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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산열도의 선유도를 찾아서
다시 맞이한 10월의 마지막 날!
몇 해 전 10월의 마지막 밤에 ‘007작전’을 펼치듯이 뜻이 맞는 동료들과 강촌으로 ‘잊혀진 계절’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읊조리며 떠났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가보지 않은 우리 땅 그곳 선유도를 밟아본다는 그 하나 때문에,
그저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그 하나 때문인지 모두들 여유로워 보였다.
하필이면 섬으로 단합대회를 떠나는데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야속하기만 했다.
모든 것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싶어 날씨에 상관하지 말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있는 현상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했다. 우의와 우산을 준비해가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이것들이 사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집을 나섰다.
집합장소인 용산역에 도착하니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서둘러 오다보니 너무 일찍 도착한 것이다. 일본에서 신칸센은 타보았지만 KTX는 처음 이용해보기에 조금은 설레었다. 갑작스런 사정으로 참석치 못한 직원들의 몫까지 재미있게 놀다 와야 한다는 의무감 아닌 의무감을 KTX에 싣고 1차 목적지인 익산으로 향했다.
숱한 조잘거림 속에 서대전역에 들렀다가 다시 역구내를 빠져나갈 즈음 하늘은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차창에 기대어 가을 풍경을 음미하다가 조용해서 돌아보니 모두들 아침 일찍 나오느라 잠이 부족했던지 비슷한 자세로 잠이 들어 있었다. 모든 것을 맡기고 편히 잠을 잘 수 있다는 것 또한 작은 행복이 아닐까.
생각지 않은 새털구름이 반기는 멋진 현대식 역사를 쳐다보니 문득 30년이란 세월이 흘러 기억 속에 가물거리던 ‘이리역 폭발사고’가 떠올랐다. 이번 여행을 끝내고 다음에 이곳을 다시 들렀을 땐 오늘 여행으로 인해 이곳이 가슴 아픈 나쁜 기억으로서가 아닌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의 장소로 남아주기를 바라며 기다리던 버스에 올랐다.
익산 시내를 벗어나 작년 봄에 신시도 대각산 종주를 위해 지나쳤던 낯익은 군장공단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직은 입주기업이 적어 한량한 공단이지만 이곳 군산시의 새로운 자랑이 될 새만금 방조제와 함께 서해안시대를 이끌어갈 커다란 디딤돌이 될 것임을 확신해 본다.
비응항 선착장에 도착하니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승선하자마자 출항을 했다. 이때다. 어디서 들려오는 디스코 장을 방불케 하는 소리에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노랫가락에 맞추어 단체 손님들이 한잔 걸친 듯한 표정으로 흥겁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역시 남도라 노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다.
빨간 등대가 마중하는 방파제아래에선 낚시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으며 햇살이 간간이 비치는 선창에선 관광객이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에 보답이라도 하듯 갈매기가 본격적인 재롱을 부렸다. 세찬 바람과 배의 속도를 날갯짓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따라잡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데 더더욱 신기한 것은 그 작은 눈, 조그마한 부리로 냉큼 냉큼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이 과히 상상을 초월하였다. 이따금 바다에 떨어진 것을 찾기 위해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 또한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쉼 없이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니 문득 '살아있음의 감사함'이 전해져왔다. 바라보이는 바다가 나를 향해 우리들을 향해 역동하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선두에서 끌고 선미에선 갈매기가 호위하는 가운데 하나씩 고군산열도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망망대해에 두둥실 떠있는 것 같은 올망졸망한 섬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안내원이 하나 둘 설명을 시작했다. 거북이 형상의 거북바위, 마치 떡시루처럼 생겼다하여 시루바위, 독립문을 닮았다하는 독립문 바위에 이어 가마오지의 배설물이 쌓여 하얗게 변색한 바위가 출몰하더니 바다 한 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바위섬을 터 잡아 사는 소나무군락이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거북바위)
(시루바위)
(독립문 바위)
16개의 유인도를 포함하여 63개나 된다는 고군산군도의 섬사이를 터널처럼 빠져나가자 눈앞에 빨갛게 치장한 선유대교와 선유도의 자랑인 망주봉 그리고 선착장이 나타났다. 선착장에 내려 하늘을 쳐다보니 잔잔한 수면처럼 하늘이 고요하기만 했다. 청명한 가을 날씨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이 섬을 떠날 때까진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았다.
중고 골프장 카트가 모두 이곳에 모인 것일까. 작은 도로를 누비는 것 대부분이 골프장 카트를 개조한 차와 자전거였다. 유난히도 바닷물이 맑아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식당으로의 이동을 위해 카트를 이용했는데 서로의 얼굴이 맞닿을 정도의 좁은 공간임에도 모두들 새로운 경험에 만족한 얼굴이었다.
미리 예약해 놓은 '바다여행 식당 횟집'의 사위라는 운전기사는 여느 섬의 육로관광시의 기사처럼 망주봉과 평사낙안 등 선유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는데 갑자기 파출소와 우체국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잠시만요, 이곳이 관공서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라 서울같으면 명동 같은 선유도 명동입이다."라 하였다. 모두들 하나같이 웃음꽃을 터트렸다.
선유도에 도착하기 전 섬 근처에 부표등이 떠있어 가두리양식을 하는 것 같아 식사를 하면서 살짝 물어보았더니 이곳 수족관의 고기는 대부분 낚시를 해서 잡았거나 배에서 잡은 것이란다. 그러기에 조금 전에 가두리양식장이 있더라고 하였더니만 모두 김양식장이라 하였다.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다.
일분일초라도 아깝다는 생각에 잠시 '선유도해수욕장'에 들렀다. 텅 빈 모래사장에 속에 숨어버린 수많은 발자국을 그려보는데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망주봉이 어서 오라 손을 흔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를 향해 반갑다는 듯이 달려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바닷물에 손을 넣으니 생각보단 차갑지 않았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솔직한 심정으로 바닷물 속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래서 진정으로 선유도와 하나가 되고 싶었다. 결코 작지 않으면서도 멋진 주변 환경을 감싸고 있는 해수욕장이지만 이곳 또한 개발의 아픔을 몸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망주봉까지 인위적으로 만든 도로 때문에 모래언덕이 만들고 지고 있었다. 자연이 정답을 가지고 있는데.... 좌우로 해수면의 높이가 다른 기이한 현상을 뒤로하고 우선 무녀도 여행에 나섰다.
선유도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각각 하나씩 있다는데 놀랍게도 학생16명에 교사가 17명이란다. 어쩌면 모두들 일대일로 가정교사에게서 수업을 받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이 조그만 섬에도 제비가 찾아왔다는데 제비의 센스가 보통이 아니란다. 이유인즉 숱한 집들 중에서 하필이면 하나밖에 없는 보건소에 집터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다칠 때를 대비해서 일까. 콘크리트 벽에 지어진 제비집을 조용히 사진기에 담았다. 섬길 같지 않게 코스모스가 만발한 오솔길 같은 통계 마을가는 길섶에 연리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절실한 사랑을 했으면 말 못하는 나무 둘이 하나가 되었을까.
반들반들한 자갈이 유혹하는 몽돌해수욕장과 선유봉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무녀들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는 무녀도로 향했다.
무녀도의 유래는 무녀봉 앞에 장구모양의 장구섬과 그 옆에 술잔모양의 섬이 있어 무당이 굿을 할 때 너울너울 춤을 추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일반 승용차가 다니기에는 역부족인 무녀교를 지나자 이곳만의 장례풍습인 '초분'을 설명해 놓은 안내판이 눈에 띄었는데 1970년대까지도 초분형식의 장례풍습이 있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무녀도는 섬인데도 마을로 들어가자 섬 같지 않게 넓은 평지로 이루어져 육지와 같았으며 억새와 갈대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기대하지 않게 살짝살짝 비춘 가을햇살이 한 몫을 했다. 민둥산억새에는 비길 바 아니지만 억새와 갈대가 한곳에 어우러진 모습은 또 다른 수확이었으며 억새군락지 옆에 '고군산중앙교회'란 현대식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도 벼농사를 먹을 만큼은 지었다는데 지금은 관광 및 어업에 종사하느라 벼농사는 짓지 않는다 한다.
억새 둑방으로 단장된 염전을 구경하고 아담하게 지어진 '무녀도 초등학교'를 지나가는데 '한 가지만 잘하면 성공한다.'란 글귀가 눈에 띄었다. 아주 간결하면서도 의미 있는 말을 교훈처럼 걸어놓고 있었다. 이곳 섬조차 어린 새싹들에게 벌써부터 한 분야의 전문가를 꿈꾸게 하고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 때문에 내심 걱정을 했었지만 우리를 위해 하늘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망주봉 등산만 하면 된다.
비가 오는 날이면 7개의 물줄기를 가진 폭포가 생긴다는 망주봉!
최근 들어서는 부엉이바위를 닮았다고도 하는 망주봉!
옛날 이곳으로 유배 온 충신이 한양 땅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하였다는 망주봉은 봉우리 전체가 커다란 2개의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선유도의 상징이기도 하다. 초입부터 걸쳐진 로프가 조금은 위협적이지만 결코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오르면서 뒤돌아온 전경이 과히 압권이었다. 거리가 짧아 한숨에 오르고 나니 망주봉(152m) 정상은 사통팔방으로 막힘이 없는 대 파노라마다.
200M도 채 안 되는 낮은 봉우리가 안겨주는 만족도는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고군산열도를 이루는 섬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이곳 망주봉을 우러러 보고 있는 느낌이었으며 신시도 대각산 전망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래지 않아 신시도와 무녀도가 다리로 연결된다는 소식이 그리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최소한의 개발만이 아름다운 이곳을 지킬 수 있으련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는 평사낙안의 모양이 바다위에 그려놓은 기러기 휘장 같았다.
하산 후 한 번 더 선유도해수욕장을 거닐었는데 곱디고운 모래를 장난감삼아 철썩거리던 파도는 쉼 없이 하얀 포말을 만들어냈다. 철늦은 해당화가 해풍과 싸우느라 지친 듯한 모습으로 반겨주는 모래언덕 아래로 백령도 ‘사곶 천연비행장’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해수욕장이 단단해서 밀려오는 파도 속을 들락거리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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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직접 다녀온듯.. 생생함의 그 자체였습니다...
짞!짞!짝! 생생합니다. 선유도! 글을 읽으면서 제 가슴이 다 설레네요. 밤새워 쓰셨겠네요. 아우, 가고프다. 지점장님 모습이 아주 행복해보여요. 좋은 여행기 고맙습니다.
군생활을 군산에서 보내다보니 매년 여기다녀오곤했는데 너무 아름답죠 글과사진 즐감합니다^^
일몰을 아쉬워 하는 저 갈매기의 몸짓이 내 맘과 같은,,,좋은 곳 다녀오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