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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길의 [도배일기]에 대하여
‘도루코의 칼날은 비정규직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잘라야 합니다’
잘린 비정규직들이 표어를 앞뒤로 걸머메고 부러진 칼날처럼 녹슬어 갔다
‘왜 우리 마음속에 칼을 갈게 하는가’
----강병길, 「도루코 칼날-도배일기 3]({도배일기}, 도서출판 지혜, 2011년) 부분
강병길(1967~) 시인은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고, '사람과 시', '중원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강원도 문막에서 행복한 인테리어를 운영하고 있는 도배공이다. 그는 오랫동안 시를 써왔지만, 그 어느 곳에도 투고를 하지 않았고, 오직 시가 좋아서 자기 스스로 시의 언어를 갈고 닦아 왔던 것이다. 그의 첫시집 {도배일기}는 64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시집이며, 최초의 도배공의 서사시집이라고 할 수가 있다. 비록, 공식적으로 등단의 절차도 밟지 않았고, 그 어느 잡지에도 시를 발표한 적이 없지만, 그의 첫시집 {도배일기}는 천혜의 원시림의 비경처럼, 예술품 자체가 된 도배공의 역작力作이라고 할 수가 있다.
강병길 시인의 「도루코 칼날-도배일기 3]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망의 노래 그 자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루코 칼날을 만들며 도루코 칼날로 밥을 먹고 살다가 그 도루코 칼날에 의해서 잘려나간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픔은 생존의 벼랑끝에 매달린 자의 아픔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우리 마음속에 칼을 갈게 하는가?’
아아, 힘 찬 일터를 상실한 자의 그 아픔과 절망감이여!
밀알이 발아되기도 전에 사람이 발효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 금남의 집에 여자 살림이라곤 없으니 발소리라고 더부살이 할 리 없다
한소끔 살펴봐도 도둑맞을 물건은 없는데
겹겹의 문단속은 꼭 밖에서 안으로 향하는 마음을 붙잡으려는 시건장치가 아닌 모양이다
----강병길, 「금남의 집-도배일기 4]({도배일기}, 도서출판 지혜, 2011년) 부분
한 알의 밀알이 발효되기 전에 사람이 발효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 금남의 집, 여자들의 살림살이도 없으니 발소리마저도 더부살이 할 수도 없는 집, 한소끔 살펴봐도 도둑맞은 물건마저도 없는 금남의 집----.
하지만 이 금남의 집은 겹겹의 문단속을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수녀의 정조, 여자의 정조를 훔쳐가려는 바깥의 야수들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보다는 수녀들의 성욕을 단속하려는 내부의 잠금장치가 그 수녀원을 봉쇄수도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목사님 기도할 때 아멘으로 답하고
부처님 전에서 합장하는 나는 무교다
연비연비聯臂聯臂로 길 따라가다
가끔 허방에도 빠지는 나는 종교가 없다
----강병길, 「나는 무교다-도배일기 5]({도배일기}, 도서출판 지혜, 2011년) 부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강병길 시인은 시를 즐기는 마음으로 그의 삶을 살아왔고, 그의 삶 자체가 {도배일기}라는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시집으로 자기 자신도 모르게 완성된 것이다. “목사님 기도할 때 아멘으로 답하고/ 부처님 전에서 합장하는 나는 무교다”([나는 무교다--도배일기 5])라는 시구에서처럼, 그의 法力의 깊이---- 모든 것들을 단번에 초월해 버리는----는 제일급 시인의 그 비범한 경지를 암시해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출가한 사제가 아니라, 가장 낮고 비천한 도배공의 삶을 통해서 만인들의 행복을 연출해 내는 생활 현실 속의 사제, 즉, 우리들의 성자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사 나간 집 아이 방에 미처 따라가지 못한 세계지도가 붙어 있다
이학년 달반 이우주 라고 씌어 있다
평면의 지구는 양면테이프에 의지하였다
우주의 벽에 붙은 지구는 우주의 집에 세들어 살지 못하였구나
우주가 버린 미아로 남았구나
도배장이는 지도를 칼로 도려내
공처럼 뭉쳐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었다
열반에 든 지구여 평안하신가?
----강병길, 「지도-도배일기 8]({도배일기}, 도서출판 지혜, 2011년) 부분
우주의 집에 세들어 살지 못한 지구, 우주가 버린 미아로 남은 지구는 다만 ‘이우주’라는 어린이가 살다가 간 집안에서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세기말적인 종말론과 겹쳐져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자원부족과 인구과잉, 이상기온과 수많은 지각변동, 드디어, 마침내 이 지구의 대폭발이 다가오고 있는 듯 하다.
“열반에 든 지구여 평안하신가?”
그러나 지구는 영원한 우주의 미아에 지나지 않는다.
장식장에 진열된 제법 여러 권의 족보를 젊은 할아버지는 보자기에 싸서 옮긴다
두 손으로 공손하게 벽장에 넣는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집은 종가이고 무슨 파 삼십 몇 대 종손이며 임야와 전답을 경영한다고 한다
그러니 적당한 대우를 받아도 된다는 배후가 깔려 있다
선산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곱다
별반 힘들이지 않아도 농사는 되는 모양이다
----강병길, 「족보-도배일기 11]({도배일기}, 도서출판 지혜, 2011년) 부분
족벌, 재벌, 학벌, 군벌 등에서처럼 ‘벌閥’자가 들어가면 그 무슨 권위주의 시대의 상징처럼 무섭고 끔찍하고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때는 족벌이 제일 무서운 적도 있었고, 한때는 군벌이 제일 무서운 적도 있었다. 한때는 학벌이 제일 무서운 적도 있었고, 한때는 재벌이 제일 무서운 적도 있었다. 이제 족벌은 재벌이며, 재벌은 학벌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재벌들이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그 어떤 반대파와 그 정책마저도 단숨에 무력화시키게 될만큼의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군벌이라는 말은 어느덧 시대착오적인 사어死語가 된 듯도 하다.
족벌은 혈연과 가문의 상징이며, 이 족벌에 의하여 아직도 민족주의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그가 속한 민족만이 선택받은 민족이며, 그 이외의 민족은 자기 자신들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선민의식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첫 번째도 조상숭배이고, 두 번째도 조상숭배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집은 종가이고 무슨 파 삼십 몇 대 종손이며 임야와 전답을 경영한다고 한다/ 그러니 적당한 대우를 받아도 된다는 배후가 깔려 있다”라는 시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조상은 전지전능한 신이 되고, 선산은 그들만의 성지가 된다. 임야와 전답을 경영한다는 대종가집의 종손은 그러나 한얀 손가락의 선비이며, 애써 힘든 노동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부잣집인 모양이다.
도배공은 하찮은 직업이다.
강병길 시인은 그러나 이 도배공의 시선으로, 그 시대착오적인 종손의 허위의식을 비판하게 된다. 비판도 이처럼 여유가 있고 품격을 유지할 수가 있다면 더 이상 아무런 문제도 없게 될 것이다.
집이 팔리든 안 팔리든 근심은 마찬가지다 도배라도 깨끗해 보여야 더 받을 것 아니냐며 쌈지를 털어 놓는다 이꼴저꼴 보기 전에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질긴 명줄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넋두리다 약이라고 먹은 개가 네다리를 바들바들 떤다 가망이 없어 보인다.
----강병길, 「약-도배일기 16]({도배일기}, 도서출판 지혜, 2011년) 부분
가난과 굶주림 앞에서는 백약이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된다.
“약이라고 먹은 개가 네다리를 바들바들 떤다 가망이 없어 보인다.”
늙으면 추하고 늙으면 무능해진다.
늙으면 빨리 죽어야 한다.
가을에 계약한 집 봄이 되어 일하러 간다 약속의 골짜기는 깊었으나 기억은 길을 잃지 않았다 갈참나무 쪽동백나무는 전날 내린 비로 싱그럽다 북향 잔설은 간밤의 것이리라
----강병길, 「약속-도배일기 19]({도배일기}, 도서출판 지혜, 2011년) 부분
2013년 2월, 내가 읽고 외운 가장 좋은 시구는 “약속의 골짜기는 깊었으나 기억은 길을 잃지 않았다”라는 시구라고 할 수가 있다.
약속의 땅에서는 만물이 꽃 피고, 모든 동식물들이 영생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허허벌판 전기도 끊어진 집 얻어서 겨우 막차 쫒아가는 사람처럼 도배 먼저 해 달라고 서두르는 통에 살얼음 깨고 논물 떠다가 벽지 붙여줬더니 잠깐 나갔다온다는 말끝으로 해 떨어지고 한참 지나도 나간사람 오지 않는다 허우대 멀쩡한 사람이 속이는 재주에 맛을 들였으니 그에겐 어차피 앞날이란 오늘 뿐인데 그는 그것이 한마루공사인 걸 내가 몰랐다 사람의 껍데기를 쓰고 입치레하는 안타까운 인생을 씹으며 무른 법까지 들먹였지만 그의 의도대로 일은 끝났다
오늘의 보시布施는 슬프고 슬프다.
----강병길, 「한마루공사-도배일기 29]({도배일기}, 도서출판 지혜, 2011년) 전문
한마루공사는 일처리를 전례와 다름없이 하는 것을 말하지만, 그러나 이 시에서는 소위 개털들의 사기행각을 말하게 된다. 가진 것도 없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인간이 입에 발린 거짓말로 타인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속임수가 바로 그것인데, 그러나 그것은 그만을 탓할 수도 없는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열흘 굶은 사람을 보고 도둑질 하지 말라는 교훈처럼 공허한 말도 없을 것이다.
“오늘의 보시布施는 슬프고 슬프다.”
들이닥치는 도배장이들처럼
이별은 예상보다 성큼 온다
한껏 누추한 표정으로
잠시라도 바라보아주기를 바라는 벽지는
이내 덮인다
상처가 아물듯
벽지의 한 생이 묻힌다.
----강병길, 「상처-도배일기 33]({도배일기}, 도서출판 지혜, 2011년) 부분
강병길 시인의 “들이닥치는 도배장이들처럼/ 이별은 예상보다 성큼 온다”라는 시구를 읽으면서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도배장이가 계엄군처럼, 점령군처럼, 아니, 저승사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도배장이는 철학적 의사이다.
도배장이는 벽지 속의 한 생과 그 상처를 치료해준다.
물고기 없던 가게에 물고기 모양 벽지 붙이고
도배장이도 오늘 손맛을 봤다.
----강병길, 「낚시가게-도배일기 36]({도배일기}, 도서출판 지혜, 2011년) 부분
“물고기 없던 가게에 물고기 모양 벽지 붙이고/ 도배장이도 오늘 손맛을 봤다.”
그렇다.
대물大物이다.
이 대물의 행진이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겉보기엔 깎은선비가 방문만 수차례다 벽지 고르고 다시 고르고 잊을 만하면 재차삼차 확인해보고 또 선택한단다 이번이 최종 결정만 대여섯 차례다 비문秘文이라도 찾을 요량처럼 견본을 외우다시피하며 진을 빼는데 아내는 그걸 다 받아낸다 애 낳는 것보다 쉽다지만 나는 아직 쓸개가 있다 일흔 개 고욤보다 감 한 개가 낫다고 사람도 자잘한 열매나 매달고 다니면 볼품없는 삼류가 된다
----강병길, 「선정-도배일기 43]({도배일기}, 도서출판 지혜, 2011년) 부분
소꼬리보다는 돼지머리가 낫고, 돼지꼬리보다는 닭대가리가 낫다. 감 한 개보다는 일흔 개의 고욤이 낫고, 너그러운 선비보다는 끊임없이 결단(선정)을 미루는 꽁생원이 낫다.
꽁생원은 잔머리의 대가이고, 여간해서는 자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이중인격자, 아니 성격파탄자와는 그 어떠한 일도 함께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