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고 삶 쓰기 (3) 1
가을의 기도(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시초(1957)
1. 가을의 기도(김현승)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어조 : 겸허한 기도조
성격 : 비유적. 상징적
표현 : 점층적 구조. 경건한 분위기. 도치법(3연)
제재 : 기도
주제 : 경건한 삶에 대한 소망
경건한 삶의 가치 추구(가을의 고독과 기도를 통한 정신적 충만감)
구성
1연 : 기도에 대한 염원
2연 : 사랑에 대한 염원
3연 : 고독에 대한 염원
이해와 감상1
이 시에 대하여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시는 <가을의 기도>이다. 이러한 시에도 나의 기독교적 기질이 어 느 정도는 나타나 있다. '다소곳한 겸허' '쓸쓸한 감상' '반성의 기도' 이런 것들은 인간으로서의 나의 본질이었다.(<고독과 시> 중에서).
첫째 연에서 시인은 내적 기도로써 충실을 기하고자 한다. 낙엽이 지는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 '모국어'로써 기도하는 것이다. 가을은 낙엽 의 유한성을 바라보며 느끼는 깨달음의 시간이며. 모국어가 가지는 심상은 근원적이고 진실한 언어이다. 생명에 대한 겸허한 운명을 깨닫는다고나 할까.
둘째 연에서 시인은 절대자에 대한 참사랑. 즉 순애(殉愛)의 마음을 가지려 한다. 제 1연에서 느낀 죽음에 대한 운명을 극복하고 그것을 절대자에 대한 소망으로 표현하고 있다.
셋째 연에서는 '마른 나뭇가지' '까마귀'와 같은 지극히 심상을 통해 자신과의 본질적 내면, 내향의 의지를 드러낸다. 서정적 자아는 '굽이치는 바다'로서의 험난한 인생행로를 거쳐서 '백합의 골짜기'라는 영적 환희의 세계에 다다르게 되고, 드디어는 '고독'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다. '마른 나뭇가지'는 온갖 것을 다 떨치고 핵심만 남은 본질적인 세계를 표상한다. 이른바 '절대 고독'의 경지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 과 비교해 보더라도 '굽이치는 바다'는 거센 생명의 충동을 느끼는 청년기에 해당할 것이요. '백합의 골짜기'는 순결한 내면 지향적 경지에 이르는 중년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제 3연의 고독 추구는 1, 2연의 헌신과 기원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 모순의 해결은 김현승 시의 이해를 위한 어려운 과제이다. 곧 유일신인 창조주에의 헌신과 믿음과 의탁이라는 신앙의 차원과 인간적인 '절대 고독'의 세계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는 문제는 쉬 풀리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그의 절대고독을 추구하는 것이 유일신을 찾기 위한 영적 고행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모순에 대하여 시인은 "인생관적으로는 천국의 기독교를 믿으면서 인간적인 고독에 관심을 갖는 것은 확실히 모순이다. 그러나 이 모순을 알면서도 시는 사상보다 먼저 기질의 소산인 것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고독이 절망적인 고독은 아니다. (중략) 거듭 말하거니와 기질은 사상에 선행하는가 보다 -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굽이쳐 가는 물굽이와 같이)"이라 말하고 있다. - 윤재열 외 <즐거운 시여행>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절대자에 대한 기도와 사랑, 절대자를 향하게 하는 완전한 고독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소망은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일반적인 느낌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1,2,3연에서 가을은 각각 낙엽이 지는 명상의 계절, 풍성한 열매가 맺는 결실의 계절, 누군가를 찾게 하는 고독의 계절로 그려진다. 즉, 이 시는 가을의 상념(想念) 속에서 반성의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가을을 맞아 식물들이 과실을 맺듯이 인간도 절대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가을의 고독 속에서 오히려 절대자를 찾는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는 기도인 것이다. 이 시의 시상은 이렇게 3연을 향해 집중되어 있으며, 절대자를 향하기 위한 절대 고독의 상태를 형상화한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가 작품의 중심적인 시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