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지리 (외 1편)
조 기 호
처제 아들 결혼 축의금은 푼돈이라도 만지는 아내가 내야 맞는다는 나와
모싯잎송편을 택배로 들여와 추석을 쇠자는 노고지리 닮은 막내 녀석과
아파트 아래층 발바리가 짖는 밤
별 총총 맷방석 마당에 앉아 빨래 끝을 어린 나에게 잡히고는 사기대접 물을 푸우 푸 촉촉하게 뿜으시며 다리미질 하시던 어머니 냄새가 솔곳이 나는 저녁이면
내 가난했던 것들, 냉막걸리 무주구천동 서른 세 모롱이 돌아서 쑥꾹새 공무원재건복 으름 다래 황새기젓갈 미삼 무친 술안주 한 뼘짜리 하숙방과 개몽뉸이 턴테이블 도토리묵 페티페이지 480밀가루 희다방 목련꽃 헝그리 영 맨 풍신들 우체국 앞 석정선생님
그리고 버스 서는 행길까지 따라 나와 방금 난 달걀을 손에 쥐어주던 시골학교 여선생님의 따끈한 인정과
낙엽 잎사귀에 제 입술을 찍어 보낸 여인의 눈웃음이 자꾸만 어른거려서 나는 또 서럽게 가난해지는데
엉뚱하게 갑오년 동학난리 때 전주성문을 열어준 죄로 목 쳐죽은 외증조할아버지의 대나무장대에 꿰어 매달린 모가지를 염려해 본다.
아파트 아침 소묘
아침 햇살이 20층 아파트 긴 그림자의 키를 키우면 세수도 하지 않은 맨 낯바닥 유리창들의 반짝반짝 키들거리는 잇속이 참 고르다
아직은 애기 조막만한 땡감나무 잎사귀 속에서 까치가 시끄럽다
노랑 옷 입은 어린이집 자동차가
노랑가방을 맨 아이들을 날름날름 집어삼키고 내 뺀다
아스팔트길위로 자동차 탄 놈 말고는
걸어가는 사람 아무도 없다
모두가 각심통脚心痛에 걸렸나보다
길모퉁이 야쿠르트아줌마 웃음 섞인 인사말에선
지전 냄새가 철철 흘러 감기고
화단에 선 살구나무 모과나무 메타세쿼이아가
이웃들처럼 서로가 무덤덤하다
때마침 아내의 젖꽃판 닮은 먹자두 장수
1톤 트럭이 장場을 내리는데
어느 동棟에선 고 3짜리 여고생이
어제 밤 옥상에서 휴대폰 놓고 뛰어내렸다고
팔짱낀 젊은 아낙들 수근거린다
-시인정신 2013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