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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옥 스승님과의 대화
-2012년 2월 29일 학부모수련 중
-선생님, 저희가 지난 번 수련에 이어 오늘이 두 번째입니다. 사흘 전 첫 번째 수련에서는 모둠을 나누어서 선생님과 장일순 선생님께서 말씀 나누신 『노자 이야기』중 7장을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한 연유는 저희가 3년째 한 달에 한 번씩 저녁에 그 책을 매개체로 삼아서 함께 읽고 자기 생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이번 수련기간에 전체적으로 함께 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책과 관련하거나, 장일순 선생님과 관련해서 주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지금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생각나는 것 두어 가지를 말씀 드릴게요. 그 다음에 궁금한 게 있으시면... 사실은 제가 장일순 선생님
을 78년도 알게 돼 돌아가실 때까지 한 15년 쯤 왔다 갔다 하면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할 수가 있는데요, 저로서는 아주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큰 선생님 밑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듣고 보고 한 것이 저한테는 아주 큰 영향을 미쳤어요. 진짜 살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만큼 복된 일이 없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생님이 원주병원에 입원하셨다가 들리는 말로는 암이 많이 몸에 퍼져서 치료할 수가 없다는 판단 때문에 그냥 봉합을 하고 퇴원하셨다는 이야기를 제가 들었어요.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 정도면 선생님께서 돌아가실 날이 얼마 안 남았구나! 욕심이 하나 앞서요. 노자老子 선생님 말씀을 평소에 자주 하셨어요. 저를 처음 무위당 선생님에게 소개한 후배 목사의 말도 “형, 원주 노자 만나러 가자!” 이었으니까요. 노자 선생님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제가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지요. “노자를 저하고 같이 읽읍시다.” 흔쾌히 승낙을 하셔서 “그러면 바로 다음 주부터 하지요?” 그래서 시작된 거예요.
두 가지 약속을 서로 했습니다. 첫째는 미리 공부해 오지 않기. 이번에 2장을 읽을 차례다 하면 예습하지 않기. 본문은 중국말이니까 한문을 어떻게 번역하느냐 하는 것은 무위당 선생이 하시면 되는 것이고 저는 따로 미리 공부하지 않겠다! “선생님도 미리 예습하지 마십시오.” “좋다!” 또 하나는 단둘이, 옆에 아무도 없이 “단둘이 합시다!” 그랬더니 좋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시작을 했지요. 첫 시간이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제가 머리말에도 썼을 거예요. 선생님께서 입원하신 동안에 제자들이 워낙 낡은 집이라 집을 대대적으로 수선을 했어요. 선생님 서재의 책을 전부 꺼내고 온돌 다시 하고, 도배 다시 하고 했던 그 서재에 처음으로 단둘이 들어갔어요. 가재도구 아무 것도 없이 완전히 방만 있지요. 빈 방! 거기 앉아서 찻잔을 하나 놓고, 책은 선생님과 내가 각각 서로 다른 텍스트를 놓고 그 다음에 제가 욕심이 나가지고 녹음하자고 해서 녹음하고 그렇게 하고 교과서를 펴놓고 시작을 했어요. 텅 빈 방에서 아주 재밌었어요. 매주 했어요. 제가 충주 살 때니까 한 시간 쯤 차타고 하루에 두 장이나 세 장, 시간은 두 시간 반, 녹음기 테이프가 하나... 그렇게 했어요. 그 내용을 전부 충실하게 옮겨 적을 수가 없었고요, 제가 먼저 녹음된 것을 풀고 선생님은 한 번도 읽어보시질 않았어요. 제 마음대로 해 가지고 책도 나온 다음에야 선생님께서도 보셨어요. 그만큼 저를 믿어주셨지요.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이야기 하다가 말고 서로 주고받고 하다가 누구 차례가 되었는데 이야기를 안 하는 때가 있어요. 그러면 때때로 침묵으로 가만히 있어요. 꽤 오랫동안 침묵할 때가 있어요, 서로 아무도 입을 떼지 않고. 그 때가 저로서는 참 좋았는데 그것을 독자들에게 전해줄 수가 없잖아요. 괄호하고 침묵 10분! (웃음) 그것은 또 아주 재미가 없는 것 같고... 그런 것들을 전하고 싶었는데, 서로 말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 날은 공교롭게도 그림을 하는 친구랑 셋이서 같이 했어요. 그 때도 이철수 화백은 옆에 앉아만 있지 단 한 마디도 안했어요. 또 침묵 했어요. 선생님이 우시는 거예요. 아마 내 기억에는 조봉암선생 돌아가신 이야기를 하다가 우셨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가만히 계시더니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눈물은 전염성이 있어서 저도 눈물을 떨구고 그리고 옆에 있던 이화백도 같이 울고, 셋이서 울었어요. 울다보니까 점점 더 크게 흑흑하고 울다가, 나중에는 엉엉하고 울었어요. 상상해 보세요. (웃음) 셋이 앉아서 엉엉 울었어요. 말을 주고받은 것보다 그러한 교감, 그런 것들이 그립고... 참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어깨에 힘 좀 주고 자기가 행세깨나 한다는 사람들 앞에서는 가차 없었고 소위 말하는 민초들, 농사짓고 장사하고 어렵게 사시는 분들한테는 그렇게 공손할 수가 없었지요. 그런 일들이 기억에 나요.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김대중 대통령 되면서 민주화운동 하던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국회의원 된 적이 있어요. 그 중에 한 친구가 국회의원 됐다고 뱃지를 달고 선생님한테 인사를 드리러 왔었는가 봐요 민주화의 대부라고. 선생님께 “한 말씀 해주십시오.” 그랬나 봐요. 그 때 옆에 있던 사람이 듣고 나한테 전해준건데, “까불지마!” (웃음) 그렇게 이야기 하시는 분이에요. 그리고 정말 소위, 밑바닥을 사는 사람한테는 그렇게 공손하실 수가 없어요. 공손해요! 제가 그 분 장례식에 가서 하룻밤을 지냈는데 전국에서 조문이 왔지만 정말 각계각층에서 왔어요. 직업도 다양하고 종교도 다양하고 정치하는 사람, 장관 이런 고위직 관리에서부터 저 말단 관리까지 술집에서 일하는 소위, 술집작부라고 하는 사람들까지 다 왔어요. 다 와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참 선생님께서는 폭이 넓었구나!’ 보통 왜 사람이 죽은 자리에 가면 끼리끼리 모이잖아요. 목사가 죽을 때는 목사들만 모이고... 스님에서부터 천주교, 불교, 기독교에 관계없이, 종교 없는 사람들 모두 다 나름대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폭이 넓고 깊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장일순 선생님의 삶과 가장 비슷하게 사시는 분이, 선생님 빼고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그것은 잘 모르겠는데 왜냐 하면 난 그런 질문을 처음 들어 봤지만 (웃음) 사실 또 그런 쪽으로 내가 별로 관심이 없어서 누가 선생님 가르침에 제일 비슷하게 살아가는가 보자. 그런 생각은 없었어! 나도 몰라요. 저는 그래요, 항상 내 문제가 제일 컸어! 내가 그 선생님 제자라고 하는 신분으로서 합당하게 살아갈 것인가? 그런 것에 아마도 내 생각이 집중됐던 것 같아. 그러니까 그런 종류의 질문을 받으면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할지 몰라!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싫은 말을 해야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기분 좋게는 안 되겠지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말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요?
=그런 방법을 일러드릴 수는 있는데요. 그것이 과연 효과적으로 되느냐, 안되느냐는 오로지 댁에서 결정하실 문제예요. 지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댁이라고 했습니다. (웃음) 그 방면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잘 가르쳐주는 분으로 틱낫한 스님이 잘 가르쳐주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도 그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만, 작년에 나온 책 중 하나가 영어로 『True Love』 참 사랑이라고 제목을 붙인 책을 읽고 있는데, 오늘도 차타고 오면서 읽은 데가 바로 그 대목이에요.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이 뭐냐? 그러니까 그 사람 정의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거기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힘들어 하면 그 힘들어 하는 사람 옆에 있는 것이다. 그냥 있는 것입니다. “나, 너 힘들어 하는 것 알아. 그래서 내가 여기 있어.” 말을 그것만 하는 것이지요. “왜 힘들어 하냐? 네가 잘 생각해봐라. 다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더 힘들어지는 것이지! 그런 것이지요. 그 현장에 같이 있어 주는 것 그게 사랑인데, 다른 사람이 힘들어 할 때 내가 그렇게 하면 돼요.
그런데 문제는, 내가 힘들어! 내가 힘든데 이유가 뭐냐 하니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힘들게 만든다고 내가 생각 될 때 그럴 때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이 지금 질문하신 내용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럴 때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럴 때에도 상대방에게 내가 힘들다고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당신이 이러이러한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나에게 상처가 됐다. 내가 지금 많이 아프고 이 아픔뿐만 아니라 이것을 수습하려고 내 딴에는 나도 최선을 다 하고 있으니 당신도 날 좀 도와 달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느냐. 이 “어떻게 하느냐” 여기에 키Key가 있는데 그것을 잘 못 할 경우에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는, 불 끄러 갔다가 불 질러버리는 그런 경험을 우리가 많이 한다는 말이에요. 여기서 지혜가 필요하고 공부를 해야 돼요, 진짜 공부를! 그 분이 가르쳐준 공부는 제가 화가 났을 때 불타는 것하고 연결 지었지요? 틱낫한 스님한테 배운 거예요. 화라고 하는 것은 불과 비슷하다. 불처럼 화가 난다는 이야기는 만국공통이에요.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니라 지난 번 일본에서 온 사람한테도 물었더니 일본도 그렇대! 불처럼 화를 낸다고 하지 물처럼 화를 낸다고는 아무도 안 하지. (웃음) 그러니까 불하면 화!
불도 아궁이불, 촛불, 가스렌지불 이런 것은 우리 겁 안 나잖아요. 왜 겁이 나지 않느냐면 이런 것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으니까. 그런 불은 겁이 안 나는데 산불 같은 것은 겁이 난단 말이에요. 잘 안 꺼지고 우리가 내는 화도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는 화는 겁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게 조절이 안 돼! 분노라고 하는 감정이, 내가 그 감정의 주인이 되어가지고 감정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나를 갖고 논단 말이에요. 분노의 감정이 나를 지배해 버려요. 그래서 걔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해놓고 나서는 나중에 후회를 하지! ‘아, 내가 너무 했다.’라든가 비유를 들면 술을 제대로 잘 먹는 사람 같으면 내가 술을 먹다가 이제 그만 하고 일어날 수 있는데 잘 안 되는 사람은 처음에는 자기가 술을 먹다가 술이 자기를 먹어버린단 말이에요. 분노도 마찬가지, 분노라고 하는 것이 우리한테 없을 수는 없지만 이것은 잘 컨트롤이 되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땔감이란 이야기도 그 분한테서 제가 배운 거예요. 불은 땔감이 있어야 타는 것이란 말인데 땔감이 떨어지면 저절로 꺼지는 거예요. 우리는 이제 내 속에 분노가 타오를 때 어떻게 하면 일단 분노의 감정이 몸에 있는 채로 그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것이 지혜 중의 하나예요. 내가 화가 나 있어, 지금. 그랬을 때는 지금 불이 활활 타고 있는 중이란 말이에요. 이럴 때는 나를 그렇게 화나게 하고 힘들게 한다고 생각되는 그 사람한테 가서 말을 꺼내지 말라! 왜 그런고 하니 그 이유는 간단해요.
사람이 무슨 말을 할 때는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사실 말투가 있거든요. 말투하고 말은 다를 수 있어요. 내가 굉장히 화가 났는데 말은 화가 나지 않은 것처럼 할 수 있다고. 그런데 말의 내용은 아주 근사한 말로 할 수 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어요. 이럴 때 부글부글 끓는 이 감정을 뭘로 표현 되느냐 하면 말투, 말이 아니라 단어가 아니라 말투! 그것이 감정을 전달한다. 말투가 내가 분노, 분노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공격하는 것 상대방은 말을 듣기 전에 말투를 먼저 들어요.
누구든지 다 그래요. 공격적인 말투가 오면 누구든지 저항을 한다고요. 그 다음부터 말이 안 들려. 말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세요. 말은 “공격이 아니야, 다 이해해!” 그러면서도 서로 공격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말에 속아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러지 말고 우선 마음에 있는 불부터 꺼라! 불 끄는 방법은 땔감을 대주지 않는 것, 이 땔감이 뭐냐 하면 생각입니다. 생각이 땔감이에요. 그 사람이 한 말을 생각하고 그 사람의 행동을 생각하고 그 사람이 한 짓을 생각하게 되면 화가 나요. 다른 생각을 해봐! 이게 기술이거든요. 여기서부터 이제 연습을 해야 돼요.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나름대로 자기의 화를 연소시키는 안타게 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지요. 어떤 사람은 좋은 음악을 듣는다든가 아니면 설거지를 한다든가 청소를 한다든가 빨래를 한다든가 이런 것도 있고 또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데, 물건을 막 산다든가 (웃음) 또는 먹는 것 그런 것이 다 자기 속에 있는 불을 삭히려고 하는 것인데 이왕이면 해도 나부터 좋은 청소 같은 것은 얼마나 좋아요? 그런 것을 해서 일단 불부터 좀 끄고, 자기가 봤을 때 상대방을 보면 화도 안 내고 그 사람은 내가 참 사랑하는 사람이고 저 사람은 날 사랑한다. 사랑하는 관계야. 우리는 서로 친구고 서로 도와주는 그런 의무가 있고, 권리가 있고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가라앉게 되면 그 때 “그런데 이러이러 해서 내 마음이 아프다. 알아 다오!” 하고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상대방도 어조를 들으니까 어투에 자기를 공격하는 게 없어. 그럼 말이 들려. 듣고 “어, 난 몰랐는데 당신 말을 들으니까 내가 잘못했네!” 이럴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것들을 서로 주고받고 할 때 소위, 소통이라고 하는 것도 점점 원활하게 되어가는 것이지요.
그래도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기 어려우면 편지라는 수단도 있는 것이지요. 편지를 쓸 때 잘 써서 될 수 있으면 적은 것을 실천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또 남이 말 할 때는 잘 들어야 돼요. 깊게 들어야 돼요. 일단 그 방법으로 내가 내 생각을 말아야 돼요. 무슨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건 아니야. 당신이 잘못 생각했어.’ 이렇게 하면서부터는 귀에 안 들어와요. 그러니까 생각을 다 비우고 일단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 기울여 잘 듣고 그래서 아까 제가 프랙티스practice 연습해야 한다는 거예요. 해야 돼요. 몸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잘 듣고 이야기 할 때는 사랑스러운 어투로 말을 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어투에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을 인정하고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내 친구로 받아들이겠다는 그런 것들을 다 마음속에 담으면 그게 저절로 말투에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다 그 얘기 “서운했다. 아팠다. 네가 이런 말을 해서 내가 많이 힘들었다.” 하는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이지요. “아, 미안하다. 내가 다음부터 조심할게!” 이럴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내용의 글이 있더라고요. 어떤 사람이 자기 고향에서 있었던 이야기인데 어떤 젊은이가 장가를 가서 얼마 동안 살다가 아내가 임신한 것을 보고 군대에 끌려가요. 전장에 있다가 3년 만에 집에 돌아오니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3년 만에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겠어요. 서로 껴안고 기뻐서 울고 그러다가, 베트남에서는 그런 경사가 생기면 조상들한테 제사를 지낸데요. 그래서 제사에 쓸 물건을 사오라고 아내를 시장에 보내고 아들하고 둘만 남았어요. 아들한테 “내가 니 아빠야. 이제 아빠라고 불러 봐.” 그렇게 얘길 하니까 “아저씨 우리 아빠 아니야! 우리 아빠는 밤마다 와. 어떨 땐 우리 엄마하고 아빠하고 얘기해. 어떨 땐 울어. 엄마가 앉으면 아빠도 앉고, 엄마가 자리에 누우면 아빠도 누워!” 아들 녀석이 하는 말을 듣고는 너무 상심했어요. 아내가 장 봐서 돌아 왔는데 얼굴도 안 쳐다보고 말도 안 하고 억지로 제사를 지낸 다음에 마을로 내려가서 술집에서 술 먹고 잊어버리려고 사흘 동안 집에 안 들어 온 거야. 아내는 그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힘들어서. 그래서 그만 강물에 몸을 던졌단 말이에요, 죽었다고! 그 소식을 듣고 남편이 집에 돌아온 거예요. 그 날 저녁에 호롱불을 켜서 걸어 놓는데 아들 녀석이 “아, 아빠다!” 하고 달려오는 거예요. 뭔가 하니까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저게 아빠라고 엄마가 저 아빠하고 같이 울고 그러다가 엄마가 누우면 그림자도 누울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아들이 엄마 그림자를 자기 아빠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아, 내가 오해하고 있었구나!’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 거기서 그 분 이야기가 왜 남편이 아내에게 이야기를 안 했을까? “밤마다 찾아온다는 그 남자가 누구냐? 저 아이가 얘기 하던데...” 이렇게 이야기를 했으면 “내가 그 말을 듣고 너무 마음의 상처가 크고 괴롭다. 어떻게 된 거냐?” 하고 물어 봤으면 그러면 드라마가 다르게 전개되지 않았겠느냐? 여자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에 남편 찾아가서 “당신, 남편이란 사람이 왜 그러냐? 내가 뭘 잘못 했느냐? 왜 그러느냐?” 하고 물어볼 수도 있지 않느냐?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걸 서로 안 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어, 니가 나한테 그래?’ 이랬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 하는 게 자존심이 걸린 거예요. 혼자 방에서 펑펑 울고 ‘그럼 그래. 내 절대로 내 속을 너한테 얘기하지 않겠다.’ 이렇게 되면 사태가 더 불행해진다. 그래서 아플 때일수록 날 힘들게 한 사람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참 사랑에는 자존심 같은 걸 담을 리가 없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다 공부해야 하는 거예요. 학교에서 아이들 하고 이런 공부를 해야 한다고요. 어떤 애가 왕따를 당한다. 이것도 좋은 공부의 교재예요. 왜 그러느냐.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거예요. 아이들도 우리와 같은 머리를 가졌으니까 자기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잖아요. “너 생각은 어떠냐. 네 생각 좀 말해봐라.” 이렇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야 하는 데가 학교란 말이에요. 그런데 생각할 짬도 안 줘요. 어른들 자기 생각을 넣는데 바빠 가지고... 이런 시골에 와서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제일 중요한 게 그런 걸 공부해야 하는 학교가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한국 사람이 영어를 잘해가지고 뭘 어쩌겠다는 말이에요? 내가 미국도 가봤는데 거기 인간들 한국말 모르더라고. (웃음) 모르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야. 지가 한국말을 모르는데 내가 영어를 꼭 해야 하는 법이 어디에 있어. 그러니까 말이 되든지 안 되든지 단어 몇 개만 가지고 막 떠들어도 다 통해! (웃음) 당당하게 모른 것은 모른다. 어쩌란 말이야, 내가 모르는데. 내가 당황해 할 이유가 없잖아. 내가 모른다고 괜히 주눅들 필요가 있나? 뭐 하러 그래. 어떤 놈은 자신이 잘 뛰어. 잘 뛰게 돼 있어, 구조가. 그럼 뛰어! 난 걸어 갈게. 나도 급하면 뛴다. (웃음) 그런 식으로 각자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싹이 있어요.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고 나름대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데가 학교 아니겠어요?
지난달에 광주에 왔다가 선생님들 하고 이야기 하다가 그런 얘길 들었어요. 그 선생님은 요새는 학교폭력담당 선생님이 있는가 봐요. 학교마다. 옛날에는 그런 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있는가 봐. 그런데 그 선생님이 자기 반 아이들이 얘길 하는데 자꾸만 언성을 높이더래요. 목청을 보통 목청보다 크게 올려가지고 얘길 해요. 그래서 “왜 이렇게 목청을 크게 높이냐? 왜 그렇게 큰 소리로 얘기 하냐?” 한번은 애들하고 앉아가지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안 들어요!” 그랬어요. 제가 아, 그렇구나 오죽 어른들이 이 사회가 귀를 안 기울이면 애들이 이렇게 소리를 지를까? 소리 지르는 것도 하나의 폭력인데 그것도 의사 표시입니다. 난 외롭다. 나 두렵다. 나 힘들다. 그런 것을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어요. 두려움에 떨어졌을 때 두 가지로 그 두려움을 다 표현하는 거예요. 제일 많이 하는 것이 숨는 거예요. 숨고 기어들어가고 그리고 그 다음에 하는 것이 폭력이에요. 때리는 것... 때리고 욕 하고 큰 소리 지르는 것을 가만히 보면 그 안에 나 지금 겁나 있다. 라고 호소하는 거예요. 나 지금 뭔가 굉장히 겁나 있다. 그러니까 아, 우리가 아이들 말에 귀를 안 기울였구나. 그렇지 걔가 얼마나 할 말이 많겠어요? 어른들은 집에서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그렇고 당최 우리들이 하고 싶은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난폭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가 일부러 잘 들어주려고 하는 쪽으로 신경을 썼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한 3개월 지났는데 자기도 놀랄 정도로 자기 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그런 이야기를 제가 들었어요. 그럴 수 있겠어요.
아이들은 다 알아요. 누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 주는가 안다고요. 아무도 안 들어 주는데 한 사람이 들어 줘. 그럼 딱 그 사람에게로 쏠려가는 거예요. 안 그렇겠어요? 요즘 같은 때에 사실은 역설적이지만 정말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기 더 쉬워요. 조금만 더 그 녀석들 편에 서서 무조건 그 편에 서서 들어주고 귀 기울여주고 “야, 니 곁에 내가 있다.” 이런 것을 보여주기만 해도 평생 잊히지 않는 선생님으로 남지 않을까 싶어요. 아까 오면서도 이야기 했지만 요새 교회마다 돈으로 거래하고 큰 교회에 가려면 돈을 어떻게 내고 다 돈 나오는 얘기가 많아요. 참 요새 목사 되기가 편하다. 돈에만 깨끗하면 그 사람 저절로 참 훌륭한 목사가 되지 않느냐?
-선생님께서는 영어를 좋아하시기도 하고 잘 하시기도 하잖아요? 제가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 학부모들도 자기 아이가 그러기를 많이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몇몇 아이들은 하교 후에 학원을 다니기도 하거든요. 보기에 그것이 다들 편하지만은 안 한 것 같아요.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유달리 잘 뛰는 놈이 있다고 그 아이는 뛰는 걸로 살아라. 하면 잘 살 거예요. 음, 글쎄 그렇지 않을까요? 유달리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거든요. 다른 사람에 비해서. 그런 사람은 화가의 길을 가라고 하면 행복해 할 거예요. 그런 사람에게 판사가 되라고 그러면 참 힘들 거예요. 사람마다 다 달라요. 제 경우에는 아마 말장난하는 쪽으로 머리가 좀 튀었나 봐요. 그러니까 제가 중학교 다닐 때도 국어시험 보는 것이 제일 쉬웠어요. 짧은 글 짓는 것은 많이 나올수록 신나. 왜냐면 짧은 글이니까! 그게 왜 어려운지 난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문장을 만들거나 문장에서 틀린 걸 찾거나 이런 것은 따로 공부하지 않았어요. 그게 저절로 되더라고요, 제 경우에는. 영어도 아마 같은 말이니까 그렇게 별로 크게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절로 됐어요. 그러니까 나니까, 이아무개 목사가 그러니까 나도! 이게 병이란 말이에요. 그럴 거 없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각자 그것을 찾아내고 발견하고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게 부모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 녀석이 그것이 행복하다면 또 밀어주고, 앞으로는 세상이 그렇게 바뀔 것 같아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대신에 저는 수학을 못 해요. 미분, 적분 공부하다가 전에는 대수를 했거든, 대수 엉망진창이었지. 기하학도 잘 안 돼. 포기 했어요. 미분 적분 시간에 선생님이 그래, 이건 뉴턴이 공의 부피를 재려고 하다가 발견한 법칙이다. 너희들 정신 바짝 차리면 다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앞에 앉아가지고 정신 바짝 차리고 들으려고 하는데 한 20분 들으니까 그 다음부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웃음) 안 돌아가 머리가 그런데 옆 친구는 잘 돌아가! 그래서 한 두어 시간 열심히 배보려다가 ‘아, 수학은 정말 안 되는 구나!’ 계산이 안 돼요. 논리라든가 이런 것은 어느 정도, 논리는 재미있잖아요. 철학이기도 하고. 오늘도 오면서 0이란 숫자에 대해서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정말 재미있어요. 수학의 철학! 그런데 셈, 더하기 빼기 곱하기 이게 안 되니까, 안되더라고. 그래서 수학 하나를 또 포기 했지. 그리고 내가 아주 마음에 결심을 했어요. ‘내가 이제 수학은 안 하겠다, 포기! 공의 부피는 내가 몰라도 돼!’ (웃음) 그것을 누가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한 것을 내가 응용하면 되는 거고 덕보면 되는 거야! 내가 그것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그래서 나는 2학년 때 수학을 포기 했어요. 포기하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아예 포기하니까 노력을 안 해도 되잖아요. 신학교를 왜 갔느냐 하면 그때는 각 학교에서 시험을 봤거든요. 내가 지원한 감리교신학대학을 보니까 수학 시험이 없어. 이건 날 위해서 있는 학교다. (웃음) 그래서 오늘날 목사가 됐잖아. 진짜 잘 해야 한다는 그게 없어요. 세상에 그런 것이 어디 있어? 내가 타고 나기를 그 방면에 재능이 있어 그러면 내가 별로 노력을 안 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아예 그쪽 방면에 머리가 안 돌아가게 돼 있어, 구조가. 그러면 노력한다고 되나? 그러니까 2학년 때 벌써 수학을 포기 했다고 하는 것은 내가 봐도 참, 머리가 좋은 거야! (웃음)
-선생님, 아까 말씀 하실 때 남편이나 주변 사람과의 소통은 고사하고 저 스스로 하고도 소통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고 해도 똑같은 것을 물어봐도 하루에 몇 번씩 변하고 이것이 정말 내 마음의 소리인지 내가 듣고 싶은 말인지 내가 들어야 할 말인지 헷갈리고 정말 내 마음의 소리가 뭔지 이 말이 정말 내 마음의 소리인지 구별이 잘 안 될 때도 있고 하는데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 스스로와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그때도 역시 상대방이 나든, 남이든 간에 둘이 하는 것이 소통이거든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있는. 내가 나와 소통한다고 하면 말 하는 나와 듣는 나, 둘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내가 이 듣고 있는 내 마음의 소리가 너무 변덕스러워서 아침에 이렇고 저녁에 저렇고 왔다 갔다 하고 어떤 것이 내 마음인지 모르겠다. 지금 아주 잘 들었어요. 듣기는 잘 들었어요. 원래 그렇게 변덕스러운 것이 우리 마음이에요. 원래 그래요. 한결같이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착각이에요. 아닙니다.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고 그러니까 다양한 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벌써 상당한 거예요. 내가 들었다는 것이 그때는 그것 자체를 인정하는 거예요. 지금 거부하니까 문제예요. 이러면 안 되는데, 왜요 그래도 돼요. 그래도 될 뿐만 아니라 원래 그래요. 인간이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게 우리 생각이에요, 감정이고. 그렇잖아요? 원래 그런 것이니까 받아 들이고 인정해 줄 때 소통이 지속되는 거예요. 어느 쪽에서, 듣는 쪽에서 “어, 아닌데” 이러면서부터 소통이 안 되는 거예요. 말 하는 쪽보다 듣는 쪽이 더 중요해요. 이러한 소통의 주인공, 이니셔티브initiative, 선수 그것은 말하는 나보다 말을 듣는 내가 주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잘 듣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여서 그럴 때 비로소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아무개를 내가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나를 거절하는 것만큼 내가 옆에 있는 사람을 거절하는 것이지. 나한테 너그러운 것만큼 옆 사람에게 너그러워진다. 이제 마음공부라고 하는 것을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 깊어지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니까 “그건 안 돼. 그런 거 아니야. 그거 마음에 안 들어.” 라고 하는 종류의 말이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그럴 수 있어. 그렇구나. 오, 그러네.”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전 같으면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인정되기도 하고 좀 더 나가서 “응, 그래!”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내가 바뀌었고 마음공부를 잘하고 그만큼 내가 자유로워진다는 것이지.
-제가 작년부터 집을 짓고 있는데 사람들 하고의 관계에서 굉장히 실망을 많이 하고 배신감이라는 것을 느끼고 가족한테 특히 아내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고 어느 순간에. 못 됐지요, 그런 것이.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는데 또 다시 상황이 생기면 격분증후군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화가 나는데, 용서는 되는데 상황이 생기게 되면 그 사람 생각이 나서 쓰러진 잡초가 일어나 듯 분노, 화가 나기도 하는데요, 이 자리를 빌어서 선생님께 말씀도 듣고 싶고 공개된 자리에서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고도 싶습니다.
=아주 현명하십니다. (웃음) 살다가 진심으로 무언가를 사과하게 되면 저절로 다음에는 그와 같은 일을 되풀이 하지 않게 되는 내가 사과한 마음이 얼마나 진실 하느냐에 따라서 그 다음에 내 행복이 달라지게 되어 있다. 이왕 사과하는 마음이 있을 때 아주 심각하게 사과하면 아주 정신이 바짝 들어요. 그래도 아까 이야기한 대로 버릇이야. 버릇이라는 게 정말 좋은 버릇, 나쁜 버릇 우리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러나 한 걸음 더 나가서 보면 좋은 버릇도 버릇이기 때문에 나빠요. 버릇이라고 하는 것이 뭐냐 하니까, 그게 아주 몸에 익어서 내가 하는 줄을 몰라. 그게 버릇이에요. 참 나쁜 버릇을 알고 있어요. 그 중 하나가 밖에 나가서 화난 것을 식구들에게 푸는 거예요. 정말 못된 버릇이 아니라 어리석은 버릇이에요. 바보 같은 버릇이에요. 빨리 정리하시면 좋겠어요, 여기 계신 분들이라도. 왜 저기 가서 화가 났는데 왜 여기다가 그것도 자기가 사랑하는 아이들한테! 이런 나쁜, 당장 오늘 저녁부터 단호하게 안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돼요. 내가 화가 났어. 그러면 집 안에서 화가 났으면 바로 뛰어나가야 돼요, 원래 원칙이.
왜냐 하면 화 기운이 전달되거든요. 좋은 기분도 아니고 고약한 기분인데 예를 들어서 어디에서 우리가 음식을 맛있게 먹었는데 얹혔잖아요? 소화제를 먹어도 안 듣고 손을 따도 안 듣고 어떻게 합니까? 마지막 방법이 토해내는 거잖아요? 토하면 시원하잖아요. 그러니까 나쁜 감정이라는 것이 그 얹힌 음식과 비슷한 거예요. 괴로워서 토하는 것은 좋아요. 그런데 저기서 먹고 얹혔는데 하필이면 토할 데가 없어서 자기 안방에다 토합니까? (웃음) 안방에서 먹은 것도 토하려면 밖에 나가서 토하는데... 사람 안 보이는 저 밭고랑이라든가 수체구멍이라든가 아니면 집에서는 변기에다 토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나쁜 감정을 왜 사랑하는 사람 앞에다 토합니까? 술 먹고 토하는 것은 잘 하면서...( 웃음) 이런 것들을 다 공부해야 되는 거예요. 학교에서 뭘 합니까? 이런 것을 공부 해야지요. 그 왜 영 수만 그렇게 지랄나게 가르치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된 나라인지! 자기가 피아노 치고 싶어서 친다면 말을 안 해. 그러나 본인은 그게 아닌데 요새 피아노는 다 상식이다. 하면서 치라고 그래. 하여튼 뭐 이런 이야기 자꾸만 하면 속만 상하고...(웃음) 아니다 싶으면 딱 그때부터 안 하는 거예요. 이제부터 화가 나면 제발 식구들 없는 데에서, 아이가 없는 데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남한테 피해가 안 가게 그렇게!
틱낫한 스님이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데요. 반전 운동을 한참 치열하게 할 때 미국 도시마다 다니면서 반전 강연을 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청중 중에 한 비딱한 친구가 있었나 봐요. “니가 그렇게 너의 조국 인민들이 걱정이 되고 거기가 그립다면 왜 여기에 와서 이러냐? 고통 받는 친구들 옆에 있어야지. 왜 여기 와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아마도 화가 났던가 봐요. 스님이 젊은 나이니까 고개를 들지만 가만히 있다가 겨우 한마디 하기를, “전쟁이 여기서 시작됐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왔습니다.” 이런 식의 답변을 겨우 하고 바로 퇴장을 하셔요. 그래서 가까이 있던 사람이 스님께서 뭘 하는가 봤더니 저 강당 뒤로 가서 아무도 없는 큰 나무 밑에 서서 훅훅! (웃음) 그렇게 씩씩거려요. 씩씩거리는데 이거 화날 때 씩씩거리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지금 게워내. 그래야 가라앉으니까! 후후 하고 토한 것이 마치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후!’ 하고 토하는 모양으로 한참 씩씩거리는 모양을 책에 써놓은 것을 내가 봤어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땅을 치고 울든 아니면 뭘 하든 그냥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해내. 정 안 되면 소리를 막 질러! 저는 주로 옥상 같은 데 올라가서 옥상이 제일 좋아요. 거기서 있는 대로 도시는 원래 시끄러우니까 거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돼요. (웃음) 시골 같은 데서는 걸어. 발에 땀이 나도록 걸어요. 그러면서 나를 화나게 했던 그 말을 생각하면 발만 아파! (웃음) 그러니까 그것 말고 다른 생각을 해! 노래를 한다든가 아니면 좋은 생각, 그 땔감을 대주지 않는 것이지요. 한바퀴 돌고 오면 괜찮아요.
집 식구한테 화풀이 하는 것은 하지 맙시다. 그것은 아주 바보 같은 짓이에요. 그래봐야 나한테 하나도 이로울 것이 없어요. 고스란히 내가 받아야 돼! 이런 것을 학교에서 가르쳐주면 좋겠어요. 내가 기대했던 대로 일이 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것! 내가 상대방에게 뭘 기대했다가 상대방이 그것을 들어주지 않을 때 내가 그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런 것, 절실하잖아요? 그러한 것을 잘 배워야 건강하게 살지요.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됩니까, 일이? 안 될 때가 많이 있잖아요? 그럴 때 왜 화만 내요? 왜 남 원망을 합니까? 그게 버릇대로 그대로 해 온 거예요. 그래서 나한테 무슨 이익이 있어요? 상황이 뭐가 좋아집니까? 다르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왜 생각하지 않나요? 그것이 뭔지, 그럴 때 공부하는 것 아니겠어요?
-선생님 질문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만, 혹시 꿈이나 목표 같은 것을 세워보거나 가져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있지요! 지금도 꿈이 있고요. 꿈 이야기를 하면 제가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한두 번쯤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중학교 학생 때 저희 시골 교회에 젊은 목사님께서 한 분 오셨어요. 그 분은 미국에서 공부도 오래 하시고 목사 안수도 받고 1950년대 말에 미국에 유학을 하고 거기서 목사가 돼서 왔다는 것은 상당한 경력이지요.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 목사님께서 30대 중반 쯤 됐는데 저희들한테 아주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제가 볼 때 그 목사님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 분이 한 번은 우리를 모아놓고 이런 말씀을 하셔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꿈을 꾸는 존재다. 내가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이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셔요. 그러니까 “꿈을 잘 꾸어라!” 요지는 그런 겁니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면에서 실패한 사람이다. 너희들은 나처럼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 때 그 이야기가 저한테 상당히 피부에 와 닿았던가 봐요. 그분 말씀이 뭐냐니까, 일제시대 때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그러면서 자기 꿈이 미국 유학을 가겠다는 것이었어요. 산골짜기 시골 소년이 미국 가겠다는 꿈을 꾼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지요, 사실은. 그래서 그런 꿈을 꾸었더니 고등학교 말 쯤 됐는데 마침 어떤 선교사와 연줄이 닿아가지고 진짜 미국 유학을 가게 된 거예요. 배타고 화와이를 거쳐 미국 본토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됐답니다. 거기서 하이스쿨 나오고 칼리지 나오고 세미나리 seminary 나오고 해서 한 15년 만에 목사가 된 거예요. 갈 때는 배타고 갔던 미국을 비행기 타고 김포비행장으로 오는 겁니다. 오면서 비행장에서 보니까 자기 꿈이 다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 하면 미국유학 가는 것이 꿈이었으니까! 이제 끝났잖아요. ‘다 끝나고 내 꿈이 이루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답답하더랍니다. 자기 꿈이 다 이루어졌다니까 끝났다는 느낌, 그러면서 이제 내가 새로운 다른 꿈을 꾸려고 하니까 많이 어렵다.
그런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분이 꿈꾸는 것이 자기는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 너희들은 나 같이 미국유학 가는 정도의 꿈을 꾸지 마라! 이런 말씀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그 목사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 하셨는지 안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나 혼자 이렇게 정리를 했지요. 꿈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꿈이 이왕 꿈을 꾸려면 죽을 때까지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꾸어라! (웃음) 그것이 죽는 순간까지 꿈을 꾸면서 죽을 수 있는 것이라면 꿈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는 거예요. 꿈이 없으면 재미없다는 말이에요. 꿈을 꾼다는 것은 내가 삶의 활력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까 숨 쉬는 순간까지 꿈을 꾼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근사해요! 성경을 보면 모세가 죽을 때 자기가 가고자 하는 가나안 땅에 가지 못해요. 멀리서 내려다보면서 죽거든요. 그것도 참 멋있어요. 인생이 그렇게 가야 돼요. 빨리 이뤄놓고 가면 허망하다고 한발만 더 가면 골인인데 그 앞에서 딱 죽어 (웃음) 얼마나 멋있어요!
그래서 저는 중학교 때 이후 가진 꿈이 뭐냐 하니까 성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어요. 그것은 죽을 때까지 해도 안 되는 꿈이에요. (웃음) 뭐, 대학교수가 되겠다, 국회의원이 되겠다, 대통령이 되겠다. 이런 것은 아까 미국유학과 같은 꿈이에요. 이루어질 수 있어요. 이루어지고 나면 허망해지는, 안 이루어지면 절망이고 이뤄져도 나쁘고 안 이뤄지면 더 나쁘고. 왜 그런 바보 같은 꿈을 꾸느냐 그러지 말고 평생 노력할 수 있는 꿈, 이런 꿈을 꾸어라. 언제부턴가 나는 성자가 되는 꿈을 꾸겠다. 가만히 공부를 해보니까 이 세상에 성자聖者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프란체스코Francesco d’Assisi, 어거스틴Augustinus, Aurelius 이런 사람들 성인聖人이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한 번도, 한 사람도 성자가 되겠다는 꿈을 꾼 인간들이 없더라고... 그래서 그것을 아는 순간부터 내 꿈을 접었지. (웃음) 지금은 성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성자는 죽은 다음에 되는 거예요. 살아있는 동안에 내가 성자다 생각한다면 그 친구는 아예 글러버렸어요. 그게 뭐냐 하니까 그 분들은 제가 이해한 것은,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하늘의 명을 받아 왔다. 나는 그 명을 오직 따라서 살 뿐이다. 그렇게 살았어요. 죽는 순간까지 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이를테면 난 사랑하러 왔다. 그러면 지금 할 수 있잖아요. 그렇죠? 죽는 순간 할 수 있잖아요. 이를테면 매일 매일 이루어질 수 있으면서 죽는 순간까지 완성되지 않는 그런 묘한 꿈을 젊은이들이 꾸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종교의 스승이라고 하는 분들은 다 그렇게 사셨어요. 뭐가 되겠다는 꿈은 없어. 눈에 보는 이런 것은 없었어! 학문을 하겠다는 것이 공자孔子의 꿈입니다. 배우겠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잖아요. 그 목사님이 어린 중학생들에게 들려주신 말씀 중에 또 기억나는 것 하나가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항구에 큰 배가 들어오는데 그 앞에 노 젓는 작은 배가 지나갔대요. 큰 배에서 내려다보니까 이게 충돌하면 큰일이잖아요? 큰 배 갑판에서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야, 인마 빨리 비켜!” 그러니까 노 젓던 사람이 허리를 딱 세우고 쳐다보더니 “야, 인마 배 크면 사람도 크냐? 왜 반말 하냐?” (웃음) 아, 그것이 유난히 쏙 들어 왔어요. 그거예요. 사람의 본질은 뭘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아니다는 말이에요. 웃기는 소리 아니에요? 왜 사람을 많이 모으면 그것을 큰 교회라고 그래! 몇 사람 안 모이면 작은 교회라 그러고... 도대체 그걸 누가 붙인 거예요? 교회란 생명체인데 생명체 가지고 등치가 크다, 작다 얘길 해! 이런 것 우리들이 생각없이 쓰는 가운데 잘못 된 것이 엄청 많아요. 정말 큰 교회를 이야기 하려면 그 교회 구성원들 끼리 얼마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서 치열하게 살아가느냐? 이런 것을 보고 이야기 한다면 말 안 해! 평수 가지고 어떻게 큰 집이라고 해.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이 사느냐 그것이 굳이 이야길 하려면 그것만 이야기 해야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패러다임으로 사느냐? 국장 타이틀 붙은 사람이 무조건 부장보다 높은 사람이야? 그런 게 어딨어? 생각이 뭐냐가 중요하지. 이런 것이 우리도 모르게 삶의 잘못된 방법, 교육을 통해서 반성하고 그럴 필요가 있는 거예요. 배가 크면 사람도 크나? 당당하게! 어디서 자기가 반말이야! 몰라요, 내 속에 뭐가 있는지 그런 말만 쏙쏙 들어오는지. (웃음) 제가 아는 선배 하나가 서울에서 교회를 지었다고 해서 가봤어요. 하도 비싸게 돈 들어가게 지었더라고. 바닥도 카펫을 깔고 천장도 깔았어. 그런 교회를 좋은 교회, 큰 교회라고들 그래. 발에 흙 묻은 사람이 어디 겁나서 들어오겠어요?
학교나 가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중에 한가지는 스스로 만족하는 행복, 자족한다라고 그럴까요? 그런 것을 잘 배웠으면 좋겠어요. 충분하다. 더 필요 없다. 나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라는 마음을 가져야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계속해서 나한테 없는 것을 자꾸만 봐요. 그래가지고 이게 누구한테 있나? 어디에 있나? 그것을 자기한테 가져오려고 그러지요. 그러느라고 나한테 있는 것이 안 보여! 내가 있는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 시간에 없는 것을 가져오려고 노력을 하고 그것이 또 마음대로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억지를 쓰게 돼! 억지를 쓰게 되면 힘들고 고단해지고 그런다고... 가만히 보면 우리가 지금 충분히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신나게 살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모자란다 그러면 늘 부족하고 배가 고프지요.
저는 요새 마음대로 앉아 있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들 보면서 자기가 저러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까?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고 한 몇 달 동안 신음하고 아파하는 사람을 지켜보니까 비로소 안 아프고 돌아다니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귀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경험을 통해서 저한테 모자라지 않다. 충분하다. 너한테 있는 것만 가지고도 100% 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자족하는 마음도 생각만 갖고도 안 되고 생활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훈련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어떤 여자분이 자기가 맏딸인데 가난한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일을 많이 했더라고요. 어느 날 퇴근하다가 계단에서 굴러 가지고 척추를 다쳐서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됐어요. 병원에서 하루에 30분씩 물리치료를 시켜요.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아가지고 서 있어요. 30분 이상은 안 되는가 봐요. 늘 휠체어에 앉아서 살다가 이렇게 하루에 30분 서 있는 거예요. 이게 조금 바뀐 거예요. 창밖의 풍경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것을 그렇게 감격스러워 해요. 사람이 서서 자기 발로 걸어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엄청난 선물인지 그런 것을 자기가 느낀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꼭 그렇게 휠체어에 앉아봐야만 알겠어요? 안 그래도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요? 그러면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가? 속 썩이는 애가 있잖아요. (웃음) 화내는 남편이 있잖아? 있잖아! (웃음)
사디Saadi 라고 하는 중동의 한 철학자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쓴 글에 이런 것이 있어요. 자기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원망하거나 그렇지를 않는데 평생 처음으로 너무 가난해서 신발 살 돈이 없었어요. 겨울에 맨 발로 걷는 자기 신세를 한탄했답니다. 이 추운 겨울에 맨발로 구두 하나 구할 돈이 없어가지고 맨발로 이렇게 걷느냐? 자기 신세를 한탄하면서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신전으로 들어갔대요.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해 본 것이 그 때가 처음이래요. 대단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 날은 너무나 원망스러운 거예요. 신발이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는 막 신전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나는 보았네. 발목이 없는 사람을!” 그것이 그 이야기의 끝이에요. 인생이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있는 것을 감사해요. 참 부자예요, 우린! 가진 것이 참 많아요. 감사해요. 밖에 나가서 화 나가지고 집 안에서 화풀이 하는 남편을 볼 때 감사해야 돼요. (웃음) 농담이 아니야. 정말이야. 꼭 잃어버려 봐야 알겠어요? 그래서 이런 것이 다 훈련이에요. 이런 것을 가지고 만족해보는 그 방법, 이런 것을 우리가 학교에서 가르쳐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이 나라 어느 학교가, 어느 공립학교가 교과목에 그런 것이 있나? 자기 속의 화 다스리는 법, 화 달래는 법,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서 내 속의 말을 할 수 있는 법, 누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짓을 해서 화가 날 때 내가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이런 것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진짜 지식 아닌가요? 그런 것을 가르치고 배우자!
우리처럼 입시가 천당 들어가는 표나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는 교육풍토에서는 그런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건 아니다. 생각했으면 겁내지 말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대로 가는 겁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21세기의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지요. 남하고 나 비교하지 않고 나 싫으면 싫다고 하고 억지로 비위 맞추려고 하기 싫은 일 막 하는 바보짓 안 하고... 그래요. 제가 짧은 인생이지만 살아보니까 진짜 경쟁 안 하고 살 수 있어요. 어떤 누구하고도 경쟁 안 해도 돼요. 베스트셀러 작가 안 돼도 충분해요. 괜찮아요. 그리고 그런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살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옆에 많이 같이 가고 있어요. 저 혼자 가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 끼리 보여요. 그래서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끼리 모이게 돼 있어요. 외롭지 않아요.
첫댓글 "괜찮아요. 유유상종. 외롭지 않아요." 함박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