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정유년 들어 첫 일요일입니다. 날이 푸근해서 거사님들 표정은 편안했습니다. 서로 인사하는 소리도 경쾌했습니다. 바람 불고 추운 날이면 거사님들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어깨를 움츠려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따비를 준비를 하는 동안 시간이 남아 오늘은 제영법사와 운경행님과 함께 숫타니파타의 <방기싸의 경>을 읽고 함께 법담을 나누었습니다. 우주를 논하고 윤회와 자아(아트만)을 논하는 당시의 지적 풍토 앞에서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탐욕을 성찰했던 부처님의 삶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는 일은 우주에 대한 담론이나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신통력 앞에서는 아주 작고 하찮아 보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사람들은 신통력을 가진 법사나 미래를 예지하는 수행자에게 쉽게 열광합니다.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성찰은 더욱 발을 디디기 어렵습니다. 부처님은 신통력이나 거대 담론을 이끄는 수행자들을 경계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점을 치거나 관상을 보는 일을 금했고, 초월적 존재를 묻는 질문을 거부했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고통을 받는 사람은 초월적인 담론에 쉽게 열광합니다. 우리는 비교의식이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신통력이나 카리스마가 교주의 중요한 덕목이던 시대에 부처님의 삶이 참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바나나 300개, 백설기 250쪽, 커피와 둥굴레차 각각 100여잔을 보시했습니다. 오늘 바나나는 싱싱했지만, 아직 조금 맛이 덜 들어 보입니다. 낮에 운경행님은 바나나를 큰 것은 두 개씩, 작은 것은 세 개씩 넣어 포장했습니다. 오늘 오신 거사님들은 대략 90여 명입니다. 퇴현 전재성 박사, 이병욱님, 운경행님, 그리고 거사봉사대의 해룡님, 병순님, 종문님이 보살행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처음 오신 이병욱님은 불교계에서 많은 독자를 가진 블로거(진흙속의 연꽃)입니다. 이병욱님은 전재성 박사의 소개로 오셨습니다. 먼 길을 와주신 이병욱 거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따비가 끝나 회향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정식이라는 청년이 갑자기 다가와, 거사님들에게 떡을 두 번 이상 나누어 주지 말라고 주장했습니다. 떡을 버리고 가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떡이 남으면 우리는 두 번 세 번 더 주기도 합니다. 떡은 그래도 다 먹게 되고, 남으면 아침까지 요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떡을 버리는 한 두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분노를 일으키게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평소 무뚝뚝한 정식 청년에게서 우리를 생각하는 따뜻한 정이 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오는 길에 운경행님은 거사님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 떨어져 있는 섬(독도)과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거사님들은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집단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독도가 되는 것은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배려인지, 아니면 급식이나 기부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조금은 경쟁관계에 서야 하기 때문은 아닌지요. 우리는 잠시 차 안에서 거사님들의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