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타면 제일머저 쌀과 연탄을 구입했던때가 언제였더라. 겨울철 김장도 연래행사가 아니었던가. 이건 문화 어쩌고하는 얘기가 아니라 절대적인 생존전략인데, 세월과 함께 많이도 달라졌다. 연탄은 도심에서 사라졌고, 쌀이 없는집도 흔하다고 한다. 쌀대신 햇반이 자리를 찾이하고 있는 중인가보다. 사실 햇반이 더 맛있다. 그런데 이해가 안가는게 그 유통기한이다. 아니, 내가 이해하고 안하고는 중요한게 아니다. 내가 이해못하는게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세상은 내 이해와는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다. 쌀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는 평생 쌀을 안사먹고 살았다. 튼금없는 이야긴가. 생각해보면 친정을 잘 만난덕분이겠고, 아님 남편 잘못만난 때문일수도 있다. 책임감이나 성실과는 거리가 먼 남편때문에 아이들하고 밥 굶고지낼까봐 어머니는 쌀을 챙겨주셨기에 쌀을 안사먹었다. 어머니가 가신뒤로는 작은아버지가 쌀을 주고계신다. 어제도 쌀 60Kg이 배달되었다. 이중에서 20kg씩 아들과 딸에게도 나누어주고 나머지 20kg이 나의 일년동안 양식이 된다. 충분하다. 그래서 쌀값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산다. 이렇게 편하게 누리며 살았으면서도 늘 불만이고 징징거리고 있다. 내가 얼마나 행운인줄을 모르고 경박한가를 알기엔 더 설명이 필요할까.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고 하는데, 나는 더불어 산게아니라 그냥 묻어가며 살았다는게 옳다. 내 수고, 헌신이 전혀없다. 오히려 손해에 민감하고 경기를 느끼고 있다. 하! 나야말로 허접한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닌것처럼 지도자, 권력자들을 비난하고 욕하고 쥐먹질을 해대고 있으니 참 가소롭다. 그래서 세상이 웃픈게 아닐까. 택배기사가 기척도 없이 다녀갔다. 쌀 3박스를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2박스는 어찌어찌 들여놓았는데 나머지 하나가 영 안되어서 떠밀고 떠넘기고 안간힘을 다해서 겨우 들여놓고는 멈췄다. 포개놓는것은 무리였다. 그거 좀 했다고 결국엔 진통제를 먹고잤다. 내 한계가 여기까지다. 밤에 잠들지 못할때는 온갓 생각이 뒤엉킨다. 나는 그리 부자로 사는것을 바란적은 없는것 같다. 부자가 될 가능성이 전혀없어서 였을게다. 그러나 빛나는 인생을 꿈꾸기는 했다. 바다를 가르는, 혹은 태산을 옮기는 기적이 일어나 나를 이르켜 세울수도 있지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왜?냐면 우쭐대고 싶어서, 자랑하고 싶어서, 그리고 생색내고 싶어서. 단지 그래서 빛나는 인생이 간절했다. 이런 부질없는 욕심을 그분이 들어주실리가 없음에도, 나는 선한 영향력이나 남을위해 보람을 찾기위한 의미있는 삶을 꿈꾼적은 없었다. 이런 허접한 인생에게도 그분은 사랑과 보호를 아끼지않고 배풀고 계신다. 나름 평탄하게 지내왔다는 생각도 드는것은 남들역시 녹녹치 않았음을 알게되어서다. 삶이 녹녹하다고 말하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지금 제일 고단한 사람은 김건희여사가 아닐까. 문재인 전대통은 어떻고. 현제의 무탈함이 은혜인줄 알기에 감사하다. 이제 저만끔 끝이 보이고있는 지점에 와있다. 그만 포기할것은 포기하고 내려놓을것은 내려놓아야 할때다. 더 늦기전에 마음을 바로하자. 추악한 모습일랑 묻어두는게 좋다는 생각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