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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자는 천 개의 달이 비치는 천 개의 강물이며 언덕을 돌아 아득히 사라지는 무수한 길이며 덧없는 밤하늘을 흐르는 구름이며 빗방울과 안개와 햇살과 눈과 바람 같았습니다 .... - 전경린 지음, 소설 < 황진이 > 中에서 - j, 어제는 고추를 땄습니다. 고추따는 일이사 시골살이에선 흔한 일이고 매년 치루는 일 중의 하나이지만 어제의 그 일은 조금 달랐습니다. 허리 구부리고 고추나무 가지 사이로 익은 것만 따내는 게 아니고 아예 고춧대를 뽑아서 한 쪽에 포개어 쌓아주는 걸 깔개에 앉아서 땄습니다. 퇴비 넉넉히 푸고 깊이 갈아엎어서 만든 밭에 보온 덮개로 밭골 까지 덮어 항상 그렇듯이 약 한 번 치지 않고 기른 고추였지요. 우거진 푸른 고추잎 사이로 하얀 꽃송이들이 별꽃 처럼 피어나고 조랑조랑 풋고추가 열리기 시작할 때 부터 끼니마다 아삭아삭 싱그러움과 즐거움을 주었구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째 저렇게 많이 열렸노~" 하며 한마디씩 할 만큼 많이도 열렸었습니다. 그런데 긴 장마가 지난 후 고추밭엘 가보니 씁쓸했습니다. 많은 고추가 색바래고 물러진 채 밭둑에 떨어져있었고 아직 가지에 붙어있는 것들도 성한 게 많지 않았습니다. 둥그스럼하게 거무튀튀한 색으로 곰팡이 같은 게 번져가는 탄저병이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전에 따서 갈무리해놓은 게 있었기 때문에 한 쪽에서 부터 고추나무를 뽑았습니다. 괜찮은 걸로 골라 따서 씻어 붉은 고추와 푸른 고추를 비닐팩에 나눠 담아 냉동고에 보관을 하고 싱싱한 고추잎은 살짝 삶아 발에 널었습니다. 말려놨다가 나중에 무말랭이와 같이 버무려 무말랭이 김치를 맛있게 담아보려구요. 고추 뽑아낸 밭은 깨끗하게 골랐습니다. 촉촉히 젖은 거름기 머금은 흙을 만지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부드럽게 잘 고른 밭에 가을 무와 배추 미니당근씨를 들였습니다. 씨앗들이기는 언제나 제 몫입니다. 조그마한 알갱이 속 어디에 대체 무우랑 배추랑 가지랑.. 모양도 맛도 각가지인 그 아이들이 숨었다가 나오는지 손바닥에 펴놓고 들여다보면 늘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곤하지요. 무우는 아직 괜찮치만 사실 김장배추 심기는 퍽 늦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일찍 심은 배추들도 비에 많이 녹았다고, 아직도 괜찮타고는 했지만 저는 속이 차면 차는대로 덜차면 덜차는대로 고맙다면서 솎아먹고 키울 테니 정말 괜찮습니다. 가을 채소 심은 옆에는 토마토가 두 골 심겨있습니다. 서로 지줏대 끝 맞대어 세워주고 곁 순 부지런히 따 주며 키운 토마토, 이제 왕성하게 키워내던 잎도 열매도 거의 모두 사라지고 키 큰 줄기 끝 부분만 남았습니다. 그래도 거기에 작은 토마토 열매가 아직 몇 개 매달려있어 익을 때 까지 놔두기로 했습니다. 채 익기도 전에 장마에 폭삭 내려앉아 서운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밭 둑을 높고 크게 만들어주었더니 많이도 열리고 제대로 익어 냉장고 야채박스를 가득가득 기쁨으로 채워주곤 했지요. 특히 올해는 제 스스로 개발한 맛좋고 영양좋은 토마토요리를 만들어먹는 즐거움도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존재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저는 산길을 걸었고 길섶에서 꽃대를 펼쳐내고있는 억새를 만났습니다. 하얀 솜털을 붙여놓은 듯한 꽃잎을 피워내고 결국에는 바람에 흩어져 잘 날아가게 하기 위해 억새는 진한 자주빛 꽃대를 작은 부채살 처럼 펼쳐올리고 있었고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흔들리는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 이름 모르는 풀들도 함께 흔들리는 걸 보았습니다. 강아지풀 처럼 온통 털로 덮인 제법 커다란 봉오리 같은 게 꽃이라 부르기엔 너무도 소박한 모습이었지만 저는 촘촘한 털 하나하나마다 끝에는 씨앗이 맺히겠구나 하며 들여다보았습니다. 옥수수 수염 끝에서 옥수수 알갱이가 맺혀 영근다는 걸 전부터 알고있었거든요. 그러나 j, 저는 씨맺히는 풀들이 그렇게 이쁜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키도 비슷하게 가느다랗고 긴 풀줄기 위에 세로로 얹힌 타원형 모양의 연한 청색 꽃들을 피우고있는데 무더기로 모여서 함께 잔물결을 이루듯 흔들리는 모습이 어찌 그리도 아름답던지요. 하나를 손바닥으로 감싸서 가만히 쓸어보았습니다. 처음 손끝에 닿는 감촉은 까슬했지만 결대로 쓸어올리니 너무 부드러웠습니다. 그러고도 빈 손바닥에 남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온기는 아니어도 식물체만이 갖는 어떤 상큼함 같은 그런 거였지요. 마침 떠오른 아침 햇빛 받아 아름답게 흔들리는 풀꽃들과 억새꽃, ( ^^ 저는 굳이 꽃이란 이름을 붙여 부르고 싶어요...j) 그 소박하기 이를데없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코끝에 감도는 공기가 한없이 맑고 서늘하고 향기롭다못해 달디단 산에서 이들과 함께 숨 쉬고있음에 전신에 바람이 스치듯 감동이 일어남을 느꼈습니다. j, 이렇게 아름답게 시작되는 이 가을에 저, 간절한 소망 하나 품어보고 싶습니다. 따뜻하면서도 올곧은 사람 사랑한다 말하기 전에 깊은 눈길로 상대방 삶의 주름 까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 함부로 들뜨거나 열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과 사고의 깊이를 지닌 사람 조금 더 가졌거나 이루었다는 것으로 결코 서툰 자만에 빠지지 않는 사람 너와 내가 자와 타가 하나인 이치를 체득한 깊은 통찰력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 생성과 소멸, 밤과 낮이 둘 아님을 알아 어느 것에도 묶이지 않지만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 짧은 한 생 뿐이 아닌 수 많은 생과 시간들에 대하여 그 진행과 변화의 이치에 눈이 열린 사람 이루어보고 또 이루어보고 비워내고 또 비워내어 드디어 맑고 드높은 영혼을 지닌 사람 지구를 돌고 또 돌아서라도 만나러가고 싶다고 언젠가 당신이 말씀하신 하얀 쟈스민꽃잎 같은 사람 그런 사람 하나 이 가을에 꼭 만나고 싶습니다...j |
첫댓글 가을이라 그런걸까요? 미소님 글 보면서 자꾸 시가 생각나는 거 말이에요......도종환 시인의 옥수수밭에 당신을 묻고란 시가 미소님 글 서너 줄 읽을 무렵 확 스쳤어요....
그나저나 쑥스러워 사람들에게 말 걸기도 머뭇거리신다던 백제의 미소님 이제 완전히 말문이 트이실 모양입니다....축하드려요...꽃자리에 등단하신거요
네~ 너무 아름다운 계절 앞에 우리 와있는 거 같아요. 조금 전에도 읽던 책 덮고 마당에 나가 한참이나 서성이다 왔답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약간 선선한 게 얼마나 맑고 좋은지 그냥 마당의 나무가 되어 밤새 서있고 싶어지더군요. ^^
등단이요? 무슨 말씀을 그리 거창히 하시는지요.^^ 어렵게 물꼬를 트긴했는데... 잘 흘러갈지... 힘주셔서 고맙습니다~ 힘들지만 행복한 일인 거 맞지요..? ^^*
그럼요......기왕에 새옷 입고 나섰으니 맘 맞는 사람들이랑 좋은 꽃 피어 있는 길 산책하심도 좋지않을까요?
백제의 미소님 기대에 만족 하지는 못하겠지만 한종나의 많은 회원님들이 나름대로 삶의 철학과 예술 세계를 품은채 백제의 미소님과 아름다운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시네요~공간과 시간의 간격조차 아무런 걸림이 되지 않는 한종나 꽃자리 이야기 너~무 좋은 만남의 자리 입니다^^*
맞습니다.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는 일 너무 좋은 일이지요, 모나미님. 저두 마음을 좀 더 열어서 잠겨만있던 이야기들에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 감사합니다, 모나미님..^^*
참으로 대단한 필력을 지니셨읍니다~ 어쩐지 새털구름을 위해서 써주신글이 아닐까 감히 착각해 봅니다~ 호호호호
앞에 글에도 말했지만요......두 분 닮은 꼴이세요...개성이야 다르지만*^^* 다음 메신저 설치하신 후 대화 신청해서 말씀 나눠 보센요...잘 어울리실 터인디요...혹시 메신저 설치 잘 모르시겠으면 말씀하세요...뚜쟁이 노릇도 상당히 재밌는 일이거든요. 모나미 회장니까지 끼원 드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 좋은 생각났다...(.....이건 다음에 말씀 올리것습니다)
감사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새털구름님, 어줍잖은 글인데..그리 생각이 드셨다니요.^^ *
어린 왕자님, 하여간에 열정이 대단하십니다요 ^^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데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다 해내시는지... ^^
아~난 행복한 여자 ! 착각은 자유라고 해도 좋아요. 백제의 미소님같은 분 이 한종나에서 만난 행운의 여자 꽃물 가슴이 넉넉해졌습니다. ! !!
고운 모습으로 다녀가셨군요, 꽃물님...^^ 안개 짙은 아침입니다. 안개 속에서 보이는 숲은 무척이나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군요. 어떻든 숲은 숲이겠지만 뭐든 보고 느끼는 자의 몫이라 여깁니다.... 넉넉하고 고운 물결이 이는 꽃물님의 가슴, 싸~한 아침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가을날들 되시길요~ ^^*
백제의미소님 안녕하세요.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하얀쟈스민같은사람 만나러 갈때 꼭 ~~~~저도 데려가 주셔용......
오랫만에 반가운 모습 뵙습니다, 금비공주님.. 건강은 좋으셨는지요. 그 많은 씨앗들 막대커피봉지에 담으셔서 줄줄이 꿰어달아 전국으로 퍼내시던 정성 잊지않고 있습니다.^^ 우리 같이 만나러가십시다.. 꼭 함께요, 부디 건강하시구요~~ ^^*
올 가을엔 분명 만나실듯 합니다 행복하시길....
감사합니다, 야다님. ^^ 푹푹찌고 줄기차게 쏟아지던 지루함에서 벗어나서 일까.. 맑고 서늘한 가을 날들이 넘 빨리 지나가는 것만 같습니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찾아 만나고 싶은 소망은 점점 커가는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이 가을.. 야다님께서두 가득가득 행복하시길 빕니다.^^*
호 호 호 글쓰시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시네요^^ 어쩜 가을을 그리워하는 여자에 마음을 꽤둟어보셨나어데론가 떠나고푼 여인에 마음을 하얀 쟈스민잎같은 사람 만나러가실때는 저도 낑겨주세욤 ^^
며칠 맑아서 가을을 느끼게 해주더니 오늘 부터 또 비가 온다네요. 채빈사랑님의 명랑한 웃음소리 들으니 무겁게 느껴지던 하늘도 괜찮아보입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나러갈 때 채빈사랑님, 가운데에 앉으세요~ ㅎㅎ
여기는 방이 너무 많아서 좀처럼 열어보지않는 방문이 여러개였습니다. 귀뜸 안해주셨으면 여전히 저에게는 비밀의 방이었습니다. 계절이 가져다 주는게 님께는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하게 많은 것 같습니다. 곡식 영글듯이 삶도 그렇게 ...^^ 생활하시는 모습 보게되어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비밀의 화원 문을 여심을드립니다
서울방에만 후딱 다녀가시고 만다기에 예쁜 꽃자리방 얘기를 해드렸던 겁니다. 고운 흔적 남겨주셔서 고마워요...^^ 추석이 다가오면 또 한차례 치를 행복한 고민 많이 되시지요..? 물론 훌륭히 잘 해내실 거지만.. 행복한 시간들 되세요..! ^^*
고운글과 고운 댓글~~~ 백제의 미소님 글과 답글로 올라운 주옥같은 글이 있어 깊어만 가는 가을밤이 즐겁습니다.....뀌뚜라미 소리가 가슴에 담기듯 미소님의 고운글이 가슴이 담깁니다.....좋은글 또 퍼갑니다.(초딩친구들 카페에.....) 감사^^**
부끄럽습니다.^^ 태풍을 몰고온다는 비가 참 많이도 내리네요. 제발 무사히.. 모든 생물체와 무생물체에 피해 없이 곱게 사그라지길 비는마음 입니다. 머물러주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