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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 돌아가는 길”
50일간의 오전 수행
나에게 문득 찾아온 아이들과 오전 수행이 벌써 며칠 남지 않았다. 그동안 나한테 스스로 부탁한 것이 “고요히, 깨달음, 집중하기” 세 가지였고, 열매반에 있는 내 아이가 부탁한 것은 “함부로 나서지 않기”였다. “소리 없이 내 호흡만 알아차리고 가자”라는 기도와 시작된 나의 50일은 일주일 동안 신난다와 밥모심까지 준비 기간을 거치는 동안 아이들의 배움터에서의 동선과 관계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기를 묵묵히 받아드리기를 기도했다.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이 나의 성격을 건드리기도 했지만, 매주 토요일 명상 때 배운 자비심 명상과 소리, 생각 명상은 큰 도움을 받았다.
월요일 신난다와 순례자들 배웅을 하고 처음으로 나선 용산 길게 걷기를 하던 중 말벌에 쏘여 119를 타는 드라마틱한 영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첫 발걸음이 말벌에 쏘이는 경험을 한 나는, 2주를 치료로 꼬박 견뎌야 했다. 아픔과 가려움은 또 다른 명상의 주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리 2주를 지내고 마침내 오롯이 아이들과 아침걷기를 시작한 그날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풍경과 완전 다른 가을 햇살과 바다, 들판이었다. 바람을 타고 벼 익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도 맞추며 배움터로 들어오면 9시 45분, 전체 아침열기 시간에 둘러앉아 두더지가 울리는 띵샤 소리에 마치 한 형제, 자매를 느끼듯이 서로의 손을 잡으며 명상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학년별 시 낭독, 가슴에 손을 올리고 정성스럽게 읊고, 가을에 대한 노래를 같이 부른다. 서로 알아야 할 소식을 공유하고, 마무리 기도로 마치며 “나는 (우리는) 사랑어린 사람입니다.” 하며 인사합니다. 각 교실로 들어가면 잎새, 꽃잎, 열매는 두더지와 어머니교사들과 함께 하는 이야기가 곁들인 아침인사를 눈 맞추며 손을 꼭 잡고 합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인사는 “너는 사랑이야.” “나는 참 사랑이야.” 이 인사를 아기 예수님들 한분 한분께 하며 스스로 감격스러워 했다. 그 후, 잎새 꽃잎과 열매는 요일별로 나누어지는 수업을 시작한다.
나는 관옥 할아버지와 마음공부, 두더지와 잠언 경전을 같이 했다. 마음으로 많이 울었던 시간이었고, 내가 애 이곳에 와있는지 다시 한 번 알게끔 해준 시간들이었다. 열매반 엄마로 내 아이들 이 학교, 배움터에 보내지만, 어떻게 지내며, 뭘 배우는지 관심도 없었던 나는, 우리 아이가 무얼 배우며 지내는지 같이 느끼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 배움터의 철학과 방향이 가정에 돌아간 내 아이한테 미칠 영향과 나와의 (엄마) 관계를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할아버지께서 “자존심이 무어냐?” 했을 때 아이들 반응이나 내 대답은 똑같았다. “무시당하는 게 기분 나쁜 거요.” 할아버지 대답은 달랐다. “자존심은 날 높이고 존중해주는 거야. 남이 널 무시하면 넌 ‘난 무시하지 않을거야.’ 이 마음이 널 지켜주는 자존심이야. 남이 널 때리면 ‘난 때리지 않을 거야.’ 하는 게 널 높이는 거야.” 가히 충격적인 대답이다. 이런 배움이 있는 곳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그 아이를 가정에서 맞이하는 나는 ‘자존심을 얼마나 세워줬을까’ 하는 질문이 든다.
요즘 아이들은 윤동주의 서시를 읊고 대학 전문을 외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모든 물건엔 뿌리와 가지가 있고, 모든 사물엔 처음과 나중이 있고, 모든 일에는 앞과 뒤가 있는지 알면, 너의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배웠던 배움과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단 한 가지 있다면... 사랑어린 기도 밖에.
두더지랑 같이 하는 잠언은 비단 기독교 서적이 아니다. 웃어른들의 타이름을 쓴 건데, 우리 아이들은 바르게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쉽지 않는 작업이다. 유독 듣고 말하는 것이 되지 않는다. 그리 훈련되지 않고 요즘 아이들이 정말 심하다. 내 가정에서부터라도 잘 들어주고 말하면 스며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 배움터 아이들은 잘 걷고, 허리를 반듯이 세우면서 명상하고, 손과 등을 이용해 일하며, 어르신들의 타이름을 잘 듣고, 밥 잘 먹고, 똥 잘 싸며 이 모든 게 한데 어울려 잘 놀면서 크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다만 모를 뿐이다. 보지 못할 뿐이다.
40일의 선물
천지인 아이들이 우여곡절을 겪고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이 과정에 많은 이야기와 선물들이 있었지요.
그렇게 천지인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순례길에 오르고 날마다 새로운 날, 새로운 선물들을 받으며 40일의 순례자로 태어나고 있지요.
배움터에는 초등친구들과 어머니교사, 관옥할아버지, 할머니, 두더지와 두 명의 배움지기가 함께 어울려 놀고 있지요.
어머니교사 모임을 하면서
순례자들은 여기서 잘 살기 위해 자신의 길을 걷고 돌아온다. 지금 여기 있는 우리가 잘 살아야 될 것이다. 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어머니교사들이 한 수업에 한두 분 같이 들어가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40여일이 지나면 이것이 무슨 선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배움터에 있는 나는 어떤 배움(선물)이 기다리고 있을까?
미리 걱정 없이 일상을 일상대로 잘 살아가는 것 – 태어날 때 이미 모든 것은 다 갖추어져있다는 것(노자의 ‘하늘은 성기나 빈틈이 없다’)을 알았네요. 낡은 버릇대로 생각대로 빈자리를 탓하지 않고 내가 메꾸겠다는 생각 없이 우리에게 주어져있는 것을 깨어 잘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빈틈없이 보이고 준비해 놓았다는 것이지요. 그 예로 관옥 할아버지와 4.5.6학년 아이들과의 만남은 참 깊은 배움을 가져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교사와 아이들의 만남도 그러하지요.
때로는 까닭 없이 퍼붓는 우박이라도 그냥 받아서 삼키는 거야. 그것이 곰보가 안 되는 비결이야 옹달샘이 나에게 준 이야기입니다. - 나에게 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정성스럽게(하는 만큼) 해 보았습니다. 옛 버릇으로는 걱정만 늘어졌지요. -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도 때론 내 기준으로 판단했던 아이들이 새롭게 보여지고 달라져 보입니다.
한 사람이 깨어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한 번의 빛으로 천년의 어둠을 물러가게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중심을 잃지 않고 깨어있으면 그 중심을 향해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자연의 법칙이고 물리이지요. 관옥선생님, 두더지 그리고 어머니교사들이 중심을 잘 유지하고 있어 순례자들이 되돌아와 여기를 잘 살 수 있는 힘을 가져낼 수 있을 듯합니다.
‘배움터가 왜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는 집’인지를 고개 끄덕이며 알았습니다.
어머니교사들과의 지속적인 만남과 이야기 그리고 점점 솔직해지는 이야기 과정 속에 서로가 성숙해지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함께 어울려야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불어 가정과 배움터 교육의 연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왜 자꾸 만나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네요.
나를 제대로 보는 시간이기도 했지요. 하늘에와 밀착된 생활을 하다 보니 맨살을 다 드러내고 있더군요. 덕분에 친해졌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았지요. 또 하나는 아이들 뿐 아니라 내가 학생이라는 사실을 자주자주 잊어버리고 살구나 싶네요. 스승을 모시고 스승의 가르침대로 살아보자고 했으나 옆에 있는 스승을 두고도 고민이나 질문을 혼자서 해결하려는 못된 습성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배움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책임지려고 크게 간섭하려는 내 모습을 보았어요.
할 수 있는 일은 현존하는 것.
깨어있도록 하는 것.
다른 도리가 없네요.
그래도 당신들 덕으로 40일 순례 마무리 합니다.
고맙습니다.
40일의 선물
40일의 나날을 되돌아보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는 집’이었습니다.
배움터의 하루는 시작과 마무리까지 왁자지껄! 서로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들과 배움이 오고 가는 곳이 배움터입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항상 이야기 해줍니다.
“지구별에서 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단다. 자연과 동식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지. 배움터도 같아. 배움터는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는 집이야.’ 어느 누구라도 빠짐없이 놀고, 문제가 생기면 같이 이야기해서 풀어가는 곳이지. 그렇게 놀면서 크는 거야.”
어머니 교사모임을 비롯하여 40일 동안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는 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함께 라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가정도 ‘함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가정과 학교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다른 모임에서도 여러 차례 말해왔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는 것인가에 대해는 간과했었습니다. 겉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어머니교사 모임을 통해서 사랑어린 습관, 교육 철학에 대해 공유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제적인 부분을 알게 되었고,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대화가 깊어졌습니다.
대화가 깊어지면서 ‘내’가 보였습니다. 나부터 사랑어린 습관, 교육철학에 대해 잘 이해하고 실천해야 함을, 학교에서는 배움지기, 가정에서는 부모님이 먼저 몸소 실천해야 하는 것을, 어른이 먼저 실천해야 아이들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40일간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사랑어린 배움터가 지향하고자 하는 지점으로 천천히 가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정과 학교가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는 함께 대화를 더욱 깊게 나눠야 할 부분입니다. 40일간의 선물이 지속되고 확장되어 사랑어린 식구들에게 빛으로 골고루 뿌려지길 마음 모읍니다.
40일의 선물
설렘 반 부담 반으로 가볍게 시작한 순례.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 고학년으로 갈수록 자기표현이 상당히 거칠고 공격적인 모습(특히 약자에게),
불성실함과 그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모습,
자신에게 이득이 없으면 남을 위해 어떤 것도 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고 놀랐었다.
몇 년간 사랑어린 교육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왜 이럴까?
부모들은 아이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나?
무관심한 걸까? 혹시 알고도 회피하는 걸까?
그렇다면 왜? 가정에서는 어떤 교육이 이뤄지고 있나?
나는 아이를 제대로 보고 있나? 그런 눈은 있나? 올바른 소리를 들을 귀는 있나?
결국 저 아이들은 우리의, 나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것인데,
부모로써, 어머니교사로써, 한 인간으로써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질문이 들었고,
우선은 내가 진짜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부터 밥모심기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충 하고, 그것도 안하려던 아이가 채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내가 깜빡하고 한 숟가락을 뜨니
씨익 웃으며 밥모심 기도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순간 부끄러움과 고마움과 나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4년간 배움터를 오가며 생겼던, 하지만 회피했던 질문과 고민들을 마주 할 수 있었던 고마운 시간이었다.
40일간의 선물
1. 배움터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의 하루 흐름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흐름 속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배우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생활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고, 눈을 마주보며 손을 잡고 아침열기를 하면서 아이들과 마음으로 더 친근함을 느끼고, 자주 보면 정든다고 아이들이 참 예쁩니다.
2. 배움터에서 일어나는 일에 있어서 예전에는 ‘설마 내 아이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서 이제는 ‘내 아이일 수도 있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이고 세밀하게 아이를 보려 하고 있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회피하고 외면하기 보다는 직면해 보려 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꼭 해주어야 하는 말조차 하지 않고 내버려두지는 않고 있는지 내 자신을 돌아보고, 또 나와 내 아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봐야겠다고 느꼈습니다.
3. 배움터에서의 배움과 우리 집에서의 생활에 있어서 간극(Gap)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았고, 배움터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자 집에서도 하나씩 해보고 있습니다. 특히, 기도를요..
밥모심 기도는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밥모심 전에 정신 차려 기도하면서 잠깐이라도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자는 몸짓으로 다가오면서 집에서도 기분 좋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가 건강하고 바르게 품이 넓은 사람으로, 사랑 가득한 아이로 자라길 염원하며 잠든 아이들 머리에 손을 살포시 올리고 기도할 수 있게 노력 중입니다. 전엔 ‘기도’라는 단어에 어색함과 반하는 감정을 느끼곤 하였는데,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서 배움터의 배움을 잘 가지고 갈 수 있는 일 중의 하나이겠다 싶어 마음을 열고 해보니, 그 누구보다도 저에게 좋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잠깐의 시간이 저를 평화롭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해주거든요.
이것이 약 40여 일 동안 배움터에서 지내면서 저에게 온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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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주 정성이 들어간거 같아요.도와주신 어머니교사들 고맙습니다.
(예온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