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하다의 ‘소(所)’는 ‘~하는 바’, ’~하는 것‘ 등의 의존 명사 역할을 하고 ’중(重)‘은 말 그대로 무거움을 뜻한다. 무거운 것을 손으로 받쳐 들려면 자연히 두 손을 쓸 테고 그 무게감 때문에 온 힘이 이것을 잘 잡고 지키는 데 쓰일 테니, 소중한 것을 가진 자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귀중품‘이라는 단어의 ’귀중‘이라는 말과의 차이점은 중하게 여기는 것을 스스로 택할 수 있다는 데 있겠다. 귀중하다는 것은 희소성이 있고(貴:귀할 귀) 무거운 것, 즉 누가 봐도 그러한 것들에게 붙여지는 말이지만 소중하다는 것은 그와는 확실히 다르다. 어느 가을, 주워 곱게 말린 은행잎이나 버려야 할 때가 지나버린,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옷은 귀중하진 않아도 소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작사가와 방송인 사이 어디쁨인가의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개인 매니저가 있다. 방송인으로서는 회사에 소속이 되어 있지만 회사 매니저와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작사가로서 또 개인으로서의 일정 이동에도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회사 소속 매니저를 개인 일정까지 대동하기엔, 회사 입장에서 너무 손해다. 어쨌든 나는 얼마 전 아주 소중한 인력을 하나 잃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야 어떻게든 찾을 수 있지만, 여기에 마음까지 맞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랬다. 인간 대 인간으로 봐서는 아주 좋은 일이었다. 그 친구는 더 큰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친구이기에 원하는 곳으로 떠나는 게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장에선 소중한 사람 하나를 잃었다.
소중한 것은 글자가 뜻하는 것처럼 힘을 들여 지켜야 하는 것임에도, 우리는 종중 말로만 그것을 소중하다 칭한 채, 방치한다.
그래서인지 가사 속에서 ’소중하다‘는 말은 주로 과거형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말 같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그것이 유한하기에 그렇다. 꽃을 보고 드는 반가운 마음은 이것이 곧 시들 것을 알기 때문이고, 청춘을 예찬하는 이유도 쏜살처럼 빨리 사라져버림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과 적응의 동물이기에 이 유한성을 잊는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나기에, 하루하루는 소중하다. 이처럼 우리는 매일같이 이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책 [나를 숨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 중에서
첫댓글 유한하기에 소중한 것들. 끝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어디가 끝인지 모르고 사는 인생. 삶의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무한리필이 아니니까.
無常을 알고는, 의식하고는,
항상하지 않는다를 알아버렸다.
마지막 일른지를 준비하며
모든것엔 마지막이 있다
형제도 부모님도 벗도 ...
순간의 소중함을 놓친것은
無常을 놓칠때였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나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요. 꽃잔치가 벌어지는 봄이되면 마음이 들뜨는것을 어찌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