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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의미화하는 두 가지 방법
여세주
essaytown@daum.net
1.경험의 재구성, 의미화, 인식
수필은 잡다한 지식이나 번잡한 감정을 전달하는 글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진정한 앎을 얻어가는 과정이 수필 쓰기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타자를 향한 말하기가 아니라 ‘나’를 향한 말하기 형식이다. ‘나’와 ‘자아’의 합일을 기대하면서 ‘나(I)’가 또 하나의 ‘나(me)’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수필 쓰기이다. 결국, 수필을 쓴다는 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고행의 길이다. 인생의 구석진 곳에서 빛바랜 채 사라져가던 삶의 한 조각이 느닷없이 기억을 뚫고 솟아나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내면에까지 사유의 뿌리를 내려 그 근원을 들여다봐야 깊이 있는 수필이 탄생한다. 그 순간에 그동안 하찮게 여겼거나 잊고 싶었던 삶조차 소중한 것으로 되살아난다. 수필을 쓰는 과정에서 삶이 의미를 품어 가치 있는 것으로 되살아날 때, 비로소 우리는 존재감을 되찾고 삶이 결단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실존적 고뇌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수필은 비로소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다. 수필을 쓰면서 산다는 것은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삶의 차원을 넘어서서 지적이고 철학적인 삶의 행보를 내딛는 일종의 수행인 셈이다.
그래서 수필은 삶의 경험을 재구성하여 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삶의 인식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한다. ‘경험의 재구성 →의미화 →삶 또는 인간의 인식’에 이르는 과정은 수필 쓰기의 절차이면서 원리다. 수필 쓰기에서 삶의 경험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경험을 의미화하는 방법에 관해 고민해 볼 것이다. 경험의 의미화를 위한 사유의 방법으로 은유적 사유와 추론적 사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경험의 의미화란 삶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경험의 의미를 찾는 것, 경험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된다.
2. 은유적 사유 방식
경험을 의미화할 때 구체적인 범주인 ‘경험(지시 대상)’과 추상적인 범주인 ‘의미’를 은유적 관계에 놓이도록 결합시켜 보는 방법이 있다. 경험을 근원영역(매체어, véhicule)으로, 의미를 목표영역(화제어, teneur)으로 관계지어 보는 것이다. 닮음의 원리를 근거로 사전적 의미에서 일탈하여 의미를 새롭게 확장하는 것이 은유인데, 문장 차원을 넘어 텍스트 차원에서 경험과 의미를 주술관계(주어부와 술어부의 관계)로 연결해 보는 방식은 수필 창작에서 매우 유용하다. 은유적 표현은 이해하기 어렵고 생소한 대상을 친숙하고 단순한 대상에 빗대어서 진술하는 방식이다. 수사적 장식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이미 알고 있는 언어를 끌고 오는 인지의 방식이다. 은유적 관계를 조직하는 데는 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이 요구된다. 은유는 어떤 특정 맥락 속에서 통상의 언어관습을 위반하면서 비유적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에 의미론적 불협화음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충격을 선사한다.
담론 차원뿐 아니라 텍스트 차원에서 경험과 의미의 은유적 관계 짓기는 경험의 의미화, 의미의 경험화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수필 쓰기에서 문장 차원의 은유도 필요하겠지만, 수필 텍스트에서 경험과 의미가 은유적 관계에 놓이도록 연결해 보는 방식이다. 수필에서 재현하는 경험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며, 그것의 의미는 새로운 것에 해당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은유는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고와 개념의 문제로서 세계(대상)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 즉 인지와 소통의 방식이다.
‘수필은 蘭이요, 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라는 문장에서 ‘수필’을 인지하기 위해 ‘난,학,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을 끌어온다. 이와 같은 문장 차원을 넘어서서 텍스트의 차원에서 인간 존재나 삶의 의미를 말하기 위해 경험을 끌어오는 수필의 창작 원리도 다르지 않다. 의미를 바로 말하지 않고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에둘러서(낯설게) 전달하는 것이 문학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설득력과 호소력이 커지고 이해가 쉬워진다. 시나 희곡이나 소설에서는 의미(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경험을 지어낸다면, 수필에서는 의미를 말하기 위해 실재하는 경험을 끌어오면 된다.
김미경의 <안아주는 공>을 두고 은유적 사유가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 집에서 아이가 주로 지내는 놀이방은 나의 일터다.” 이 작품의 첫 문장이다. ‘놀이방’(근원영역)과 ‘일터(목표영역)’는 은유적 관계에 놓여 있다. 즉 이 둘의 닮음은 ‘놀이하는 방’(개념적, 의미적 공간)이다. 이 은유는 ‘일은 놀이다’라는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아이에게 던져주는 공(꽃무늬 고무공, 뜨개질공, 신문지공)은 아이를 안아주는 따뜻한 품이다. 모나고 거칠고 투박한 것들을 품어 아우르는 기운이다. 아프고 슬픈 기억들을 치유해 주는 힘이다.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사랑이다. 아이들을 안아주는 지구별이다. 유년에 엄마를 기다리며 가지고 놀았던 신문지 공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위안이다. 세상을 둥글게 안아주는 품새다. 이처럼 “문학 텍스트가 갖는 다중의미 또는 모호성은 의미론적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 의미의 의미론적 질서를 밀어내고 새로운 의미론적 질서를 생산”(김한식, 《해석의 에움길》, 문학과 지성사, 2019, 197쪽)한다.
전미경의 <이끼로 사는 이유>는 이끼를 이용하여 그에 상응하는 친구를 개념화한다. 이끼라는 익숙한 것(근원영역)을 이용하여 친구의 삶(목표영역))을 명료하게 규명하려는 은유적 사유 방식이 작동한다. 이끼의 서식 방식에 상응시켜 친구의 삶을 의미화하는 것이다. “거목에 달라붙어 서식하는 이끼의 가없는 사랑”은 구석지고 외진 곳에 머무르길 좋아하는, “된소리 한번 내뱉지 못한 채 숨죽이며 산” 친구의 사랑으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친구가 그저 가여울 뿐이지만, 친구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존재 이유다. 존재감 없이 살면서도 묵묵히 자신을 희생해온 친구의 삶에는 여성들의 그늘진 삶이 암시되어 있다. 전미경의 <기도 바퀴>는 역시 은유적 사유를 통해 중심소재인 윤장대를 의미화한다. ‘윤장대’는 ‘자아의 기도 및 중생들의 내면의 소리’이며 “그늘진 이들의 가슴에 길을 열어 불을 밝힌 신앙서”다. 세속의 가치를 버리고 불교의 진리 앞에 닿고자 하는 작가의 갈망이다. 팍팍한 세상살이에서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고 싶은 중생들의 간절한 기도다. 이처럼 은유적 사유를 통해 윤장대의 본질적 의미에 당도하고 윤장대를 의미화한다.
3.추론적 사유 방식
추론이란 이미 알려진 정보를 근거로 삼아 새로운 판단을 이끌어 내는 사유 과정이다. 유추에 의한 언어 조작인 은유와는 차이를 지닌다. 수필 쓰기에서는 귀납적 추론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추론을 통해 사유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은 수필 쓰기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된다. 추론적 사유를 이끌어가는 데에는 논리적, 지성적 판단이 요구된다.
최원현의 <먼저 좋아>는 귀납 추론의 방법으로 쓴 작품이다.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더 좋다’는 말을 ‘하부지가 먼저 좋아’라고 표현한 손녀의 말에서 사유를 시작한다. 삶의 새로운 원칙 하나를 깨닫게 되는 사유 과정을 치밀한 논리로 펼쳐낸 수필이다. ‘더’의 자리에 ‘먼저’라는 단어를 넣은 말의 오류가 오히려 새로운 삶의 목표와 방향을 선물해 주었다는 것인데, 그것을 추론해 나가는 과정을 서술한다. ‘더’는 비교하는 말이고 ‘먼저’는 행동의 순서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지식을 먼저 동원한다. 그리고는 더 크고, 더 많고, 더 높고, 더 좋은 것만 바라듯이 우리는 ‘먼저’보다 ‘더’를 훨씬 좋아하며, ‘더’란 욕심을 표현하는 데 쓰일 때가 많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실증적인 추론을 통해 ‘먼저’와 ‘더’의 갈림길에서 주저하며 ‘더’를 선택했던 자신을 발견하고 어떤 행동이든 ‘먼저’ 해야겠다는 윤리적 성찰에 이른다. 최원현의 <햇빛 마시기>도 추론를 통해 사유를 전개해 나가는 수필이다. 산부인과 원장인 지인이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투명한 유리잔을 건네며 마셔보라고 권한다. 창가에 쏟아지는 햇빛을 받아둔 것이란다. 이 맹랑한 제안, 그것에서부터 작가의 사유는 시작된다. 이 생경한 경험은 독자의 인식적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작가는 햇빛을 몸속으로 들여보낸다면 어둠 속의 존재들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는 물음을 가장 먼저 던진다. 유리컵에는 “채 마시지 못했던 몇 개의 햇빛 알갱이들이 남아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것같이” 느끼기도 한다. “태양에서 발산된 빛이 대기 속을 뚫고 내려와 발견한 하나의 작은 공간”, 그 컵 속에 안겨서는 어머니의 품속같이 안도하며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산부인과 원장은 어떤 생각으로 마셔보라고 하였는지를 상상해 본다. ‘햇빛 마시기’에 대해 느껴보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그 존재의 의미들에 닿는다. 여기서 작가가 추론해 내는 의미는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더 많으므로 “보이지 않는 것도 보라”는 충고이다. 세상에는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존재가 더 많으므로, 그러한 존재까지 바라보는 인식론적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할 때, ‘햇빛 마시기’는 내 안의 어둠을 밝혀주고, 아름답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생각과 마음들을 정화시킨다는 의미에 닿을 수 있다는 추론을 이어간다. 햇빛 마시기를 상징적 행위로 해석한 작가의 추론적 사유는 마침내 “내 안이 밝아지게 되면 세상도 더욱 밝아질” 것이라는 윤리적 이념에 안착한다.
강표성의 <할 말이 있는가>는 고등학교 시절에 학반 친구들이 쪽지 시험을 치르면서 공공연하게 커닝을 하는 상황을 단짝 친구가 담임 선생님께 고발했을 때의 경험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그 당시의 경험을 매우 구체적으로 재현하면서 그 불편한 진실 앞에 비겁했던 자신을 성찰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자기성찰에서 머물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이 경험에서 추론하여 ‘내부 고발자’를 집단 공동체의 배신자로 치부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데 이른다. 경험에 대한 직관적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인식에 이르고자 한다.
우리는 내부 고발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야말로 공적인 이성을 유지하는 역할인데 반동분자로 몰아간다. 불의를 불의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존중받아야 마땅한데 그런 일에 무관심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공동체는 서서히 죽어 가는 집단이나 다름없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다수의 권익이 통제되고 조율되는 것을 고발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건강한 사회의 증거라고 믿는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할 말이 있는가>에서
4.사유의 확장
경험의 의미화란 경험을 현상적인 것에서 본질적인 것으로 치환하고 환원하는 일이다. 구체적인 삶의 경험을 추상抽象하여 개념화하는 작업이 의미화다. 의미화를 통해 얻어낸 인식이 인간 존재나 삶의 일반적 원리일 수 있다면 더욱 공감을 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사유를 통해서 가능하다. 수필은 사유를 주식主食으로 하는 장르이므로 사유가 빈곤하면 영양실조에 걸려 비틀거리는 운명을 면치 못한다. 은유적 사유 과정이나 추론적 사유 과정은 사유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다. 결말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끈질기게 펼쳐나가는 사유의 확장을 위해서는 풍부한 지성과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수필에서 경험의 형상화는 길고, 그것에 대한 사유는 대체로 짧은 경우가 많다. 사유를 충분히 확장하지 못하면 작품의 깊이가 얕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험의 의미화에 무게 중심을 둔 작품을 기대해 본다. 이런 작품이 경험의 기록(재구성, 형상화)에 치중한 작품에 비해 읽는 재미는 덜할지 모르나 발견의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독자들의 사유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어름문학》 8호(2021)
문학평론가, 수필가. 《수필미학》 발행인. 저서 《새롭게 쓴 수필창작론》, 《수필의 전형과 실험》, 《나에게 돌아오는 길》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