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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오랫동안 세상에 통용되었던 남성 중심적인 습속에 대해 대항하여, 이를 남녀평등의 면모로 바꾸고자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사람들도 각자 남성 중심적인 기득권을 어떻게 고쳐나갈지에 대한 지향이 같을 수 없기에, 생각이나 행동의 양태도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의 한 부류라 할 수 있는 ‘워마드’에 대한 저자의 ‘불편한’ 태도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은 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역설하고 있듯이 페미니즘은 결코 단일한 이론이나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인 저자는 페미니즘에 대해 공감하는 입장에 서 있지만, 모든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남성인 나 역시 때로는 급진적 주장조차도 공감되는 바가 없지 않지만, 현재 사회의 모든 제도를 단순하게 ‘남성/여성’의 이분법으로 재단하여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논의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통용되어온 불평등의 구조를 일순간에 뒤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에,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서 여성차별적인 요소를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저자는 페미니즘을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최근 페미니즘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원인 중의 하나로 급진적 페미니즘 단체인 ‘워마드’에 주목하여, 페미니즘의 실천과 지향에는 결코 그들의 방식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온도차를 좁히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야’ 하며, ‘남성/여성’으로 구분하는 ‘성 대립’을 강조하면서 ‘남성 혐오’와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광범위한 공감을 얻기 위해서, 저자는 여성이란 성별 집단을 넘어서 페미니즘에 공감하는 남성들과의 연대를 넓혀 나갈 필요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페미니즘을 표방한 다양한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페미니즘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지나친 상업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경계해야 하겠지만, 페미니즘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도 과거에 비해 큰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차별적인 행동들에 대해 거울에 반사된 것처럼 똑같이 따라하는 이른바 ‘미러링’이 최근 페미니즘 운동의 하나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동안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비하적 발언이 무비판적으로 통용되었다면, 최근에는 그러한 표현에 담긴 의미를 지적하고 그 말을 들은 누군가는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특히 1950년대 이래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점검하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굳건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를 살핀 내용도 대단히 유용하다고 생각되었다.
저자는 남녀의 불평등한 소득 구조의 문제를 ‘유리천장’과 ‘경력 단절’ 그리고 ‘직업군 선호 차이’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었음을 인지하고, 이를 바꾸려는 노력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저자가 제시하는 남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하나의 대안이 여성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순진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남성들은 남녀차별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동안의 학습과 경험으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때문에 가장 먼저 ‘남녀차별’의 습속들은 하나씩 지적하면서, 궁극적으로 ‘남녀평등’이라는 현실로 나아가기 위해 인식의 변화와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페미니즘 역시 ‘여성 차별’을 줄이고, 끝내는 끝내는 없애기 위한 운동이기에 기득권을 누려온 남성들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차별을 차별로 느끼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것을 고치려는 시도는 때로는 불편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요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많은 이들이 그것을 불편함으로 인식하고, 이에 끊임없이 저항해야 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불편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혐오라는 형태로 표출된다면 자칫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때문에 페미니즘 운동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혐오에 반대를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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