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할매 이야기
1월 탈핵신문 중
“송전탑 싸움 같이했던 우리 마을 ○○ 얼굴 보고 싶어요.”
이 말 한마디에 밀양주민들은 눈물을 훔쳤다. 같이 싸웠던 주민 중에 등 돌린 사람이 많다. “우리가 잘못 싸운 건 아닌가”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송전탑 막겠다고 같이 싸웠던 동네 주민 중 여러 사람이 등 돌렸고 합의금도 받았다. 그러나 아직 100여 명은 합의금 받지 않고 있다.
1월 8일부터 14일까지 열린 ‘밀양 할매할배 부산·울산·경남 그림전시회’는 밀양 투쟁에 연대했던 연대자와 밀양주민에게 특별한 만남이었다. 밀양주민들은 10년 넘게 싸웠지만 송전탑은 들어섰다. 내 땅을 내가 지키고, 내 생명 지키는 행동에 돌아온 것은 마을공동체 파괴와 형사처벌이었다.
끝까지 송전탑 관련 합의금을 받지 않은 밀양주민들은 한국전력 사장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남아있는 주민과 합의한 주민 간의 마을공동체 파괴를 조사하고, 갈등 해소 방안도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이 풀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재산상·건강상 피해를 조사하라는 요구도 들어 있다. 밀양송전탑 투쟁으로 연대자와 밀양주민 68명이 벌금 등 형사 처벌을 받았다. 이 가운데 밀양 주민은 13명이 사면되고 아직 3명은 남아있는 상태다.
밀양 상동면에서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싸운 김영자 씨는 검찰 조사에서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받았다. 담당 검사가 “자식한테 안 부끄럽습니까?”라고 말한 것 때문이다. 김영자 씨는 “부끄러운 짓 안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검사가 한 말은 가슴 아프게 비수로 꽂혔다.
밀양주민들이 최근 힘든 건 고립감이었다. 송전탑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대책위 내부 사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무엇보다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 이후 핵발전소 반대와 송전탑 반대로 연결된 싸움이 잊혀진 것 같았다.
김영순 주민은 전시회에서 “밀양 지지하고 옳다는 연대자가 고맙다. 혼자 있으면서 느꼈던 아픔도 있었는데 오늘 우리를 전시회에 불러준 것이 그 어느 것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고립감을 떨쳐낼 수 있던 자리였다.
“밀양 잊지 않고 불러줘서 고마워요. 우리가 옳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전시장은 밀양 할매할배들에겐 그림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들을 기억하고 지지하는 자리여서 뜻 깊었다.
1월 8일 밀양 할매할배 그림전시 오픈식 행사에는 밀양주민과 청도 삼평리 주민, 연대까지 120여 명이 참석했다. 밀양투쟁 과정부터 지금까지 밀양주민과 함께 ‘밀양 바느질방’을 운영하는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들은 전시장에서 바느질한 작품을 전시하고, 울산의 최수미 활동가는 밀양까지 가서 어르신들을 관광차에 모시고 전시장까지 왔다. 부산·울산 인디밴드 액트는 오프닝 행사에서 노래로 연대했다.
전시 기획단과 밀양주민이 함께 재현한 움막에는 연대자들과 함께 나눠 먹었던 먹을거리와 밀양 어르신들이 짚고 다녔던 나무지팡이, 6·11행정대집행 당시 저항하며 주민들 스스로 묶었던 쇠사슬까지 재현했다. 전시회 기간동안 이 움막에서는 밀양 바느질방 연대자들이 준비한 밀양할매 얼굴 수놓기 체험을 했다.
지난해 9월 밀양송전탑 투쟁 이야기를 할매할배들의 그림으로 담은 <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 책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신고리5·6호기 공론화 이후 말할 곳을 잃은 밀양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 출간과 함께 서울에서 전시회가 진행됐었고 부산에서도 밀양어르신들의 말할 자리를 만들기 위해 전시회를 기획하게 됐다 밀양 할매할배 부울경 그림전시회에는 부울경 지역의 60여 개 단체가 함께 만들었다.
글 : 강언주 통신원(부산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
탈핵신문 2020년 1월(74호)
출처: https://nonukesnews.kr/1707 [탈핵신문]
2019년 12월 10일 뉴스공장 인터뷰 중
“일본에서 1960년대에 발생했었던 미나마타병이라고 아시나요? 그 병을 사진으로 남긴 유진 스미스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부인인 아이린 미오코 스미스 씨가 ‘미나마타병과 후쿠시마 사고에 대응하는 정부와 문제 기업의 10가지 수법’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번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수직적인 조직을 이용한다. 2번 피해자와 여론을 혼란시키고 찬반양론으로 유도한다. 3번 피해자끼리 대립시킨다. 4번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는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5번 계속 시간만 질질 끈다. 6번 피해를 축소하는 조사를 한다. 7번 피해자를 피폐하게 만들고 포기시킨다. 8번 인정 제도를 만들어서 피해자 수를 줄인다. 9번 해외에 정보를 발신하지 않는다. 10번 식자를 모아서 국제회의를 연다. 이렇게 열 가지 수법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 중에 3번, 피해자끼리 대립시킨다는 부분에서 이용을 당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피난을 간 사람들에 대한 미움, 질투, 이런 것이 정부를 향한 게 아니라 그 주변인에게 마음이 향하게 되더라고요.”- 가토 유코
어떤 문제의 원인을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막연히 밀양할머니들이 송전탑 문제로만 힘들었을 거라 생각해왔다. 최근 기사들을 읽다보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지역에서 이웃으로 지내던 이들과 의견이 갈리고 대립하고 등을 돌리게 된 기억을 아파했다. 담당검사가 한 말이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고도 했다. 송전탑으로 건강이 나빠지고 삶의 터전이 없어진 것도 고통스러운 일인데 그것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가 사람들 사이에 미움이 커져 더 고통스럽게 되었다.
최근 우한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에 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보다가 곧 마음을 바꿔 환영의 현수막이 걸리는 기사를 보고 안도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수은 오염에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문제를 은폐하는 동시에 그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이간질 시키고 대립 시켰다고 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하가에 따라, 큰 문제에 처했을 때 함께 해결해나가거나 자포자기 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협력해서 마음을 나누고 위로하면서 지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리 의미 있는 운동이라도 그 뜻을 이어갈 수 없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도 새삼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