대 놓아 주든지, 약이라도 몇 봉지 주었더라면 그 핑계를 대고 다 나았다고 하련만 그럴 수도 없었다.
늙은 여자는 병원에 가기 싫었다. 처음부터 늙은 여자가 바란 건 엑스레이나 주사나 약이 아니었다.
“할머니 일어나시라고 해라. 병원 가실 시간 늦으시겠다.”
젊은 여자가 재차 간접적으로 여자를 깨우는 소리가 나다. 손자들은 아직 안 일어났고 식탁에선 아들이 혼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늙은 여자는 아들을, 며느리보다 가깝게 느끼면서 자기가 병원에 가지 않는 데 아들이 도움이 돼 주길 바랐다.
“아비야, 나 잠깐 보자.”
늙은 여자는 몰래 아들에게 손짓과 눈짓을 함께했다. 아들은 곧장 오지 못하고 두리번두리번 한눈팔며 비슬비실 늙은 여자 곁으로 왔다.
“나 말이지, 병원에 안 갈란다. 다 나았어. 정말이야, 여기서 뭐가 오르락내리락 도무지 밥을 먹을 수가 없더니 글쎄 밤새 고놈의 게 감쪽같이 없어졌지 뭐냐. 정말이야. 너 그런 얼굴 하지 말고 어디 한 번 만져 볼래?”
늙은 여자는 무심히 아들의 손을 끌어당겼다. 아들이 털벌레를 털어 내듯이 방정맞게 늙은 여자의 손을 뿌리쳤다.
“노인네도 참…….”
그러면서 일어섰다. 어느 틈에 젊은 여자가 따라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빨리 준비하세요. 여덞 시까지는 가셔야 하니까요.”
젊은 여자는 아이들을 아침밥 먹여 학교에 보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모시고 갈 수 없다면서 엘리베이터까지 배웅을 해 주었다.
이른 아침, 지하 1층에 있는 각종 검사실과 방사선실 앞은 많은 환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벽도 희고 불빛도 희어서 그곳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까지 알맞게 빛이 바래 보였다. 환자들도 미리 지쳐 있으면서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환자다워 보였다.
늙은 여자는 생각보다 일찍 이름이 불렸고 입술이 붉은 간호사로부터 걸쭉하게 갠 횟가루가 든 컵을 받았다. 늙은 여자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간호사가 말했다.
“마시세요. 쭉.”
늙은 여자는 처음 보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우선 냄새를 맡기 위해 코를 들이댔다. 아무 냄새도 안 났다. 먹는 것에서 아무 냄새도 안 난다는 게 도리어 비위에 거슬렸다. 먹고 싶지 않았다.
“쭉 들이마시라니까요, 빨리.”
사무적인 목소리에 짜증이 가미되자 늙은 여자는 얼른 그걸 들이마셨다. 아무 것도 없는 고약한 이물질이 명치를 뿌듯이 채웠다.
엑스레이 촬영이 끝나자 늙은 여자는 화장실로 달려가 곧 그것을 토해 내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 집에 가서 소금이라도 한 움큼 집어 먹고 토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시간제 파출부는 집 안 청소를 하고, 젊은 여자는 다리를 꼬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늙은 여자는 너무 일찍 돌아온 게 아닌가 싶어 쭈뼛쭈뼛했다. 그러나 젊은 여자는 까듯이 예의 발랐다. 흠잡을 데라곤 없었다.
“이제 뭘 좀 잡수셔야죠. 미음을 끓일까요?”
“아무 생각 없다. 병원에서 병을 고치기는커녕 얻어 왔나 보다.”
늙은 여자는 명치를 쓸면서 말했다.
“왜 그러세요, 또. 오늘은 엑스레이만 찍었을 텐데요.”
“내가 엑스 광선을 처음 찍는 줄 아냐. 예전에도 몇 번 찍어 봤어. 그렇지만 그렇게 고약한 걸 먹이고 찍는 병원은 처음 봤다. 세상에 다른 병도 아니고 소화 안 되는 증상에 그런 고약한 걸 강제로 먹여놨으니 덧날 수밖에. 아유, 비위 뒤집혀.”
“그건 조금도 고약한 게 아녜요. 맛도 냄새도 없는 거예요.”
“그럼 너도 그걸 먹어 봤단 말이냐?”
“제가 그걸 왜 먹어 봐요?”
“그럼 그 맛을 어떻게 알아?”
“소화 기관 촬영을 할 때 그런 걸 미리 먹고 해야 한다는 것쯤은 상식이에요. 물을 먹도고 비위가 뒤집히는 사람만 아니면 누구나 다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젊은 여자는 옳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뭇 당당하고 늙은 여자는 기가 꺾였다. 젊은 여자는 언제나 이치에 맞는 말만 했다. 아는 것도 많았다. 늙은 여자가 병원에서 얻어먹은 걸 맛보지 않고도 그 맛을 정확하게 안다.
그러나 먹는 것에 냄새도 맛도 없다는 게, 먹기에 얼마나 고약한 것인가는 모르고 있다. 먹는 것이라면 쓴맛이라도 맛이 있어야 하고 하다못해 썩는 냄새라도 나야 한다. 그러니까 맛도 냄새도 없는 것은 먹는 게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맛은 먹는 게 아닌 걸 먹는 맛이다. 늙은 여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치에 닿지 않는 것 같아 말로 하진 않았다.
늙은 여자가 아무것도 안 먹을 것처럼 말했는데도, 젊은 여자는 파출부에게 미음과 죽을 쑬 것을 일렀다. 파출부는 미음을 쑤면서 거침없이 지껄였다.
“저는요, 사모님. 이래봬도 서울 장안에서 행세깨나 하고 사시는 댁 안방과 부엌을 내 집 드나들 듯하면서 삽니다요. 그러다 보니 눈치만 발달해서 사람 사는 속사정이라면, 저 밑바닥까지 환합니다요. 사모님도 워낙 교양이 있으신 분이라 말씀은 안 하셔도, 사모님 속상하시는 거 저 다 압니다요. 노인네가 속 좀 썩이죠? 그렇죠? 아드님 돈벌이하기 힘든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고 노인네가 입맛 좀 떨어진 걸 가지고 병원 좋아하는 노인네, 일 좋아하는 노인네……. 그래도 사모님은 참 착한 며느리셔.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시고 그 치다꺼리를 다 해내시니.”
늙은 여자가 들어도 괜찮다는 듯 거침없었다. 늙은 여자는 이 소리보다 다용도실에서 나는 세탁기 소리가 더 견디기 어려웠다.
엉뚱한 것으로 채워진 시장기 때문에 늙은 여자는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빠져 있었다. 괘씸한 딴으론 한바탕 나무라 주고도 싶었지만 더욱 간절한 소망은 잠을 자는 일이었다. 세탁기 소리가 멎자 늙은 여자는 방바닥 속으로 곧장 침몰하듯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에 깨어났다. 얼떨결에 늙은 여자는 자기가 병자라는 걸 잊어버리고 민첩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늙은 여자 방은 작았지만 전화기도 따로 있고 텔레비전도 따로 있었다. 그래서 젊은 여자는 외출할 때 마음 놓고 안방을 잠글 수가 있었다.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하기 전에 통화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젊은 여자는 외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늙은 여자는 심심할 때 곧잘 젊은 여자의 전화를 엿들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늙은 여자가 젊은 여자들이 이야기하는 데 참여할 기회란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여자의 친구들이 떼를 지어 놀러 올 때도 있었지만 늙은 여자에겐 간단한 인사를 하는 적도 없었다.
전화를 엿들으면서 늙은 여자는 차츰 생기가 나기 시작했다. 젊은 여자들은 늙은 여자가 들어서 언짢은 이야기는 결코 하지 않았다. 젊은 여자는 교양이 있는 여자였다. 집 밖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제 나름의 의견도 가지고 있었다. 노인네를 입 밖에 올릴 만큼 이야깃거리가 바닥나지 않았다.
젊은 여자들은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장단점에 대해 토론했고, 아이들의 특기 교육과 소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남편의 승진과 아내의 능력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쟁에선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명동 어느 가게에 기막히게 세련된 고급 실크 블라우스가 있더란 새로운 정보에서 다시 활기를 띠었다.
늙은 여자는 몰래 엿듣는 전화였으므로 숨죽여야 했고, 아무리 우스러워도 소리 죽여 웃어야 했다. 그래서 더욱 늙은 여자의 표정은 팬터마임처럼 과장되어 변해 갔다. 늙은 여자는 통화에 끼어들진 못했지만 젊은 여자들이 하는 말에 늘 흥미진진했다.
젊은 여자들은 한 번도 늙은 여자의 귀에 거슬리거나 못 알아들을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젊은 여자들이 재미있어 하는 이야기는 늙은 여자도 재미있었고, 젊은 여자들이 화를 내는 문제에 대해선 늙은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여자들의 기쁨이나 슬픔, 바람을 늙은 여자는 특별히 노력하거나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도 따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화로 젊은 여자들의 이야기에 몰래 참여할 때마다 늙은 여자는 자기가 왜 늙은 여자여야 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 외톨이가 되어 특별히 취급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그 자신에겐 없었다. 전화의 이야기가 갑자기 건너뛰었다.
“참, 수다 떠느라 정작 할 말을 잊어 먹을 뻔했구나. 내일 좀 모여야겠다. 인애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어. 그냥 있을 수 있니? 부조금 좀 걷어서 문상을 가 봐야지.”
“그래? 언제 돌아가셨어?”
“어제. 너 왜 그렇게 긴 한숨을 쉬니?”
“그냥.”
“너 혹시 부러운 거 아냐?”
“아무렇게나 좋을 대로 생각해.”
“그분 아직도 새파라시지?”
“새파라시기만 하면 좋게.”
“왜, 무슨 문제가 있었어?”
“아니.”
“그럼 왜 그래?”
“더 새파래지시지 못해 병원에 다니신단다, 요새.”
“그래도 어디가 편찮으시다는 핑계는 있을 거 아냐?”
“뭐 입맛이 없으시다나.”
“너희 부부가 너무 효자 효부라서 그래. 입맛이 떨어지셨다면 비타민제나 한 통 사다 드리면 됐지, 병원이 어디 한두 푼 드는 데니?”
“우리 식구 모두 건강해서 아직까지 의료 보험 혜택 한 번도 못 받았잖아. 그러니까 그냥 보내 드리는 거지 뭐.”
“얘, 모르는 소리 좀 작ㅈ가해. 병 없이 엄살 부리는 사람 병원비를 아무리 의료 보험 덕 봐도 무시 못한다. 두고 봐라. 갖은 검사를 다 시킬 테니. 생각해 봐. 감춘 보물찾기보다는 안 감춘 보물찾기가 더 골 빠지는 것은 정한 이치고, 병원에서 왜 거저 골이 빠지니? 터무니없이 돈 들걸.”
“그런 것쯤 누가 모르니? 그렇지만 이번 일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
“왜, 무슨 일인데. 요것아, 빨리 사실대로 말해 봐.”
“글세 허구한 날 명치에 뭐가 있다고 그러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 보고 거길 주물러 달라는 거야. 노인네가 왜 그렇게 남이 자기 살 만지는 걸 좋아하는지,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그것만은 정말 못 참겠더라.”
“드디어 왔구나. 예외도 있나 싶더니.”
“뭐가?”
“너희 노인네 말이야. 그게 바로 욕구 불만의 표현일 거야.”
“그게 그럼, 성욕 비슷한 건가?”
“늙었건 젊었건, 사람 하는 짓은 모두 성욕으로 설명 안 되는 게 없거든.”
“너나 그렇지. 너는 애가 아무튼 순수하지 않아. 너는 꼭 그 방면으로 무슨 일이든지 갖다 붙이더라.”
“얘, 뭔 일이든지 그 방면으로 갖다 붙인 게 나라니? 무식하게시리, 그건 프로이트야.”
“프로이트?”
“그래, 프로이트. 너도 대학교 때 들은 강의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가 써먹을 줄도 좀 알아라.”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이것저것 짚이는 게 있어.”
“프로이트 선생을 갖다 붙이니?까 금세 내 말에 권위가 붙는구나, 얼씨구.”
“까불지 마. 남은 속상해 죽겠는데.”
“뭐가 또 속상해? 내가 해석을 잘해 줬는데.”
“네 해석을 듣고 보니 얼마나 징그러우냐 말이야.”
“얘는 성욕이 뭐가 징그럽니? 그야말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젠데. 그 문제가 사라지는 날은 인류가 멸종하는 날일 텐데.”
“듣기 싫어 노인네 안 모신다고 남 너무 약 올리지 마.”
늙은 여자는 통화 중에 슬그머니 수화기를 놓았다. 손에서 힘이 빠져 더 이상 수화기를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늙은 여자는 프로이트를 못 알아들었지만 성욕은 알아듣기 때문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세상에, 다 죽게 된 늙은이에게 무슨 누명을 못 씌워 그런 더러운 누명을 씌울 게 뭐란 말인가. 늙은 여자는 속이 와들와들 떨리게 분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란 사람이 누군지는 그게 외래어라는 것밖에 알 수가 없었다.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들이 즐겨 쓰는 외래어를 거의 못 알아듣는 게 없었다. 액세서리니 에티켓이니 노이로제니 프리미엄이니 덤핑이니 섹스니 하는 외래어의 뜻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정확하게 파악해서 알아들을 수 있을뿐더러, 간혹 써먹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만은 알 수가 없었다. 설사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성욕에서 받은 모욕감을 없앨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늙은 여자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소리가 났다. 아이들은 늙은 여자에게 친절했다.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쫓겨나면 저희들 방으로 가는 척하다가 할머니 방으로 숨어 들어 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텔레비전을 켜 달라고 조를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늙은 여자는 처음엔 안 된다고 하다가도 곧 아이들 하자는 대로 했다.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해롭다고 생각하는 건 늙은 여자도 아이들에게 해롭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을 양 옆구리에 끼고 어리고 싱싱한 체온과 숨결을 접한다는 건 늙은 여자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오늘따라 아이들은 할머니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들어올 때도 안 들어올 때도 있었지만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가 일부러 아이들을 안 들여보내는 것처럼 느꼈다.
젊은 여자가 멀겋게 끓인 미음을 들고 들어와서 머리맡에 놓으며 말했다.
“입맛이 안 당기시더라도 좀 마시세요.”
늙은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젊은 여자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갔다. 늙은 여자는 미지근한 미음을 마셨다.
아이들이 “아빠, 아빠” 하고 반기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에서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났다. 늘 듣던 소린데도 톱니바퀴가 머릿속을 파고드는 것처럼 그 소리는 여자를 괴롭혔다. 늙은 여자는 엎드려서 귀를 틀어막았다.
그 소리가 멎자 식당에서 밥 먹는 소리가 났다. 식구가 모두 늙은 여자를 약 올리기로 약속이나 한 듯이 즐겁게 웃고 소리 나게 씹으며 식사를 했다. 향긋한 김 냄새, 구수한 된장국 냄새도 끼쳐 왔다. 아침에도 같은 냄새를 맡은 것으로 봐서 허깨비를 본 것인지도 몰랐다.
텔레비전 소리가 났다. 연속극에서 늙은 여자가 악 쓰는 소리가 났다. 늙은 여자의 방에도 텔레비전은 있었지만 보지 않았다. 연속극에 나오는 늙은이들은 젊은이한테 무조건 아첨하지 않으면 모든 일마다 따지고 맞섰다. 늙은 여자는 그렇게 사는 늙은이들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
연속극 속의 식구들 소리 때문에 정작 식구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늙은 여자는 기다렸다. 식구들이 연속극에 정신이 팔린 사이 아들이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고 문병을 와 주기를. 몇 번인가 문밖에 숨죽인 아들의 발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문이 열리진 않았다.
늙은 여자는 안절부절 아들이 들어와 주기를 기다리다 지쳐서 다시 쓰러졌다.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면서 명치 속이 까진 살갗처럼 싱싱하게 쓰려 왔다. 그 여자는 반듯이 누워서 명치를 쓸어 봤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아마 엑스레이는 더 정확하게 그 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증명해 줄 것이다. 그 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게 마치 몰래 길들인 친구를 잃은 것처럼 허전했다. 그거야말로 늙은 여자의 마지막 친구였거늘.
늙은 여자는 사라진 응어리를 되찾기 위해 명치를 쓸고 주무르고 더듬었다. 그러면서 이게 성욕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늙은 여자는 성욕이라는 말에 토할 것처럼 더럽고 누추한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늙은 여자는 지금은 과부지만 남편이 살아 있을 때, 기쁨이나 슬픔을 같이 나눌 대상으로서 남편을 좋아했지 성욕의 대상으로 그리워해 본 적은 절대로 없었다. 그것만큼은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럴수록 전화로 들은 젊은 여자의 말은 괘씸하고 치가 떨렸다. 젊어서 서방질을 했다는 누명을 섰어도 이보다는 덜 분할 것 같았다.
연속극이 끝났다. 그리고 가수의 노래가 들렸다. 아이들이 따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부부가 같이 웃는 소리가 났다. 다시 연속극 소리가 났다. 연속극이 끝났다. 텔레비전을 끄고 식구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났다. 아들이 문병 오긴 틀린 일이라고 늙은 여자는 생각했다. 아들의 문병을 단념한 늙은 여자는 마침내 아들에게 악담을 하기 시작했다.
‘너도 자식 기르는 놈이 그러는 게 아냐, 너도 곧 당할 거다. 암 당하고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너한테 당한 것만큼만 너도 네 자식에게 당해라. 고려장 이야기가 옛말이 아니야.’
늙은이를 산 채로 내다 버리고 온 아버지의 지게를 어린 자식이 훗날 아버지를 내다 버리기 위해 챙겨 두는 것을 보고, 그 아버지가 마음을 고쳐먹고 부모에게 더욱 효도를 극진히 했었다는 이야기는 재미는 없었지만 기분 나쁘고 겁나는 이야기였다. 그런 탓에 늙은 여자도 지난날, 자식 보는 데서건 안 보는 데서건 부모에게 불효한 바 없었다. 그것은 자식이 훗날 본받게 하고자 함이었을 게다.
그러나 자식은 지금 그것을 본받고 있지 않다. 아마 훗날 그의 자식 역시 그를 본받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제는 아예 그런 것에 의지할 필요가 없는 새로운 삶의 모습이 생겨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아들 며느리의 커다란 불효는 영영 되갚아질 길이 없는 것일까. 늙은 여자는 아직도 아들의 불효에 대한 앙갚음을 단념하지 못했다.
어느 틈에 밖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멎고 늙은 여자의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라 젊은 여자였다.
그때가지 늙은 여자의 손은 명치 속에서 응어리를 찾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자위를 하다가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젊은 여자 역시 자위의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고개 먼저 돌리고 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말없이 나가 버렸다. 늙은 여자는 죄지은 것 없이 가슴이 울렁대면서 낮에 들은 전화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성욕은 인류 영원의 문제라고 했겠다. 거북한 명치를 쓸어 줄 타인의 손을 그리워하는 것도 성욕이라고 했겠다. 그렇담 너희들도 늙어 죽는 날까지 성욕에서 놓여나지 못하겠구나. 고려장의 저주로부터는 설혹 놓여났다고 하더라도 성욕의 저주로부터는 못 놓여나겠구나.’
늙은 여자는 웃으면서 일어나 앉아 거울을 본다. 거울 속의 여자는 울고 있었다. 엉엉 울고 있었다. 아무리 웃기려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거울 속의 여자쯤은 자기 마음대로 될 수 있으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늙은 여자는 과부가 되고 외아들을 그리면서 늙게 혼자 살게 될까봐, 그걸 항상 두려워하며 살았었다. 지금 늙은 여자는 혼자 살지 않는다.
그러나 늙은 여자는 지금 정말 불쌍한 건 혼자 사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 뜻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자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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