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뉴스타임즈 인문학 칼럼)/2021.06.
위기 극복의 윤리
이민숙
역사 이래로 우리 인류가 집중해 온 가치는, 무엇을 더 세울 것인가, 무엇을 더 드높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진보적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강변해왔다. 화려하고 당당하고 아름다운 문명의 탑!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결과가 참담하다면 어떤 방식의 자기반성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고, 배움을 위하여 자유분방하게 씩씩하게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없다. 속수무책, 그 어떤 지혜로운 방법도 제시할 수 없었다. 오직 거리두기, 마스크, 그리고... ... 모든 건 기계 속으로... ... 컴퓨터가 제시해준 통계와 안전한 방식으로의 전환이었으나 그 안에서 겪는 일상은 우울하고 부자연스럽고 통쾌할 수 없었다.
새삼 21세기와 환유의 철학적 인생관, 더욱 더 오래되고 고전적인 철학 이념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연후 이 시대가 처한 현재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새롭게 정비할 방법은 있는 것인가, 아니 오늘은 안전한가! 내 집을 나서면 환한 얼굴들을 마주할 수는 있을까... ...유쾌하고 반갑게 서로를 껴안을 수 있는 시간은?
요즘, 조금은 안정되어가는 느낌이다. 세계적인 백신 상황이 아직 넉넉히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긴 이르지만, 1년 전에 비하며 상당히 고무적이다. 백신을 맞고도 황당한 부작용이 생겨 알 수 없는 사태를 겪기도 한다. 그 모순 속에서나마 몇 개월 후면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거리두기와 마스크의 일상을 원상으로 회복시키고, 경제활동, 단체활동도 좀 더 자유롭게 이어갈 수 있게 될 것 같다.
참으로 다행이다. 그러나 그동안,
참으로 암담한 지구적 사태가 모든 일상적인 관습과 평화와 사랑스런 공동체 삶을 허용하지 않았다. 개인으로서의 내가 무엇을 잘못 했는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삶의 구체적 방식들을 바꿔야 하는지, 사면초가였을 뿐, 지금도 우리는 그 패러다임에 대한 실제적 모델, 실천적 자기 프로그램을 환히 예측하긴 어려워 보인다. 미래의 그 어떤 확신도 아직 ‘이것이다! 유레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천재적 영웅적 선도적 어떤 개인이 시대의 암울함으로부터 탈출시킬 도리가 있는 건지?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중中과 화和를 지극한 경지에까지 밀고 나가면, 천天과 지地가 바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고, 그 사이에 있는 만물이 잘 자라나게 된다.” -中庸 1-5-
이미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인간의 삶의 방식은 인간의 뜻에 따라 인간적인 방식으로만 살아가기엔 그 ‘조화로움에 충분치 않음’을 갈파했다. 긍정적인 깨달음이었지만 21세기에 이르러 되돌아보면 그건 지켜지지 않은 철학적 경고였다. 사람의 삶은 하늘과 땅 사이의 우주 만물의 조화에 있다는 것. 사람은 만물의 일부이며 만물은 천天과 지地가 없이는 그 존재기반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인위적 문명이란, 그 협애함에 있어 우주와의 교감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깊이 깨달을 일임을. 그러나 인간은 우주에 반목이라도 해야 하는 듯이 살아왔다.
이 지구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경험하고 있었음에도 거의 대부분의 지구인, 그 정복자들은 오만불손, 그 대책을 무릎꿇고 인고하지 않았다. 인간의 터가 닦아질 때마다 온갖 생태계는 파괴되었으며, 생명체가 살 수 없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우주의 순환적 생명현상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진실로 그 위험의 수위를 낮추기 위한 방법엔 인색했을 따름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제를 이 어리석은 현대인 이민숙은 “아는 것이 악이다”라고 고쳐 쓰고 싶을 정도다.
윤리의 기초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천지위언 天地位焉”은 추상이 아니다. 매우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이다. 유형성과 무형성의 순환구조가 그 사이를 꿰뚫어 막힌 숨통을 틔워야 한다. 하늘로부터 생성된 생명의 근원인 인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리타분한 원칙이야말로 새로운 위기극복의 논리로서 작동됨을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의 방법론이 아닌, 우주 생명체의 코스모스적 윤리가 되어야 한다. 혼돈인 채로, 더 힘있는 균형의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생명이란 인간 중심의 개념이 아니다. 고라니도 산수국도 털중나리도, 고래도 새우도 함께 청정한 바다 땅 바람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문명으로부터의 철저한 편리함을 반성해야 한다. 정복자로서의 지위를 더 이상 자랑스러워 할 일이 아니다. 이젠, 하늘과 땅이 먼저다. 자연! 저 별빛을 지워버린 휘황찬란한 밤을 회복해야 한다. 어두운 반딧불이 세상이 진정 새로운 출발선이 되어야 한다. 고전의 시대에 갈파한 철학적 명제가 가장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작동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아무 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다, 난 이기주의자!
하느님이 순간,
무엇이 어떻게 가열차게
사랑으로 쏟아지는가를 보여주려는 듯
천지간은 한몸이 되어버렸다
첫눈, 한몸 되는 일!
--졸시, <첫눈> 전문--
눈이 되어 내리는 인간을 상상한다. 첫눈처럼 순결한 그 자연의 한 순간을 상상한다. 그러한 순수를 우리는 되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화려한 오색찬란한 문명의 마술을 뒤로하고 ‘아무 것도 원하지 않겠다!’ 그냥 이 허공의 무위자연으로 되돌아 간 생명의 여유로움이야말로 최초의 생명성을 되돌려 살 수 있는, 모든 것이 평범하여 너무도 평화로운 그런 삶도 가능함을 언젠가는 깨달아 함께 얼싸안을 수 있다면!
첫댓글 *보완될 것; 기후위기 해법과 세계의 진행 과정
*내 생활의 기후위기 요인 체크 ㅡ실천 과제및 현재 상황
지금 할 수 있는 순서 ㅡ앞으로 10년: 현재 탄소배출량 50%로 조절할 것(G7 의결 사안) 앞으로 30년: 지구의 바다 30% 대지의 30%ㅡ자연 녹지로 유지 및 전환(G7 정상회담 의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