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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자신만의 메뉴나 즐겨 찾는 음식점 목록 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간혹 주위 사람들로부터 식당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내가 즐겨 찾는 음식점과 메뉴 등을 파일로 만들어 놓고, 식당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이 목록을 보내주고 있다. 단 목록 말미에 ‘이 목록은 철저히 작성자의 시식 경험과 입맛에 따른 선정임을 밝힙니다.’라는 단서를 붙여 두었다. 실상 누군가의 추천으로 찾았던 식당의 음식이 기대에 못 미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음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입맛과 음식 취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음식과 관련된 글을 읽다가 우연히 제목을 알게 되어 구입했다. <미식견문록>이라는 제목이지만, 아마도 원제는 ‘여행자의 아침 식사’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것이 러시아의 통조림 상품명이며, 그 통조림은 러시아 사람들에게도 외면을 받았을 정도라고 한다. 책의 앞 부분에 이러한 내용을 싣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음식과 관련된 책의 제목으로 사용할 정도로 저자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일본인으로서 러시아어 동시통역사로 활동했던 저자이기에, 음식과 관련된 내용들은 주로 러시아와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아마도 음악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은 듯, 책의 목차를 ‘서곡’, ‘제1악장’, ‘휴식’, ‘제2악장’, ‘간주곡’, ‘제3악장’ 등 음악 연주의 순서로 붙인 것도 흥미로웠다.
타국에서 생활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음식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그 바탕에는 저자의 일본 음식에 대한 경험이 기준이 되고 있다. 나로서는 일본 음식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외국 생활을 하면서 한국 음식과 비교했던 내 경험을 대입시키며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감자 등이 유럽으로 전래될 당시, 매우 생소하게 여기고 오랜 동안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했다는 내용은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던 정보였다. 지금은 토마토와 감자 그리고 옥수수 등이 대부분의 서양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정도이지만, 저자에 따르면 프랑스는 18세기 말 경에 그리고 러시아는 19세기 중엽에 비로소 감자를 요리 재료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실제로 ‘구대륙 사람들이 토마토 감자 옥수수 등의 식품을 알게 된 것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1493년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감자가 일본에 처음 소개되었을 당시에도 ‘흙투성이의 못 생긴 물체, 아마 악마나 먹는 음식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을 통해 조선으로 건너온 감자는 흉년을 이길 수 있는 구황식물로 통용되기도 했다. 특히 영화 제목이기도 한 <지슬>은 제주도 사투리로 감자를 일컫는 말인데, 제주도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건인 ‘4.3항쟁’ 당시 산으로 피신했던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요긴한 식량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저자가 겪었던 음식에 관한 내용들을 다양한 정보를 인용하여 소개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음식의 경우 직접 만들었던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 즐겨 먹었던 ‘할바’라는 과자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보면서, 저자에게 그 과자가 그만큼 인상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나는 어린 시절 먹었던 ‘눈깔사탕’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또한 식사를 하는 도중에 하나씩 메뉴가 나오는 이른바 ‘코스 요리’의 원류가 프랑스가 아닌 러시아의 식사법이었다는 주장도 매우 흥미롭게 여겨졌다.
이 책의 ‘제1악장’에서는 대체로 저자의 경험과 관련된 음식들을 소개하고, 그에 관한 정보들을 조사하여 정리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제2악장’에서는 동화나 각종 이야기에 등장하는 음식과 관련된 내용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마지막 ‘제3악장’은 저자가 겪은 음식들에 대한 추억과 음식 철학 등이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때문에 저자의 가족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들이 적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하여 저자의 음식에 대한 해박한 식견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도 음식과 관련된 글을 쓴다면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저자만의 음식 문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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