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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0년대 이른바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소설을 쓴 작가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작품에 나타난 성(sex)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독서 인구가 크게 줄어들고, 더욱이 대중들은 진지한 문학 작품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이 없는 경향이 없지 않다. 어쩌면 대중들은 이제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대중음악이나 이른바 ‘먹방’으로 대표되는 음식 관련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비록 30년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베스트셀러였던 문학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관점이 흥미롭게 여겨지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모두 4명의 남성 작가와 2명의 여성 작가를 거론하면서, 1990년대 베스트셀러 작품들을 창작한 문인들에 대해 비판을 넘어 신랄한 비난의 표현을 구사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자신이 수학을 전공하고 ‘문학에 관한 한 문외한’임을 내세우면서,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었던 몇몇 작품들과 작가들에 대한 심각한 비판’으로 채우겠다는 선언으로 서술을 시작한다. 특히 당시에 ‘sex라는 기호를 다루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들의 뼈마디가 드러나도록 집요하게 추적하고 폭로하고 규정지을 것인 바 이 모두는 냉혹함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1990년대 남성의 하위문화로 숨겨져 있던 성(sex) 문제를 전면으로 다루었던 작품을 창작한 작가들을 비판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표현으로 비난하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퇴행의 시니피앙과 그 주체들에 대하여’라는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저자는 작가는 물론 그들이 창작한 작품들을 ‘퇴행의 산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퇴행의 본보기로 다뤄지는 작품은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개인적으로 작품에 대한 유행이 한참 지난 시기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일본 유명 작가의 작품을 차용한 듯한 구성에 대해서 표절 여부가 문제가 되자, 작가를 옹호하는 몇몇 평론가들이 문장이 아닌 구조를 차용한 것은 이른바 ‘혼성모방’일 따름이라는 희한한 주장을 펼쳤던 내용들이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았다. 어쨌든 저자는 ‘퇴폐의 시니피앙’으로서 ‘박일문의 예’를 제시하면서, 다른 작가인 장정일에 대해서는 '1990년대 sex라는 기호'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어지는 항목들에서 <즐거운 사라>의 작가인 마광수와 <경마장 가는 길>의 하일지 등에 관해서 본격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다. 작가인 마광수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교수와 여대생의 성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열거하면서, 작품의 내용은 성적인 상상력에 근거한 ‘겁장이의 네크로 필리아’라고 단정하는 식이다. 주지하듯이 죽은 시체를 성적인 대상으로 여기는 ‘네크로 필리아’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실제 행동으로 나타내지는 못하지만 상상력으로만 작품에서 노골적으로 성을 다루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나아가 하일지에 대한 논의는 작품보다, 오히려 당시 평론가들의 평가에 대한 작가의 비논리적인 반응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작가의 박사논문을 저자의 독법으로 제시하면서, '박사 졸업생의 오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에 장정일의 작품에 나타난 이른바 ‘죽돌이’의 형상이 당대 사회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진단을 하고 있다. ‘죽돌이’란 재수생 혹은 대학생으로 공부는 하지 않고 다방이나 만화방에서 하루종일 죽치고 시간을 보내는 군상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실상 1990년대 중반 무렵 등장했던 이 작품들이 베스트셀러로 부각되엇던 것은 이러한 주제를 소비했던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으로 나뉠 수는 있지만, 그러한 현상에 대한 문화적 진단이 내려질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저자는 엄연히 존재했지만 감춰져 있던 남성들의 하위 성 문화를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고 이해된다. 더욱이 저자는 이른바 도덕주의자의 관점으로 성적인 문제는 노골적으로 다뤄지면 안된다는 당위를 전제로, 해당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는 혐의를 벗기가 어렵다고 여겨진다.
더 큰 문제는 소설가 공지영과 시인 최영미에 대한 논의라고 하겠는데, 이들에 대한 평가에서는 앞서 다루었던 남성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고등어>를 비롯한 공지영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의 형상이 비현실적이라고 잔정하면서, 작품에 그려진 주체적인 여성상이 당대의 남성 중심의 문화와 걸맞지 않다는 이유로 평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더욱이 여성의 욕구와 욕망을 날 것의 언어로 표현한 최영미의 시에 대해서는 ‘여자답지 못하다’는 관점에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분명 문학 작품에 대한 평가는 작가가 남성이냐 여성이냐를 떠나, 비평의 시각을 엄정하게 정립한 상ㅌ채로 내려져애만 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 여성 작가에 대한 평가에서 이른바 남성 중심의 문화에 도전하는 모습이 마뜩찮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기에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고 하겠다. 실상 저자가 다룬 내용들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문제를 지적할 수는 있겠으나, 오히려 3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의 시점에서 대상으로 삼은 작품들이 1990년대의 문화적 분위기를 적절히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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