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80)
◇ 칠점사
칠점사가 잠자던 조대감 바지속으로
그때 행랑아범의 어린 아들이…바짓가랑이 속으로 개구리를 넣는데
안마당 감나무 아래 평상에서 매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조 대감이 죽부인을 안고 낮잠에 빠져들었다. 언덕 너머 잔칫집에 다녀와 등목을 하고 안동포 홑바지 저고리만 걸친 채 술에 취해 땀에 취해 코를 골았다.
그때 언년이가 대감나리가 깰세라 고양이 걸음을 걷다가 소스라쳐 주저앉았다. 기다란 뱀 한마리가 평상에 올라 조 대감 바지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하인들이 우 몰려들고 안방마님도 발을 동동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 꼬리가 바지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행랑아범이 말했다. “칠점사야!”
칠점사는 몸집이 큰 맹독성 뱀이다. 어떤 하인은 시퍼런 낫을 들고 오고, 침모는 인두를 들고 오고, 마당쇠는 지게 받침대를 들고 왔지만 누구 하나 어떻게 손쓸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써늘한 촉감에 조 대감도 잠이 깼다. “나으리, 꼼짝하지 말고 그대로 계십시오.” 대감은 윗몸만 일으킨 채 사색이 되어 부들부들 떨었다.
그때 행랑아범의 일곱살 난 아들이 평상을 둘러싼 어른들 틈을 비집고 들어오더니 개구리 한마리를 조 대감 바짓가랑이 속으로 던져 넣었다. 둘러싼 사람들이 “어어어” 하고 있는데 개구리가 팔짝 뛰어나오고 칠점사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재빠르게 따라나왔다. 조 대감이 목숨을 건졌다.
너무 놀라서 우황청심환을 먹고 사흘을 누웠던 조 대감이 정신을 차려 행랑아범 부자를 불렀다. 일찍이 상처하고 외아들 하나를 데리고 조 대감 집에 들어와 문간채를 지키며 집사 노릇도 하는 행랑아범이 아들 래벽과 함께 조 대감 앞에 꿇어앉았다.
“자네 아들은 내 목숨을 건진 생명의 은인이네. 자네 소원이 무엇인가?”
“미련한 소인을 중용하여 모든 걸 맡기시니 제 소원은 대감나으리 실망하시지 않게 열심히 일하는 것뿐입니다.”
“어허, 지나친 겸양은 미덕이 아닐세.”
조 대감은 혀를 차며 물었다.
“네 이름이 래벽이라 했겠다?”
“네, 그러하옵니다.”
“너는 소원이 무엇이냐? 너도 소원이 없느냐?”
“있습니다.”
“무엇인고?”
“서당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조 대감은 삼대독자 손자를 불렀다. 열살 먹은 주효가 들어왔다.
“이 시간부터 너희 둘은 형제다. 래벽이 일곱살이고 주효가 열살이니 당연히 래벽이 동생이고 주효는 형이다.”
이튿날부터 두 형제는 나란히 서당에 갔다. 똑같이 비단 바지저고리를 입고 똑같이 꽃신을 신고. 조 대감 손자 주효는 래벽이를 할아버지 목숨을 건져준 생명의 은인이라며 친동생처럼 아꼈고, 래벽은 주효를 깍듯이 형님으로 모셨다. 서당에서도 두 형제의 실력은 뛰어났다. 래벽이 이날 이때껏 시간 날 때마다 서당으로 달려가 문밖에서 익힌 글이 방 안의 학동들보다 못하지 않았다.
래벽이가 머리도 영특한 데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해 서당 훈장은 혀를 내두르는 한편 마음은 허탈했다. 어느 날 훈장을 만난 조 대감이 두 형제의 뛰어난 실력을 듣고 환하게 웃을 적에 훈장이 말했다.
“래벽이는 노비의 자식이라 과거도 못 볼 텐데….”
조 대감은 당장 집으로 돌아가 행랑아범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문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래벽을 손자로 입적시켜 족보에 올렸다.
강산이 두번이나 변한다는 20년이 흘렀다. 어느 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임금이 곁에 있는 좌승지에게 말했다. “인재가 없어, 인재가…. 좌승지, 초야에 묻힌 훌륭한 인재가 없는가?”
“덕이 있고 신언서판이 뛰어나지만 과거만 보러 가면 머릿속이 텅 비어 물 수(水) 자도 기억이 안 나 지금은 고향에서 그저 문객으로….” 좌승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금이 껄껄 웃었다.
임금은 그를 불러올려 대제학 자리에 앉혔다. 좌승지는 래벽이고 대제학은 주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