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단어는 추상명사다. 하지만 우리는 대략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고, 어떤 종류의 사랑이 있으며 때로는 지나친 사랑이 어느 정도로 인간관계를 해칠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있다. 살면서 그만큼 사랑 경험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사랑’자리에 ’자유‘를 가져다 놓아보자. 동일한 추상명사다.
여러분은 자유가 무엇이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고, 어떤 때 절제해야 하는지 잘 아시겠는가.
고개를 갸웃할 거다. 우리는 자유로운 시민이지만 실제 생활 세계에서 오롯이 자유를 경험한 적이 별로 없다.
호흡은 공기가 있다는 게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처럼 교육은 자유의 보장 아래 이뤄지는 인간 행동이다. 학습자의 자유를 빼앗고 교육만 취하려는 행위를 ’교화, indoctrination) 라고 부른다.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정녕 다음 세대를 ‘교육’하고 있는 게 맞을까?
한국 사람들은 ‘자유’라 써놓고 속마음으로 ‘위험하다’ 아니면 ‘방만하다’ 쯤으로 읽는다. 때로는 인식의 저 밑바닥에서 자유를 두려워하거나, 효율적이지 않다며 남몰래 힐난한다. 영어에서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자유freedom와 속박에서 해방된다는 뜻을 가진 자유liberty가 구분되어 있는데, 한국어는 그렇게 용어가 분화되어 있지 않기에 그 뜻을 올바로 새기기가 더 어렵다.
아이를 키울 때는 실패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유롭게 놓아두는 용기가 교사와 양육자 모두에게 필요하다. 가능하면 실패나 위험에 대한 위기 인식을 아이들과 청소년이 직접 느낄수록 더 좋다. 교육하는 일은 보험 설계와 다르다. 보험은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성을 여러 갈래로 분산해 리스크가 닥쳤을 때 부담을 최소화하는 제도다. 반면 교육은 다음 세대가 어려운 리스크와 맞대면함으로써 존재 자체를 새로운 단계로 고양하도록 부추기는 과업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창조적인 개별자가 된다. 원래 사람들은 분별없이 다른 이를 따라가는 습성이 있다. 그것을 거스를 줄 알아야 스스로 존재하는 힘이 생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말한다.
“ 개별성이 없는 삶은 ’모래를 씹는 맛’처럼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 제천간디학교 교장 이병곤의 교육에세이 중에서 -
첫댓글 freedom. liberty .
처음 부모노릇, 부모 연습이 학습없는 부모노릇의 시행착오에 ,, 저는 2001년 아들이 군입대후
기억을 더듬어
미안하다는 편지를 여러 통ㅡ
기억을 더듬어 ㅡ
엄마가 알아내지 못한 실수까지 용서하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