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더호프의 은혼식(박성훈)
박성훈 2019. 07. 07
아빠! 하늘을 보세요. 반지 구름이 있어요. 너무 멋있어요.” 집에서 막 뛰어오던 막내 유빈이가 다급하게 빨리 와서 보라고 우리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그 때 우리 부부는 다음날 있을 은혼식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우리의 은혼식을 미리 축하하기 위해 평소 가깝게 지내던 몇몇 부부들과 함께 근사하게 스낵이 준비된 넓은 마당에 함께 모였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있던 우리는 마당 끝 쪽으로 달려 나가 하늘을 쳐다보고는 너무 놀라 그곳에 함께 있던 모두에게 와서 보라고 외쳤습니다. 우리 부부는 멋진 금가락지 구름을 배경으로 잊지 못할 사진을 남겼습니다. 이 날 놀랍게 하늘에 나타난 금가락지 구름은 우리의 25주년 결혼을 축복해 주는 듯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은혼식은 참 특별합니다. 지난 25년간 많은 갈등 속에서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살아온 날들을 감사하고 축하하기 위해 이웃이나 지인들을 초대해 공동체 온 식구가 다 모여 큰 찬치를 엽니다. 공동체에 오기 전 저희 결혼 생활이 거의 바닥을 쳐 위기 가운데 있었는데 이제는 형제, 자매들의 도움으로 우리의 결혼을 든든한 바위 위에 다시 세울 수 있었기에 저희에게도 이날은 형제들의 대한 사랑과 감사의 날이기도 합니다.
이런 잔치의 날은 누구든지 feel 받는 사람들은 앞에 나가 커플을 위해 준비한 것들을 선보입니다. 하빈이는 우리 가족에 속해 있는 청년 러셀과 함께 현 시사문제에 우리 가족 상황을 패러디해 위트 있게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유빈이는 아빠, 엄마를 위해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첼로곡을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부부는 한국 시를 번역해 우리를 위해 읊어 주었고, 형제 몇몇은 브라스밴드로 우리가 평상시 알던 곡들을 연주해 주었습니다. 그 중 두 부부는 어디서 구했는지 영어로 부르는 아리랑 곡에 맞춰 구호를 외쳐 (Right hand! Left hand! Make rainbow!! 등등) 부채춤을 추게 하는 음악을 구해 열심히 부채춤을 추었습니다. 진짜 부채도 없는지라 부채 모양을 컴퓨터로 다운받아 프린트해서 스티로폼에 붙여서 열심히 무지개 물결도 만들고 춤을 추는데, 이들의 표정도 가관인지라 모두들 배꼽잡고 신나게 웃었습니다. 우리 부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애쓴 노력을 보니 눈물나도록 고맙고 웃깁니다.
한 형제는 영어로 번역한 신형원의 ‘개똥벌레’를 불러 주었는데 후렴부분이 재미있는지(가지 마라 가지 마라-don’t go away! Don’t go away! 나나 나나나나) 그 날 이후 이곳저곳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흥얼거리는 브루더호프 뮤직챠트 1위가 되었습니다. 끝으로 하빈이와 유빈이가 함께 결혼 케이크를 가져와 우리 부부가 서로 먹여주는 시간이 되었는데 제가 케이크 한 조각을 아내 입속에 거의 넣다가 빼 약을 올리자 제 아내는 케이크를 제 코에 박아 버려 온 공동체가 통쾌해 하며 웃느라 뒤집어 졌습니다.
처음 우드크레스트 공동체에 방문하고 형제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 부부의 삶이 얼마나 빗나가 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던 약속의 말씀도 잊어버린 채 처음 가졌던 사랑과 인내심도 모두 잃어버리고 서로에게 무례하게 대하며 마음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각자가 가진 연약한 부분을 용납하고 감싸주면서 부부가 한마음이 되어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곳 형제들의 삶을 보며 많은 도전과 위로와 격려를 받고 우리 부부 또한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결혼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공동체 삶에 부르심을 느끼면서 멤버가 되는 종신 서약을 하기전 브루더호프 장로이신 크리스토프 할아버지께서 저희를 부르셨습니다. 제가 교회 안에서 우리의 결혼을 새롭게 하길 원한다며 우리 부부가 끼고 있었던 결혼 반지를 드리고 교회가 주는 새 반지를 끼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선 우리의 뜻을 기쁘게 받아 주셨습니다. 제가 할아버지께 결혼반지를 드리면서 우리가 새롭게 결혼을 했으니 신혼여행도 가야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껄껄껄 웃으셨습니다.
종신서약을 하는 날 크리스토프 할아버지께서 종신서약과 함께 우리 부부에게 교회 안에서 결혼을 든든히 세우는 새로운 결혼 서약을 물으시고 우리 부부의 이니셜과 함께 ‘Love &Unity ‘ (사랑과 하나됨)라고 새겨진 새로운 금가락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 모인 형제, 자매들에게 이제 이 부부가 새롭게 결혼했으니 켓츠킬 마운트로 신혼여행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시자 모두들 “와”하며 기뻐하셨습니다.
막 돌을 넘긴 유빈이와 유치원생인 하빈이를 이제 갓 결혼한 젊은 신혼부부가 돌보게 하는 배려도 해주셔서 우리 부부는 한창 단풍이 절정인 계곡과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캣츠킬 마운트로 제 2의 신혼여행을 맘 놓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호수 옆에 있는 산장에는 벽난로가 있었고 이미 불이 지펴져 따뜻하고 훈훈했습니다. 주방에는 3일 동안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스테이크를 비롯한 온갖 음식들로 가득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캣츠킬 공동체에 사는 세, 네 살의 조그마한 어린 아이들과 선생님이 찾아와 문 밖에서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갔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나는 결혼 생활은 형제들의 사랑 가운데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크리스토프 할아버지의 큰 마음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미소를 짓게 됩니다. 몇 일 전 크리스토프 할아버지의 ‘성, 하나님, 결혼’이 비아토르 출판사에 새롭게 출판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발간되기 전 크리스토프 부인이신 버레나께서 한국에 있는 많은 청년들과 젊은 부부들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뜻을 전하셨습니다.
다음은 버레나가 돌아가시기 전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한국젊은이들에게,
결혼은 중요한 일입니다. 결혼에 시간을 들이세요! 결혼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평생하는 헌신이며,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기도생활이 중요합니다. 기도를 통해 저와 크리스토프는 지난 51년 동안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2018년 5월 15일
버레나D. 아놀드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시며 51년 평생을 함께 살아가신 크리스토프와 버레나를 기념하며 한국에 있는 휴심정 독자분들께 100권의 책을 선착순으로 1인당 한 권씩 무료로 드리려 합니다. 이 책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주시면 우편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sunghoonpark@mailsta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