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의 힘, 마을호텔(정석)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천천히 재생> 저자
“연결에 답이 있다.” 재생시대를 살면서 늘 마음에 두고 주문 외우듯 되새기는 말이다. 간절한 염원은 내 명함에도 담았다. 이름과 연락처 위에 ‘소다연강미(小多連强美)’ 다섯 한자를 새겨둔 지 오래다. ‘작아도 많고 이어지면 강하고 아름답다’라는 우리말 풀이도 함께 적었다. 에른스트 슈마허가 1973년에 쓴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라는 책 제목을 재생시대 우리 현실에 맞게 고친 것이다. 큰 것들만 살아남는 약육강식 시장경제 틈바구니에서 작은 것들이 아름답기는커녕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의구심이 솟겠지만 다행히도 희망은 있다. 작은 것들을 연결해 강하고 아름답게 되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곳곳에 등장하는 ‘마을호텔’에서 본다.
‘커뮤니티 호텔’ 또는 ‘수평적 호텔’로도 불리는 마을호텔이 늘고 있다. 호텔이라면 보통 도심부의 높고 큰 건물 안에 숙박과 서비스 시설을 갖춘 걸 말한다. 이와 달리 수직적 단일건물이 아닌 마을 안의 여러 건물들이 수평으로 펼쳐져 호텔의 기능을 나누어 맡는 형태를 마을호텔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마을호텔의 원조는 2013년에 서울 서교동에서 시작된 ‘로컬스티치’가 아닐까 싶다. 옛 주택을 리모델링해서 작은 골목호텔을 열고 숙소 가까운 동네 식당과 세탁소, 카페들을 하나로 묶어 서비스를 제공했다. 지금은 호텔보다 공유주거와 공유사무실에 치중하고 있지만 회사 이름처럼 마을의 작은 공간들을 잇고 엮어 지혜롭게 공유하는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마을호텔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공주에 가보시라. 구도심 봉황동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를 중심으로 동네식당, 카페, 사진관, 갤러리, 책방, 공방이 서로 연결되어 찾아온 손님들에게 다채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제민천과 나태주 시인의 ‘풀꽃문학관’, 독특한 한옥카페 ‘루치아의 뜰’도 가까이 있다. 봉황동 자영업자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공부도 하며 마을호텔을 단단히 키울 꿈도 함께 꾼다. 공주만이 아니다. 정선군 고한읍 18번가, 전주시 노송동과 군산시 원도심, 부산시 초량동 이바구길에 찾아가도 반갑게 맞아주는 마을호텔을 만날 수 있다.
소멸 위기의 원도심과 활력을 잃어가는 오래된 동네로 사람을 초대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사람들이 머물고 들른 곳마다 활기를 불어넣는 마을호텔은 도시재생의 묘약이다. 수직으로 쌓아올린 호텔에서 거둔 수익은 본사가 쏙 뽑아가겠지만, 수평으로 펼쳐놓은 마을호텔의 수익은 마을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어 마을과 사람을 키울 것이다.
호텔에 없는 게 마을호텔에는 있다. 호텔에서 맛볼 수 없는 것을 마을호텔에서 만끽할 수 있다. 멋지게 고친 옛집에서 달게 자고 일어나 천천히 걸어 골목길 안 숨은 맛집에서 아침을 먹는다. 사진관 앞을 거닐다 찻집에 들러 강의도 듣고 공방에 가서 손수 무언가를 만든 뒤 동네목욕탕에서 피로를 풀며 추억에 잠긴다. 마을의 역사를 절로 알게 될 것이고, 이사 오고 싶은 마음까지 덤으로 받게 될지 모른다. 하나하나는 비록 작을지라도 연결로 힘을 키워 아름답게 되살아난 마을호텔을 보며 다시 주문을 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