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골, 문순태, 정음사, 1985.
1950년의 한국전쟁은 민족이 남과 복으로 갈려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밀어야만 했던 비운의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지리산은 이른바 빨치산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으로, 이를 소탕하려는 군과 경찰이 투입되어 한동안 치열한 전장이 되었던 지역이었다. 한국전쟁 이전 ‘여순사건’(1947) 당시에도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이 전개되었기에, 전쟁이 시작되면서 한동안 소강상태에 머물러있던 대결 구도가 더욱 치열하게 타올랐다고 할 수 있다. 문순태의 소설 <피아골>은 지리산 자락의 한적한 마을이었던 피아골을 배경으로,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으로부터 비롯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각각 ‘딸의 이야기’와 ‘아버지의 이야기’로 구분하여 전개되고 있다.
이 작품은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과 지리산을 떠났다가도 지리산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내용은 “태어나서부터 열두 살 되던 해 가을까지 연곡사 골짜기에서 살았”던 만화가 “18년 만에,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인 피아골을 찾아가는 장면으로부터 ‘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향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들과 그 후일담이 서술되면서, 만화의 어린 시절과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소개되기도 한다.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된 할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그녀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사는 동안 ‘할머니처럼 무당이 되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늘상 가슴에 품고 살았던 것이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그녀는 끝내 서울을 떠나 ‘자기 존재의 근원’인 피아골로 돌아왔던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자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산사람으로 지내야 했으며, 어머니와 아내(지숙)를 보호하기 위해 산에서 내려온 이후 ‘자수한 공비가 되어’ 빨치산의 소탕 작전에 참여했던 배달수의 사연이 ‘아버지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만화의 아버지인 달수는 전쟁 기간 동안 ‘사람을 죽이고 살아남아 행복을 누린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족들 곁에 머물지 못하고 지리산을 떠돌며 지내는 인물이다. 가족들을 남기고 다시 산으로 돌아간 달수로 인해 아내 지숙과 딸 만화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야만 했으며, 어머니의 재혼으로 만화는 그동안 고향을 떠나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은 과거를 잊고 “죽어서도 피아골의 새가 되고 싶”다는 달수의 사연이 소개되면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 탐문하면서 자신의 내력을 알아가는 만화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작품은 결말을 맞이한다.
남편과 서울을 떠나 고향인 피아골로 돌아온 만화의 귀환은 ‘자기 자신에게로의 귀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자신과 어비지의 과거를 알고 있는 설월스님을 비롯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비로소 ‘자기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아울러 기자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피아골에서 벌어졌던 비극적인 상황을 알게 되고, 무당으로 살아야 했던 할머니의 삶까지도 온전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달수와 만화에게 ‘피아골’은 결코 지울 수 없는 공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장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누구에게나 꽁꽁 감추어두고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부끄러운 과거마저 긍정하면서 마음으로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음을 깨우치는 내용의 작품이라고 이해된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