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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논리만 따진다. 가짜 감정중에서 나는 분명히 말하는 성향을 가졌다. 이런 성향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 우리 어머니는 잔소리쟁이고 성실한 분이다. 자식들이 어디를 가든 반드시 밥을 먹여서 보내야 했다. 그리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셨다. 항상 무건 가를 하며 우리를 채근하셨다. 우리가 놀고 있으면 못마땅해 하셨다.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양말을 아무 곳에나 벗어놓고 누워있으면 못 견뎌하셨다. 너는 손이 없느냐 ? 발이 없는냐? 왜 양말을 꼭 거기다 놔두느냐? 어머니 좀 쉬고 나서 치울게요.. 지금 당장 해야지.. 왜 그걸 미뤄... 나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어렸을 때부터 싫었다. 그래서 언제가 부터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을 함으로써 더 이상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을 분명하게 말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내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님 강의는 명쾌, 통쾌, 유쾌해요.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 나름대로 원인 분석을 한다. 교수님이 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나는 빙긋이 웃고 그러냐고 만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안다. 내가 왜 분명하게 말하는지... 어머니 잔소리가 싫어서.. 나는 잔소리가 싫다고 했는데 싫은 느낌은 화의 가장 약한 감정이다. 화의 사촌 감정들이 있다. 싫은 느낌, 미움, 분노, 억울, 원통, 원망, 증오 등이 그것이다. 화는 기본적으로 두가지 메세지를 가지고 있다. 나는 옳고 다른 사람들이 잘못됐다. 는 메시지다. 다른 하나는 나는 다른 사람들을 바꿀 것이다. 라는 메시지다. 화의 사촌 감정들 역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라는 메시지를 갖고 있다. 화가 나면 화난 대상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한다. 존재 자체가 꼴 보기 싫어진다. 그래서 화가 약하게 나면 그 모양을 보고 싶지 않지만 화가 더 나면 바꾸고 싶어지고, 화가 아주 많이 나면 없애고 싶어진다. 나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싫었는데 결국은 내 마음속에 화가 나있었던 것이다. 화가 났는데 약한 강도의 화였기 때문에 나는 내가 화난 줄도 몰랐다. 화가 난 나는 어떡하면 잔소리를 못하게 할까 궁리하다. 뭔가 분명하게 말해서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어머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이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어머니 말을 더 들으면 내가 미칠 것 같아요... 라고 말을 해서 어머니로 하여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극에 달한 때는 내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였다.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치성도 많이 드렸다. 어머니는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 대상은 부처님이었다. 부처님을 믿었지만 자식들이 잘못될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던 어머니는 우리들레게 쉬지않고 잔소리하셨다. 지나친 잔소리에 화가난 나는 어머니가 더 이상 나에게 잔소리를 할 수 없도록 했고 이것이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즉 어머니와 내 관계에서는 화가 나의 삶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화가나면 더욱 분명하게 말을 해서 상대방이 더 이상 나에게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화가 나 있던 나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다. 화난 상태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습관으 가진 나는 어느덧 부드럽고 따듯하게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정서적 대화를 하지 못하고 언네나 논리적으로만 대화를 하게 됐다. 수학을 선택한 이유가... 현실적인 이유들이 작용했지만... 어머니의 잔소리에 화가나서 논리적으로 대응하다가 그것이 편해서 전공까지 수학으로 선택하게 됐다. 그러나 내속에는 언제나 부드럽고 따듯하게 말을 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
1. 논리만 따진다. 가짜 감정중에서
나는 분명히 말하는 성향을 가졌다. 이런 성향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 우리 어머니는 잔소리쟁이고 성실한 분이다. 자식들이 어디를 가든 반드시 밥을 먹여서 보내야 했다. 그리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셨다. 항상 무건 가를 하며 우리를 채근하셨다. 우리가 놀고 있으면 못마땅해 하셨다.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양말을 아무 곳에나 벗어놓고 누워있으면 못 견뎌하셨다.
너는 손이 없느냐 ? 발이 없는냐? 왜 양말을 꼭 거기다 놔두느냐? 어머니 좀 쉬고 나서 치울게요.. 지금 당장 해야지.. 왜 그걸 미뤄...
나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어렸을 때부터 싫었다. 그래서 언제가 부터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을 함으로써 더 이상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을 분명하게 말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내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님 강의는 명쾌, 통쾌, 유쾌해요.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 나름대로 원인 분석을 한다.
교수님이 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나는 빙긋이 웃고 그러냐고 만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안다. 내가 왜 분명하게 말하는지... 어머니 잔소리가 싫어서..
나는 잔소리가 싫다고 했는데 싫은 느낌은 화의 가장 약한 감정이다. 화의 사촌 감정들이 있다. 싫은 느낌, 미움, 분노, 억울, 원통, 원망, 증오 등이 그것이다.
화는 기본적으로 두가지 메세지를 가지고 있다. 나는 옳고 다른 사람들이 잘못됐다. 는 메시지다. 다른 하나는 나는 다른 사람들을 바꿀 것이다. 라는 메시지다. 화의 사촌 감정들 역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라는 메시지를 갖고 있다.
화가 나면 화난 대상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한다. 존재 자체가 꼴 보기 싫어진다. 그래서 화가 약하게 나면 그 모양을 보고 싶지 않지만 화가 더 나면 바꾸고 싶어지고, 화가 아주 많이 나면 없애고 싶어진다.
나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싫었는데 결국은 내 마음속에 화가 나있었던 것이다. 화가 났는데 약한 강도의 화였기 때문에 나는 내가 화난 줄도 몰랐다. 화가 난 나는 어떡하면 잔소리를 못하게 할까 궁리하다. 뭔가 분명하게 말해서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어머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이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어머니 말을 더 들으면 내가 미칠 것 같아요... 라고 말을 해서 어머니로 하여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극에 달한 때는 내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였다.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치성도 많이 드렸다.
어머니는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 대상은 부처님이었다. 부처님을 믿었지만 자식들이 잘못될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던 어머니는 우리들레게 쉬지않고 잔소리하셨다. 지나친 잔소리에 화가난 나는 어머니가 더 이상 나에게 잔소리를 할 수 없도록 했고 이것이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즉 어머니와 내 관계에서는 화가 나의 삶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화가나면 더욱 분명하게 말을 해서 상대방이 더 이상 나에게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화가 나 있던 나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다. 화난 상태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습관으 가진 나는 어느덧 부드럽고 따듯하게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정서적 대화를 하지 못하고 언네나 논리적으로만 대화를 하게 됐다.
수학을 선택한 이유가... 현실적인 이유들이 작용했지만... 어머니의 잔소리에 화가나서 논리적으로 대응하다가 그것이 편해서 전공까지 수학으로 선택하게 됐다. 그러나 내속에는 언제나 부드럽고 따듯하게 말을 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A라면 당연히 B해야 한다.
인간은 모순적 존재다. 이 상황에선 이렇게 살고 저 상황에선 저렇게 사는 존재다. 모순을 논리로만 해결하려 하면 많은 문제에 직면한다.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늪에 빠진 상태가 된다.
인간이라는 모순적 존재를 품기 위해서는 안정된 정서가 필수적이다. 안정된 정서란 편안하고 자신감 있는 상태을 말한다. 이런 정서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와 남의 부족한 부분, 약점을 품을 수 있다. 갈등상황이 발생하거나 모순이 있더라도 이를 꼭 해결하려 하지 않고품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대표적인 경우가 부모의 사랑이다. 부모는 자녀들이 무수한 모순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이런 수용을 토대로 해서 아이들은 점차 자신의 일관성을 발전시켜나간다. 인간이 가지는 일관성은 모순을 수용하는 사랑의 행위가 없이느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일관성은 모순이라는 근거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모슌을 견디기 어렵다. 화가 난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즘명하기 위해 많은 논리를 개발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 자체가 이미 모순적이다. 화라는 부정적 감정을 토대로 해서 발전시킨 논리이기 때문에 한계를 가질수 밖에 없다. 그러나 화난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화는 인식을 제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상담을 하면서 많은 내담자들이 이런 모순에 빠져 있음을 봤다. K씨도 그런 사람이었다. K씨는 어린 시절 부모가 부당하게 자신을 억압했다고 생각했고 그로인한 억울함과 원망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는 부모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가정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살았다. 자신의 부모처럼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고 논리적 합리적으로 살았다. 그러나 아내는 자신만 보면 냉정하다고 화를 냈고 아이들은 아버지 때문에 숨이 막힌다고 아버지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쏟아낸다. 그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감정적으로 대드는 것을 보면서 몹시 혼란스러워했다.
" 나는 억울해요.. 우리 아버지는 화를 내는 사람이었고 나에게 부당한 행동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절대로 아버지처럼 하지 않겠다고 얼마나 다짐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식구들은 나 때문에 괴롭다고 하네요...
K씨는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도대체 이해하지못했다. 그는 화가 나거나 부정적 감정이 밀려드면 이를 표현하지 ㅇ낳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살았다. 물론 명분은 아버지 같이 화를 내서 다른 사람에게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억압해서 마치 감정이 업 ㅅ는 것 처럼 산 K씨는 화가 날때도 논리적으로 말했다. 그의 말은 언제나 일관성 있고 믿을만 했으나, 그 말속에는 감정이 없었다. K씨의 아이들은 합리적인 세계에서 살았지만 재미도 없고 열정도 없으며 따듯함이 없는 세상에서 양육됐다. 아버지로부터 안정된 정서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조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흥분하고 화를 냈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지고 결국 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정서저긍로 취약한 상태에서 논리적이려고만 하면 인식의 폭이 좁아져 부분적 인식을 할수 밖에 없다. 내담자 K씨는 합리성, 논리성에 치우친 나머지 이난의 본질적 부분인 정서적 관계를 간파한 삶을 살았다. 화를 내는 아버지는 틀렸고 합리적으로 애기하는 자신이 옯다는 이분법적 논리에 빠진 나머지 다른 현상들을 지각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화라는 감정이 만들어내는 편협하고 경직된 세계다.
어렸을 때 자기 잘못보다 더 크게 야간을 맞으면 아이입자에서 화가난다. 잘못한건 인정해도 부모님이 너무 하신다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부당하게 혼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자녀가 말을 듣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낸다. 이아들에게 부모 말을 잘 들어야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강요하면서 자신은 억울해도 대꾸를 모했는데 자녀가 반항하니 화가 나는 것이다.
돈 못 버는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 딸들은 남자는 돈을 잘 벌어와야한다. 는 확신을 가진다. 그래서 남편이 생활비를 제대로 못 주면 "제 식구 밥도 못 벌어 먹이는 못난 남자" 운운하며 남편에게 분노한다.
음식 솜씨도 좋고 깔끔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이들은 음식 못하는 아내에게 화를 내며 여자는 요리르 잘해야 한다. 요리르 못하니 넌 여자도 아니다. 라는 논리를 들이댄다.
이들의 논리에는 화가 잔뜩 묻어 있다. 상대방이 틀렸고 그러니 내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는 것이다. 상대방의 어떤 설명도 변병으로만 듣는다. 그래서 대화가 단절되거나 관계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내가 옳다는 생각은 당연한 세상을 만들어낸다. 당연한 세상이란 ===라면 당연히 --- 해야 한다. 는 생각이다. 학생이라면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여자라면 당연히 얌전해야지.... 등등
그런데 이 당연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화가난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만 맞는다고 고집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수 있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 한다.
* 이분법의 함정
화가 나는데 오랫동안 표현하지 못하는 환경에 있게 되면 억울한 감정이 생긴다. 억울함이란 슬픔과 화가 공존하는 상태다.
화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장 현실에서 실현하려는 감정이다. 슬픔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수 없다고 생각학때
생기는 감정이다. 이 둘은 서로 모순적이다. 하나는 당장 현실화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현실화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억울 한 사람들은 우울 감정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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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씨의 호소는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화나는 감저이고 다른 하나는 슬픈 감정이다. M씨는 시어머니가 다른 며느리들에게는 안 그러면서 자신만 야단치고 집에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게 화나고 싫다고 한다. 전화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괴롭다. 하지만 화나는 마음을 시어머니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남편에게 이런 말으 하면 들은 척도 안하고 도리어 화를 낸다. 이렇게 화를 내는 남편이 밉다. 시어머니도 밉다.
다른 하나는 슬픈 감정이다. 화가 나는 자신을 알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남편에게 화를 내도 받아주지 않는다. 화난 것을 표현 할 곳이 없어 마음속에 자꾸 쌓인다. 화가 쌓이면서 자신이 불쌍해 보이고 그래서 슬프다. M씨는 자꾸 눈물이 난다. M씨의 감정은 ㅎ화가 잔뜩 나 있는 슬픔.. 즉 억울함이다.
억울한 사람들은 의존적이다. 그래서 원망을 많이 한다. 원망이란 화속에 담긴 소망이다. 억울 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실현하지 못해 우울한 상태에 빠진다. 그러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실현하기 보다 다른 사람이 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누군가를 찾아가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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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아주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의존적인 사람들은 문제를 늘어놓기만 한다. 그러면 누군가 자신을 그러한 억울함에서 건져줄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왜 이렇게 억울한 감정이 드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눈이 자신이 아닌 외부로만 향해있다. 누군가는 자신을 억울하게 만든 사람이고, 누군가는 자신을 이런 억울함에서 해방시켜줄 사람이다.
억울한 사람들은 피해의식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진짜로 억울함을 해소하고 싶다면 자신의 상황을 다른 눈으로 볼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왜 그러는지 생각을 돌려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