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앙골2011-01-27 조회수 1410
내가 아홉살 까지 산 내 고향은 백호가 조금 넘는 일선(선산)김씨 집성촌이었다.
집성촌으로서는 꽤 큰 규모의 동네여서 섣달 그믐날이면 왁자지껄 동네가 들썩인다.
그믐날 밤이면 부엌에도 등불을 달고 대청에도, 마당을 질러 뒷간까지 등불을 밝히고
대청앞 벽에는 체도 걸어 놓는다.
야광귀가 신발을 훔쳐가면 일년 내내 재수가 없다고~~
쳇구멍을 세다가 세다가 날이 밝으면 그냥 달아 나라고....
그래서 신발은 다 웃목에 들여 놓아 둔다.
우리동네 묵은 세배는 다른 곳과 조금 차이가 있었다.
동네 한 가운데 취수정이라는 정각이 있고 그곳이 옛날엔 아이들 서당으로
쓰였다는데 그때 비워 있었고 그믐날 낮에 동네 청년들이 모여서
대청소를 하고 군불을 넉넉히 넣어 두면 저녁에는 회갑을 넘긴 어른들이
다 함께 모여서 서로 항렬 따라 묵은 세배 드리고
아낙들이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밤을 밝히셨다.
며칠전 부터 어머니는 이웃과 의논해서 그믐날 묵은 세배에 가져갈 음식을 준비한다.
몇집은 어울러 골동반 준비하고 묵을 준비하는 집, 울 엄마는 식헤를 담당했다.
그해 그믐날은 며칠 째 내린 눈이 얼어 붙어 미끄러웠는데
저녁 11시쯤 식혜 한동이를 이고 묵은 세배를 드리러 갔다가 미끄러져서
동이째 깨어먹고 엉덩방아를 심하게 찧어 좌골을 다치셨는데
두고 두고 고질병이 되었었다.
그리고도 새벽이면 또 떡국을 끓여서 자릿 조반을 대신한다.
차례를 지내려면 아무래도 10시는 되어야 아침을 먹기 때문이다.
엄마 세대의 며느리 들의 고달픈 삶의 모습이었다.
설 음식은 마트에 가면 다 살 수 있어 너무 편한 지금도 난 힘이 드는데
섣달에 들어서면 찹쌀 담궈 고두밥 쪄내어 소금물에 헹구워 말려 두었다
모래에 섞어 가마솥에다 볶으면 하얗게 꽃처럼 일어나는 튀밥들~~
이걸로 강정을 묻친다.
찹쌀을 뉘와 뚝쌀과 티를 깨끗이 가려서 일주일이나 열흘을 담가 푹 불려서
유과를 만든다.
가루를 만들어 쪄서 방망이로 짓이겨 꽈리가 생길때까지 치대서 납작한 판을 만들어
넙적한 판유과도 만들고 작은 리본으로 만들어 눈사람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엿 만드는 수고도 물론이다.
고두밥을 엿기름을 넣어 삭혀 건더기는 건져내고 물을 달여 조청을 만들었고,
더 고와서 진득한 갱엿이 되면 뜨거운 채로 마주 앉아 잡아 당겨서 하얗게 쓸어 엿가락을 뽑았었다.
난 삭힌 감주 건더기인 엿밥을 무척이나 좋아 했었다.
엄마는 조청을 달인 솥에 엿밥을 넣어 닦아내어 양푼에 담아 숱가락 몇개를 걸쳐 방에 들여놓아주시면,
우리형제 죽 둘러 앉아 달그락 거리면서 신나게 먹어댔었지~~
유과도 만들고 정과도 만들고 약과도 만들어야 했다.
수정과도 물론이고....
설빔은 어머니의 농밑에 시집오면서 가져온 명주에 쪽빛 물들이고 분홍 물들여
풀먹여 홍두깨입혀 다듬이 곱게 해서 밤이면 등잔불 밑에서 한복 지어 입혀 주셨다.
뒤돌아보니~~
너무 멀리 온 이시점에서 아득한 저 너머에 그리운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고,
눈물없이는 생각도 못하는 그곳엔 아버지가 계셨었네~~
눈가가 젖어오고 가슴이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