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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목민심서>는 분량도 방대하고 내용도 아주 세세한 항목들이 많아, 실제 읽어 본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완독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정약용을 대표하는 저술이며, 조선 후기를 이해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문헌이다. 책의 주요 내용은 충분히 알려져 있어, 지금도 여전히 정치인들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주요한 준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책을 지은 19세기의 조선 현실은 이른바 ‘삼정의 문란’이라고 일컬어지는 지방관들의 가렴주구가 횡행하던 시기였으며, 이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봉기가 광범위하게 발생하던 때였다. 하지만 당시의 정치적 현실은 민중들의 삶을 도외시한 채 정치인들이 붕당을 이루어 권력투쟁에 골몰하였고, 19세기에는 왕실과 결탁한 몇몇 가문들에 권력이 집중되는 이른바 '세도정치'가 펼쳐졌다.
정조가 갑자기 죽고 나서, 어린 순조를 업고서 등장한 노론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은 반대 정파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이용하였다. 정약용의 형제들이 천주교를 믿고 있었기에, 그 역시 정치 투쟁의 희생물이 되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정약용은 유배지인 전라도 강진에서 학정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모습을 목도했고, 민중들의 비참한 현실을 한시를 비롯한 다양한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다. <목민심서>라는 이 책 역시 유배지에서 바람직한 정치인의 상을 그리면서 저술한 것이다. 아마도 당시 현실을 목도하면서 정약용은 바람직한 지방관의 자세를 생각하고, 어쩌면 시행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관리들의 매뉴얼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관리의 부임부터 퇴임에 이르기까지의 세세한 내용을 서술한 <목민심서>가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역주 목민심서>의 2권은 크게 3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임 이후 자신이 다스려야 할 고장에서 백성들을 대하는 수령의 자세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먼저 ‘제4부 애민 6조’에서는 수령으로서 백성들을 사랑하는 자세를 6가지 조목으로 정리하였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노인을 봉양함’과 ‘어린이를 보살핌’, 그리고 ‘빈궁한 자를 구제함’과 ‘상을 당한 자를 도움’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을 보살필 것을 우선적으로 수령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병자를 돌봄’과 ‘재난을 구함’의 항목에서도 병이 들거나 재난을 당해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방 수령의 보조적 존재로서의 아전들을 관리하는 것 역시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제5부 이전 6조’는 관청의 말단 관리인 아전들에 대한 사항을 담고 있다. ‘아전 단속’과 ‘아전들을 통솔함’에서는 수령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꾸려나가기 위해 아전들을 단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밖에도 ‘사람 쓰기’와 ‘인재 추천’의 항목에서 아전을 선발하는 기준과 요령 등을 설명하고, ‘물정을 살핌’과 ‘고과제도’ 등을 통해 아전들을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서 숙고할 것을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 ‘제6부 호전 6조’는 수령의 정책과 세금을 거두는 방식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2권에서는 그 가운데 두 번째 항목까지만 다루고 있다. ‘전정’은 농업이 기본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가장 중심에 두었던 정책을 어떻게 시샣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매우 세세하게 논하고 있다. 여기에 ‘세법 상‧하’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방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정약용은 유배지인 강진에서 아전들의 농간에 놀아나며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당한 세금이 민중들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직접 목격했다. 그러한 현실은 비단 강진뿐만이 아니고, 조선의 영토 전역에 걸쳐 조선 후기 내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정치가 시행될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령의 정책과 세금을 거두는 것에 대한 정약용은 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인식이 <목민심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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