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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성 청소년들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규범과 습속을 몸소 겪으면서 느꼈던 바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자신의 솔직한 생각들을 모아 엮은 글들로 구성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그동안 무지했던 여성 청소년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청소년 여성 x 여성주의’라는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다수가 집필에 참여한 이 책의 저자들은 어떤 계기로든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일상적이고 복합적인 차별’에 대한 고민들을 글로 풀어냈다. 어쩌면 기존의 습속에 익숙했던 시각에서 보자면, 이들의 글은 자못 도발적이고 파격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된 인격체로서 ‘여성으로, 청소년으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그 실상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만 한다.
우리 사회는 ‘여성이기 때문에, 그리고 청소년이기 때문에’ 동일한 현상을 다르게 평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대 남성 남성들에게는 특별하지 않게 다루어는 ‘자위’라는 문제가 여성 청소년들에게는 일종의 금기시되는 현상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성적 욕구는 누구에게든지 있는 현상이며, 그것을 숨긴다고 해서 없는 것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시간에 이른바 ‘순결’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도 결코 올바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여성들의 수동적인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남성/여성’이라는 구별을 배제하고, 각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여성으로 길러진, 청소년으로 살아온 이들의 경험담’을 통해서,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이 책은 모두 4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여성으로 길러지다’는 남성중심적인 사고가 지배했던 우리 사회의 습속들을 여성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고백하고 있다. 단지 이론이 아닌 청소년들이 직접 겪었던 진술들을 접하면서, 성차별적인 문화와 습속이 우리 사회에 얼마만큼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여성 청소년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여자다움’을 강조하는 이른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강요받아온 현실에 대한 고백들이 소개되어 있다. 얼마 전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가르쳤다고, 이를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것을 비난했던 이들의 논지에는 정작 왜 그것이 문제인지에 대한 반론은 보이지 않고, 단지 ‘페미니즘은 아이들에게 위험하다’는 공허한 외침과 비논리적인 비약만이 가득했을 뿐이다. 이처럼 그동안의 우리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성차별을 바로 잡으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가해자의 입장을 우선하고 강자인 남성들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목소리가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생리’를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위험하거나 조심해야 하는 일로 인식되는 인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성들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사람들의 습속에 맞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는 내용이 특히 더 공감이 되었다. 또한 여성들의 욕망을 긍정할 필요가 있으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가정 내의 폭력은 인격을 해치는 행위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어쩌면 부모들의 ‘너를 위해서’라는 수식어는, 오히려 자식이 부모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을 숨기기 위한 명분일 수도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부모의 입장이라면, 진지하게 자신과 자식과의 관계가 진정 평등하고 건강한가를 따져보기를 권유한다.
‘2부, 학교는 차별을 가르치는가’에서는 학교 교육에서 재생산되고, 더욱 확고해지는 성차별적인 습속들의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엄격한 규제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보수적인 ‘학칙’의 문제는 비단 남학생과 여학생을 구별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여학생들에게 더욱 엄격하게 작동하는 규제와 억압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벗어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그들을 그저 ‘낙오자’로 취급하는 것은 결코 옳다고 할 수 없다. 여전히 요원한 문제라고 여겨지지만, 이제는 학교 교육의 방향과 목표가 21세기에 맞게 재설정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취업이라는 목표를 위해 여학생들의 외모와 ‘스펙’이 학교에 의해 관리되는 특성화고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고, 드러난 성적으로 남학생과 여학생들의 성별 차이를 강조하는 풍토에 대해서도 따끔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또한 자신이 ‘성소수자’인 것을 학교에서 애써 감추어야만 하는 현실이나, 남학생과 여학생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차별적으로 대하는 학교와 교사들의 인식을 꼬집기도 한다. 특히 2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여성 혐오’에 대해서 비판하는 남학생 필자들의 글이었다. 어쩌면 그들의 글에 드러난 현실은 일견 피상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남학생들이 페미니즘을 통하여 남성중심적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는 남학생 일반의 무지를 깨우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과 학교를 벗어나 생활하는 여성 청소년들이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경제적 자립의 문제일 것이다. ‘3부,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에서는 탈 가정 청소년들이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꼈던 문제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 흡연이나, 사회에서 쉽게 부딪히는 여성 청소년들에 대한 언어폭력, 그리고 피임에 실패해서 임신 중절을 겪어야 했던 이들의 사연이 다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그동안 기성세대가 애써 눈감고 무시하고자 했던 주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이미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면, 이제는 그들의 처지에서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마지막 ‘4부, 당신들의 ‘소녀’, 그 너머’에서는 가정이나 학교와 달리, 우리 사회에서 ‘소녀’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컨대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에게 ‘딸과 여학생’에 대한 시각과, 그들과 비슷한 연령대의 ‘걸그룹’에 대한 시각은 결코 동일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밖에도 한국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자 어린이’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2016년 ‘촛불소녀’들을 하나의 주체가 아닌 보조적인 존재로 소비하고자 했던 일각의 인식들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은 이론만이 아닌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더욱 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나 역시 이 책에서 제기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여전히 잘 알지 못했던 것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특권인 양 여성 청소년들에 대해 도덕적 훈계를 늘어놓기보다는, 그들의 심리나 행동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기성세대이자 남성인 나로서는 여전히 페미니즘의 문제는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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