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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7일. 이제는 완연하게 밀밭 분위기가 난다.
4월 17일. 기록 간격이 점점 길어진다.
아마도 꽃 시즌 취재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만큼 바쁜 나날이 계속되었던 무렵일 것이다.
그런 기획을 염두에 두었었다. 제초제하지 않은 밀밭에 풀이 올라오면
'지리산닷컴에서 공개적으로 1박 2일 풀뽑기 이벤트를 진행해볼까?' 라는.
10명 정도가 모일 수 있다면 900평 밀밭의 풀 제거는 하루에 가능할 것이다. 물론 10명 정도의
사람은 구례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을 수도 있다. 그 동안 이장에게 민원성 디자인을 의뢰했던
선수들에게 역으로 '부탁'해서 해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내려와 풀을 뽑는 일은 분명 의미있고 이벤트적인 성격이 있을 것이다.
간혹 고민을 했지만 그리할 필요가 없었다. 풀은 어느 정도는 올라왔지만 심각한 수준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풀은 왜 올라오지 않았던 것일까?
풀이 자리잡기 전에 밀이 공간을 점유했기 때문에? 그런 요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적이지 않은 나의 의견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좀 더 암울한 쪽으로 결론났다.
수십 년간 제초제를 투입한 땅에 한 시즌 제초제 투입하지 않았다고 풀이 쉽게 자라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제초제하지 않은' 이번 시즌의 밀은 실질적으로 제대로 된 땅에서 자란
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최소한 3년 정도는 이런 정도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땅에서 어느 정도
독소가 빠져 나가는 척이라도 할 것이다. 이를테면 사상의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식이요법을 한다는 등의 일과 같은 것이다.
빡세게 풀뽑기를 해야 할 것이라는 나의 우려가 사라졌지만 마음은 그렇게 밝아지지 않았다.
2009년 4월 17일.
195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 인간의 농업은 혁명을 맞이한다.
이른바 '녹색혁명'이 그것이다. 그것은 농업을 산업화하는 시도였으며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1950년에서 1984년 사이에 진행된 녹색혁명의 결과, 인간은 곡물 생산량을 250% 증가시켰다.
가히 혁명적이다. 더 이상 식량난은 없을 것 같은 증가추세였다. 이 일을 가능하게 한 주역은 누구일까?
햇볕? 갑자기 발견된 신대륙의 새로운 경작지? 주인공은 바로 석유다.
녹색 혁명을 위한 비책은 비료(천연가스)와 살충제(석유)였는데 이것은 모두 화석연료에서 추출된다.
화석연료는 지속가능한 에너지가 아니다.
햇볕과 물, 바람으로 농사를 짓던 시절에 비해 평균 50배 이상의 에너지가 투입된 것이다.
이전과 비교해서 농업에 투입되는 에너지 소비는 100배 이상 증가하였다.
우리가 먹고 있는 식량은 어쩌면 화석연료 자체이다.
1945년에서-1994년 사이에 농업에 투입된 에너지 투입량은 4배 증가했지만 곡물생산량은 3배 증가했다.
그러면 계속 에너지를 투입하기만 하면 곡물생산량은 증가하는가? 불행하게도 아니다.
인류는 이미 한계 수확 제로에 도달했다. 식량생산은 1996년 이후 정체 상태이고,
녹색혁명의 뿌리인 석유는 현재 소비의 정점에 도달해 있는 상태다.
그러나 땅으로 화석연료의 투입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미 악화된 토질과 병균을 통제하거나 억제하기 위한
방법은 몇 년간 전세계의 경작지가 휴식을 취하는 것이지만 이는 불가능한 방법이고 더 독한 항생제를
투입하는 방법이 언제나 선택받는다. 약발이 듣질 않는데 더 많은 약을 투여할 수밖에.
녹색혁명은 실질적으로 파산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전체가 친환경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구례는 2008년 친환경대상을 수상한 지역이다. 소는 웃지 않았지만 나는 웃었다.
절대평가 기준으로 보면 열 손가락에 장을 지지고 똥구멍에 불을 붙이고 하늘로 날아갈 이야기다.
이런 결정은 울며겨자 먹기 식의 정책판단이다. 중앙정부에서 권장(?)을 넘어선 권고를 하고
지방정부는 각 면으로 방침을 시달하고 면은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모양이라고 추정한다.
금년 초에 오미동은 친환경으로 하지 않겠다고 버티었다. 면에서 난리가 났다. 그러면 곤란한데.
결국 오미동 또한 친환경농법으로 쌀농사를 짓기로 합의했다.
2년 전 가을에 잠을 자는 마을인 상사에서 우렁이농법의 친환경 재배 쌀을 수매하기 위해
들고가자 쌀이 '깨끗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거나 등급 하향되었다.
농협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가 원하는 친환경쌀은 외형적으로 무결점의 성형미인이야 하는 모양이다.
내 입에서 나간 소리가 곱디 고왔다.
"씨밸넘들 미친 쉐이들 아이가! 내년에는 왕창 농약 뿌려버려!"
위 사진은 금년부터 친환경해야 하는 오미동의 쌀농사에 당장 투입될 '친환경' 농약과 비료들이다.
이것들은 과연 진정으로 친환경적인 것들일까? 현재로서 나는 저것들의 성분에 대한 지식이 없다.
다만 석유의 영향력을 벗어난 '정부인증 친환경' 농약과 비료는 없다는 사실이다.
조금 전에 정수씨가 물었다.
"이것도 하지 마까?"
"그냥 우렁이만 풀어 둡시다. 한 단지만. 나도 좀 먹고."
지난 가을에 제초제 하지 않았던 밀밭에서의 쌀농사에 다시 무제초제 방침을 정한 것이다.
그렇게 계속 한 단지만 더 가보자. 땅이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2009년 4월 27일. 서서히 밀의 색깔이 변하기 시작한다.
원래 인류는 태양에너지로 농사를 지었다. 이것은 지속가능한 에너지다.
석유는 거의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비축형의 에너지원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더 이상 화석연료 재생은 가능하지 않다.
녹색혁명은 이 비축된 종잣돈을 꺼집어 내어 팡팡 쏟아 부었다. 녹색 혁명은 이 저축을 꺼내서 농업
생산을 증가시키는데 사용하였다. 미국의 화석 연료 사용량은 지난 40년간 20배 증가하였다.
1990년 기준으로 미국땅 1헥타르에서 식량을 생산하는데 어림잡아 1000리터(6.41 배럴)의 석유를
사용하고 있다.
1994년에 David Pimentel와 Mario Giampietro라는 학자는, 농업에서 순 화석 연료 에너지 비율에 대한
정확한 비율을 이끌어 내었다. 에너지 투입 형태를 두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가 체내(Endosomatic) 에너지다. <체내 에너지는 음식 에너지가 물질 대사를 통해서 인체의
근육 에너지로 변형될 때 생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두번째는 체외(Exosomatic) 에너지. 체외 에너지는 <트랙터에서 가솔린을 태울 때와 같이 인체 바깥에서
에너지를 변형시킴으로써 생성된다>고 한다.
산업혁명 이전에 체내, 체외 에너지의 거의 100%가 태양 에너지였다. 그러나 지금 현재 미국과 이른바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체외 에너지의 90%는 화석연료다. 여러가지 수치 비교가 있는데 인용하기는 좀
지루하고 단적으로 1을 먹기 위해 10이라는 에너지를 투입했다. 그러나 막상 그 10이라는 에너지에 버금가는
가치를 인간이 노동으로 만회하기 위해서는 1인당 하루 식사를 위해 3주일의 노동을 필요로 한다.
석유가 없다면 인간은 하루 식사를 위해 3주일을 피터지게 노동해야 하는 것이다. 농업에 관련해서 투입되는
화석연료량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그러하다. 우리가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향후 10년 이내에
화석연료 생산이 하락하면 녹색혁명 기반의 관행농을 위해 투여할 수 있는 에너지는 줄어들 것이다.
물론 과학이 이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뽀골뽀골 거품을 내 뿜는 '지금바로석유생산박테리아'를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내거나 지속가능한 대체에너지를 개발 또는 발견하는 경우이다.
인간들이 직면한 가까운 미래는 꼭 그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되지 않으면 인류는 결국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 문상에 참여하는 빈도를 높이기 위해 자연채취 가능한 지리산으로 왔다.
어차피 돈으로도 식량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말이다.
2009년 4월 27일. 밀은 보리에 비해 강인해 보인다.
내가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참견자로서 하루 한번은 밀밭으로 내려갔다.
제초제를 한 아래 위 밀밭과 시각적으로 큰 차이를 느낄 수는 없었다. 하긴 내가 봐서 뭘 알겠나.
애완동물이나 가축은 어떻게 힘들어 하는지 눈으로 보인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대략 짐작은 할 수 있다.
땅은 정말 잘 모르겠다. 적어도 40년 정도 화학비료와 농약, 제초제로 샤워를 했는데, 사람으로 보자면
거의 항생제를 주식으로 버티어 왔고, 더구나 쉬어 본 기억이 없을 것이다. 윤작이라는 전통농법은
어떻게해서건 생산량을 유지해주는 화학제품 덕분에 사라졌다.
토양은 부식되었고 지하수와 지표수는 오염되었다. 이를 은폐하고 만회하기 위해 다시 화석 연료와
탄화수소 제품들이 더 많이 공급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물은 이미 부족하다. 관개수를 펌핑하기 위해 더 많은 석유가 투입된다. 화석 연료들은 다시
오염된 물을 정화하기 위해 투입된다. 땅과 물은 피와 살과 같은 유기적인 관계인데 이들 모두가 죽어간다.
1인치의 표토를 대체하는데 500년이 걸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눈에는 그 시신 위로 자라난,
누렇게 익어가는 보기 좋은 밀이 보일 뿐이다.
2009년 5월 31일. 거의 종착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1개월이 지난 후, 밀은 수확해도 될 만큼 익었다.
다른 밀밭은 거의 베어진 다음이다. 사실은 다른 들판의 밀이 일찍 베어진 것이다.
쌀농사 준비를 위해 조금 더 들판에 둔 상태에서 밀을 말릴 수 있는 시간을 제외한다.
운조루와 수확 시기를 조절했다. 최대한 늦게 베는 것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들판에서 밀을 거의 말릴 생각이다. 모심기가 좀 늦어져도 쌀 생산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전세계적으로 곡물생산량은 인간들이 먹을 만큼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세계 곡물 생산량의 40%는 가축사료로 소비된다. 미국은 80~90%의 곡물을 가축사료로 소비하고 있다.
사람이 굶지 않기 위해 경작하는 곡식이 아니다. 사료라는 의미는 고기를 얻기 위한 것이다.
한쪽에서는 2초에 한 명의 아이들이 굶어죽어가는데 한쪽에서는 질 좋은 고기를 얻기 위해 곡물을
배불리 먹이고 있다. 물론 그 곡물을 먹는 가축들의 일생도 행복하지는 않다.
경작면적을 늘리는 방법이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더 이상의 경작지는 없다. 전세계 경지면적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감소로 돌아섰다.
굶주리는 사람들 앞에 거대 곡물회사들이 있다. 곡물교역량 80% 점유 미국계 카길,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
프랑스계 드레퓌스(12%), 아르헨티나계 벙기(7%), 스위스계 앙드레(5%) 등 5대 곡물 메이저들이 그들이다.
여러 사람 명줄을 이 회사들이 쥐고 있다. 이 회사들의 실질적인 큰 손이 유태계라는 소리가 있는데
나는 이 회사들의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있는 관계로 진실 여부는 잘 모르겠다.
미국은 농산물 수출로 매년 100억달러 이상의 흑자를 내는 나라다. 세계 곡물교역량의 35%를 차지한다.
그래서 미국정부는 자국 농민들에게 순소득의 50% 이상을 '직접지불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같은 작은 땅에서 농사는 비효율적이니 식량은 자신들에게 맡기라고 한다.
먹는 걸로 장난치겠냐고.
2009년 5월 31일. 아랫논은 물을 대고 있다.
한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한 시즌 제초제와 비료를 하지 않았다고 다른 땅과 실질적으로 뭔 차이가 있겠냐고 했지만
우리밀밭의 키가 좀 작다. 이것은 콤바인으로 수확하는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퇴비도 제초제도 없었지만 사실은 지나친 겨울 가뭄을 온 몸으로 버틴 놈들이라 키가 자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잠시 이벤트를 생각했다. 낫으로 밀베기. 그러면 탈곡은? 머리 아프다.
"며칠 사이에 자라겠지 뭐. 아 놔 자식들 주인 닮아 가지고 농다리라니."
1972년에 국제곡물가는 급등했다. 구소련이 흉작으로 곡물을 수입하게 된 것이다.
밀, 쌀 가격이 2배로 치솟았다. 2004년 초, 중국이 밀 800만톤을 수입했다. 중국이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해 8월 베트남으로부터 쌀 50만톤을 수입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식량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27% 수준이다. 쌀을 빼면 5% 수준이다.
우리가 식량을 지원하는 북한의 자급률은 75%이다. 우리는 굶어 죽고 있는 북한의 식량자급률 보다 훨씬 낮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해외의존율은 97%, 세계 1위다. 댓글 생산만 1위인 것이 아니다.
쌀을 거의 자급하니 실감하지 못하는 문제일 뿐이다. 쌀 소비량은 점차적으로 줄어들어가는 추세다.
우리의 밀 자급률은 2006년 현재 소비량의 0.3%이다. 옥수수는 0.8%이다. 2009년 현재 조금 증가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명확한 통계자료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결국 전체 식량자급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밀과 옥수수를 더 경작해야 한다. 참고적으로 전체 곡물 자급률은 26.2%(2007년)이다.
밀을 완전 자급하려면 지금의 2,000여 헥타르의 경작 면적을 100만 핵타르로 확대해야 한다. 500백배 증가.
이것은 경작 가능 면적으로 보면 가능한 일이다.
식량이 무기가 되는 날이 올까?
이미 그런 시절이다. 표현만 완화된 전쟁 상태다.
2009년 6월 3일. 낟알이 좀 작다. 그러나 단단해 보인다.
세계식량정상회의(World Food Summit)에서는 1996년에 성명을 채택했다.
"각각의 나라는 식량을 각국으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있고, 자국민에게 충분한 영양가를
공급할 권리가 있다." 는 내용이다. 식량안보라는 개념이 적용되었다. 각국은 매개 나라의 식량안보를
사수하라는 권고이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이 소리는 각 국가 또는 지역이 자급력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가 이니다. 장벽 없는 무역에 의한 농산물 확보에 길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식량 수출국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타국의 식량안보(food security)는 스스로 생산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수입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소리다.
미국의 식량 생산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있다. 2025년이 되면 자국의 인구 증가로 여분의 식량을
수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특별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금년에 내 눈에 가장 많이 보이는 들판의 변화는 쌀 경작보다 철쭉 등의 묘목 경작이 많아진 것이다.
그래서 들판을 보면 쫘아악~ 모심기가 된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이빨이 빠져 있다. 쌀농사보다
묘목업자에게 임대료를 받는 것이 조금 더 이익인 것이다.
은퇴형 귀촌이라도 유치하고자 하는 것이 시골 자치단체의 주요한 정책이다. 공동화 현상을
그냥 바라보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마을 안의 집과 집 사이 작은 논들이 자꾸 택지로 변환다.
이런 추세로 진행되다가 갑작스러운 자연재해로 인한 국제곡물가 3배 급등!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택지 허물고 논으로 바꾸려는 난리통이 전개되지 말란 법도 없다.
2009년 6월 3일. 이제 거의 우리밀만 들판에 남았다.
조금씩 조바심이 났다. 나의 별 진지하지 않은 제안으로 발생한 일로 인해 논 한 단지 모심기가
괜히 지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작년 들판 사진을 살펴봐도 금년 모심기가 느리다.
언제 벨 것인지 자꾸 물어보게 된다. '암시랑토 안해!' 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믿어야지.
비아캄페시나(Via Compasina), 1992년에 '농민의 길' 이란 이름으로 결성된 세계농민조직이다.
70여개국 120여 농민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식량안보론에 맞서는 식량주권(food sovereignty)
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 사람들이 자신의 먹거리와 농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
-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기 위해 국내농업생산을 보호하고 무역을 규제하는 권리,
- 자신들의 시장에 값싼 상품이 들어오지 못하게 제한하는 권리,
- 무역을 부정하기 보다는 안전하고 건강하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생산을 할 수 있는 권리 등.
이 이야기가 우리 입장에서는 훨씬 적절하지 않은가?
식량주권은 농민과 소비자의 정치적.경제적 권리를 포괄하고 있다.
<식량안보가 농업관련 산업의 모델에 의존해 있지만, 식량주권은 농생태적 관계에 근거하고 있다.
식량안보는 녹색혁명형 농업에 의존하고 있지만, 식량주권은 생태적인 유기농업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식량안보가 세계농식품체계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식량주권은 지역농식품체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식량주권은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를 목표로 하며, 사회적으로 먹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결정권을
확보하는 것이며, 먹거리의 이동거리(food mileage)를 축소하고,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을 늘리고,
농업생산과정에 상업용 종이나 비료를 비롯한 투입재의 외부 의존을 줄이는 것이다.>
- 식량주권 회복의 길 / 윤병선 -
2009년 6월 13일. 밀을 베기 하루 전이다.
전반적으로 제초제와 퇴비를 뿌린 다른 단지의 밀 수확량은 그냥 그렇다.
40kg 가마니로 20개 정도 나온 모양이다. 관행농으로 아주 잘 나오면 30가마니 정도 나오는 모양이다.
겨울 가뭄이 워낙에 심했고 화학비료를 하지 않았으니 밀들이 좀 당황했을 것이다.
막상 '내일이면' 밀을 벤다고 하니 마음이 급하다. 물론 '어떻게 팔지?' 라는 문제와 당면했기 때문이다.
'가네무라' 라는 일본 양반이 '농업의 6차 산업화' 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별 복잡한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이다. 밀을 수매하면 40kg에 35,000원이다.
대부분의, 아니 내가 아는 모든 농민들은 이 상태로 수매시킨다. 방금 밀 생산가만 산출하니
인건비를 제외하고 30,000원 정도 들어가는 것으로 답이 나왔다. 가네무라 선생은 이런 짓을
왜 하느냐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도정하고 빻고 포장해서 밀가루로 제품화하면, 구례우리통밀로 보면(지역 마다 가격차가 있지만)
대략 1kg에 3,500원 정도다. 그러면 40kg에 얼마가 나오는가? 140,000원인가.
그런데 한 단계 더 나가서 밀 40kg으로 칼국수를 만들어 판다고 생각해보자. 한 그릇에 4,000원 잡자.
우리밀 칼국수집에 전화를 해서 알아 본 결과 1kg에 8그릇 정도 나온다고 한다. 1kg에서 32,000원이
산출되고 40kg에서는 1,280,000원이 나오는 것이다.
35,000원 - 140,000원 - 1,280,000원. 놀라운 비약 아닌가.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아주 철저한 시장조사와 정교한 기획력을 필요로 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밀을 어떻게 팔지? 지리산닷컴에서 얼마나 팔릴까? 빵순이 블로그, 오픈할 운조루사이트 모두 동원해도
얼마나 팔 수 있을까? 포장단위는? 포장은? 택배는? 빻는 비용이 소량이라 제법 소요될 것인데.
정말 무방부제 상태로 밀가루가 얼마나 갈 수 있지? 가루 상태는 통곡물 상태보다 보관이 힘든데,
도시 가정에서 평균적으로 1kg의 밀을 소비하는데 얼마나 걸리지?
빵순이는 하루에도 아작낼 수 있는데. 아, 머리야!
2009년 6월 13일.
밀은 선 상태로 바싹 말랐다. 좋다.
그러나 내 머리도 바싹 말라간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그날이 지금이라니.
그냥 운조루 정수에게 떠 넘겨 버릴까?
"사진 짤 찍었네. 알아서 하시게. ㅎ -,.-;"
며칠 햇볕이 좋다. 누군가 기별이 왔다. 밀을 베면 기별 달라고.
밀짚이 필요하단다. 까이꺼 뭐 어차피 태울 것인데 인심이야 쉽지 뭐.
2009년 6월 14일. D - day
일요일이었지만 아침부터 카메라를 들고 사무실에서 대기했다.
9시 무렵이 되어서 콤바인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오미동 이장님이다.
손짓으로 아랫 단지를 사인하자 그렇다고 하신다.
오미동 전체 들판에서 마지막 남은 밀이다. 다행이 콤바인으로 가능한 키높이가 되었다.
2009년 6월 14일.
내 손 하나 들어간 밀밭도 아니지만 괜히 내 밀밭을 베는 듯한 기분이다.
7개월 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본 밀밭이다. 매일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일자별로 정리한 폴더를 보면서 밀의 상황을 음미했었다.
날씨는 뜨겁다.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기록할 생각이다.
마지막날 아닌가.
2009년 6월 14일.
이 밀이 베어지고 나면 논을 갈고 물을 받고 모심기를 할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오미동 전체가 친환경 쌀농사를 지어야 한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결국 지자체의 안을 받아들였다. 좋은 일 아니냐고?
글쎄, 다시 이전 글로 돌아가 나는 제품화된, 대기업과 큰 조직이 이윤을 차지하는 친환경 농사에
시큰둥한 편이다. 오미동의 친환경 쌀농사는 옵션이 있다.
농협에서 공급하는 친환경비료와 농약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가을에 농협에서
수매를 받아주지 않겠다고 했다. 농협은 진정 농민을 졸로 아는 깡패인 것이다.
친환경재는 지방정부 지원이 있을 것이니 직접 지출은 없다. 하지만 거의 독점 체계의 농협은
세금에서 그 비용을 가지고 갈 것이고 수매라는 칼끝을 농민들에게 겨누고 있다.
대한민국 농협 해체하면 한 달 정도 내 기분이 흐뭇할 것 같다.
2009년 6월 14일.
월인정원도 밀의 마지막 날이라 나와서 촬영을 하고 마음만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뭔 농사를 알아야지.
궁극적으로 탈시장. 직거래만이 농민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이다.
그래야 농협의 협박같은 것에 굴복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농협은 조합이다. 조합은 조합원들이 정책을 결정한다. 하지만 단위 농협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언젠가 농협과 조합원, 농민의 관계에 대해서 꼭 타겟 취재를 할 것이다.
이곳에서 직접 방문해서 거래할 수 있는 은행은 농협 이외에는 없다.
2009년 6월 14일.
지난 겨울부터 내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읍내의 상황이 하나 있는데, '축협 하나로마트' 주차장 자리에
대형 식육식당을 짓는 일이다. 얼마 전에 오픈했다. 읍내 가장 요지에 읍내 작은 식당들을 한방에 무덤으로
보낼 수 있는 대형 식육식당을 농협과 오십보 백보인 축협이 직영을 한다. 읍내 경제는 실질적으로 사망이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축협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축협 직원들 월급이 나가지 못하는 상황인가?
더 의문스러운 것은 뻔히 구례에 살고 있는 축협의 조합원들은 왜 이 문제를 그대로 승인한 것일까?
이미 하나로마트 하나만으로 읍내 구멍가게들은 상황이 좋지 않은데 말이다. 택지 쪽으로 하나로마트를
하나를 더 짓는다는 소리도 들린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농민회와 민노당, 읍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이런 상황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 순박한 양의 태도이다.
할 수만 있다면 하나의 작은마을 정도가 도시의 작은마을 또는 좀 정의로운 어느 기업과 직거래로
모든 농산물을 교류하고 이런저런 더러운 꼴 보지 않는 사례를 한번 만들었으면 하는 전투력이
밀려들기도 하지만 내가 뭔 능력이 있나.
2009년 6월 14일.
한 단지의 밀밭을 베는 일은 30분이면 충분했다.
기계로 하는 일이라 가능한 일이고 저 기계는 석유로 움직인다.
180,000원 정도의 비용이 지출될 것이다.
2009년 6월 14일.
파인더로 이 들판에서 마지막 남은 밀이 베어지기 직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수확은 기쁜 일이나 감정의 종류는 조금 더 복합적이었다. 몇 가마니의 통곡물과 밀가루를 팔고
나는, 우리는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런 소량은 턱없이 높은 생산단가가 책정될 것이고
상시적으로 최소한 수입밀의 3배 정도 되는 가격의 우리밀을 사서 먹을 사람은 전체 인구 중 얼마나 될까.
이것은 경제력과 의식이 일치해야 가능한 일이다.
학교급식 문제가 작은 답은 될 수 있다. 그래서 구례에서 학교급식을 지역농산물로 무상 공급하는
논의가 진행되면 지리산닷컴이 가진 능력에서 어느 정도 힘을 보탤 생각이다.
지역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고 그 혜택이 지역으로 남겨지는 시스템만이 한국 농업이 살 길이다.
서울은? 인구 천만의 서울은? 모르겠다. 그 골치 아픈 문제는 그냥 포기하자.
안되는 현실도 현실이다.
2009년 6월 14일.
비워졌다.
땅과 사람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2009년 6월 14일.
이장님댁이 바로 트럭을 가지고 왔다.
"자네 나한테 모델비 줘야 혀!"
"밀 팔아서 드릴께요."
2009년 6월 14일.
수집트럭으로 바로 들어간다.
15가마니 정도 나왔다. 다른 밀밭은 20가마니 정도 수확했다.
우리는 잠시 역행했다. 그러나 다른 밀밭 보다 적게 나왔다는 사실에 나는 차라리 안도했다.
2009년 6월 14일.
창고로 직행했다.
지리산닷컴과 운조루가 함께 진행한 '우리밀 한 단지 제초제 하지 말기' 시즌은 끝이 났다.
통곡물 상태의 밀과 밀가루 상태의 밀 판매는 6월 26일부터 이곳에서 시작하겠다.
며칠 동안 우리밀에 대한 제빵성, 반죽상태, 칼국수, 수제비, 전 등의 임상실험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를 가지고 다음 주 목요일 밤 또는 금요일에 다시 찾아 뵐 것이다.
* http://www.unjoru.net
운조루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오늘(6월 19일 금요일) 밤에 지리산닷컴 메인화면에
배너를 설치할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네이버에서 '운조루'로 검색하시면 '사이트검색'이
가능합니다. 앞으로 점차 이 사이트를 알려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를테면 '운조루 공식 사이트' 입니다. 오픈 기념으로 햇차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곳간'과 '운조루일과'에서 짧은 댓글만 가능하고 게시판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농사 짓는 젊은 정수씨가 게시판 관리하고 어쩌구할 여력이 없을 것입니다.
저희가 제작은 했지만 관리까지 대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구요. 당분간은 운영을
좀 도울 것입니다. 여튼 그래서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시기는 불편하실 것입니다.
밀을 지리산닷컴에서 판매할지 운조루쩜넷에서 판매할지는 며칠 더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09년 6월 3일.
이상, 구례 오미동 들판에서 세계 5대 곡물 메이저 회사를 침몰시키기 위한
작전을 진행 중인 지리산닷컴 이장이었슴돠. 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