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주인들 횡포에
춘천 계곡에 흐르는 '불쾌감'
국유지 계곡 위에 평상 놓고 영업 버젓이
주요 지점마다 식당 이용 안하면 발 담그기도 힘들어
미온적 시 당국 “인력이 모자라 정기 단속 힘들어”
사진설명: 지암계곡 입구 전경.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가든 사유지라 막혀있어 바깥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물놀이에 적당한 깊이의 지점까지 들어가려면 중간에 가로놓인 장애물을 건너가야 하기 때문에 꽤 위험하다.
“계곡이 아니라 장사하는 곳이에요. 가게 주인이 점령한 거나 다름없는 거죠”
신북읍에 거주하는 26세 김성우씨는 지난달 20일 사북면에 위치한 지암계곡으로 물놀이를 떠났다가 불쾌함만 가득안고 돌아왔다. 계곡 옆에 빼곡하게 늘어선 식당 때문이었다. 친구 5명과 함께 모처럼 떠난 나들이였지만 예약할 때부터 인원, 주문 메뉴, 머무는 시간까지 따져가며 손님을 받을지 말지 결정하는 가게 주인의 횡포에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김씨는 “식당을 이용하지 않으면 계곡에서 물놀이하기 힘들다”며 “놀기 좋은 곳 옆 길목은 전부 가게가 들어 서 있으니까 물에서 놀려면 어쩔 수 없이 음식을 시켜야 한다”고 불평했다.
춘천지역 계곡 일대 위치한 식당들의 지나친 사익 챙기기에 나들이객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계곡 입구를 막아선 뒤 식당을 이용하게 유도하거나 손님을 더 받기 위해 공유지인 계곡 안에 불법으로 평상을 설치하기도 한다. 한 피서객은 “음식 값이니 자릿값이니 내고나면 지출이 너무 커서 계곡에 놀러오기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1일 찾은 지암계곡의 한 식당 앞에는 길목을 막은 철문 위에 ‘사유지입니다’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주민들로부터 ‘물놀이하기 제일 좋은 장소’라는 평을 받는 곳이었지만 식당을 통하지 않고서는 추천받은 장소까지 향할 방법이 없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음식을 시키지 않고 식당 앞 계곡에서 놀아도 되냐고 묻자 “여기 다 우리 땅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게를 통하지 않고 옆길로 내려가 놀겠다고 끈질기게 요구하자 직원은 “놀아도 되긴 하는데 얕은 곳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위험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성수기였던 지난달 이곳을 방문한 백효정(여·22·경기도 구리)씨는 “손님한테 방해된다고 눈치도 줬다. 자꾸 나가라는 식으로 말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여름철 피서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계곡은 덕두원, 퇴골, 삼한골, 지암계곡이다. 수심이 깊고 깨끗해 물놀이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지점에는 대부분 식당에서 설치한 평상이 자리하고 있어 피서를 즐기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시내보다 훨씬 비싼 음식 값을 지불해야 한다. 음식 값을 내지 않기 위해서는 식당가가 없는 계곡 상류 또는 하류로 한참 간 후 내려가기 힘든 비탈길을 조심히 지나가야 한다. 계곡을 자주 찾는다는 최모(26·우두동)씨는 이들 식당을 거치지 않고 계곡으로 가는 길이 “너무 힘들고 길도 험해서 풀에 팔이 긁혀 상처가 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최씨는 또 “덕두원은 계곡 안에 평상이나 상을 설치해 놓고 장사한다. 성수기에 가게가 만석이 되면 급히 계곡에 자리를 만들고 손님을 더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에도 관련 후기가 다수 올라와 있어 이 중 한 민박에 전화한 후 예약하겠다고 말하자 “계곡 안에 만들어 놓은 것 맞다”며 “평상 진짜 많다. 100명도 수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계곡은 공유지이기 때문에 사익을 취할 목적으로 불법 시설물을 설치해 하천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은 현행 하청법을 위반하는 행위다. 하지만 한철 장사를 목적으로 하는 계곡 근처 식당들은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받기 위해 단속을 피해 계곡 곳곳에 평상을 설치하고 있다.
▲ 미흡한 대응 시 당국 "인원 부족해서"
현행 하천법 95조 규정에 따르면 하천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한 ‘하천법’에 의거해 원상회복 명령과 강제 철거를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하천등급은 크게 국가하천, 지방하천, 소하천으로 구분하는데 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눠 관리하고 있다. 계곡과 같은 소하천의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별 자체법규에 따라 보수 및 관리된다. 지자체는 국유지에 평상을 깔아놓고 식당을 운영하는 업자 등에게 국유지 무단 점용에 따른 변상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변상금은 주변 토지시세의 1.2배 정도로 물린다.
하지만 벌금은 많아야 수백만 원 정도에 불과해 한철 장사의 ‘투자비’ 정도로 여길 법한 실정이다. 또 식당이 아닌 계곡 인근 평상에서 음식을 조리하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영업정지 또는 과태료 처분 대상이지만 실제로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평사 계곡 입구에는 자릿세 가격 안내 현수막까지 내걸렸다. 춘천시는 민원이 잇따르자 현장 점검을 통해 행정조치를 내렸으나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하천관리계 관계자는 “하천과 관련된 민원이 접수되면 현장 점검을 통해 행정조치를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담당인력이 부족해 피서객이 몰리는 극성수기에도 정기적인 단속은 어렵다”고 토로했다.
춘천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계곡들마다 무허가 음식점들은 버젓이 대규모 불법영업을 하고 있는데도 단속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평군은 대부분의 계곡들이 자연환경보존구역이나 산림정화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때문에 보호구역 인근 하천에 시설물을 설치하거나 하천수를 사용할 시에는 하천점용허가나 하천수 취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양평 대부분의 계곡에서도 하천에 평상 수십 개를 설치해놓고 음식 값 따로 자리값 따로 받는 방식으로 불법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매년 100만 명이 다녀가는 경기도 포천 백운계곡의 상황 또한 이와 비슷하다. 관리 명목으로 자릿세를 요구하지만 설치된 평상이 부실하고 곳곳에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하지만 계곡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업자들은 시청에서 단속을 나올 때 잠시 평상을 치우면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여름 한 철에 벌금보다 많게는 10배 이상 벌기 때문에 과태료나 벌금에 개의치 않고 영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사명동 길목에서 만난 춘천시민 정모(45·효자동)씨는 “아이들과 계곡에 놀러가도 식당에 들어가지 않으면 물놀이하기 마땅한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계곡이 마치 자기 땅인 양 불법으로 평상을 설치해놓고 장사한다는 것은 공권력을 아주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보다 강력한 당국의 조치를 촉구했다.
박은주·현진 시민기자