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81)
◇ 수달토시
땔감을 사간 아낙네의 집에서
나무꾼 만복이 먹고자며 장작 패는데
나무꾼 총각 만복이가 장터에서 한지게 가득한 나뭇짐을 지게작대기로 고아놓고 그 옆에 앉았는데 비단 치마에 검은 장옷을 걸친 고운 아낙네가 물었다.
“얼마요?”
“참나무라 한지게에 오전입니다요.”
“한지게만 살 것이 아니라 뒤꼍 처마 밑을 가득 채우려니 에누리 좀 해주시구랴.”
“그렇다면 아궁이에 넣기 좋게 톱질 도끼질을 해서 처마 밑에 쌓는 것은 공짜로 해드리겠습니다.”
만복이는 지게를 지고 아낙네를 따라갔다. 양지바른 산자락 아래 외따로 떨어진 기와집이었다.
이튿날부터 만복이는 십리나 떨어진 집에서 참나무를 지고 와서 아낙네 집 뒤꼍에 부려놓고 굴뚝에 바를 정(正) 자를 써나갔다. 서른지게를 부려놓으니 산더미다. 모두 석자짜리라 톱으로 반을 잘라 한자 다섯치 길이로 만들고는 도끼로 패서 두쪽 네쪽으로 나눠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았다.
만복이는 일을 마치고 십리 길을 걸어 집으로 갔다가 이튿날 아침 일찍 된장을 바른 점심 보따리를 들고 왔다. 정월 하순이라 아직도 살얼음이 어는 날씨지만 장작을 패면 땀이 나 윗저고리를 벗고 도끼질을 하는데 집주인 아낙네가 살며시 뒤꼍으로 왔다. 아낙네와 만복이는 서로 놀랐다.
만복이 눈에 비친 아낙네는 서른을 갓 넘겼을까, 상당히 젊은데다 화사한 기품이 서린 미인이었다. 아낙네 눈에 비친 만복이는 우람한 근육이 도끼질을 할 때마다 꿈틀거려 숨이 막혔다.
“총각, 일하는 동안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하세요. 밥값 방값은 안 받을 테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 만복이는 이튿날부터 이 집에 유숙하게 되었다. 만복이가 아낙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몸종을 하나 데리고 사는 홀몸이라는 것과 가끔 남자들이 이 집에서 자고 간다는 사실이다. 집에서 자고 장작 패러 일찍 왔을 때 갓을 눌러쓴 남정네가 두루마기 자락을 펄럭이며 나가는 걸 두번이나 봤다. 각각 다른 사람이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닭백숙 저녁을 얻어먹고 자려는데 빈 상을 가지러 온 몸종이 “부엌 목간통에 가서 씻으세요” 한다. 안 그래도 땀으로 진득거리는 몸이라 따뜻한 물에 개운하게 씻었다. 몸을 닦고 자려는데 아낙네가 속이 비치는 홑치마만 걸치고 술상을 들고 방에 들어왔다. 따라주는 술만 받아마시던 만복이는 이게 생시인가 꿈인가 제 허벅지를 꼬집었다.
“후-.” 아낙네가 호롱불을 껐다. 그날 밤 다섯차례나 까무라친 만복이는 이튿날 장작 패는 걸 포기하고 종일 잠만 잤다. 밤만 되면 아낙네는 만복이 방을 찾고 만복이는 코피를 쏟으며 육봉을 휘두르고 낮이면 쉬엄쉬엄 장작을 팼다.
밤일이 떠름해질 때 장작 패는 일도 끝이 났다. 만복이가 털썩 주저앉을 일이 벌어졌다. 한지게에 오전씩 서른지게면 열닷냥인데 아낙네가 내놓은 건 닷냥뿐이다.
“열냥이 모자라는구먼요, 마님.”
“실은 줄 것이 하나도 없는데 빈손으로 보내기 뭣해서 닷냥 주는 거요.”
만복이가 어이없어 입만 벌리고 있자 아낙네가 하는 말. “내 하룻밤 해웃값이 얼마인지나 아시오?”
며칠 후 두사람은 사또 앞에 섰다. 사또가 아낙네에게 물었다.
“해웃값이 도대체 얼마냐?”
“쇤네 이 진사와 합환을 하고 두냥을 받았습죠. 이 진사에게 물어보면 알 겁니다요.”
“그게 언제인가?”
“쇤네가 그 집으로 이사온 첫해였으니 5년 전입니다요.”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만복이가 고개를 들고 소매 속에 차고 있던 토시 두짝을 빼내더니,
“이것은 겉은 수달털이요, 속은 비단으로 만든 최상급 토시로 값이 무려 열냥입니다요. 소인은 이것을 두푼에 샀습니다요.”
모두가 어리둥절해졌는데 만복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토시는 5년 된 중고품입니다요. 이놈 팔뚝 저놈 팔뚝 들어갔다 빠졌다 하니 안감 비단은 누더기가 되었고, 겉의 수달털은 이리 비비고 저리 비벼 털이 다 빠졌습니다요.”
사또도 육방 관속도 배꼽이 빠지고 동헌은 뒤집어졌다. 아낙네는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느라 주저앉아 치마를 뒤집어썼다. 열냥을 더 받은 만복이는 휘파람을 불면서 주막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