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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서울로 진학해, 20년 가까이 서울에서 살아보았다. 이후 다시 직장 관계로 지방의 소도시에서 살다가, 또 다른 소도시로 옮겨 지금까지 살고 있다. 서울에서 살던 시절에는 지방으로 이사를 한다는 것이 마치 무언가에 의해 밀려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이 아닌 지방의 소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오히려 서울에 갈 기회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울의 삶은 너무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퇴임을 하면 내가 살던 곳에서 정착하려고, 주변에 집을 지을 곳을 마련해 놓고 정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간혹 서울에 살고 있는 지인들이 내가 사는 곳을 방문할 경우가 있다. 나는 그들을 맞아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 수 있고, 또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주변을 안내하는 것을 매우 즐거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 대부분 지인들은 떠나면서, 서울에 들르거든 꼭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간다. 나 역시 형식적으로 노력해보겠다는 대답을 하지만, 실제 서울에 갈 일이 생겨도 가급적 연락을 하지 않는다. 불가피할 경우 전화로 안부를 묻고, 서로 시간이 맞으면 만나서 간단히 저녁을 함께 하는 정도이다. 그것이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일단 서울에 살아본 사람으로서, 서울 생활은 너무도 많은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일정들로 꽉 짜여 있다. 아마도 여유로운 생활을 한다는 것은 대체로 그러한 관계들에서 배제되는 것을 각오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 책은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저자가 고인이 된 후, 편집자인 며느리가 발견한 원고 뭉치를 정리해 엮은 것이라 한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나 버스 안에서 한번쯤 들어보았을 ‘서울야곡’이라는 방송의 원고였다고 한다. 방송 대본이라서 그런지 내용도 쉽고, 구어체로 이뤄진 문체도 아주 깔끔하다. ‘이 도시를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이라는 부제가 책의 성격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어떤 주제들은 단지 서울의 풍속이 아니라, 소도시에서 살았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아마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당시의 우리 생활 문화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서울만의 특징을 다룬 내용들도,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때문에 대부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라 읽는 내내 과거의 추억 속으로 젖어들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은 모두 3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제1장, 그리운 서울’은 ‘서울 상경’이라는 내용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은 서울역의 역사가 새롭게 꾸며졌지만, 내가 서울에 처음 갔던 1980년대에는 옛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기차를 타고 한강철교를 건너, 서울역에 도착하던 순간 오른편에 보이는 커다란 빌딩을 보면서 서울이라는 것을 실감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1970 ~80년대를 거치며 서울은 서울사람들만이 도시가 아닌, 서울살이를 꿈꾸며 지방에서 상경했던 많은 이들로 채워지고 있었던 사정을 고려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처럼 1장에서는 서울 상경으로부터 시작하여, 과거 서울에서의 생활 문화에 대한 내용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모두 18개 항목으로 구성된 1장에서 ‘국민반 노래’나 ‘시민증과 도강증’ 등 몇몇 항목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일들이라 생소했지만, 대부분의 항목들은 나에게도 매우 익숙한 내용이었다. 물론 이러한 항목들이 서울만이 아닌, 지방의 소도시에서도 마주칠 수 있었던 풍경이라는 것은 앞에서 논했던 바와 같다. 예컨대 어느 곳이든 마을마다 자리를 잡았던 ‘구멍가게’는 아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수도가 보급되기 이전에 직접 물지게를 들고 우물에서 물을 길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삼류 영화관의 담장을 넘어 몰래 영화를 보았던 기억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몇몇 항목들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이 시절을 겪었던 독자들이라면 서울만의 문화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2장에서는 ‘맛있는 서울’이라는 주제로 서울의 음식문화와 특색 있는 음식점들에 대한 내용을 22개의 항목에 걸쳐 다루고 있다. 대학에 다니면서 서울에서 살았던 시절에는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롭지 못했던 까닭에, 이 책에서 다룬 음식점들을 가본 적이 그리 많지 않다. 이제는 도시락이 카페에서 추억의 음식이라는 명목으로 메뉴판에 오르기도 하고, 라면은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상품이 출시되어 있다. 또한 여행이나 음식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음식문화의 지역적 특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지역에 가면 꼭 먹어야만 하는 메뉴가 몇 개는 있을 것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대학생 시절 누군가의 생일이거나 하는 특별한 날에 어쩌다가 친구들과 무교동 낙지를 먹으러 갔던 기억이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운 낙지를 먹으면서, 소주 한잔에 행복을 느껴보았던 것이다. 빈대떡이나 설렁탕 등의 음식도 특별한 날에 찾았던 메뉴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성 음식이라고 알고 있었던 ‘보쌈김치’가 원래 서울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물론 2장의 항목들 가운데에서도 단지 서울만의 음식이 아니라, 지방의 소도시에서도 맛보고 겪었던 음식들이 적지 않았다. 때문에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내내 옛날의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지막 3장은 ‘서울의 그곳에서는’이라는 주제로 28개 항목에 걸쳐, 서울의 주요 지명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3장은 ‘청계천과 청계산’으로 시작하는데, 아마도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청계천 복원사업이 시작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1980년대의 청계천은 하류의 일부를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었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가 놓여있었다. 사람들은 청계천이 그곳을 흐르던 오폐수로 인해 가스가 발생하여, 언젠가는 폭발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고가도로도 철거되고 새롭게 꾸며진 청계천을 보면 쉽게 상상이 되지 않겠지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옛일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서 야구를 관람하고, 장충단 공원 맞은편의 원조 운운의 간판이 달린 족발집에서 소주를 곁들여 족발을 먹던 기억도 새롭다.
서울대공원으로 동물원이 옮기기 전의 창경궁은 사람들에게 창경원이라는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는 곳으로 더 유명했다. 봄이면 사람들이 도시락을 싸서 벚꽃놀이를 즐기던 명소로 활용되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은 서울은 강남이 문화와 생활의 중심지로 여겨지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강남보다 강북의 종로나 명동이 문화를 즐기려던 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때문에 서울의 과거와 추억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성격상, 3장에서 다루는 지명들은 강남보다 강북 지역이 더 많은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서울의 주요 지명과 명승지들을 거론하면서, 그곳에서 환기되는 역사와 특징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서울의 모습들 가운데 이미 과거의 추억으로 사라진 것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매우 빠른 속도로 개발되면서 서울의 모습도 변화했고, 지금도 여전히 변화하고 있는 중이라 하겠다. 물론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는 단지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의 소도시에서도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던 아파트가 이제는 전국 어느 곳에서든지 주거 공간으로서의 보편성을 지니게 되었고, 도로와 철도의 발달로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지역에 따른 생활문화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래도 이 책을 통해서 서울의 과거 모습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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