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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깊은 글 14개의 글
1. 아흔 할머니의 일기
"내 나이 아흔, 세상 떠날날이 머지 않았지..."올해 아흔인 홍영녀 할머니는 매일 일기를 쓴다.
학교 문턱을 밟아 본 적이 없는 그는일흔이 돼서야 손주에게 한글을 배웠다.
까막눈에서 벗어난 이후부터일기를 쓰기 시작한 홍 할머니는삐뚤삐뚤 서툰 글씨에 맞춤법조차 엉멍이지만,20여년 동안 써 온 그의 일기에는인생이 담겨 있다.
세상과 이별할 날이 머지않은 그의 일기를 통해"누구에게나 닥칠 노년의 삶과, 인생"이란 무엇인지조용히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이 내 마음 누가 달래 주나"“그 구가 이 내 마음을 달래 주나"
"청개구리는 무슨 사연으로저다지 슬픈 소리로..."
"나는 쓸쓸해, 가슴이 서러워..."오늘도 흰 머리카락 날리면서산 마을로 너머 가시는 햇님은
어김없이 너머 가시네.
햇님 나는 나는 쓸쓸해.가슴이 허전해. 가슴이 서러워.인생은 바다위에 떠 있는 배가 아닐까?
흘러 흘러 저 배는 어디로 가는 배냐?
앞쪽으로 타는 사람은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뒤쪽으로 타는 사람은 그 누구를 기다리네...
아직 어두운데..., 햇님이 나오셨나햇살이 고개를 들면 그는 창가로 다가가햇님에게 인사 하는 것으로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한 시골마을에서 300여평 남짓한 텃밭에무, 배추, 호박, 가지, 고추 등
갖가지 농사를 지으며 사는 홍 할머니.밭일을 하는 동안 그는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다.
자식 같은 농작물을 매만지며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잘 들리지 않아도 TV를 켜 놓으면그래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6남매를 둔 홍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안타깝게 여긴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가 혼자를 고집하는 이유는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변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는자식들이 걱정을하면 그는"그렇게 죽는 게 복" 이라고 대답하며혼자이기를 고집한다.
헌 내복을 입고 밭일하는 홍 할머니홍 할머니는 새 내복 보다낡디 낡은 헌 내복을 더 좋아한다.
아들, 딸, 조카들이 사다 준 새 것을 마다하고헌 내복을 입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내다 버리려고 했던 내복을 또 빨아 입었다.
낡은 내복을 입는다고 딸들은 야단이다.
새 내복이 없어서 그러는게 아니다.딸들이 사다 준 내복 조카들이 사 온 내복들이상자에 담긴 채로 쌓여있다.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 자꾸 새것을 입어휘질러 놓으면 뭐하나 해서다.
그리고 새 옷들을 차곡차곡쌓아 놓은 것을 보면 헌 옷을 입어도 뿌듯하다.
나 죽은 후에 다른 없는 이들입게 주면얼마나 좋으냐 싶다.
그런 에미 맘을 모르고딸년들은 낡은 못을 버리라고 야단이다.
물끄러미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홍 할머니추수가 끝나면 홍 할머니는싸앗 봉투마다 이름을 적어 놓는다.
몇 년째 이 일을 반복하는 그는혹여 내년에 자신이 심지 못하게 되더라도자식들이 씨앗을 심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손수 지은 농작물을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이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홍 할머니가1994년 8월 18일에 쓴 일기 전문이다.
내 글은 남들이 읽으려면말을 만들어 가며 읽어야 한다.
공부를 못해서 아무 방시도 모르고허방지방 순서도 없이 글귀가 엉망이다.
내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꽉 찼다.
그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연필을 들면 가슴이 답답하다 말은 철철 넘치는데
연필 끝은 나가지지 않는다.
글씨 한자 한자를 꿰맞춰 쓰려니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모른다.
그때마다 자식을 눈뜬 장님으로 만들어 놓은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글 모르는게내가 국미나교 문턱에라도 가 봤으면그 쓰는 방식이라도 알았으련만아주 일자무식이니 말이다.
엉터리리로라도 쓰는 것은아이(손주)들 학교 다닐 때 어깨 너머로몇 자 익힌 덕분이다.
자식들이나 동생들한테전화를 걸고 싶어도 못했다.
숫자는 더 깜깜이었으니까70이 가까워서야 손자 놈 인석이 한테숫자 쓰는걸 배웠다.
밤늦도록 공책에 써 보았고내 힘으로 딸네 집에 전화 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숫자를 누르고 신호가 가는 동안가슴이 두근두근 터질것만 같았다.
내가 건 전화로 통화를 하고 나니장원급제 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너무 신기해서 동생네도 걸고 자식들한테도자주 전화를 했다.
나는 텔레비젼을 보며 매모도 가끔한다.
딸들이 가끔 메모한 것을 보며 저희들끼리 죽으라 웃어댄다.
멸치는'메룻찌'로 고등어는'고동아'로오만원은 '오마년'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속장소를 불러 주는 걸 적었는데동대문에 있는 이스턴 호텔을'이슬똘 오떼로'라고 적어서
딸이 한 동안 연구를 해야 했다.
딸들은 지금도 그 애기를 하며 웃는다.
그러나 딸들이 웃는것은이 에미를 흉보는게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써 놓은 글들이 부끄럽다.
그래서 이 구석 저구석써놓운 글들을 숨겨 놓느다.
이만큼이라도 쓰게 된 게 다행이다.
이젠 손주들이 보는글씨 큰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다.
인어 공주도 읽었고, 자크의 콩나무도 읽었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것이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나마 쓰게 되니까잠 안 오는 밤에 끄적끄벅 몇 마디나마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발랄 게 없다.
말벗이 없어도 공책에다내 생각을 옮기니 너무 좋다.
자식을 낳으면 ?더라도공부만은 꼭 시킬 일이다.
홍 할머니가 닦고 또 닦았던 고무신딱히 외출할 계획도 없는데설레이는 마음으로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말린 홍 할머니 하지만 갈 곳이 없어 고무신에다시 먼지가 쌓이고그는 신어 보지도 않은 채더러워진 고무신을 또 닦아 햇볕에 내 놓는다.
그는 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뽀얗게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내 놓았다.
어디 가게 되지 않으니신어 보지도 않고 다시 닦게 된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
가슴에 묻은 자식 생각에눈물짓는 홍 할머니어린 자식이 숨지는 것을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젊은 시절의 아픈 기억과살날 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노년의 외로움이 절절리 담긴 그의 일기는그만의 일기가 아니다.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꾸역꾸역 참고 살아온한 여인의 일기요.
우리네 어머니의 일기이며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우리모두의 일기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너무 감동적인 글이라 여러분과 함께 공감하고 싶어올렸으니 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父母不孝死 後悔
2. 어느 청년의 면접시험
우리나라의 어느 일류대 졸업생이 한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사장이 면접 자리에서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부모님을 목욕시켜드리거나 닦아드린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습니다.'청년은 정직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부모님의 등을 긁어드린 적은 있나요?' 청년은 잠시 생각했다.
'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등을 긁어드리면 어머니께서 용돈을 주셨죠.'
청년은 혹시 입사를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사장은 청년의 마음을 읽은 듯 '실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고 위로했다.
정해진 면접 시간이 끝나고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자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세요 하지만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닦아드린 적이 없다고 했죠?
내일 여기 오기전에 꼭 한 번 닦아드렸으면 좋겠네요. 할 수 있겠어요?'
청년은 꼭 그러겠다고 대답했다.그는 반드시 취업을 해야하는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품을 팔아 그의 학비를 댔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는 도쿄의 명문대학에 합격했다
학비가 어마어마했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제 그가 돈을 벌어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 해야 할 차례였다.
청년이 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일터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청년은 곰곰이 생각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시니까
틀림없이 발이 가장 더러울거야. 그러니 발을 닦아드리는게 좋을거야.'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아들이 '발을 씻겨드리겠다'고 하자 의아하게 생각했다.
'갑자기 발은 왜 닦아준다는 거니?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닦으마!'
어머니는 한사코 발을 내밀지 않았다 청년은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닦아드려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렸다. '어머니 오늘 입사 면접을 봤는데요
사장님이 어머니를 씻겨드리고 다시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꼭 발을 닦아드려야 해요.'
그러자 어머니의 태도가 금세 바뀌었다.
두말없이 문턱에 걸터 앉아 세숫대야에 발을 담갔다.
청년은 오른손으로 조심스레 어머니의 발등을 잡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까이서 살펴보는 어머니의 발이었다.
자신의 하얀 발과 다르게 느껴졌다 앙상한 발등이 나무껍질처럼 보였다.
'어머니 그동안 저를 키우시느라 고생많으셨죠. 이제 제가 은혜를 갚을게요.'
'아니다 고생은 무슨....' '오늘 면접을 본 회사가 유명한 곳이거든요 제가 취직이 되면 더 이상 고된 일은 하지 마시고 집에서 편히 쉬세요.'손에 발바닥이 닿았다. 그 순간 청년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의 발바닥은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도저히 사람의 피부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어머니는 아들의 손이 발바닥에 닿았는지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발바닥의 굳은살 때문에 아무런 감각도 없었던 것이다.
청년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고개를 더 숙였다. 그리고 울음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새어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고 또 삼켰다.
하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한쪽 어깨에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청년은 어머니의 발을 끌어안고 목을 놓아 구슬피 울기 시작했다.
다음날 청년은 다시 만난 회사 사장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저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사장님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만약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어머니의 발을 살펴보거나 만질 생각을 평생 하지 못했을거에요.
저에게는 어머니 한 분밖에는 안 계십니다.
이제 정말 어머니를 잘 모실 겁니다.'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말했다
'인사부로 가서 입사 소속을 밟도록 하게.
백세의 노인인 어머니는 여든 살 난 자식을 항상 걱정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끝없는 빛이요 끝없는 사랑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머니의 한량없는 은혜에 백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人生은 自然에서 왔다 自然으로 돌아 가거늘 살아생전 부모님에게 最高보다는 最宣을 다 하는 하루 하루 가 되기를 바라면서...
3. 아버지를 팝니다
얼마 전 신문에 1000억의 재산가가 데릴사위를구한다는 신문 광고를 내어 시중의 인구에
회자된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이와는 반대로 어느 날 신문광고에 아버지를판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 광고에 아버지는 지금 노령이고 몸이 편치 않아서일금 일십만원이면 아버지를 팔겠다고 적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광고를 바라보고 혀를 끌끌차며"세상이 말세다" 라고 하는 이도 있었고 다 늙은할아버지를 누가 사겠냐고 쑥덕거렸다.
이 광고를 보고 부모 없는 설움을 지녔던한 부부가 새벽 같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대문 앞에서 몸매를 가다듬은 부부는심호흡을 머금고 초인종을 누른다.
넓은 정원에서 꽃밭에 물을 주고 있던 할아버지가 대문을 열고서는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부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신문광고를보고 달려왔다고 말씀을 드리자 할아버지가
웃음을 지으며 집안으로 안내를 한다.
'아버지를 파시겠다는 광고를 보고 왔습니다.'
젊은 부부는 또박또박 뚜렷하게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지는 빙긋 웃음을 지으시더니 "내가 잘아는 할아버지인데 그 할아버지 몸이 좋지 않아요.
그런 할아버지를 왜 사려고... 젊은 부부는모두가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고아처럼 살다
결혼했기 때문에 부모 없는 설움이 늘 가슴에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프거나 집안이 어렵지 않은 가정이라면 누가 아버지를 팔겠다고 광고를 내겠느냐고...
비록 넉넉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작은가운데서도 아기자기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도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왔다싶어서 달려왔다고 하였다.
이들 부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아버지가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달라고 한다.
젊은 부부는 정성스럽게 가지런히 담은 흰봉투 하나를 할아버지에게 내어놓는다
할아버지는 돈 봉투를 받아들고 나서 그 할아버지도정리할 것이 있어서 그러니 일주일 후에 다시 이곳을오라고 하였다.
일주일 후 젊은 부부는 다시금 그 집을 찾았다기다리고 있던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어서 오게나 나의 아들과 며느리야"하시면서"사실 ! 내가 너희에게 팔렸으니 응당 내가
너희들을 따라가야 하겠지만 너희가 이 집으로식구를 데려 오너라"고 하신다
깜짝 놀란 부부는 양자를 데려오면 얼마든지데려올 수 있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이 돈만 알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듣고서 이해가 되었다젊은 부부는 "저희에게 아버지로 팔렸으면저희를 따라 가셔야지요비록 저희들은 넉넉하게 살지는 않지만그곳에는 사랑이 있답니다.'라고 고집했다할아버지는 진정 흐뭇한 마음으로 너희는참으로 착한 사람들이다
너희가 부모를 섬기러 왔으니 진정 내 아들이다그러하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곧 너희 것이며
너희는 나로 인해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될 것이다이것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운 마음 때문에 복을불러들인 것이다. 라고 하시고는 기뻐하시며자식들의 절을 받았다
받은 글입니다.늘 건강하시고 즐겁고 보람된시간 맞으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4. 당신의 따스한 한마디...
"Mother has taught us "Never accept pay for a kindness".
19세기 미국. 정확하게는 1880년 여름.가가호호를 방문해서 이것 저것을 파는 가난한 고학생 젊은이가 있었습니다.그렇게 하루 종일 방문판매를 다녔고, 저녁에 되었을 때에는 지쳤고, 배가 고팠습니다.
주머니에는 다임(10센트) 동전 하나 밖에는 없었고, 그것으로는 적당한 것을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다음 집에 가서는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해야지 하면서 발걸음을 옮겼고, 그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예쁜 소녀가 나왔습니다.
젊은이는 부끄러워서 배고프다는 말을 못했고, 다만 물 한잔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이 사람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큰 컵에 우유 한 잔을 내왔습니다.
젊은이는 그 우유를 단숨에 마셨고, 새로운 힘이 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를 드려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엄마는 친절을 베풀면서 돈을 받지 말라고 하셨다! '고 말했습니다. ("Mother has taught us "Never accept pay for akindness".)
젊은이는 이 말에 큰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그로부터 십 수년이 지난 후, 그 소녀는 중병에 걸렸고, 그 도시의 병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병원의 의사는 큰 도시의 전문의(specialist)를 불러오면 고칠 수 있다고 했고,그래서 오게된 의사는 하워드 켈리(Howard A. Kelly, 1858-1943년) 박사,
그 소녀에게 우유 한 잔을 얻어 마셨던 바로 그 젊은이였습니다.
그 때 방문 판매를 했던 그 고학생 하워드 켈리는 산부인과( gynecology)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명문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의 창설멤버이기도 했습니다.
하워드 켈리 박사는 환자를 보고 한번에 그녀임을 알아보았고, 지금까지 개발된 모든 의료기술을 동원해서 그녀를 치료했습니다.
결국 부인과 질환으로 상당히 힘든 케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치료에 성공했습니다.
하워드 켈리 박사는 치료비 청구서를 보냈습니다.
환자는 엄청나게 많이 나올 치료비를 생각하며 청구서를 뜯었습니다.
청구서에는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한 잔의 우유로 모두 지불되었음'( Paid in full with one glass of milk)"
- <사랑이 길을 밝힌다>, 일송미디어, 고정아 엮음 중에서 -
Louis Armstrong - What A Wonderful World
5. MBC 휴먼다큐사랑 '안녕 아빠'
MBC ‘휴먼다큐 사랑-안녕 아빠’편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안녕 아빠’ 편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남편 이준호(41)씨의 투병생활 동안 보여진 부인 김은희(36)와 초등학생인 아들 영훈(9)과 딸 규빈(7)의 감동적인 가족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지난해 1월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준호씨는 그해 12월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긴 채 눈을 감았다. “올해를 못 넘기겠습니다. 준비하세요”! 지난해 11월 은희씨는 남편 준호씨의 담당의사로부터 청천벽력같은 한마디를 들었다.
남편이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해 1월이지만 은희씨는 차마 남편을 보내는 일도 상상할 수 없었고,초등학생인 아들 영훈(9)과 딸 규빈(7)을 데리고 남겨질 자신의 삶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한다. 앞서 준호씨는 지난 1999년에도 대장암이 발병했었지만 수술을 통해 기적처럼 살았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1997년 결혼한 은희씨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둘째 규빈이를 임신를 한지 3개월째 되는 때 준호씨는 대장암으로 쓰러지면서 시련으로 다가왔다.
남편 없이 아이둘을 키우는 것을 걱정한 가족들이 유산을 권고했지만 은희씨는 고집을 부려 규빈이를 낳았고,하늘이 도운 듯 준호씨도 수술 끝에 다시 일어섰다.
은희씨는 남편이 쓰러진 후 7년 동안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특히 암이 재발한 지난 1년간은 ‘수퍼우먼 아내’ ’수퍼우먼 엄마’로 살아야 했다.매일 아침 6시 반이면 일어나 두 아이를 챙겨서 학교에 보내고 출근을 해야 했고,틈틈이 병원에 들러 남편 병간호를 했다고 한다. 또 퇴근 후에는 아이들의 저녁을 챙기고 다시 병원으로 와서 이씨를 간호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했다.
은희씨도 이런 고된 생활 때문에 갑상선이상으로 휴식과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죽음을 앞둔 남편 뒷바라지가 그녀에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특히 지난해 첫눈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 죽음을 앞둔 준호씨는 의식조차 희미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은희씨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 저 세상으로 떠나야하는 아빠를 위해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하고 노래를 불렀다.
은희씨는 남편의 투병과정에서 “지금 상황은 많이 힘들지만 제가 지금처럼 아빠를 희생하는 마음으로 사랑했더라면 10년 동안 살아 온 결혼생활이 참 행복했을 거란 생각을 한다”며 “왜 내가 진작 이런 맘으로 남편을 대하지 못했을까. 지금은 저의 모든 것을 다해서 아빠를 사랑하고 있어 생활은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참 행복하다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은희씨는 지난 4월19일 결혼기념일을 맞이해 남편의 무덤을 찾아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오니 홀로 외롭지 말라”고 말했다. 이 방송의 내레이션을 맡았던 탤런트 하희라씨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하희라는“투병 중에도 가장으로서,아빠로서 가족들을 배려하는 이준호씨를 보면서, 사랑으로 그 어떤 고통과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이준호씨의 사랑이 굉장히 크고 위대했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그 무엇보다 강한 힘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방송후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가족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됐다”는 감동의 글을 남기고 있다. ‘이정아’라는 시청자는 “얼마나 울었던지 오늘 아침 눈이 부어버렸다”며 “가족의 소중함,건강의 소중함,사랑의 소중함.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정말 많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함인찬’은 “사랑이란 게 무엇인가 많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며 “자신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가족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 을 잃지 않았던 고인과 고난속에서도 남편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던 아내, 아파하는 아버지를 위해 ‘아빠 힘내세요’를 외치던 귀여운 아이들.너무 일찍 다가온 이별이 많이 슬프지만 남은 가족들이 부디 씩씩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했다.
강영수 기자 / 2007.05.17
6. `안녕 아빠` … 엄마와 아빠의 뽀뽀 오래 기억하고 싶어요.
'안녕 아빠'는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아빠를 위한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는 모습이어서 더욱더 가슴 찡한 방송이었다.
영훈과 규빈,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 남겨진 시간은 이제 한달이다.
10년만, 5년만, 아니 1년만 더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이제는 아빠를 보내드릴 준비를 해야한다.
"아빠는 우리를 꼭 안아 주셨어요~ 참 포근해요, 아빠 품 속에서 오래오래 있고 싶어요~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요… 눈물 때문에 아빠 얼굴까지 흐릿하게 보이는데… 아빠가 눈물을 닦아 주셨어요."
"규빈아 고마워, 사랑해" "예뻐~ 미안해"
"아빠의 말을 다 알아 들을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아빠의 마음은 알 것 같아요"
1997년 봄~ 변변한 직장이 없는 규빈아빠와의 결혼을 부모님들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한 은희씨.
하지만 이들부부의 행복은 잠시일뿐, 영훈이를 낳고 둘째 규빈이가 뱃속에서 3개월을 보낼때 사랑하는 남편 준호씨가 쓰러졌다. 대장암이었다.
친정가족들은 남편없이 하나도 아닌 둘을 키울 수는 없다고 유산을 권했다. 하지만 소중한 생명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예쁜 규빈이를 낳았다. 준호씨도 기적을 만들어냈다. 대장을 잘라내고 다시 일어선 것이다.
하지만 은희씨는 이제 슈퍼우먼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그리고 두 아이를 위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출근 후에도 틈틈이 남편을 위해 병원으로 달려가고, 그리고 퇴근 후에는 아이들 저녁을 챙기고, 또다시 남편을 돌보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고…
슈퍼우먼 은희씨지만 병원에서는 그녀에게도 휴식을 권한다. 갑상선 이상으로 그녀 또한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자신은 없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려는 남편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이상 함께 할 시간이 얼마 없는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인데…
2006년 11월 그녀는 또한번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말을 듣는다.
"올해를 못 넘기겠습니다. 준비하세요"
이제 겨우 마흔인 남편을 보낼 수가 없는데, 초등학생인 영훈이와 규빈이를 남겨놓고 혼자서 이끌어야 할 삶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기적처럼 살아났던 남편이기에 암을 이겨낼 수 있을꺼라 믿었지만 이제 준호씨의 몸은 대장 뿐만 아니라 십이지장, 위, 폐까지 암이 전이된 상태이다.
더이상 희망을 가질 여지가 없다.
온 몸으로 퍼진 암때문에 하루 1000mg의 모르핀 투여로도 막을 수 없는 극심한 고통. 그래도 아내 은희씨는 포기할 수 없다. 남편 간호에 최선을 다하는 은희씨.
이제 정말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를 두고 이렇게 떠날 수는 없다고 절규하는 준호씨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준비해야 한다.
온 가족이 부둥켜 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2006년이 몇일 남지 않은 밤.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아빠였지만, 사랑하는 아이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세상에 남겨두고 먼저 먼 길을 떠나는 준호씨.
아내는 얘기한다.
"걱정하지마~~ 내가 아이들 잘 키울께… 잘가요 내사랑"
방송이 끝난 후 방송 내내 눈물을 흘리며 아픈 가슴으로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규빈이 가족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 시청자는 게시판에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길 바랍니다. 남은 가족분들 남편과 아빠 몫까지 건강하게 잘사세요. 가슴이 너무 메여옵니다" 라며 글을 남기기도 했고, "너무나 가혹한 일이지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건,,그러나 규빈이네는 아빠와 함께 숨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이 무언지 제게 길을 제시해준 가족이였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7. 여자를 징하게 울려버린 남자!!! 감동깊은글
여자를 울려버린 한 남자가 있다고 하길래 ,
이집 저집수소문하여 결국 찾아냈죠 ,,
속 깊은 멋진 사나이를 함 보실래요 ? ,,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약속하고 달콤한 연애를 하면서연인은 행복한 꿈과 희망이부풀어 있었습니다.
남자는 결혼을 위해 제법큰 아파트를 준비했고! 여자는 새 아파트에 맞는세간을 알아보고 다녔습니다.그렇게 희망이 부풀어서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아버지가 하던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나서회사의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여자의 아버지가 쓰려져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자의 집이 가세가기울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결혼 날짜는 다가오고있었습니다
결혼을 한달 앞둔 어느 날 남자는여자의 손을 꼭 잡고 고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 자기 내 마음 알지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라며, 그때 보여 주었던 그 아파트는사실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너무 사랑해 놓치고 싶지 않아서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고또 새 아파트에 가져갈 혼수품을살수 없는 형평이라 걱정하고 있었기에그 말에 그렇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연인은 그렇게 결혼을 했고 어렵게단칸방에서 달콤한 신혼 산림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남자의 월급이 결혼 전에이야기했던 것에 비해 너무 작았습니다.
그래도 여자는 신혼 맛에 기쁘게살림을 했습니다
여자의 아버지도 건강을 되찾아서다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다행이 사업도제법 잘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하지요 ,,
친정 집이 어려울 때는그져 있는 것에 감사하고 살았는데친정 집의 형편이 좋아지면서
자기의 모습이왜 그리 초라해 지는지,,,
결혼하기 전에 아파트를 보여주면서그래도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해 주겠다던 말이
모두 상처로 되살아나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신랑이 그때부터 미워졌습니다 결국 여자는 그 속상한 마음에
무능한 남자와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그 마음을 친정 어머니께 말씀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정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친정 어머니는 딸의 눈물을 닦아주며, 딸에게 그동안 숨겨놓았던 비밀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사실은김 서방이 아무말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는 털어 놓아야 겠구나 !.
" 친정 어머니가 해준 말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남자는 혼수 용품을 해올 형편이 못되는 여자의 마음이 상할까봐 아파트를 팔아 여자 아버지의 빚 갚는데 보태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밀로 하라는 것은 혹시 네가 기죽어 살까 봐서 그랬단다"
그리고 남자는 월급의 적지 않은 돈을 매달 여자의 아버지 병원비로 썼던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딸의 눈에는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 눈물은 조금전 어머니가 흘렸던 감동의 눈물이었습니다
여자는 슬픈 눈물이 아닌 뜨거운 사랑과 감동의 눈물이었습니다.
가슴이 사무치도록 밀려오는 한 남자의 사랑을 느끼며 하염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는 없을까요?
아침에 출근할 남편의 양복 , 타이를 바로 잡아주는 작은 배려에서부터 말입니다.
8.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5분
어느 젊은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사형을 집행하던 날.... 형장에 도착한 그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28년을 살아온 그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최후의 5분은 비록 짧았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5분을 어떻게 쓸까?그 사형수는 고민끝에 결정을 했습니다.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작별 기도를 하는데 2분......
오늘까지 살게 해 준 하나님께 감사하고....곁에 있는 다른 사형수들에게 한 마디씩
작별 인사를 나누는데 2분, 나머지 1분은 눈에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지금 최후의 순간까지 서있게 해준 땅에...감사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삼키면서 가족들과 친구들을 잠깐 생각하며...
작별인사와 기도를 하는데 벌써 2분이 지나 버렸습니다.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돌이켜 보려는 순간 아~! 이제 3분 후면 내 인생도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지나가 버린 28년이란 세월을 금쪽처럼 아껴 쓰지 못한 것이..정말 후회되었습니다.
아~! 다시 한번 인생을 더 살 수만 있다면...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
기적적으로 사형집행 중지명령이 내려와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사일생으로 풀려 난 그는 그 후, 사형집행 직전에 주어졌던그 5분간의 시간을 생각하며..
평생 시간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살았으며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마지막 순간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며..열심히 살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영원한 만남"등..
수 많은 불후의 명작을 발표하여톨스토이에 비견되는 세계적 문호로성장하였다고 합니다.
그 사형수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였습니다.
9. 모정의 세월 박옥랑 할머니(左).. 68세된 장애 딸 50년 돌본 "101살 엄마"
누워 있는 딸의 손을 주물러 주고 있다.<사진>* * *
"불쌍한 딸을 위해서도 오래 살아야지, 내가 세상을 뜨면 혼자서 어떻게 살겠소."
101세의 박옥랑(朴玉郞. 광주시 북구 우산동 주공아파트) 할머니-.
자손들의 극진한 봉양을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몸이 불편한 68세 된 딸을 돌보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다.
딸 조의순(趙義淳)씨가 전신마비 상태로 누워 있기 때문이다.
이들 모녀는 현재 광주시내 13평짜리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서로 거울삼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朴씨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1939년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朴씨가 출근한 사이
가정부가 업고 있던 네살배기 딸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쳤다.
朴씨는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딸을 들쳐 업고 용하다는 병원, 한의원, 침술원 등을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다.
그 뒤부터 딸은 방에 누워서 천정을 보며 살아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집을 나가버렸다.
朴씨는 딸을 언니집에 맡기고 학교에 계속 나갔다.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1953년 전남 나주시 영산포 여중에서30년의 교사생활을 마감했다.
"딸의 상태가 악화된데다 생업이라는 핑계로 아픈 딸을 혼자 방에 방치했다는 생각이 퍼뜩 든 거죠." 교직을 그만 둔 뒤 朴씨는 딸에게 글 공부를 시켰다.
종이에 글을 써 보이며 한글은 물론이고 한자까지 가르쳤다.
학교 교과서와 문학서 등도 읽어줬다.
딸은 금방 글을 깨우쳐 갔다. 때로는 시도 읊조렸다.
몸을 움직이지 못할 뿐 머리는영리했다고 朴씨는 기억한다.
딸의 손발 노릇을 하느라 늙을 틈도,아플 여유조차 없었던 朴씨도얼마 전부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기억력도 크게 떨어졌다.
朴씨는 "딸은 나한테 몸을 기대고, 나는 점차 흩어지고 있는 정신을 딸에게 맡기고 사는 셈이죠"라며 웃었다.
그녀는 자신이 저 세상으로 간 뒤 딸이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면 아득하다고 했다.
"어미로서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지만내가 세상을 등질 때 딸애도 함께 갔으면 하는 바램이지요." 국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朴씨는 정부에서 매달 나오는 얼마 되지 않는 돈도 아끼고 아껴 한 달에 몇 만원씩이라도 꼭 저축을 한다.
자신이 죽은 뒤 딸 혼자 살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趙씨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나의 어머니"라며 "오늘까지 산 하루 하루가 모두 어머니의 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朴씨가 사는 아파트에 간병 봉사를 하러 다니는 유상엽(44.여)씨는"할머니는 딸을 돌봐야 한다는 정신력 때문에건강하게 사시는 것 같다," 며 "이들 모녀를 볼 때마다,모정(母情)은 위대하고 지고(至高)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고 말했다.
이토록 끈질긴 모정의 실타래가 얼키고 설킨기나긴 100년의 삶의 언덕을 기대는 어머니,
곱디고운 중등 여선생님,청춘을 불살라 반세기를 딸 위해 보낸 세월전신마비의 딸을 위해 간호하다 늙지 못했다는 어머니..어머니의 청춘은 그 누가 보상하리요.
네살배기 딸아이 장애가 되어 이제 68세 되었고어머니의 연세 101세,아픔의 강물,
한 맺힌 세월의 바다 눈물로 얼룩진 모녀사랑 자식 위해 늙지 못하고,자식 때문에 차마 저
하늘로 떠나지 못하고 눈 감지 못함이여. 당신의 삶이여, 아픔이여..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어머니의 사랑.. 당신은 우리들의 은인이십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부모님한테 살아계실적 효도하세요.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그만큼 돌려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10. 아저씨와 결혼 할래요
♥ 일곱살 꼬마의 감동 편지
너무나도 가슴 찡한 글이기에 이렇게....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난 그 날도 평소처럼 집 앞 횡단보도를 걷고 있었다. 난 그만 시속 80km로 달리는 차를 못보고거기서 차와 부딪혀 중상을 입었다.
결국 난 응급실에 실려 갔고, 위독한 생명을 기적적으로 찾았다.
그러나 의식이 돌아 오는 동시에 난 깊은 절망에 빠졌다.그렇다 난 시력을 잃었던 것이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에난 너무 절망했고.결국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일곱살 밖에 안 되는 소녀였다.
"아저씨.... 아저씨 여긴 왜 왔어?""야... 꼬마야!! 아저씨... 귀찮으니까...
저리 가서 놀아.....""아.. 아저씨... 왜 그렇게 눈에 붕대를 감고 있어? 꼭 미이라 같다"
"야! 이 꼬마가... 정말..... 너 저리 가서 안 놀래...!!..."
그렇다. 그녀와 나는 같은 301호를 쓰고 있는 병실환자였다...
" 아저씨... 근데... 아저씨 화내지 말아.... 여기 아픈 사람 많어~
아저씨만 아픈거 아니쟎아요..... 그러지 말고 ~ 나랑 친구해.네?... 알았죠??.. "
"꼬마야.... 아저씨 혼자 있게 좀 내버려 둘래..
"그래... 아저씨........ 난 정혜야... 오정혜!여긴 친구가 없어서 심심해.. 아저씨
나보고 귀찮다구?"그러면서 그녀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다음 날......" 아저씨... 그런데 아저씬.... 왜 이렇게 한숨만 푹 푹 셔~...."
" 정혜라고 했나... 너도 하루 아침에 세상이 어두워졌다고생각해봐라.
생각만 해도 무섭지.그래서 아저씬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숨을 크게내쉬는 거란다....."
"근데... 울 엄마가 그랬어..... 병도 이쁜 맘 먹으면 낫는데~...
내가 환자라고 생각하면...환자지만....환자라고 생각 안 하면...
환자가 아니라고....며칠 전에... 그 침대 쓰던 언니가 하늘나라에 갔어....
엄마는 그 언니는 착한 아이라서 하늘에 별이 된다고 했어...
별이 되어서 어두운 밤에도 사람들을 무섭지 않게 환하게 준다고......"
"음....... 그래.... 넌 무슨 병 때문에... 왔는데.."
"음..... 그건 비밀....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곧 나을 거라고 했어.
이젠 한달 뒤면 더 이상 병원 올 필요 없다고..."그래? 다행이구나....."
"아저씨... 그러니까... 한달 뒤면 나 보고 싶어도 못보니까...
이렇게 한숨만 쉬고 있지 말고 나랑 놀아조.... 응... 아저씨......."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비췄다.
그녀의 한마디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마치 밝은 태양이 음지를 비추듯 말이다.
그 후로 난 그녀와 단짝친구가 되었다."자! 정혜야 주사 맞을 시간이다......"
"언니... 그 주사 30분만 있다가 맞으면 안돼,..
잉~ 나 지금 안 맞을래....!!..""그럼..... 아저씨랑 결혼 못하지...
주사를 맞아야...빨리 커서 아저씨랑 결혼한단다." 칫"
그리곤 그녀는 엉덩이를 들이대었다.
그렇다...어느 새 그녀와 나는 병원에서 소문난 커플이 되었다.
그녀는 나의 눈이 되어 저녘마다 산책을 했고,
일곱살 꼬마아이가 쓴다고 믿기에는 놀라운 어휘로주위 사람, 풍경 얘기 등을 들려
주웠다.
"아저씨... 김선생님이 어떻게 생겼는 줄 알아..?..."
글쎄....코는 완전 딸기코에다... 입은 하마입,그리고 눈은 쪽제비 같이 생겼다...?..
크크~ 정말 도둑놈 같이 생겼어..!! 나 첨 병원 오던 날.......
그 선생님 보고 집에 가겠다고 막 울었어..."크크크흐흐......"
"아저씨 왜 웃어...""아니... 그 김선생 생각 하니까... 그냥 웃기네...
꼭 목소리는 텔레비젼에 나오는 탤런트나 성우처럼 멋진데 말이야...""하하하하~~~~"
"근데 정혜는 꿈이 뭐야?""음.....나 아저씨랑 결혼하는 거........"
"에이..... 정혜는 아저씨가 그렇게 좋아? 응...그렇게 잘생겼어?"
"음... 그러고 보니까... 아저씨 디게 못생겼다. 꼭 포케몬스터 괴물 같애.."
그러나 그녀와의 헤어짐은 빨리 찾아 왔다.2주후....나는 병원에서 퇴원 했다..
그녀는 울면서...." 아저씨.... 나 퇴원 할 때 되면 꼭 와야 돼 알겠지?응...... 약속"
"그래 약속....."우는 그녀를 볼수는 없었지만....가녀린 새끼 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약속을 했다.그리고 2주일이 지났다그러던 어느 날"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최호섭씨?""예...... 제가 최호섭입니다...."
"축하합니다... 안구 기증이 들어 왔어요.."진......... 진짜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정말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일주일 후 난 이식수술을 받고 3일후에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난 너무도 감사한 나머지 병원측에 감사편지를 썼다.
그리고 나아가서...기증자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던 중 난 그만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기증자는 다름 아닌 정혜였던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바로 내가 퇴원하고 일주일 뒤가 정혜의 수술일 이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백혈병 말기환자였던 것이다.
난 그녀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그녀가 건강하다고 믿었는데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난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부모님이라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 아이가... 많이 좋아했어요....."" 예..... "
" 아이가 수술하는 날 많이 찾았는데.."정혜의 어머니는 차마 말을 이어가질 못했다.
" 정혜가 자기가 저 세상에 가면 꼭 눈을 아저씨 주고 싶다고...
그리고 꼭 이 편지 아저씨에게 전해 달라고..그 또박 또박 적은 편지에는 일곱살짜리
글씨로 이렇게 써있었다.
♥ 아저씨! 나 정혜야....음 이제 저기 수술실에 들어간다...
옛날에 옆 침대 언니도 거기에서 하늘로 갔는데...정혜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저씨 내가 만일... 하늘로 가면...
나 아저씨 눈 할께 그래서 영원히 아저씨랑 같이 살께.아저씨랑 결혼은 못하니까....
하지만 수술실 나오면 아저씨랑 결혼할래.
아저씨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래.나의 눈에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11. 절대로 포기 하지 마십시요
장애를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호주 닉(부이 치치) 의 인간승리를 보고우리에게 희망의 선물에 감사 드리고이제라도 " 나는 행복 합니다 " 라고아침에 외치며 불황을 이겨 나갑시다 .
삶이 행복하다고 웃으며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이점점 작아지며 화면이 전환되는 순간
그의 몸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난 그는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전혀 구김살 없이 용기있게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 절망에 빠져모두를 원망하기도 하였다는 그,자신의 몸을 일부러 넘어뜨려가며
학생들에게 팔과 다리가 없는 본인도 일어설 수 있다는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내용을 말한다포기란 배추를 셀때만 사용하는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