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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보의 편지(Letter of James, 야고보서) ***
< 요약 >
〈신약 성서〉의 편지. 〈야고보서〉라고도 함.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들(사방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보낸 편지로 유대 그리스도교인이었던 야고보가 썼다고 한다. 이 야고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고, 저작 연대에 대해서도 견해가 매우 다양하다. 이 편지는 교리적이기보다는 윤리적이며 초기의 유대계 그리스도교를 반영하고 있다.
저자는 핍박 속에서의 인내, 가난과 부, 언행의 조심, 고아와 과부의 돌봄, 악담, 자랑, 맹세, 기도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병든 자에게 기름을 발라주라는 구절(5 : 14)은 〈신약 성서〉에서 〈야고보의 편지〉에만 나오는데,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 신학자들은 이 구절이 7대성사 중 하나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 야고보 ** 신약 성경에서는 야고보라 불리는 사람이 5명이 있는 것으로 전해주고 있다. 그들은 제베대오의 아들, 알패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 주님의 형제, 유다의 아버지인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작은 야고보를 같은 인물로 보기도 한다.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 그룹에 속한 사람이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은 갈릴래아에서 어부일을 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붙여 준 별칭 보아네르게스는 그들의 기질을 여실히 보여 주는 듯하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실 때와 영광스럽게 변모하실 때,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와 올리브 산에서, 야고보는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예수님 가까이 있었다. 이를 보면 야고보는 예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제자였던 것 같다. 그는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에 가셨을 때도 동행했다. 그런가 하면 그는 특별한 영광의 자리를 욕심냈던 것으로 보아 자기만을 생각했지 예수님의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작은 야고보와 구분하여 큰 야고보라고도 불리는 그는 열두 제자 중 처음으로 순교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살로메로 추정)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있던 여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역시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사실 외에 그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며, 그는 작은 야고보와 같은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마리아의 아들로 알려져 있는 작은 야고보가 알패오의 아들과 동일인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마리아가 클로파스의 아내일 경우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 그녀는 알패오의 아내가 되는데 클로파스와 알패오는 같은 이름의 두 가지 형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형제라고 불리는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큰 역할을 수행했던 것 같다. 여기서 형제라는 말은 사촌 또는 아주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가족들은 대체로 예수님의 사명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야고보도 열두 사도에도 포함되지 않고 복음서에서도 그 이름을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처음부터 예수님을 따른 것은 아니고 나중에 예수님을 받아들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으로 보이는 그는 야고보서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끝으로 열두 제자 중 한 사람 유다의 아버지인 야고보가 있는데, 그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
*** 베드로의 편지(letters of Peter, 베드로전후서) ***
< 요약 >
예수의 12사도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인 베드로의 것으로 여겨지는 〈신약성서〉의 두 문서. 2세기초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된다.
〈베드로의 첫째 편지〉는 소아시아의 다섯 지방에 살고 있는 박해받는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보낸 것으로, 수난받고 죽은 후 다시 살아나서 영광 가운데 있는 예수를 기억함으로써 그들이 당하는 고난 가운데서 고난받는 그리스도를 닮으라고 권유한다. 또한 그리스도교도들은 악을 선으로 갚고, 서로 사랑하며 높은 도덕성을 지닌 선한 시민이라는 평판을 얻어야 한다고 권면했으며, 이렇게 해서 자신들이 부당하게 고난당한다는 의심을 없애려고 했다. 저자에 관한 문제는 아직 학자들이 만족할 만큼 해결되지 않았다. 유창한 그리스어 문체와 몇 가지 역사적인 언급들로 보아 베드로는 저자가 아닌 것 같으며, 또 초대교회 조직에 대한 설명을 보면 이 편지는 초기에 씌어진 것 같다. 실제 저자는 베드로의 비서나 그의 대변인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베드로의 둘째 편지〉는 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되어 있다. 저자는 재림 지연의 분명한 이유를 우주적인 구원을 위해 하느님이 참고 시간을 연장시켜 주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하느님에게는 천년이 하루같다고 쓴다. 저자는 또 거짓 선생들에 대해서 그들이 말로써 남을 속이고, 행위가 부도덕하니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이들과 이들을 따르는 자들은 "의(義)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Ⅱ 베드 3:13)에 앞서 오는 대화재 때 멸망당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비록 저자는 명백하게 자신을 베드로라고 밝히지만 본문에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3세기초부터 실제 저자가 누군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고, 후대 학자들은 더욱 회의적으로 보았다.
< 내용-베드로전서 >
이 서한은 바울로의 교리를 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여러가지 방법으로 통해 자신을 사도 바울로와 같은 진영에 위치시킨다.
< 내용-베드로후서 >
예수의 죽음과 부활 후에 교회 안에서 거짓 선생들이 나타났다. 초대교회에서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재림이 일어나지 않자, 일부는 재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하느님의 모든 약속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 사도교회에서 베드로의 위치 ** 복음서의 서술에 비추에 볼 때 예수의 죽음 이후 곧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떠오른 것은 결코 예상 밖의 일이 아니었다. 부활 이후 거의 15년 동안 베드로는 사도교회를 이끌었다. 그는 회의를 주재하여 유다(그리스도를 배반한 뒤에 죽음) 대신 마티아를 사도로 임명했으며(사도 1:23~26), 교회가 탄생하게 된 오순절에 맨 먼저 일어나 설교를 했다(사도 1:14~39). 또한 예루살렘의 유대인 종교법정에 서서 사도들을 변호하는 설교를 하고(사도 4:5~22), 교회 안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훈계하는 재판장 역할도 했다(사도 5:1~10). 베드로는 12사도들을 이끌고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교회를 확장했다(사도 9:32). 그는 먼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갔고(사도 8:4~17), 그 결과 "그들도 성령을 받았다". 사마리아에서 그는 마술사이자 주술적 치유자인 시몬 마구스를 만났다. 그뒤 사론 평지의 리따로 가서(사도 9:32~35) 중풍병자 애네아를 고쳤으며, 지중해연안 도시 요빠로 가서(사도 9:36~43) 다비타(도르가)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주었다. 지중해연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카이사레아에 간 베드로는(사도 10:1~11:18) "이탈리아 부대라는 로마 군대의 백인대장" 고르넬리오를 개종시킴으로써(사도 10:1) 이방인을 교회로 받아들였다. 당시 유대교 규정에 따르면 이방인 개종자는 먼저 할례를 통해 유대인이 되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베드로는 할례를 요구하지 않은 채 고르넬리오와 그외 다른 이방인들을 받아들였는데, 이들은 회당과 비공식적인 관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함으로써(사도 10:48) 중대한 변화를 일으켰고, 이것은 유대 그리스도교도들 및 일반 유대인들의 반발을 샀다. '성령'이 성결하게 하심(사도 10:10~15)에 힘입어 베드로가 독자적으로 일으킨 이 사건으로 헤로데는 야고보(요한의 형)의 목을 베고 베드로를 체포하게 한(사도 12:2, 3) 것으로 보인다. 감옥에 있는(AD 44경) 베드로를 주의 천사가 찾아왔고 두손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 풀려서 그는 감옥을 빠져나왔다(사도 12:1~8). 그는 즉시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사도 12:12). 그리고 자기가 감옥에서 빠져나온 사실을 "야고보와 다른 교우들"에게 알리라고 부탁하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사도 12:17). 이 시점에서 예루살렘에서 누리던 베드로의 지도권은 끝을 맺게 되었다. 베드로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른 곳'이라는 말이 같은 지방의 임시피난처를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다. 〈사도행전〉은 베드로의 후기활동을 다루지 않는다.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쓴 저자가 이후의 활동을 다루는 제3의 책을 쓸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책이 씌어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씌어졌다 하더라도 후에 상실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는 〈클레멘스의 첫번째 편지 First Letter of Clement〉(제4~6권)에 암시된 교회 내부의 시기심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거나, 아니면 책을 완성하기 전에 저자가 죽었을 것이다. 클레멘스의 첫번째 편지(First Letter of Clement) 베드로의 후기활동에 대해서는 베드로가 유명했던 당시 두 사도, 즉 야고보와 바울로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데서 잠깐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베드로는 헤로데 왕에게 잡혀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후 예루살렘을 떠날 때까지 예루살렘 교회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이었다(사도 12:1~17). 예를 들어 바울로는 회심 뒤 3년 만에 베드로와 의논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와 함께 2주일을 그곳에 머물렀다(갈라 1:18~19). 그러나 많은 〈신약성서〉 학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난 뒤 베드로는 선교활동을 맡았고 '주의 형제' 야고보가 교회의 실제적인 지도권을 가졌다고 본다(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음). 이렇게 권위가 베드로에서 야고보로 옮겨졌다는 것은 베드로가 안티오키아에서 이방 그리스도교도들과 함께 식사하던 도중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의 뜻을 따라 자리를 물러난 사실(갈라 2:11~14), 이른바 예루살렘 사도회의(사도 15:7)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야고보가 최종적으로 '요약'한 사실, 후에 베드로가 마르코라고도 하는 요한의 어머니 집에서 떠날 때 자신의 거처에 대한 설명 또는 '보고'를 주로 야고보에게 남긴 사실(사도 12:17) 등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바울로는 회심 3년 뒤 예루살렘에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다. 이 만남을 기록하는 데서 게파(베드로)라는 이름이 야고보보다 먼저 나온다. 그러나 14년 뒤의 만남을 전하는 이야기에는 야고보가 게파보다 먼저 나온다(갈라 2:9). 또한 바울로는 안티오키아에서 일어났던 자신과 베드로가 연루된 사건을 강조한다. 이 사건이 일어날 당시 바울로는 안티오키아에서 유대 그리스도교도와 이방 그리스도교도를 하나의 회중으로 합하는 일에 어느 정도 성공했던 것 같다. 유대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방인들과 한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것을 그들의 전통에서 아주 벗어난 일로 보았다. 바울로가 없는 동안 베드로는 선교사로서 안티오키아를 방문하여 유대인 그리스도교도와 이방인 교우들과 식사를 했다. 후에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와서 이방인 교우와 함께 식사하는 관습에 반대했다. 베드로는 야고보에게 복종하여 "슬그머니 그 자리에서 물러 났고", 유대 그리스도교도들도 마찬가지로 처신했다. 이로써 이 집단의 통일성은 무너지게 되었다. 바울로는 돌아와서 베드로가 우유부단해서 저지른 일에 대해, 어쩌면 결별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한 것 같은 일에 대해 베드로를 꾸짖었다(갈라 2:11~14).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예루살렘 공의회(49/50)가 소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에서 바울로는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고"(갈라 2:7), 베드로는 "할례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갈라 2:8). 바울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장 12절에서 지나가는 말로 게파(베드로)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것은 고린토 교회의 한 집단이 특별히 베드로에게 헌신했음을 암시한다(어떤 사람들은 이 내용을 근거로 베드로가 고린토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함). 또한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9장 5절에서는 베드로가 아내와 함께 선교활동을 한 것으로 쓰고 있다. 베드로가 소아시아에서 선교 여행을 했다는 것은 〈베드로의 첫째 편지〉 1장 1절에서 엿볼 수 있다. |
*** 요한의 편지들(Letters of John, 요한일서, 이서, 삼서) ***
< 요약 >
〈신약성서〉에 들어 있는 3편의 저작. 〈요한서신〉이라고도 함.
모두 100년경에 씌어졌고, 전승에 따르면 제배대오의 아들이자 예수의 제자인 복음서 저자 요한이 썼다고 한다. 첫째 편지에는 저자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둘째와 셋째 편지에서 저자는 자신을 '장로'라고 부른다. 저자 문제는 많이 논란되어왔으나, 언어와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3개의 편지는 한 저자의 글로 볼 수 있다.
〈요한의 첫째 편지〉는 '적그리스도'로 단죄된 '거짓 예언자들'이 예수의 성육신(成肉身)을 부정하여 정통 신자들이 남지 않을 정도로 중대한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던 교회들에 보낸 것임이 분명하다.
신자들은 이단설이 이교도들에게 환대를 받는 데 깊은 불안을 느꼈으며,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이 심오한 신비주의적 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단들은 자기들이 완전하며, '하느님으로부터 났으며',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계명 위에 둠으로써 사실상 도덕적인 방종을 인정했다. 그러므로 〈요한의 첫째 편지〉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향해 그들이 지금까지 배워온 것을 굳게 잡고 이단의 가르침들을 배척하라고 권하며,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도덕적인 모범 생활을 해나가라고 훈계한다. 그것은 계명들, 특히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뜻했다. 이 편지의 취지는 제4복음서의 것과 매우 비슷하다.
〈요한의 둘째 편지〉와 〈요한의 셋째 편지〉는 언어와 사상이 〈요한의 첫째 편지〉와 매우 비슷하다. 〈요한의 둘째 편지〉는 교회를 '선택받은 귀부인과 그 자녀들'이라고 독특하게 부르면서 성육신의 실재를 부정하는 이단들을 배척하라고 권고한다.
가이오에게 보내진 〈요한의 셋째 편지〉는 "디오드레페가 그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우리의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라고 불평하는데, 이 말은 당시 영지주의 가르침들이 교회를 심각하게 어지럽히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 개괄 >
*** 유다의 편지(Letter of Jude, 유다서) ***
< 요약 >
〈신약성서〉에 나오는 짧은 편지.
유다의 편지(Letter of Jude)
일반 그리스도교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썼으며, 저자는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동생인 나 유다"로 밝히지만 누군지 확실하지 않다. 이 편지는 "성도들에게 한번 결정적으로 전해진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힘써 싸우고", "우리 하느님 의 은총을 남용해서 방종한 생활을 하고 또 우리의 오직 한 분이신 지배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라고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권고한다.
〈구약성서〉·〈신약성서〉, 그외 자료들을 참조한 이야기와 인용에서 세련된 그리스어 문체가 돋보인다. 그러나 외경 문학을 참조했기 때문에 3세기에 이 편지에 관한 신빙성 논쟁이 일어났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는 초기 교회에서 분명히 정경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편지는 2세기초에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서 작성된 듯하다.
*** 요한 묵시록(Revelation to John, 요한계시록) ***
< 요약 >
〈신약성서〉에서 교훈서나 역사서로 분류되지 않고 묵시문학으로 분류되는 유일한 책이며, 특히 미래 사건과 관련하여 환상·상징·알레고리를 폭넓게 사용했다. 〈요한 묵시록〉은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 요한이 에게 해의 파트모스 섬에서 썼다는 주장도 있지만, 75~100년경에 살았던 저자들이 쓴 여러 단편의 모음인 듯하다.
2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부분(묵시 2~3)은 도덕적 훈계(환상·상징을 사용하지 않음)를 담고 있으며, 소아시아에 있는 7개의 그리스도교 교회에 보내는 개인적인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둘째 부분(묵시 4~22:5)은 본문에 환상·알레고리·상징을 너무 많이 담고 있기 때문에 그 해석도 다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요한 묵시록〉이 단순히 역사 사건들과 무관한 추상적인 영적 알레고리도 아니고, 불분명한 언어로 세계 종말에 있을 최후의 재난에 관해 예언한 것도 아니며, 그보다는 오히려 당시 로마 제국의 박해 때문에 겪게 된 신앙의 위기를 다룬 것으로 보는 데에 동의한다.
〈요한 묵시록〉은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신앙을 견고히 지키면서 하느님이 마침내 그의(그리고 그들의) 적들을 이길 것이라는 희망을 굳게 가지라고 일관성 있게 격려한다. 이러한 관점은 종말론적인 상황에 처해 있던 당시의 문제들을 제시하기 때문에, 〈요한의 묵시록〉의 메시지는 그리스도가 미리 경고한 박해를 당하게 될 미래 세대의 그리스도교도들과도 관계가 있다. 하느님이 사탄에게 거둘 승리(로마 제국의 박해에서 그리스도교도들을 구원하는 것)는 장차 올 시대의 악에 대한 승리와 하느님이 종말에 최종적으로 거둘 승리를 상징한다.
〈요한 묵시록〉의 중심인물은 분명히 그리스도이지만,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요한의 묵시록〉이 〈구약성서〉 특히 〈다니엘〉과 〈에제키엘〉에 나오는 비슷한 용어들과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미리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저자는 7이라는 숫자를 '전체성' 혹은 '완전'을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1,000년'에 대한 언급(묵시 20)을 근거로 악에 대한 최종적인 승리가 천년왕국이 완성된 뒤에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왔다.
< 내용 >
-일곱 나팔의 심판
** 요한(Saint John the Apostle) ** < 요약 > 축일은 12월 27일. 1세기에 활동했으며 그리스도교 전승에 따르면, 〈신약성서〉 가운데 3개의 편지와 〈요한의 복음서〉·〈요한의 묵시록〉을 쓴 저자. Saint John the Evangelist, Saint John the Divine이라고도 함. 요한(Saint John the Apostle) 그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갈릴리의 어부 제베대오와 살로메의 아들인 요한은 형제 야고보와 함께 예수에게 맨 처음 부름받은 제자들에 포함된다.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그는 언제나 야고보 다음에 언급되며, 그의 동생임이 분명하다. 어머니 살로메는 예수의 제자 집단을 도왔던 여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야고보와 요한을 '보아네르게스'(Boanerges), 즉 '천둥의 아들들'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마르코의 복음서〉 9장 38절과 〈루가의 복음서〉 9장 54절(여기서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마리아 마을들이 하늘의 불로 징벌당하기를 바랐음)에 나타난 열정적인 그들의 성격 때문인 듯하다. 요한과 야고보는 시몬 베드로와 함께 제자들 가운데서도 예수가 더욱 가까이 했던 핵심제자들이었다. 초기 전승에 따르면, 요한이 쓴 제4복음서(요한의 복음서)에서 제베대오의 아들들은 예수가 부활하여 티베리아 호숫가에 나타났을 때 그곳에 있었다고 단 한번 언급된다. 이 복음서가 언급하는 '예수가 사랑하는 제자'가 요한(그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음)인지의 여부는 본문에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다. 예수가 부활한 뒤 요한이 교회에서 권위 있는 지위에 있었다는 것은 그가 사마리아의 새로운 개종자들을 안수하기 위해 베드로와 함께 그곳을 방문한 사실에서 나타난다. 바울로의 복음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사람은 베드로·야고보(요한의 형제가 아닌 '예수의 형제')·요한이었다. 이방인들을 교회에 받아들이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요한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요한 학파가 바울로에 반대하여 이방인들에게 교회의 회원자격을 주는 데에 반대했다는 이론을 내놓지만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그뒤 요한의 행적은 불분명하며, 불확실한 전설의 안개에 가려져 있다. 2세기말경 에페소스의 주교 폴리크라테스는 요한의 무덤이 에페소스에 있다고 주장하고, 그는 예수에게 사랑받던 제자였으며, '성직자 복장을 한 사제로서 순교자요 교사'였다고 덧붙였다. 180년경 리옹의 주교 이레네오는 요한이 파트모스 섬에서 〈요한의 복음서〉·〈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요한의 묵시록〉을 썼고, 에페소스에서 죽었다고 한다. 3세기에는 에페소스의 두 지역이 요한의 무덤으로 추정되었는데, 결국 한 곳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아 4세기에 성지가 되었다. 6세기에 요한의 무덤에서 나온 흙은 병을 고치는 능력으로 유명했고(프랑크 역사가 투르의 그레고리우스가 이 말을 전함), 또한 이 시기에 에페소스 교회는 제4복음서의 자필원고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방에서도 많은 전설들이 생겼는데, 이 전설들은 특히 요한이 순교할 것을 암시한 〈마르코의 복음서〉 10장 39절에 자극을 받았다. 2세기 북아프리카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요한이 끓는 기름 속에 던져졌으나, 기적적으로 조금도 상해를 받지 않고 빠져나왔다고 전한다. 7세기에는 이 장면을 라테라노 대성당에 그렸으며, 로마에 있는 라틴 성문 곁에 설치해놓았다. 오늘날에도 매년 5월 6일에 이 사건을 기념한다. 요한이 죽지 않았다는 신앙은 초기 전승에 근거한 것이다. 외경인 <요한행전 Acts of John>(2세기 후반)의 원래 형태에서는 요한이 죽은 것으로 묘사되지만, 후대 전승들은 에녹과 엘리야처럼 승천했다고 주장한다. 아우구스티노도 알고 있었던 유명한 전승에 의하면, 요한의 무덤을 덮은 흙은 마치 그 사도가 여전히 숨쉬고 있는 것처럼 출렁거렸다고 한다. 중세 성상화(聖像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전설들은 주로 외경인 〈요한행전〉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요한행전〉은 요한이 매우 어렸을 때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내용을 전하기도 한다. 이때문에 성상에 턱수염이 없는 소년의 모습이 일찍부터 등장했는데(4세기 로마에서 출토된 석관에서처럼), 중세 서방교회는(비록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이 모습을 선호했다. 비잔티움 교회는 복음서 저자 요한을 길고 흰 턱수염과 머리, 대개 자신이 쓴 복음서를 들고 있는 노인으로 묘사한다(비잔티움 예술). 복음서 저자인 그의 상징은 독수리이다. 비잔티움 교회들은 그가 묵시록에서 영감을 받아 기록한 환상들 때문에 그에게 '신학자'라는 호칭을 붙였다. 이 호칭은 묵시록의 비잔티움 사본에 나타나지만, 복음서 사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
** 그리스도의 적 ** 그리스도의 적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최후의 적인 악의 존재를 지칭한다. 그리스도의 적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 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출현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기만하는 일에 앞장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용어가 신약 성경에서는 오로지 요한 서간에서만 네 번 나오지만 그 개념은 성경 전체에 걸쳐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용어가 직접 언급되지 않는 경우에는 짐승이나 거짓교사 또는 거짓 예언자 등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사탄의 세력과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구약 성경 안에는 하느님과 그분 백성의 큰 적대자에 관한 사상이 나타나 있다. 에제키엘서와 다니엘서를 보면 하느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마곡 땅의 곡과 하느님께 충실한 이들을 억압하는 짐승이 등장한다. 이들을 통해 하느님의 적대적인 세력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느님께 적대자들은 성소에서 바치던 제사를 폐지시키고 성소를 더럽히며 급기야 폐허로 만들어 버리고 하느님의 성전에 우상을 세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업신여기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들어 높이면서 마치 자기가 하느님인 양 행동한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에는 그 세력이 큰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 하느님께 패배하고 만다. 정경 이외의 유다교 문헌들은 벨리아르라는 이름을 가진 하느님의 적대자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종말에 하느님의 적대 세력들이 그분의 백성을 공격할 것이지만 그들의 공격은 하느님에 의해 무력화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상들은 신약 성경 곳곳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구약에서의 하느님의 최후 적대자는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최후 적대자가 된다. 그리스도께 적대적인 세력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그들을 패배시키실 때 비로소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적’에 관한 것은 기원후 1세기 말경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도 널리 퍼져 있던 사상으로 신자들은 그에 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신약 성경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적의 개념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그 정체가 밝혀진 것처럼 보인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영광스럽게 다시 오시기 전에 일어날 종말의 비극적인 사건들과 박해에 관해 설명하시는 가운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당신에 앞서 먼저 나타날 것을예고하셨는데, 바로 그 예고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적의 개념을 찾아볼 수가 있다.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2서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두고 마지막 날에 나타날 무법자에 관해 언급한다. 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은 아마도 그리스도의 적의 개념을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사도 바오로는 무법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구약 성경의 언어와 이미지를 가져다가 그리스도의 적이 꾸미게 될 일을 묘사하고 있다. 거기서 보면 사탄의 대리자인 이 무법자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의해 패망하기 전까지 스스로 신이라 자처하고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한 요한 1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적이 나타나는 때가 바로 종말의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적의 출현이 종말의 시점을 가늠하게 해 주는 기준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적이 하나가 아니라 다수라는 사실을 밝혀 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개념을 확대시키고 있다. 하느님 아버지와 그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누구나 그리스도의 적이며,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과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특히 요한 서간의 저자는 최후의 그리스도의 적이 역사의 최종 순간에 출현하기 전에, 이미 역사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적들에게 믿는 이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려 하고 있다. 그는 교회 안에서 그릇된 이단을 퍼뜨리는 거짓 교사들을 그리스도의 적에 견주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적에 관한 사상이 심화되어 나타난 곳은 요한 묵시록이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그리스도의 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용과 짐승을 내세우고 있다. 12장에 나오는 용과 13장의 두 짐승에 관한 내용 안에서 테살로니카 2서(2,3-12 참조)의 무법자와 다니엘서11) 의 짐승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적을 그리스도의 적대자로서 뿐만 아니라 특히 사탄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그리스도를 흉내 내고 있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을 기만하고 충실한 신앙인들을 살해하며 하느님께 대항하는 최후의 싸움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겠지만 결국에는 그리스도께 패배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적과 그를 경배한 자들은 하느님의 분노를 맛보게 될 것이고 그분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신약 시대에 와서 그리스도의 적은 때로는 역사적인 상황과 결부되어 로마제국이나 네로 같은 로마 통치자들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현대 학자들은 대개 그리스도의 적을 어떤 특정한 인물로 보기보다는 악의 총체적인 구체화 또는 사악하고 반그리스도교적인 가르침이나 운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 ** 재림 ** 신약 성경을 보면 초대 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초대 교회 신자들의 기본신앙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세가 끝나는 마지막 시기에 다시 세상에 오신다는 것이 재림 사상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분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세상의 마지막 때인 종말에 일어날 여러 현상들 곧 마지막 심판, 인간의 부활, 악의 패배, 하느님의 영원한 통치의 수립 등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할 때 흔히 도착, 출현, 현존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 파루지아(Parousia)라는 그리스어 용어를 사용한다. 메시아의 재림에 관해서는 구약 시대에도 암시되어 왔지만 분명하게는 신약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재림에 관해 직접 말씀하셨다. 그분께서 승천하실 때 나타난 천사들은 그분께서 다시 오실 것임을 밝혀 주었다. 초대 교회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 왔다. 예수님께서는 오랫동안 기다려 온 구원의 때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다. 그런데 그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그분의 인격안에서 실현되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이 세상에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절정의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개막하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셨던 궁극적인 구원은 그리스도의 메시아적인 직무와 죽음과 부활에 의해 시작되었고, 장차 있을 그분의 재림으로 온전하게 성취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일들의 목표임과 동시에 완성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재림이 잘못 이해되지나 않을까 경계하시면서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하셨다. 그분의 재림은 인격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스도 재림의 목적은 그분께서 사람이 되시어 오심으로 시작된 하느님의 인류 구원 계획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게 될 그날은 최후 심판의 날이 될 것이고 모든 인간들은 부활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은 악이 최종적으로 패망하고 하느님의 영원한 통치가 시작되는 특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느님께서 다스리시게 될 그 나라는 평화와 의로움과 사랑의 왕국이 될 것이며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그들의 희망이 실현됨을 의미한다. 믿는 이들에게 재림에 대한 희망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올바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으로 자리 매김 되어야만 할 것이다. 믿는 이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므로 그분을 섬기는 일에 온 힘과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믿는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상에서 겪어야 할 고난과 고통을 견디게 해 주는 희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를 직접 뵙게 될 것이며 의로움과 영광을 받고 변화하여 그분을 닮게 될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머지않아 이루어질 일로 생각하며 기다려 왔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고 미루어지는 것 같은 상황이 되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있을 것처럼 언급되고 있는 것은 재림 시기의 급박성을 말해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심으로써 시작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그분의 재림으로 완성되리라는 분명한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시기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닥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아버지만이 그때를 아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속적인 기다림 안에서 살아가야 할 실재인 것이다. 믿는 이들은 재림의 때를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깨어 있으면서 그때를 준비하며 살아야만 한다. ------------------------------------------------------------------------------------------------------------------------------------ ** 천년왕국(millennium , 千年王國) ** < 요약 >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의 천년왕국 사상 또는 천년왕국 신앙은 주로 유대교의 종말론적 대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흔히 그리스도교도들이 세상에 대해 승리할 날이 다가왔음을 의미했다. 〈신약성서〉에서 천년왕국 교리는 〈요한의 묵시록〉 20장에 분명히 나타난다. 거기에 나타난 환상에 관한 설명에 따르면, 사탄은 1,000년 동안 깊은 심연 속에 결박당한 채 던져지고 순교자들은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1,000년 동안 다스릴 것이라고 한다. 또 1,000년이 끝나면 사탄은 갇혔던 감옥에서 한동안 풀려나와 뭇 나라들을 현혹하지만 결국 패배할 것이고, 그때 모든 죽은 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지막 심판을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 천년왕국에 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 세상에서 1,000년간의 정의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 그리스도교도들은 전천년왕국주의자들이라고 불렸다. 후천년왕국주의자들로 불리는 다른 그리스도교도들은 그리스도교가 결국 온 세계에 받아들여질 것이며, 1,000년 동안 그리스도교도들이 정의로 세상을 다스린 뒤, 그리스도가 재림하고 죽은 자가 부활하며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릴 것이라고 믿는다. 이 용어를 가까운 미래에 지상에서 누릴 물질적 축복을 대망하는 사상까지 포함한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한다면, 수많은 초대 그리스도교 저술가들, 특히 유대계 그리스도교에 가까운 사람들을 천년왕국주의자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저술가로는 〈바르나바 서신〉의 저자, 파피아스, 유스티노, 이레네오, 유대계 그리스도교 영지주의자 케린투스 등이 있다. 몬타누스주의 운동이 등장하면서 다수의 그리스도교도들은 처음으로 이러한 종류의 교리가 갖는 위험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몬타누스주의자들은 하늘의 예루살렘이 곧 프리기아에 나타날 것이며 그들의 지도자는 〈요한의 복음서〉에 약속된 협조자 성령이라고 믿었다. 같은 시기에 보다 정통적인 교사들도 이와 유사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히폴리토에 따르면 시리아와 폰투스의 주교들은 신도들을 데리고 광야로 나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의 재위 기간에 교회가 공인되자 이러한 대망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위대한 서방교회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생애 초기에는 천년왕국주의자였으나 나중에 생각을 바꾸었다. 에페소스 공의회(431) 때만 해도 천년왕국주의적 견해는 정죄되지 않고, 다만 무시되는 정도였다. 훗날 이러한 사상은 교회의 권위에 저항할 때 산발적으로 등장했는데, 중세시대에 영적 열광주의자들 사이에서 유행했고, 특히 사회적·종교적으로 불안감이 고조되었던 종교개혁기에 여러 집단이 연합된 재세례파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이들보다 보수적인 종교개혁가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미래의 사건으로 간주하지 않고 일단 과거의 사건으로 보는 가톨릭 교회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지상에 이루어질 하느님의 나라와 교회가 완전히 동일한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지만 2가지를 동일시했다. 그뒤 서구 역사에서 천년왕국사상은 커다란 사회적 변혁기나 위기의 시대에 다시 등장하는 경향을 보였다. 서구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단, 여호와의 증인, 모르몬교 등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 ** 천년왕국(Millennium , 千年王國) ** 엄밀한 의미에서 천년왕국은 유대 · 크리스트교 전통에서 유래한 종말론의 한 변형이다. 「요한계시록」 20장에 의하면, 예수가 재림(parousia)하여 지상에 그의 왕국을 세우고 ‘최후의 심판’이 오기까지 천 년간을 다스리게 된다. 이 거룩한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예수가 재림할 때 함께 부활한 성자(聖者)와 순교자들, 그리고 지상에 있는 의인(義人)들이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은 역사의 종말이 오기 전에 이 세상에 건설된 크리스트교의 지상낙원(地上樂園)으로서, 여기에는 예수의 재림이라는 구세주 대망(待望) 신앙과 종말론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천년왕국에 관한 학설은 전(前)천년왕국설(pre-millenarianism)과 후(後)천년왕국설(post-millenarianism), 무(無)천년왕국설(a-millenarianism)로 나누어진다. 전천년왕국설은 예수의 재림이 천년왕국 앞에 온다는 주장이고, 후천년왕국설은 예수의 재림이 천년왕국 뒤에 온다는 이론이다. 이에 비해 무천년왕국설은 천년왕국이란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 사이에 존재하는 교회시대를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개념일 뿐, 예수의 가시적인 지상 통치는 없다는 주장이다. 천년왕국설은 초기 교회에서 정통 교리로 인정받았으나, 431년 에페수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리고 그 대신 아우구스티누스가 강조한 무천년왕국설이 정통사상으로 수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년지복(千年至福) 시대가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일반 신자들, 특히 가난하고 억눌린 하층민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천년왕국 신앙과 그 운동은 중세 이래 오늘날까지 면면히 지속되어 왔다. 예컨대, 중세의 민중 십자군 운동과 프란체스코 성령파 운동, 15세기 급진적 후스(Huss)파인 타보르(Tabor)파 봉기, 16세기 독일의 농민전쟁과 뮌스터(Münster)의 재세례파 봉기, 17세기 영국혁명 시기의 제5 왕국파 운동, 19세기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라자레티 운동, 20세기 ‘여호와의 증인’과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의 활동들은 천년왕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넓은 의미의 천년왕국 운동은 현재의 사악한 세계를 전면 부정하는 급진적 대중 종교 운동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따라서 천년왕국 운동은 유태 · 크리스트교 전통을 계승한 구미(歐美)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에 걸쳐 있는 세계사적 현상으로 파악된다. 그것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고 나타나지만, 기존 제도를 부정하고 지배계급을 전제적 압제자로 간주하여 타도할 것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러므로 천년왕국 신앙과 유사한 미륵 하생(下生) 신앙이나 후천개벽 사상에 영향을 받은 동양의 농민봉기와 혁명운동들도 일종의 천년왕국 운동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중국의 백련교도의 난, 태평천국의 난, 의화단의 난, 그리고 우리나라의 동학운동 등이 대표적 예이다.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에 있었던 멜라네시아(Melanesia) 지역의 ‘적화의례(積貨儀禮, cargo cult)’, 19세기 후반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유령의 춤(ghost dance)’ 등은 백인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식을 보여준 천년왕국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천년왕국은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약속하는 이상사회와 대중종교 운동의 이데올로기라는 이중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천년왕국 운동의 기능은 극단의 사회적 파괴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질서와 사회를 수립하기 위한 대중운동을 고취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 ** 하느님의 나라(Kingdom of God) ** < 요약 >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이 왕으로 통치하는, 즉 지상에 하느님의 의지가 완전히 실현되는 영적인 왕국. Kingdom of Heaven이라고도 함. 이 구절은 〈신약성서〉에 빈번히 등장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 세 복음서에서 사용했다. 그것은 대체로 예수의 가르침의 중심 주제로 여겨지지만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과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교회의 발전된 견해 간에 논란이 많았다. 그 구절 자체가 그리스도교 이전의 유대교 문학에서는 드물게 사용되었지만 하느님을 왕으로 여기는 사고는 유대교의 기본사상이었다. 또한 그 주제에 관한 유대교의 사상은 〈신약성서〉의 기초가 되었으며, 어느 정도는 결정적인 것이다. 왕국을 뜻하는 그리스어 바실레이아 이면에는 아람어 말쿠트의 개념이 있는데, 예수는 그것을 사용한 듯하다. 말쿠트는 원래 지리적인 영역이나 그 영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는 왕 자신의 활동과 통치권의 실행을 의미한다. 왕권·통치권이라는 표현이 이 생각을 더 명확히 전달한다. 예수 시대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 세계는 하느님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것처럼 보여서 잠시나마 우주적 규모로 신이 직접 개입하는 상황을 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부적인 사항은 다양하게 상상되었고 하느님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받은 중재자를 보낼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중재자의 기능에는 '왕국을 물려받을'(이 표현은 왕국이 인간이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선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포함된다. 처음 세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기적 행위의 대부분은 다가오는 왕국의 예언적 상징들로 이해해야 하며, 그의 가르침은 왕국의 다가옴에 따른 위기에 올바르게 응답하는 것과 관계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기대한 민족주의적인 경향은 예수의 가르침에는 없었다. 예수가 그 왕국이 그의 생애 동안 실제로 도래했다고 가르쳤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그가 그의 사역기간에 왕국의 임박함에 대한 징조를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래에 왕국이 '권능으로'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자신의 죽음을 왕국의 완전한 성취를 위한 섭리적 조건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상당히 짧은 시기에 최종적인 성취를 예상한 것 같다(마르 9 : 1). 따라서 그리스도교도들은 세상의 종말이 예를 들어 바울로가 예상한 것처럼 한 세대 내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때 당황했다. 그러나 이같은 그리스도교도의 경험은 다음과 같은 것을 제시했는데, 즉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에 받을 많은 축복들을 이미 현재의 신자들이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라는 구절은 사용 빈도수가 줄어들었지만 부분적으로는 지금 여기에서, 교회의 삶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실제로 여러 시기에 교회의 생활을 왕국과 동일시해왔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는 최후의 심판을 동반하는 세상의 종말 이후에만 완전히 실현될 것이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요한의 글들은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도가 하느님의 나라를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 최후의 심판(Last Judgment) ** < 요약 > 하느님이나 신들, 또는 인과율에 의해 사람의 생각과 언행을 총체적으로 심판하거나 때로 개별적으로 심판하는 일. 최후의 심판 일부 종교(예를 들면 그리스도교)에서 심판은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행해지며, 다른 종교들(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원시종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직후 그 행위에 따라 하느님이 보상이나 벌을 내리는 심판이 일어난다고 본다. 서방의 예언 종교들(예를 들면 조로아스터교·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은 많은 표상으로 최후의 심판 개념을 발전시켰다. BC 6세기경 이란의 예언자 자라투스트라에 의해 창시된 조로아스터교는 죽은 뒤 3일 밤을 무덤에서 기다린 후 4일째 되는 날 보응의 다리로 가서 행위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만일 선행이 악행보다 더 많으면, 영혼은 다리를 건너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악행이 선행보다 더 많으면 영혼이 건널 수 없도록 다리가 좁아져 결국 춥고 어두운 지옥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을 소생시키고 최후의 심판을 주재하며 세상의 선을 회복시키는 지혜의 주 '아후라 마즈다'가 악마들의 우두머리인 '아흐리만'을 결국 굴복시키기 때문이다. 초기 유대교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날(주의 날이라고도 함)을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모든 민족을 심판하는 이날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최후의 심판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파루시아('영광 속에서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최후의 심판이 있으며, 모든 인간이 심판하는 하느님 앞에 서게 된다고 가르친다. 초기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심판자 그리스도, 죽은 자의 부활, 영혼에 대한 평가, 구원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의 구별, 낙원과 지옥 등이 묘사된다. 로마네스크 예술가들은 그리스도를 묵시문학에 등장하는 4마리의 신비한 동물(독수리, 사자, 황소, 날개달린 인간)에 둘러싸인 채 칼을 휘두르는 완고한 심판자로 묘사하거나, 천국과 지옥을 경외와 광포함으로 비교하는 등 최후의 심판을 더 무섭게 묘사했다. 고딕 시대의 보다 세련되고 인간주의적인 예술에서 그리스도는 오른쪽 옆구리가 벗겨져나가 창에 찔린 상처를 드러내고 상처입은 두 손을 쳐들어 자신의 희생을 강조하는 구원자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십자가·못·창·가시면류관 등 수난의 도구들이다. 그리스도, 즉 중보자(仲保者)들을 복원하는 등 최후의 심판 장면을 낙관주의적으로 묘사한다. 16세기 미켈란젤로는 로마에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프레스코에서 지옥에 떨어진 자들을 위협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복수심에 가득한 그리스도를 이교도의 신처럼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최후의 심판에 대한 전혀 다른 견해를 표현했다. 이슬람교에서도 역시 최후의 심판에 대한 형상은 아주 풍부하여, 그 개념이 많이 확대되었다. 심판의 날은 이슬람교의 5대 신앙 중 하나이다. 사람이 죽으면 '문카르'와 '나키르' 등 두 천사에게 신앙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만일 순교의 삶을 살았다면 영혼은 곧 바로 낙원에 가지만, 다른 사람들은 일종의 연옥을 통과해야 한다. 운명의 날에 모든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사람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수록한 2권의 책에 실린 기록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람은 목에 매달린 책의 비중에 따라 낙원이나 지옥으로 갈 것이다. 서방종교와 일부 원시종교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종교들도 최후의 심판에 대한 신앙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는 죽은 자의 심장이 신 '아누비스'의 저울에 올려져 심판을 받는다. 심장이 가볍다는 것은 그 사람이 비교적 선하게 살았음을 가리킨다. 그런 사람의 영혼은 죽음의 신 '오시리스'가 지배하는 축복받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심장이 무거우면 '삼키는 자'라고 불리는 반신반인(半神半人)에 의해 영혼이 파괴된다. 환생을 믿는 아시아 종교들(예를 들면 힌두교·자이나교·불교)에서도 최후의 심판개념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윤회설). --------------------------------------------------------------------------------------------------------------------------------- ** 천국(heaven , 天國) ** < 요약 > 이 말은 지상(인간들이 거주하는 곳)이나 지하세계(저주받은 자들이 거주하는 곳)와 대조되는 천상의 영역을 의미하는데, 지하세계는 흔히 지옥으로 불린다. 천상의 공간인 천국은 선과 성스러움의 특질인 빛을 발하거나 상징하는 태양·달·별들이 위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빛은 지하세계와 악의 성질인 어둠에 반대된다. 천국의 개념은 세계 여러 종교에서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구약성서〉에서 천국은 이스라엘인들의 하느님인 야훼가 거하시는 곳으로 생각되었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은 천국의 창조자이자 천상의 영역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BC 3~2세기에 이스라엘인들은 대개 천국을 죽은 자들의 거처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선하거나 악하거나 모든 사람은 고통과 기쁨, 벌과 보상이 없는 지하세계 스올에서 잔다고 믿었다. 그러나 후기 유대교에서 천국은 하느님과 함께 살기 위해 장차 부활할 의인들의 사후 목적지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유대교의 모태에서 나온 그리스도교는 천국을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자와 추종자들의 목적지로 생각했다. 최근의 몇몇 해석에 따르면, 천국은 선택되거나 구원받은 자들이 사후에 가는 장소라기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의 상태를 상징한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영향을 받은 이슬람교는 천국을 알라(신)의 뜻에 따라 신실한 이슬람교도가 가는 기쁨과 축복의 장소로 보았다.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은 모든 사람이 천국에 이르기 전에 지옥을 통과하거나, 지나가야 한다고 언급한다. 동방종교에서 천국의 개념은 매우 다채로워서 어떤 것은 서방종교와 유사하고, 어떤 것은 매우 다르다. 중국인들은 하늘[天]이 인간의 도덕법과 자연의 물리적인 법칙의 수호자로 신적 의지와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대승불교(Mahāyāna:큰 수레)의 정토종에서 천국은 서방정토를 가리키며, 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을 구원하기로 맹세한 붓다('깨우친 자')인 아미타불의 구원하는 은총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여겨졌다. 정통 불교, 특히 소승불교(Theravāda:상좌부)에 속한 사람들은 천국을 말하지 않고, 욕망이 소멸된 존재상태인 니르바나를 말한다. 힌두교에서는 각양각색의 천국개념이 있다. 예를 들어 비슈누('보존자')의 숭배자들은 고통·두려움·죽음이 없는 천국에 가서 비슈누의 영원한 빛의 영광 안에서 살 수 있다고 믿는다. ----------------------------------------------------------------------------------------------------------------------------------- ** 지옥(hell , 地獄) ** < 요약 > 감추다' 또는 '덮다'라는 뜻의 앵글로색슨어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지하세계의 뜨거운 지역을 가리키는데, 일부 종교에서는 지하세계를 차갑고 어두운 곳으로 믿는다.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 혹은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존재상태나 장소가 있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세계 종교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인과 원시인의 종교에서 죽은 사람이 거주하는 장소는 영혼의 종착지이다. 어두운 지하세계나 외딴 섬(그리스 하데스), 사람들의 영혼들이 형벌을 당하는 지하세계의 깊은 심연(그리스 타르타로스), 선하거나 악한 영혼들이 끊임없는 갈증을 느끼는 유령들로 지내는 지하세계의 어두운 곳(고대 이스라엘인의 셰올), 차갑고 어두운 지하세계(노르웨이인의 니플헤임 또는 헬),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거하는 천상의 장소(푸에블로족 인디언들이 죽으면 즉시 구름이 되어 비의 전달자로 지낸다고 믿는 장소), 영혼이 쇠잔해지다가 결국 소멸하는 어두운 장소(수렵생활을 하던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죽은 뒤 가게 된다고 믿는 장소)이다. 지옥은 최후 심판이 끝난 뒤 저주받은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거주하게 될 장소라는 견해는 조로아스터교·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 서양의 예언종교들이 견지하고 있다. BC 6세기 이란의 예언자이자 개혁자 자라투스트라가 세운 조로아스터교는 영혼이 죽으면 심판을 받기 위해 3일 밤을 기다리다가 4일째 되는 날에 '보응(報應)의 다리'로 가서 생전의 행위들을 평가받는다. 선행이 악행보다 많은 영혼은 점점 넓어지는 보응의 다리를 건너 하늘로 가며, 선행보다 악행이 더 많은 영혼은 점점 좁아지는 다리를 건너다가 결국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고 악취가 나는 지옥에 떨어져 부활의 날까지 고통과 징벌을 겪는다. 선행과 악행이 균형을 이루는 사람들에게는 하메스타간('잡다한 사람들의 장소')이 준비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그 영혼들은 더위와 추위를 번갈아가며 고통받는다. 하메스타간은 그리스도교의 연옥 개념과 비슷하다.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유대교는 지옥을 '게헨나', 즉 악인들이 징벌을 받는 무시무시한 지역으로 보았다. 유대교의 지옥 개념을 토대로 삼은 그리스도교는 지옥이 죄된 생활을 한 사람들과 하느님을 부인한 사람들에게 내린 영원한 저주의 장소, 마귀와 그 휘하의 악한 천사들이 지배하는 불타오르는 지역이라고 보았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같은 초기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지옥이 영원하다는 견해와 지옥이 뜨겁게 타오르는 내세(來世)의 장소라는 문자적인 견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다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지옥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이 형벌을 받는 상태라고 가르쳤다. 어떤 현대 신학자들은 문자적인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지옥은 적어도 악인과 선인이 구별되어 있는 상태라고 주장한다(그리스도교). 조로아스터교·유대교·그리스도교에 토대를 두고 지옥, 즉 '자한남'개념을 발전시킨 이슬람교에서 지옥은 모든 영혼이 낙원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건너야 할 좁은 다리 밑에 있는 뜨겁게 타오르는 거대한 분화구로 묘사된다. 저주받는 사람들은 다리에서 떨어져 알라(신)가 뜻을 바꾸기 전까지 고통을 겪는다. 힌두교에서 지옥은 영혼의 도정 가운데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르며 환생(還生)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승 밑에 있는 21곳의 지옥들 중 한 곳 또는 여러 곳에서 보낸 시간은 궁극적인 의미가 없다. 결국 영혼은 '세계(또는 궁극)의 영혼'에게 돌아갈 것이며, 그렇게 될 때까지 윤회의 인생을 보낸다. 자이나교에서 지옥('브후미스')은 죄인들이 생전에 쌓았던 악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마귀들에게 고통을 당하는 곳이다. 중국에서 도교는 사후의 형벌과 속죄가 일어나는 장소에 관한 불교의 관념을 받아들여 이를 수정했다. 일반인들의 지옥관은 <서유기 西遊記>·〈악비전 岳飛傳〉 같은 허구적인 지하세계 여행담과,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지하세계에서 벌인 자비의 여행기들을 전하는 불교 경전에 근거한다. 그 내용에 따르면, 사람은 죽은 직후에 사자들에게 이끌려 성벽과 해자(垓字)의 신 성황(城隍) 앞으로 가며, 성황은 죽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예비 증언의 기회를 준다. 덕을 많이 쌓은 사람들은 불교의 낙원들 가운데 한 곳, 즉 도교의 불멸자들이 살고 있는 쿤룬 산으로 곧바로 가거나, 환생을 위해 지옥의 10번째 궁전으로 갈 수 있다. 죄인들은 49일 뒤에 메루 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지옥으로 내려온다. 10왕전은 주요도시 펑두에 자리잡고 있다. 죄인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 한 곳 또는 여러 곳의 지옥에서 지내는데, 그 기간은 자비로운 지장(보살)의 중재로 조정될 수 있다. 죽은 사람들은 환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망각(忘却)의 국을 마시고 윤회(輪廻)의 바퀴에 오르는데, 이 바퀴는 각 사람을 다음 차례의 삶으로 데려다준다(다른 이야기들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은 고통의 다리에서 내던져져 강물에 휩쓸리며, 강물을 타고 새로운 목적지로 간다고 함). 불교는 지옥이 모든 생물이 윤회하는 육도(六道:하늘·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다고 가르친다. 구사론(俱舍論)이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8대 지옥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① 살생의 죄를 진 사람이 가는 지옥인 등활(等活), ② 살생·절도의 죄를 진 자가 가는 흑승(黑繩), ③ 사음의 죄에 적용되는 중합(衆合), ④ 살생·절도·사음·음주의 죄에 적용되는 규환(叫喚), ⑤ 규환에 해당하는 죄에 추가하여 헛된 말을 퍼뜨린 죄까지 추가된 경우에는 대규환(大叫喚)에 적용되고, ⑥ 위의 ④·⑤에 추가하여 사견(邪見)의 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초열(焦熱)에 해당되고, ⑦ 위의 ④·⑤·⑥에 추가하여 니(尼)를 범한 경우에는 대초열(大焦熱)에 해당하며, ⑧ 부모를 살해하거나 부처에게 상처를 입힌 자가 가는 아비(阿鼻)가 있는데, 무간(無間)이라고도 한다. 각각의 지옥에는 다시 16개의 지옥이 있으므로 크고 작은 지옥을 모두 합치면 136개의 지옥이 있다. 그밖에 8대 지옥 이외에 8한(八寒) 지옥이 있어 중생이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게 한다. 고대 인도의 베다에 의하면 지옥에 있으면서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사자(死者)의 왕은 야마라고 한다. 이 야마의 한역(漢譯)은 염마(閻魔)가 되는데 불교와 함께 중국에 전해져 전적으로 중국적인 존재가 되었다. 명계에 있는 10인의 왕 중 하나인 염마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지옥의 개념은 원시불교의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에 비하여 정토(淨土)의 개념은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고 난 이후 생겨났다. ----------------------------------------------------------------------------------------------------------------------------------- ** 알파와 오메가 **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 문자의 처음과 끝 글자이다. 이 말이 신약 성경에서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이고있다. 이는 하느님 그리고 그분과 본질적으로 같은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창조주시요 구원자이시며 최후 심판자로서, 만물의 근원이시고 최종 목적이심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영원성, 완전성, 초월성을 드러내 준다. 구약 성경에서도 ‘나는 처음이며 나는 마지막이다’라는 하느님의 말씀에서 이와 비슷한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의 광대함과 하느님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포괄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신약성서〉 〈요한의 묵시록〉에서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자기칭호로 이 말을 사용했으며, 이 용법은 〈구약성서〉 〈이사야〉 44장 6절("내가 시작이요, 내가 마감이다")과 〈시편〉 90장 2절("한 옛날부터 영원히 당신은 하느님")에 근거를 둔 유대교적인 기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랍비 문학에 나오는 에메트(emet:진리)라는 말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자와 끝 자로 구성된 단어로 '하느님의 인장'이라는 뜻이며, 유대 전승에서 이 말은 '알파와 오메가'와 똑같은 의미를 어느 정도 담고 있다. ---------------------------------------------------------------------------------------------------------------------------------- **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 ** 소아시아 7 교회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아나톨리아 서쪽지도, 파트모스섬과 7 교회가 있었던 도시의 위치를 보여준다. < 목차 > 1. 이즈미르의 성 폴리캅 교회 2. 베르가마의 레드 바실리카 3. 악히사르의 티아디라 공화당 유적 4. 사르트의 아르테미스 사원 5. 아라쉐히르의 사도 요한 기념 성당 6. 게브제의 에스키히사르 7. 에페스의 마리아집 《신약성서》의 〈요한 계시록〉에는 아나톨리아 지역의 7개 교회가 설명되어 있다. 이 교회들은 초기 그리스도교가 확장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1. 이즈미르의 성 폴리캅 교회일곱 교회의 중심이자 이즈미르에 있는 교회 중 가장 오래된 성 폴리캅 교회가 있다. 성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직속 제자였으며, 스미르나(현재의 이즈미르)의 주교였다. 그 역시 로마의 그리스도교 박해 시절에 체포되어 화형에 처해졌지만, 불에 타지 않아 결국 칼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성 폴리캅 교회 2. 베르가마의 레드 바실리카레드 바실리카(붉은 공화당)는 이 도시에 남아 있는 교회 중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레드 바실리카 3. 악히사르의 티아디라 공화당 유적악히사르는 희귀한 보라색 염료 상인인 티아디라의 리디아가 성 바울을 만난 곳이다. 현재 티아디라 공회당 유적이 남아 있다. 티아디라 공화당 유적 4. 사르트의 아르테미스 사원사르트(사르디스)는 리디아 왕국의 수도다. 이 도시에는 많은 사원이 있는데, 그중에서 아르테미스 사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사원에는 금 제련사, 상점 거리, 체육관, 커다란 유대 교회 등이 있고, 아르테미스 사원은 그리스도교가 부흥하면서 교회로 바뀌었다. 아르테미스 사원 5. 아라쉐히르의 사도 요한 기념 성당과거에는 ‘필라델피아’라고 불렸던 이곳에는 사도 요한 기념 성당과 공회당 자리가 남아 있다. 사도 요한 기념 성당 6. 게브제의 에스키히사르성 요한이 라오디게이아에 ‘보라, 내가 문 앞에서 서서 문을 두드리니’라고 써 둔 곳이다. 에스키히사르 7. 에페스의 마리아의 집 그리스도의 수난 이후, 성 요한은 동정녀 마리아를 에페스로 데려왔다. 그녀는 뮐뷜다르 산의 돌집에서 살았는데, 현재 그곳을 ‘마리아의 집’이라고 복원시켜 두었다. 이곳은 그리스도인들이나 이슬람교도들의 순례지로 유명하며, 바티칸에서도 공식 인정하고 있는 성지다. 그래서 매년 8월 15일 성모 마리아의 축일에는 이곳에서 축제가 열린다. 마리아의 집 ----------------------------------------------------------------------------------------------------------------------------------- ** 메시아(messiah, 구원자, 해방자) ** 구원자'를 뜻하며, 넓은 의미에서 인류, 또는 세계가 더 나은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신념이나 이론들을 언급할 때 쓰인다. 〈구약성서〉는 종말론적 메시아에 관하여 말하지 않으며, 구절들에서도 메시아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메시아 신앙이 왕권과 관련된 믿음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교 교회가 메시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christos'(그리스도)를 예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면서 메시아라는 단어에 담겨 있던 민족주의적인 의미가 사라졌다. 그러나 메시아 신앙은 신학적으로 꾸준히 발전했고 메시아 운동들로 표현되었다. 유대교의 현대화 운동들은 개인적인 메시아를 내세우지 않고 궁극적으로 구원된 세계와 메시아적 미래에 대한 전통적인 신앙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 ** 종말론(Eschatology , 終末論) ** ‘종말론’의 기본적인 의미는 영어 ‘에스커톨로지(eschatology)’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단어는 ‘마지막’을 의미하는 에스커토스(eschatos)와 ‘가르침’을 의미하는 로고스(logos)의 합성어로 ‘마지막에 관한 가르침’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종말론은 인간 존재의 그릇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하나의 시각이다. 인간은 기원전 1만 년경 사냥 · 채집 경제에서 농업 · 정착 경제로 전환하면서 시 · 공간에 대한 시각이 다변화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 도시와 문자를 만들면서 문명생활이 시작되었고, 도시 정착민들은 농경 순환주기에 맞추어 시간도 자연과 마찬가지로 순환적으로 반복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순환적인 반복을 기준으로 삶의 형태를 고정시키고 소위 절기를 만들어 안정적인 순환을 기원하였다.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이루었던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와 같은 오리엔트(Orient)는 순환적 시간관을 기초로 문명을 구축하였다. 순환적 역사관은 기원전 12세기경 오리엔트, 특히 고대 이란에 등장한 인도-유럽인들의 한 분파인 인도-이란인들의 역사관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인도-이란인들은 세상은 태초부터 선신과 악신의 끝없는 투쟁이며, 이 투쟁은 반드시 종말을 맞이한다고 생각했다. 종말은 시간과 공간이 멈춘 비역사적인 순간이다. 역사는 실제 사건이 발생하는 ‘시대’로 구분된다. 그 ‘시대’가 끝나면 어떤 현실이나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시대’로 대치되는데, 이 중간 과정을 ‘종말’이라 한다. 종말은 순환적인 시간이 아니라 선형적인 ‘시간’으로, 그 시간엔 ‘끝’이 있으며, 모든 인간은 역사적인 시간 안에서 자신의 행위를 심판받게 된다.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전환하는 경우에는 종종 종말론적인 담론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종말’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의 끝’이자 동시에 ‘새로운 세계’이며, 새로운 삶과 사상, 그리고 존재방식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 위기는 역사에서 신의 개입, 전쟁, 환경의 변화 혹은 새로운 인간의식으로 진입과 같은 형태로 등장한다. 종말론은 순환적인 역사관을 지탱하려는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피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1세기 그리스도교의 탄생 시기, 15~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 시기, 16~17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 17~18세기 러시아 혁명 시기에 등장한 역사관이다. 종말론은 현대에도 사회 · 경제적 위기가 도래할 때 종종 드러난다. 대부분 현대 종말론은 현존하는 세계의 단절과 파괴를 의미하지만, 셈족이 상상한 종말론은 신의 개입으로 선형적인 시간이 멈추게 됨을 의미한다. 후에 등장하는 조로아스터교와 아브라함(Abraham) 종교의 종말사상의 연원은 고대 이집트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후 신체의 보존을 중요하게 인식했다. 원래 이집트인들은 시신을 사막에 묻어 자연적으로 시신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기 왕조시대부터 귀족들은 무덤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정교한 방부처리를 통해 시신을 인공적으로 말리고 천으로 둘러 관에 보관하였다. 『사자의 서』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장례 문헌으로서 기원전 1550년부터 등장한다. 이 문헌은 죽은 자가 ‘두아트(Duat)’라는 지하세계를 무사히 통과하여 사후세계로 인도되는 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자의 서』는 초기의 『피라미드 문헌』과 후대의 『관(장례) 문헌』의 일부로, 이 주문들은 무덤 벽이나 관에 기록되었다. 『사자의 서』는 대부분 돌에 새긴 성각문자나 사제들이 파피루스(papyrus)에 기록한 사제문자로 기록했지만, 종종 죽은 자가 지하세계의 여러 관문을 거치는 과정을 그림으로 표시하기도 했다. 『사자의 서』의 주문을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생각하는 죽음과 사후세계의 본질을 추론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통해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흩어진다고 생각했다. 장례의식은 인간 존재의 여러 요소들을 다시 모으며, 시체 방부처리를 통해 육체를 보존하여 신적인 특징을 지닌 이상적인 형태로 전환시킨다고 생각했다. 『사자의 서』는 죽은 이의 시신을 보전하기 위해 사제가 시체 방부처리를 할 때 낭송되었다. 이집트인들은 인간의 지력과 기억력을 보관하고 있는 ‘심장’인 ‘입’을 특히 잘 보존하였다. 실제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심장 모양을 한 보석을 대신 묻었다. 인간의 ‘영혼’인 ‘카(ka)’는 시신과 함께 무덤에 있어, 후손이나 제사장이 지내는 제삿상의 음식, 물, 그리고 분향으로 생명을 유지한다고 생각되었다. 죽은 자의 ‘이름’[이집트어 ‘렌(ren)’]은 그 사람이 지상에서 사는 동안 해야 할 의무이자 개성이기에, 죽은 자는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죽은 자에 대한 ‘인상’을 ‘바(ba)’라고 하며, ‘바’는 죽은 자의 얼굴을 한 새 모양을 하고 낮 동안에 무덤에서 나와 세상으로 날아다닌다. 마지막으로 죽은 자의 그림자를 의미하는 ‘슈트’도 보존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잘 보존하고 심판을 통과하면, 그는 신들 가운데 영원히 사는 ‘앙크(ankh)’가 된다. 《묵시록의 네 기사》, 알브레히트 뒤러, 1497~1498년, 목판화, 39.9×28.6㎝,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미술관 소장. 지하세계인 ‘두아트’를 적절한 주문을 외워 통과하면, 죽은 자의 ‘심장’을 천칭(天秤)에 다는 의식을 거행한다. 죽은 자는 시체 방부처리 신인 아누비스(Anubis)에 이끌려 지하세계의 신 오시리스(Osiris) 앞으로 간다. 그는 이 신 앞에서 ‘42가지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맹세를 한다. 그런 후 죽은 자의 심장은 진리와 정의의 여신을 상징하는 타조 깃털 ‘마트(Maat)’와 함께 천칭에 올려져 무게를 잰다. ‘마트’는 죽은 자가 사는 동안 반드시 그리고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다. 만일 죽은 자의 심장 쪽으로 천칭이 기울어졌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암무트(Ammut)라는 괴물에게 먹히고 만다. 옆에는 죽은 자가 생전에 한 일을 모두 기록한 생명의 책을 들고 있는 토트(Thoth) 신이 있어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만일 천칭의 양쪽 무게가 같다면, 그는 오시리스 신의 인정을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된다. 이 장면은 사람의 심판과 사후세계를 가장 선명하게 설명한 최초의 기록이다. 특히 죽은 자는 심판을 받기 전에 42가지 ‘부정의 고백’을 한다. 부정의 고백이란 살아 있는 동안 악행을 하지 않았다는 맹세이다. 이 부정의 고백은 후대 유대-그리스도교의 십계명에 영향을 미쳤다. 살아 있는 동안의 윤리적 · 도덕적 삶이 영생을 얻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명제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모든 개인이 반드시 심판을 받으며, 지상의 삶의 질에 따라 영생을 보장받는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개인의 심판 사상은 후대에 등장하는 집단 전체, 인류 전체의 심판 사상의 기초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종말론에 관한 가장 선명한 글을 남겨 후대 아브라함 전통들, 즉 유대교,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종말론 형성의 근간을 마련해준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이다. 조로아스터교의 문헌 중 ‘프라쇼케레티(Frashokereti)’라는 용어는 아베스타(Avestā)어로, 모든 악을 제거하고 만물이 조로아스터교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교리를 지칭한다. 조로아스터 문헌은 인류의 시기를 3000년, 6000년, 9000년, 그리고 12000년으로 구분한다. 12,000년 후에 인류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분다히슨(Bundahishn)』이라는 조로아스터 경전에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첫 번째 시기(0~3000)는 아후라 마즈다의 우주창조의 완벽한 상태인 ‘메녹(menok)’이 유지된 이상적인 시간이다. 첫 3,000년 동안 어떤 움직임이나 생각 혹은 물질도 없었다. 시간은 정오에 고정되어 있고 평화와 고요만이 있었다. 그 가운데 어둠의 심연에서 아리만(Ahriman)이 등장한다. 아리만은 악과 거짓의 상징이다. 아리만은 빛을 보고 아후라 마즈다가 창조한 빛의 세계를 본다. 아리만은 이 빛의 세계를 공격하지만, 아후라 마즈다는 아리만을 물리치고 다시 암흑의 심연으로 몰아내 나오지 못하게 한다. 아리만은 그 안에서 많은 악마들과 죽음을 관장하는 혼들을 만들어 전쟁을 하려 한다. 아후라 마즈다는 아리만과 계약을 맺어, 이 두 신들 간의 우주적 전쟁은 9000년 후에 하기로 정한다. 두 번째 시기(3000~6000)는 정신적인 상태인 ‘메녹’이 물질적인 시기인 ‘게틱(getik)’으로 전환되는 시기이다. 이 기간에 아리만은 무력하게 심연에 감금되어 있다. 아후라 마즈다는 1년 안에 우주를 창조한다. 그는 하늘, 물, 땅, 식물, 이로운 동물들, 그리고 불을 창조한다. 특히 불은 어둠의 신인 아리만에 대항하는 무기이다. 세 번째 시기(6000~9000)는 소위 ‘혼동’의 시기이다. 이 시기를 ‘구메치슨(Gumezishn)’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아리만과 악마들이 심연에서 탈출하여 아후라 마즈다와 그가 만든 우주를 공격하는 시기이다. 처음에는 인류의 시조인 이마(Yima)가 등장하여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악의 세력들이 공격한다.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아지 다하카’라는 악마가 지배한다. 마지막 시기(9000~12000)는 ‘분리’의 시기로, 아후라 마즈다는 조로아스터에 자신의 뜻을 계시한다. 『분다히슨』에 의하면, 조로아스터의 정자가 동부 이란의 세이스탄(Seistan)에 위치한 카사오야(Kasaoya) 호수에 저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상의 처녀들이 이곳에서 정결의식을 치르고 임신하여 3명의 구원자를 낳는다. 3명의 구원자는 각각 1,000년 후에 태어나 종말신앙을 선포한다. 이 3명의 구원자 중 첫째가 우쉐다르(Usherdar)이다. 그는 조로아스터의 계시를 갱신히고 악의 세력을 물리친다. 그 후에 둘째 우쉐다르마흐(Usherdarmah)가 황금시대를 열며, 셋째 구원자 아스바테레타(Ashvat-Ereta)가 모든 질병과 죽음에서 인류를 구원하여 아후라 마즈다의 천상의 시대를 시작한다. 조로아스터는 종말에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건널 ‘분리(심판)의 다리’인 ‘친바트 페레투(Chinvat Peretu)’에서 모든 인간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한다. 아베스타 문헌인 『야스나(Yasna)』에서 “남자나 여자나, 네가 누구든지, 오, 아후라 마즈다시여, 그대들은 인생에 있어 최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옳음’을 위해 의를 행하는 자마다, ‘바른 마음’의 도움으로 행하는 자마다, 나는 당신을 찬양하기 위해 모두를 불러 모으고, 나는 그들과 함께 ‘심판의 다리’를 건널 것이다.”(야스나 46: 10) “악한 자들의 악은 ‘심판의 다리’에 서서, 진실한 자들의 옳음 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악한 영혼은 의로운 자들의 길을 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악한 행동, 자신의 악한 혀의 말들은 자신의 족쇄가 되며, 그는 무서워 떨고 그가 잘못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야스나 51: 13)라고 묘사하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특히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길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벤디다드(Vendidad)』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아후라 마즈다가 대답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그의 시간이 다하면, 사악하고 악행하는 다에바(Daeva, 악마)는 그의 시력을 없앤다. 세 번째 날에 동이 트고 해가 오르면, 웅장한 무기를 가진 신인 미트라(Mithra) 신이 항상 즐거운 산에 도달한다. 그리고 해가 떠오른다. 그때 아자레샤라는 악마가, 오 스피타마 자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여! 죄 안에 살고 있었던 악한 다에바 숭배자들의 영혼을 묶어 끌고 간다. 영혼은 시간이 만든 길로 들어간다. 그 길은 악한 자와 의로운 자에게 열려 있다. 친바트 다리의 꼭대기에 마즈다가 만든 거룩한 다리가 있다. 거기에서 그들은 그들의 영혼과 정신을 위해 세상에서 한 일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 그 다리에서, 만일 그 영혼이 의로우면 그 다리는 점점 넓어지고, 영혼이 악하면 그 다리의 끝은 면도날처럼 얇아져 추락한다.” 모든 사람의 행동은 미트라(Mithra), 스라오샤(Sraosha), 그리고 라슈누(Rashnu) 신 앞에서 머리카락의 무게도 잴 수 있는 정교한 천칭으로 심판받는다. 만일 그의 선행이 악행보다 많으면 그는 구원을 받는다. 죽은 지 3일 만에 그는 자신의 인격화된 양심인 ‘다에나(Daena)’를 만난다. 『덴카르드(Denkard)』9.19에 의하면, 만일 그가 의로우면 다에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나, 그가 악하면 못생긴 할머니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여인 다에나는 『하도크트 나스크(Hadokht Nask)』에 다음과 같이 자세히 묘사되었다. “그의 양심이 아름답고, 빛이 나며, 하얀 팔을 가진, 건강하고, 얼굴이 예쁘며, 허리가 꼿꼿하고, 가슴은 올려 있고, 우아하고, 귀하고, 영광스러운 가문이며, 보기에는 15세 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의로운 자들이 거주하는 장소는 아베스타에서 아후라 마즈다의 집이나 ‘보후마나’의 집으로 묘사한다. 그곳은 덥지도 춥지도 않고, 눈이나 비가 없으며, 걱정이나 고생이 없고, 눈물과 고통도 없고, 어둠과 병과 늙음과 죽음이 없는 곳이며, 노동과 부족함이 알려지지 않는 곳이다. 후대 『팔라비 루바이야트(Pahlavi Rubaiyat)』에서는 “출산을 알지 못하는 성적인 만족이 있는 곳”으로 묘사한다. 악한 자들이 거주하는 운명은 다음과 같다. “지속적인 어둠, 나쁜 음식, 울음이 있는 장소로, 너의 행동에 따라 너의 양심이 너를 인도할 것이다.”(야스나 31: 20) 그곳에서 그때 심판자들은 그에게 독, 뱀, 전갈, 그리고 악어를 데리고 온다. 그들은 또한 그에게 썩은 음식을 가져온다. 선행과 악행이 균형을 이룬 사람들은 지구와 별들 가운데 위치한 하메스타간에 거주한다.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추위와 더위의 고통을 느낀다. 유대교 종말론은 고대 이스라엘인의 달라진 역사적 상황을 창조적으로 풀기 위한 장치였다. 기원전 6~4세기까지 페르시아 제국의 속국이 되면서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과 함께 종말론 사상을 받아들인다. 특히 기원전 4세기에 등장한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대왕이 강요한 헬레니즘(Hellenism)으로 유대인들은 이전의 순환적인 역사관에서 벗어나 선형적이며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게 된다. 유대교의 종말론에서 핵심적인 단어는 ‘메시아(Messiah)’로,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고대 이스라엘 왕정시대에 왕이나 대제사장이 즉위할 때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의식이 있었고,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메시아였다. 이 용어가 기원전 6세기 고대 이스라엘이 바빌로니아(Babylonia)로부터 침입당해 나라를 잃게 되자, 이전에는 찾을 수 없던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의 강압적인 헬레니즘 문화가 들어서면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나라를 되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었고, 그 가운데 암울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종말론이 대두되었다. 미래에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은 그 당시 신의 정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하였다. 혹은 현재의 재앙이 자신들의 과거의 죄에 대한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하였다. 현재의 상태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기록은 문헌 기록자마다 그 표현방식이 다르다. 초기 유대교 문헌들은 유대인들을 지탱하고 있던 주요한 사회 · 정치 · 종교 기관들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B.C. 586년) 이후 파괴되는 모습을 기록한다. 후대 문헌은 다윗(David) 왕가의 통치자의 부재와 예배 의식의 중단, 그리고 디아스포라(Diaspora) 상황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설상가상으로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 문화가 들어와 이교도적인 문화를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기원전 6세기 예언자들은 종말론적인 역사관을 가지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역사가 급진적이고 초자연적인 개입을 통해 중단되어, 자신들이 유배와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돌아와 다윗 왕가를 다시 건립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여 의례를 다시 행할 것을 꿈꾸었다. 심판의 날이 오면 사람들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회개한다면 새로운 이스라엘이 건립될 것이라고 유대인들은 믿었다.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 · 로마 제국의 정책 아래서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는 미래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이것이 그들의 종말 사상이다. 기원전 6세기 예언자들은 미래에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새로운 시간은 최초의 시작과 일치한다. 이들은 새로운 출애굽, 새로운 계약을 강조하는데, 특히 히브리 성서 「이사야서(Isaiah書)」는 새로운 창조를 강조한다. 우주가 처음 창조될 때의 순서처럼, 심판과 새로운 창조가 「제1 에녹서」와 「이사야서」 24~27장의 내용이다. 새로운 시작은 현재 질서의 종말이다. 새로운 시작은 현재와의 현격한 차이, 분리를 의미한다. 새로운 시대는 악의 세력이 영원히 사라지고 우주를 창조했던 그 신이 다시 등장하여 영원히 다스린다. 새로운 창조는 과거의 창조 시간을 넘어서는 강력한 마지막 창조 사건이며, 이 창조는 또한 ‘이원론적 종말론’에 기초한다. ‘이원론적 종말론’이란 첫 창조 사건과 비교하여 훨씬 더 강력한 선-악, 천사-악마, 질서-혼돈 간의 대결을 기반으로 세상의 마지막과 시작을 묘사한다. 영생이란 새로 창조된 세상에서 불멸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개인의 영혼이나 정신은 영원히 지상으로부터 천상으로 올라가, 저주의 장소가 된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세계에 거주한다. 기도하는 손, 알브레히트 뒤러, 1508년, 종이위에 브러쉬와 잉크, 독일 뉴른베르크 박물관 히브리 성서의 예언자 예레미야(Jeremiah)나 에스겔(Ezekiel)은 예언들이 성취되는 특별한 시간에 대한 말한다. 제2 이사야는 구원의 시대는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을 마치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제3 이사야, 학개(Haggai), 그리고 스가랴(Zechariah)와 같은 예언자들은 신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할 것이라고 믿었다. 신의 개입과 종말이 일어나지 않게 되자, 그리스 · 로마 시대 저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신이 도래할 것이라고 기록했다. 시간과 역사에 대한 신의 계획은 우주창조 이전에 운명적으로 결정되었다. 이 묵시문학적(默示文學的)인 시각은, 지상의 모든 사건들은 천상의 토판문서에 만세전에 기록되었다는 에녹의 고백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각은 1세기 유대교의 한 분파인 쿰란(Qumran) 공동체의 지배적인 사상이기도 했다. 그들은 의로운 자들의 기도와 토라(tôrāh)의 올바른 이해, 그리고 순교를 통해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 · 로마 세계 안에서 등장한 유대교의 한 분파로 시작하였다. 초기 그리스 사상 안에서 종말은 종교나 신화적인 사변이 아니라, 자연철학의 관심 분야였다.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은 우주가 연소되고 재생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보았다.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는 ‘연소’를 통해 세상이 끝난다고 주장했다.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에 따르면, 이 세상은 몇 번의 순환을 거쳐, 결국에는 정결한 불로 남는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는 황금시대에 트로이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은 우주적인 순환은 ‘처음’과 ‘마지막’과 ‘주요한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의 영원성을 주장하였지만, 인간의 문명들은 정기적으로 자연에 의해 파괴되며 재생한다고 생각했다. 헤시오도스(Hesiodos)와 플라톤에게 과거 시대의 구분은 중요하다. 이런 구분은 유대인 사상에 영향을 끼쳐 기원전 2세기에 기록된 「다니엘서(Daniel書)」 7~9장에 역사적이 구분이 묘사되었다. 초기 로마시대에 평화로운 시대가 가까운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베르길리우스는 그의 책 『아이네이스(Aeneis)』에서 ‘황금시대’를 위대한 통치자와 연결했다. “여기에 너희가 종종 소문으로 들었던 예정된 사람이 있다. 신의 아들인 아우구스투스이다. 그는 라티움(Latium)에서 황금시대를 열 것이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도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중요한 신이었던 아이온(Aion) 신을 받아들였다. 아이온 신은 우주와 무한의 신으로서 황금시대를 가져다 줄 신이었다. 헬레니즘 시대에 불멸은 신들만의 특징이었으며, 동시에 인간 영혼의 특징이기도 했다. 헬레니즘식 영혼관이 초기 유대교 문헌에 영향을 끼쳤지만, 유대교는 불멸이란 종말에 부활과 함께 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유추할 수 있다. 예수가 자신을 종말론적인 인물로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추종자들은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후, 그를 종말에 등장한 메시아로 보았다. ‘하느님의 나라’라는 개념은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에서 예수 가르침의 핵심이다. 예수는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고,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선포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느님의 나라 선포는 당시 유대인들의 종말론과 현저하게 달라 마찰을 빚었다. 신약성서 중 복음서들은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나, 그것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찾아볼 수 없다. 유대교에서 ‘나라’라고 해석되는 용어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통치’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라는 번역보다는 ‘하느님의 통치’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래 의미에 가깝다. 예수가 활동하던 당시 유대교에서 신이 곧 활동을 계시(啓示)하여 그의 백성을 구원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예수는 복음서 여러 곳에서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를 전달하는 자로 묘사된다. 동시에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했다는 구절들도 등장한다. 서로 상충되는 내용 같아 보이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의 도래로 시작되었고, 가까운 미래에 완성될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예수의 이런 종말론적인 생각이 독특한 것은 아니다. 같은 시대 문헌인 쿰란 사본에서도 임박한 종말론을 선포한다.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를 ‘메시아’로 보았다. 예수는 유대교에서 사용하는 메시아의 범주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후 그리스도교의 근간을 세웠던 바울(Paul)은 예수를 지칭하여, ‘메시아’라는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크리스토스’라고 불렀다. ‘크리스토스’는 예수의 이름이 되었다. 바울에겐 예수가 바로 메시아이다. ‘메시아’라는 용어만큼 종말론적인 의미가 담긴 명칭은 ‘사람의 아들’이란 용어이다. 이 명칭은 예수가 자신을 스스로 지칭할 때 사용한 용어이다. ‘사람의 아들’이란 명칭은 복음서에만 주로 등장하다. ‘사람의 아들’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곳은 신약성서가 아니라 구약성서 『다니엘서』이다.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이 용어는 묵시문학에 등장하는 종말론적인 용어이다. 예수가 사용하던 아람어에서 ‘사람의 아들’이란 용어는 말하는 사람을 낮추는 용어로도 사용되지만, 『다니엘서』 7장 13절에서는 분명 천상의 구원자이다. 그리스도교 종말론에 관한 신학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은 바울이다. 바울은 묵시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데살로니카 전서(Thessalonica 前書)」 1장 9~10절에 “그들은 우리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어떠한 영접을 받았는지,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느님을 섬기는지,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그분의 아들, 곧 장차 닥쳐올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퍼뜨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유대교의 이원론적 종말론을 받아들였다. 시간적인 이원론, 즉 ‘이 세대’와 ‘다가올 세대’는 공간적인 이원론, 즉 ‘이 세상’, ‘저 세상’과 일치한다. 바울이 유대교의 이원론적 종말론을 모두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는 예수의 부활로 이미 미래의 저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믿었다. 예수의 부활은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의로운 자들이 부활할 첫 신호라고 믿었다. 유대 종말론의 엄격한 구분이 예수 사건을 통해 무마되거나 흐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예수 부활과 종말 사이의 ‘파루시아(parousia)’ 안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바울은 ‘주의 날’이라는 유대교의 종말론적 용어를 ‘예수 그리스도의 날’로 대치하여 유대교의 신 중심 종말론을 예수 중심으로 전환시켰다. 가톨릭은 특히 종말론에 대한 정교한 교리를 만들었다. 가톨릭에서는 모든 사람은 사망한 후 바로 심판을 받는다고 믿는다. 신앙을 가진 자 중에서 정화될 필요가 있는 사람은 연옥(煉獄)에서 정화의 과정을 거친다. 천국은 신의 은총을 받은 거듭난 사람들이 들어가 영원히 거주하는 곳이며, 지옥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은 자를 위해 준비되었다. 그러나 종말의 날이 오면 예수가 영광 중에 오고,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다. 살아 있는 자들은 하늘로 올라가 예수를 만나고,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다. 가톨릭교인들과 개신교인들은 대림절(advent)이라는 절기를 1년에 한 달씩 마련하여 종말의 시간을 간접 경험하고 예수가 다시 오심을 묵상한다. 종말은 개인의 죽음, 심판, 천국, 연옥과 지옥으로 들어감, 세상의 마지막, 살아 있는 자들의 휴거, 육체의 부활, 예수의 파루시아, 그리고 새로운 창조로 이어진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인간이 육체적으로 사망한 후, 불멸한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된다고 믿는다. 인간의 원죄로 육체는 땅에 남아 있어야 한다. 성서에서는 ‘연옥’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가톨릭에서는 구원을 받기 위한 준비 단계로서 중요하다. ‘연옥’은 죽음 후에 영혼을 정화하는 곳이다. ‘연옥’은 살아 있는 동안 신을 알려고 노력하였지만, 구원받을 만큼 노력하지 못하고 죄를 범한 사람을 위한 신의 은총이다. 조로아스터교의 ‘하메스타간’과 유사한 개념이다. 지옥은 사람들과 천사들이 자신들의 죄 때문에 거주하는 장소 혹은 상태이며, 또한 자신들의 영혼에 원죄를 지니고 죽은 이들의 상태이다. 즉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은 자들의 상태이다. 이슬람은 이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종말론과 조로아스터교의 종말론의 영향을 받아 가장 정교한 종말론을 지닌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은 종말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슬람의 신인 알라(Allah)는 ‘마지막 날’의 심판자이며, 무함마드(Muhammad)는 ‘마지막 날’의 심판을 알리기 위해서 선택된 예언자이다. 『쿠란』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등장한다. 『쿠란』은 또한 육체적 부활을 전한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묘사는 실제적이고 다소 성적이기도 하다.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는 전례 없이 강한 어조로 종말론을 주장한다. 무함마드가 등장하기 전에 아라비아의 부족적 삶의 형태는 ‘자힐리야(jahiliyah)’가 특징이다. 이것은 아라비아의 이슬람교 이전 시기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무지의 시대’라고 번역되지만, 그 원래의 의미는 ‘화를 잘 냄’이었다. 초기 무슬림 경전에서 ‘자힐리야’는 공격, 오만, 맹목적 애국주의 그리고 폭력과 보복을 향한 만성적인 경향을 의미했다. 기원후 6세기 후반에 이르러 무함마드 선지자가 태어났을 때, 부족의 전쟁은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임박한 재앙에 대한 종말론적 분위기가 팽배했다. 무함마드가 속해 있던 부족인 ‘쿠라이시(Quraysh)’는 유목생활을 버리고 메카(Mecca)에 기반을 둔 상업제국을 세웠다. 무역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부족간 전투를 포기하고 지역의 분쟁에 대한 고고한 중립적 태도를 길렀으며, 메카의 중심부에 위치한 고대 성지인 ‘카바(Ka’bah)’를 둘러싼 지역을 폭력이 금지된 성역으로 지정하였다. 이 조치들이 반도 전체에서 온 아랍 사람들로 하여금 피의 복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그곳에서 사업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가 그 당시 아라비아의 정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속한 쿠라이시 부족은 전통적인 자힐리야의 오만함을 유지했다. 그들은 상상 이상으로 성공했고 이제 빈곤의 공포에서 자유로웠지만, 부유함에 대한 욕망 속에서 그들은 부족체제의 인도적인 면을 잊기 시작한다. 그 사회에서 더 약한 부족 일원을 돌보는 대신에, 몇몇 가족들은 부를 과도하게 축적했고, 반면 대부분 다른 이들은 점점 빈곤해졌다. 오래된 부족의식은 이제 신생 시장경제의 새로운 상황들에 호소하지 못했기 때문에 억울함과 영적인 불만감이 존재했다. 아랍인들은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의 신에 대해 알았고, 그 신이 자신들의 신인 알라[알라는 (바로) 그 신이란 의미]와 동일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선지자나 그들의 언어로 된 어떤 경전도 내려주지 않았음을 통감하고 있었다. 무함마드는 610년부터 계시를 받기 시작하였고, 이것은 결국 『쿠란』이라고 알려진 경전으로 모아졌다. 이 영감 넘치는 신탁들은 메카의 상황에 직접적으로 호소했다. 『쿠란』의 기본 메시지는 사적 재산을 축적하는 것은 잘못이며, 당신의 부를 공평히 나누어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정중히 대우받는 공정하고 격조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자주 인용되는 무함마드의 어록집인 『하디트(Hadith)』에서 무함마드는 “스스로 바라는 것을 이웃에게도 이루어지도록 바라지 않는다면 너희들 중 누구도 신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만명의 기독교도들의 고문, 알브레히트 뒤러, 1508년, 유화,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쿠란』은 알라 신께 순명하여 살지 않는다면, 알라께서 자신이 원하는 마지막 시간에 심판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인간들을 부활시킨다고 기록한다. 알라는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보여준 ‘분명한 신호’를 수용한 사람과 무시한 사람, 혹은 거절한 사람을 구분하여, 불타는 지옥인 ‘자한남(Jahannam)’이나 기쁨이 가득 찬 천국인 ‘잔나(Jannah)’로 인도한다. 천국과 지옥의 대비는 오아시스와 사막의 대비만큼이나 확실하다. “불신자들은 ··· 지옥 불 가운데 있어 거기서 영원히 살 것이다. 그들은 최악의 피조물들이다. 그러나 믿고 옳은 일을 행한 신앙인들은 최상의 존재들이다.”(수라 98: 6-7) 지옥은 사막처럼 뜨겁고 건조하며 그 거주자들은 항상 목마르다. 천국은 시원하고 물이 항상 있으며 부족한 것이 없다. 지옥의 거주자들에게 ‘물’이 주어지나, 그 물은 뜨거운 쇳물이라 마시는 사람의 내장을 전부 태운다. 그들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여 살갗이 항상 상해 있고, 불집에 살아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양떼처럼 먹는다. 천국 안에는 오아시스와 강물이 있어 거주자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안락한 쿠션 의자에 앉아 있다. 그들은 평안하며 피곤하지 않고, 진귀한 온갖 과일을 먹고, 취하지 않는 와인을 마시며, ‘후르’라는 여인들이 시중을 든다. “천국에 거주하는 자들은 행복에 빠져 있다. 그들과 그 아내들은 그늘 아래 안락한 소파에 누워 있다. 거기에는 모든 과일과 그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이 있다.”(수라 36: 55-57) 인간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알라는 예언자들을 통해 천국을 택하라고 촉구하지만, 인간은 그 경고를 듣지 않고 지옥에 떨어지고 만다. 아뎀[성서의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지만, 그리스도교처럼 원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물론 쿠란에서 ‘이블리스(Iblis)’라는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지만, 인간은 각자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무함마드를 통해 전해준 알라의 ‘분명한 신호’를 받아들여 도덕적이며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은 각자 개인의 책임이다. 심판은 이집트의 「사자의 서」에 등장하는 천칭에서 재는 것처럼 분명하다. 당시 유목민들의 상거래에서 이용한 천칭으로, 그 사람의 일생의 행동과 말을 견주어 본다. 거기에서는 그 사람의 재산이나 일가친척이 그를 도울 수 없다. 만일 그가 무함마드를 통한 알라의 ‘분명한 신호’를 받아들여 기도를 하고 희사(喜捨)를 하면서 그 의무를 다했다면, 그는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반대로 알라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만을 위해 이기적인 삶을 살았다면, 그는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종말이 오는 표식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사람들은 나방처럼 흩어지고, 산들은 양털처럼 뽑혀 모래 더미로 변하면, 땅은 흔들려 가루가 되고, 하늘은 갈라져 감기며, 별들은 흩어지고, 바다는 끓어 넘치며, 태양은 빛을 잃는다. 그러나 『쿠란』에서 이런 종말의 징조와 종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후대 무슬림 종파들은 『쿠란』의 종말론에 관한 이야기에 설명을 첨부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첨가하여 더욱 정교한 종말론을 형성한다. 수니(Sunni) 무슬림들은 무함마드의 행적이 담긴 글 모임인 『하디트』가 형성되기 시작하자 종말론을 정교하게 형성시킨다. 이들은 특히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 종말에 등장하는 인물들, 심판, 사후세계, 형량 감소 등에 관한 이야기를 더한다. ‘바르자크(Barzakh)’라는 단어는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을 지칭한다. 12세기 이슬람 신학자 알-가잘리(al-Ghazāli)는 바르자크에 일어나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다. 죽음의 순간에 죽음의 천사인 ‘이츠라일’이 등장한다. 영혼은 육체로부터 이탈하여 천사들에 의해 하늘로 간다. 그 후에 문카르(Munkar)와 나키르(Nakir)라는 천사들이 죽은 자의 행동에 대해 심문한다. 특히 죽은 자들은 바르자크 동안 산 자들과 꿈을 통해 소통한다. 『쿠란』의 계시와 심판의 날 사이에 종말론적 인물이 등장한다. 거짓 예언자인 알-다잘(al-Dajjal)과 진실된 예언자인 마흐디가 등장한다. 이들은 『하디트』에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알-다잘은 사회적이고 자연적인 긴 천재지변 후에 나타나 세상을 정복하나, 후에 등장한 이사[성서의 예수], 혹은 마흐디, 혹은 『쿠란』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인 ‘무자디드(Mujadid)’가 나타나 알-다잘을 물리친다. 마흐디와는 달리 무자디드는 항상 다른 인물로 등장한다. 종말이 오지 않고 지연되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인물이 무자디드로 등장한다. 『쿠란』 주해서에 의하면, 심판의 날은 천사장 이스라필(Israfil)의 트럼펫 소리 두 번으로 시작된다. 그때 영혼이 무덤에 있는 육체와 결합하여 부활하고, 그 후에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 그들의 행위는 천상의 책에서 선포되어 천칭에서 행위의 선악을 저울질한다. 그들이 불 위에 놓인 다리를 무사히 건너면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 다리에서 불길 가운데로 떨어지는 이들이 있다. 신자이면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그리고 불신자이면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영원히 불길 가운데 거한다. 다리를 건넌 신자는 천국으로 들어가면 ‘알라’의 모양을 한 존재가 기다린다. 거기에는 각각 예언자들이 자신의 공동체를 이끌고 그를 맞이한다. 무함마드와 무슬림 공동체는 그 전체 공동체를 인도한다. ‘하우드’라는 연못에서 무함마드는 불길에 떨어진 무슬림을 위해 변론하기도 한다. 천국과 지옥의 모양도 무함마드의 예루살렘으로 밤에 여행했다가 하늘로 승천한 ‘미라지(Miraj)’ 기록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지옥은 7단계로 되어 있고 각각의 단계마다 다른 형벌이 기다린다. 천국에도 7단계로 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 알라의 왕좌가 놓여 있다. 힌두교는 43만 2,000년 동안 우주가 네 번 커다란 변화를 거친다고 말한다. 크리타 혹은 사트야 유가(Satya Yuga), 트레타 유가(Treta Yuga), 드바파라 유가(Dvapara Yuga), 그리고 칼리 유가(Kali Yuga)이다. 이 유가[‘기간’] 동안 인간은 신으로부터 점점 더 떨어져 죄를 지었다. 비슈누(Vishnu)는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적어도 9번 이상 인간의 형태를 하고 지상에 내려왔다. 육신의 형태로 온 ‘아바타라’들은 물고기, 거북이, 곰, 사람-사자, 난쟁이, 브라만들을 보호하는 라마, 아요다의 왕이자 라마야나 서사시의 주인공인 라마, 크리슈나(Krishna), 그리고 마지막으로 붓다(Buddha)이다. 이 우주론에 의하면 우리는 네 번째 유가이며 가장 타락한 유가인 ‘칼리 유가’에 살고 있다. 비슈누가 마지막으로 아바타라 칼키(Kalki)로 태어날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구원자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심판자로 온다. 힌두교도들은 인간의 문명이 칼리 유가 시대에 점점 영적으로 타락한다고 믿는다. 힌두교에서는 종종 ‘다르마(dharma)’를 황소로 표현한다. 첫 시대인 사트야 유가에서 이 황소는 네 다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하나씩 사라져, 마지막 시대인 칼리 유가 시대에는 황소가 다리 하나로 지탱한다. 칼리 유가는 종말론적인 괴물, 칼리와 연관이 있다. ‘칼리’는 ‘싸움, 부조화, 경쟁’이란 의미이다. 자이나교는 작지만 강력한 힌두교의 한 종파이다. 자이나교도들은 네 기간이 이미 지났다고 주장한다. 첫 기간은 ‘수사마 수사마’라고 부르는데, 이 기간에 사람들은 지상의 파라다이스에서 살며, 키가 가늠할 수 없이 크고[6마일], 생명나무가 그들의 모든 욕구를 해결해 준다. 그들은 죽은 후 천국으로 들어간다. 두 번째 기간인 ‘수사마’는 첫 기간의 ‘수사마 수사마’와 비교하여 모든 것이 반으로 준다. 사람들의 키는 4마일이며, 다소 짧은 인생을 살지만, 아직도 생명나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죽은 후 바로 천국으로 들어간다. ‘기간’을 지날수록 사람들의 키와 삶의 안락함이 줄어든다. ‘수사마 두사마’ 기간을 지나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인 ‘두사마’ 기간이 도래한다. 이 기간은 악으로 가득 차 있다. 자이나교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절대악이 지배하는 ‘두사마 두사마’ 시대 바로 직전이라고 믿는다. 그 기간에는 사람들이 20년 정도 살며, 전염병이 창궐하고 덕은 사라진다. 힌두교와 자이나교에 따르면 우리는 종말에 살고 있다. 이들의 종말론이 그리스도교와 비교하여 비관적인 것 같지만, 이 믿음들은 사실 비교적 긍정적이다.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시간관은 선형적이지 않고 순환적이기 때문에, 현재의 염세적인 상황은 다가올 새롭고 희망적인 세계를 위한 직전 단계이다. 힌두교에서 칼리 유가 시대의 마지막은 우주의 파괴로 이어지는데, 이 파괴는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사트야 유가의 시작이기도 한다. 불교 종말론에 대한 담론은 가우타마 붓다(Gautama Buddha)가 자신의 가르침이 5,000년 후에 끝날 것이라고 예언한 데서 시작되었다. 붓다의 팔리어로 기록된 경전인 『수타 피타카』에 의하면, 인간이 반듯이 행해야 할 열 가지 도덕들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열 가지 비도덕적인 행위를 일삼을 것이다. 열 가지 비도덕적인 행위는 도적질, 폭력, 살인, 거짓말, 사악한 말, 간음, 험담, 탐욕, 사악한 의도, 방종한 욕심이다. 이것들은 결국 빈곤의 시작이며 참된 종교의 끝이다. 5,000년 동안 붓다의 가르침은 점점 사라진다. 깨달은 아라한(阿羅漢)들은 점점 사라지고 붓다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어져, 결국 다르마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다. 붓다에 대한 기억마저 없어지고, 붓다의 유물도 모두 부다가야(Buddha-Gayā)에서 화장된다. 그 후에 새로운 붓다인 ‘미륵보살(Maitreya)’이 등장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갱신하여 니르바나(nirvāna)로 가는 길을 재발견한다. ‘미륵보살’은 현재 도솔천(Tusita heaven)에 거주하며 세상에서 환생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힌두교처럼 불교는 윤회설을 믿는다. 현재는 그 마지막이며, 역사적 석가모니는 만세 전부터 존재했던 붓다의 가장 최근 인물이다. 밀교 형태인 금강승(金剛乘) 불교와 다른 신비 불교들은 『탄트라(Tantra)』의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탄트라』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정토종(淨土宗) 불교’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는 대승불교(大乘佛敎)에 속하며,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지지를 받고 있는 종파 가운데 하나이다. 이 종파에서는 누구든지 깊은 신앙심을 갖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에 태어나게 된다고 믿는다. 한국의 경우 종파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원효를 포함한 신라의 고승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 정토신앙에 대한 교학적 연구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일본의 정토신앙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