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눈 감으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련하게
떠 오르는 소설속의 멋진 풍경들~~~
황순원의 "소나기"가 그렇고,김유정의 "봄봄"이, 또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등이 그렇습니다.
봉평읍내 개울가를 가로 지르는 섶다리를 훌쩍 건너서
메밀묵과 막국수 한 그릇으로 때늦은 점심을 때우고
칠십리길 대화면의 아담하고 예쁜 성당을 찾아가는길,
잘 포장된 시골길에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눈 깜빡할
사이 도착하고 말지요.
그런데, 저는 내내 허생원과 동이가 무거운 침묵 속에
함께 걸었었던 메밀꽃 하얗게 핀 칠십리 밤길이 생각
났습니다.
보름을 갓지난 산길은 서커멓게 산허리에 걸려 있고,
장돌뱅이 허생원은 조선달, 동이랑 칠십리 산길을
걸어서 대화 장터로 향하고 있었다.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고,벌판과 산길을 걷는 밤길.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듯 하고, 콩포기
옥수수 잎새는 달빛에 젖어 푸르게 빛나고 있었으며,
산허리에 걸려있는 메밀밭은 마치 소금을 흩뿌려
놓은듯 흐붓한 달빛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동이가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허생원의 야릇한
심리적인 복선과, 달밤에 새하얗게 피어있는 메밀밭의
풍경들이 한폭의 풍경화가 되고, 산길 적막을 깨면서
앞서가는 나귀의 워낭 소리가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한국적인 서정이 흐르고 따뜻한 인간미가 배어있는
아름다운 이효석님의 《메밀꽃 필 무렵》이 많이
생각나는 여행길 이었습니다.
( 15×10cm,중목,수채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